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외전 16화
4. 마녀(5)
“……양?”
레이나가 살짝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럴 만하다.
사건의 전말을 모르면.
“이, 이게 뭐야?”
레이나가 아몬드를 돌아보며 묻는다.
“아…… 이건…….”
아몬드는 조력자에 대해 설명하려 했으나. 그 조력자가 등장하는 게 더 먼저였다.
콰앙!
허공에 하얀 연기가 터져 나오더니, 그 안에서 누구가 튀어나온다.
“한참 로맨틱한데 미안하지만!”
쿵.
작은 키의 누군가가 허공에서 떨어져 착지했다.
“이 몸 등장!”
아몬드가 도움을 요청했던, 로랑.
“사막의 마녀가 왔다 이 말이야~!”
아니, 사막의 마녀다.
* * *
마녀의 등장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적어도 아몬드 외의 다른 사람들에겐 말이다.
“마…… 마녀?”
“로랑?”
“사, 사막의 마녀…… 진짜 있었다고?”
용병단들이 벌벌 떨며 뒷걸음질 쳤다.
그럴 만했다.
사막의 마녀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이 세상에선 거의 저승사자나 다름이 없었다.
굳이 여신교가 아니더라도, 다른 종교에서도 그의 존재는 악(惡)으로 규정된다.
“그럼~ 진짜 있지. 이 양반들이 속고만 살았나. 어?”
다만, 아몬드의 눈엔 여전히 로랑은 로랑이었다.
사막의 마녀에 대한 묘사 그대로, 굴곡진 적갈색의 머리칼, 에메랄드빛의 녹색 눈, 장난기 가득한 주근깨.
거기에…….
척.
마침 대놓고 들어 보이는 저 새끼손가락의 손톱.
그래. 저 손톱을 로랑은 처음부터 기르고 있었다. 아주 대놓고 나 마녀요 하고 있었던 것인데. 신기하게도 어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자. 여기 일단 확보된 증거들이 한두 개가 아니구만.”
우웅……!
그 손톱에서 한없이 응축된 마력의 기운이 반짝인다.
빛이 일직선으로 레이저처럼 쏘아지더니.
핑! 핑! 핑!
여러 증거물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이야. 아몬드. 난 네가 날 못 부를 줄 알았다니까? 알다시피 마녀들은 이름을 불러주면서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제대로 마법을 못 쓰거든. 그런데 네가 정확히 편지에 ‘사막의 마녀 로랑에게’라고 써준 거지!”
수다스러운 입. 그래, 놈은 여전히 로랑이었다.
다만 치마를 걸치고 있다는 것과 얼굴이 꽤 귀여운 소녀가 되어버렸다는 게 다르다.
그러니까, 마‘녀’는 마녀였단 거다.
-크! 호두 열일했네
-이거 한 번에 못 맞히는 사람 많았는데 ㅊㅊㅊ
-와 ㅠㅠㅠ 로랑이 마녀였구나 ㅠㅠ
-헐 ㅋㅋㅋ
-로랑 얼굴 버프 ㅈㄴ 됐네ㅋㅋㅋ
-아니 마귀가 있으면 진즉에 타죽었다던 그 할배 허세 뭔뎈ㅋㅋㅋㅋ 마녀가 바로 코앞이었는뎈ㅋㅋㅋㅋ
시청자들 중에선 이미 눈치챈 사람도, 아니면 이미 이 스토리를 본 사람들도 있었기에 아는 자들도 꽤 있었다.
다만 처음 플레이하는 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몬드가 관찰력은 꽤 좋은 편인지라 눈치챌 수 있었던 거다.
‘말이 안 됐지.’
생각해 보면 이미 시작부터 로랑은 이상한 존재였다.
아무도 쓰지 않는 양으로 변하는 마법 따위를 써대고, 선지자였던 베레드를 순식간에 기절시켜 버리질 않나…….
도저히 저 나이대의 소년이 가질 수 없는 능력들이다. 게임 특성상 그냥 넘어가려면 넘어갈 수도 있는 거지만. 따지고 보면 이상한 것투성이에.
남자들 중엔 흔치 않게 손톱을 이쁘장하게 기르고 있다는 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란이 로랑의 존재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로랑은 란을 통해서 이 거대한 짓거리를 하고 싶었던 거다.
레테의 천문을 개방하여 플레이어를, 그러니까 여기서는 화신을 받아들이게 한 것도 아마 로랑일 거다.
“……네 동료야?”
레이나가 눈물을 훔쳐내며 물었다.
물어보는 투가 왠지 뾰로통한 게, 이 사이에 끼지 못하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아…… 아니. 동료는 아니고. 그냥…… 저 사람이 날 사주한 거야.”
“아…….”
레이나는 흘끔 다시 아몬드를 올려본다.
“……그게 네 원래 얼굴인가?”
그녀는 얼른 시선을 피하며 묻는다.
-미치겠네 ㅋㅋㅋ
-레이나는 대체 아몬드한테 몇 번 반하는 거누
-와 근데 이거 레이나 3별 클리어 보상? 인가 봐 ㅠㅠㅠ 연계가 되네
-원래 가끔 연계되는 스토리 있는데. 레이나 3별이 워낙 흔치가 않아서…….
“아. 그렇지. 이게 내 원래 얼굴이야.”
“그렇구나. 훨씬 더 잘 어울려.”
레이나는 왠지 더 신난 목소리다.
이게 가짜 얼굴이었으면 별로 안 신났을 것 같다는 수상한 느낌을 차치하고, 아몬드는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그간…… 어떻게 지낸 거야?”
아몬드도 궁금했었다.
그 전장을 탈출하는 데까지는 함께했었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는 전혀 들은 바가 없었으니까.
“보시다시피.”
레이나는 꽤 자랑스러운 듯 자신의 용병단들을 가리키며 웃는다.
“용병단의 대장이지. 늘 그렇듯이.”
그렇다. 레이나는 그곳에서도 대장 역할이었다. 이런 이들을 이끄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나중에 화신의 자리까지 가게 된 것이겠지.
“우리는 이 포션을 추적하고 있었어. 계약자라는 존재를 어떻게 만드는 건지 거슬러 올라가던 중에 블루홀이라는 걸 알게 됐거든.”
“……아. 나도야. 계약자 때문은 아니지만. 저기에 있는 란이라는 꼬마가 이것 때문에 죽을 뻔했거든. 자기 여자친구도 잃고…….”
“그래. 사정은 알아. 녀석을 우리 작전에 포함시킨 게 나니까. 우리는 계속 내부 고발자를 찾고 있었는데. 딱 란이 등장해 줘서 작전을 바로 시행해도 되겠다 생각했었지…….”
레이나는 잠시 씁쓸한 표정이 되어 죽은 동료들을 바라본다.
“……내부 고발자는 여기에만 있던 게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중간에 작전의 내용이 들통났다. 철문을 용접하듯이 막아버렸다는 건 이미 한참 전에 이 작전을 알고 있었다는 거다.
“적진 한가운데까지 들어가서 증거를 다 들고 유유히 도망가는 나름 괜찮은 작전이었는데.”
피식.
레이나가 아몬드를 쳐다보며 고개를 꾸벅 숙인다.
“또 신세를 졌네. 네가 아니었다면 다 죽었을 거야.”
-근데 레이나는 혹시 화장실이 가고 싶은 건가요? 왜 이렇게 몸을 배배 꼬죠?
-레이나는 화신이 지렁이냐? ㄹㅇ ㅋㅋㅋ
-아주 좋아 죽네 ㅅㅂㅋㅋㅋ
-아오ㅋㅋ 란 스토리모드라서 염장 안심이었는데. 반전 미쳤네ㅋㅋ
레이나와 대화할수록 시청자들의 저항이 거세지긴 했지만.
아몬드는 그래도 간만에 어린 시절 레이나의 근황을 확인할 수 있어서 뜻 깊었다.
“넌…… 화신이 됐구나?”
“……응.”
아몬드는 무어라 대답할지 몰라, 그냥 그렇다고 해버렸다.
사실 실제 릴에서는 아몬드가 계약자고 레이나가 화신인데 말이다.
“음. 나도 영웅으로 죽는다면, 너처럼 될 수 있을까?”
“……죽지 않는 게 좋지.”
푸흡.
레이나는 아몬드의 대답에 그게 맞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만나서 반가웠어.”
레이나가 손을 내민다.
아몬드도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이제 곧…… 가는 거지?”
대체로 화신들이 그렇듯, 항상 깃들어 있을 수는 없다.
“아마도.”
레이나는 악수를 하며 손을 흔들더니…….
휙.
그를 잡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
“잘 가.”
* * *
피해를 크게 입은 붉은 용병단은 자신들의 전리품을 챙겨 떠났고, 사태의 마무리는 사막의 마녀가 대신 해주기로 했다.
레이나는 떠나는 순간만큼은 꽤 쿨한 분위기로 인사해 주었다.
아마 아몬드가 화신인 걸 인지하고, 미련을 남길 수 없었던 것이겠다.
여튼, 사막의 마녀의 일처리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보는 사람마저 무서울 정도다.
일단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의 인지 능력까지 조작할 수 있었는데.
이게 사막의 마녀의 능력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능력이었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사람들이 인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로랑을 다시 예전의 그 주근깨 소년 학생을 보게 된다든가…….
이래서 그런 학교에도 잠입할 수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다만 이런 인지 조작은 정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
“에이 귀찮아. 씨발.”
……라고 말하며, 대부분은 그냥 다 양으로 만들어버렸다.
퍼버벙!
이곳에서 저항을 하던 신도들은 그렇게 양이 되었다.
“으하하하! 너희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어린양이 되니까 어떠냐?! 어?”
로랑은 이쪽 신도들에게 원한이 많은지 괜히 양들을 발로 퐁퐁 차기까지 했다.
“내가 베레드 그 새끼를 한 대 못 치고 온 게 천추의 한이다!”
아마 학교생활이 순탄치는 않았던 모양이다.
‘설마…….’
아몬드는 불현듯 학교에 있던 그 수많은 양들이 설마 ‘귀찮아서’ 만들어진 놈들인가? 잠시 고민했으나.
이후 로랑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였다.
“자. 이 증거들이면 말이야. 타란에서 바로 움직여 줄 거야.”
타란이란 나라의 이름이다.
연합국 중에 가장 세력이 큰 나라이며, 그들은 자유를 중시하는 체제를 갖고 있다.
그러니까, 그나마 가장 현대적인 체제를 구축한 나라인데.
이들의 경찰 병력이 움직일 증거들이 확보됐다는 것이다.
“근데…… 로랑.”
아몬드는 쓰러진 란을 업고 따라가며 그에게 물었다.
“애초에 어떻게…… 학교에 오게 된 거야? 넌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힘을 쓰지 못한다며.”
“적당히는 쓸 수 있어. 너 하나쯤 양으로 변하게 하는 건 언제나 가능이지.”
킥킥거리며 로랑이 말을 이었다.
이렇게 영업 비밀을 다 술술 말해도 되나 싶었는데. 사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이겠다.
“근데…… 그 큰 학교를 전부 인지 왜곡을 건다는 건 큰일이지. 더군다나 엄청난 신념(Faith)으로 뭉쳐 있던 녀석들이니.”
실제로 종교를 믿는 자들은 마녀가 건드리기 훨씬 어렵다고 한다.
아몬드도 앞으로 교회를 한번 다녀볼까 고민했다.
“자. 나왔구만.”
어느새 눈앞에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이것도 혹시 마녀의 마법인 걸까?
분명 싸움이 시작됐을 땐 밤이었는데, 지금은 청량한 햇살이 쬐는 아침이다.
“자~ 어린양들아! 뜯어먹어!”
메에에에~~
한때 표독스러운 신도들이었던 양들은 초원으로 우르르 달려나가며 자신의 복슬거리는 털을 자랑했다.
‘와.’
이토록 평화로운 풍경이 있을 수 있을까.
초록 동산 위로 뛰어다니는 하얀 양들이라니.
“으으……음. 아몬드 님.”
뒤쪽에서 란이 깨어난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긴…… 고향…… 인가요.”
고향이라…….
란이 그렇게 착각할 만도 했다. 학교의 그 초원과 꽤 닮아 있었으니.
그래도 그곳은 란의 고향이구나.
“아. 란. 아니야. 여긴 그 공장이 있던 곳이야.”
“그…… 그렇습니까. 다…… 잘 해결됐나요.”
“응. 다 잘됐──”
아몬드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복수(★★★) 클리어!]
[스토리모드 클리어!]
그의 여정은 끝났다.
툭…….
“……어? 아, 아몬드 님?”
쿵!
잘 걸어가던 아몬드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졌고.
란은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 그를 돌아 뉘였다.
“아, 아몬드 님? 아니…… 레테?”
란의 목소리가 떨렸다.
직감한 것이다.
“란.”
사막의 마녀가 란을 부른다.
“그의 팔을 봐라.”
“……?”
팔을 들어본 란은 그 자리에서 오열하고 말았다.
「란을 지켜줘…… 내가 죽더라도.」
메에에에~~
수많은 양들의 풀 뜯는 울음소리가, 란의 처절함을 그나마 가려주었다.
[외전 끝]
이브닝와이드 출연 당일.
오후 2시.
이날은 비가 마구 쏟아졌다.
“한겨울에 웬 비냐…… 되게 미끌거리네.”
주혁이 투덜대듯이 말하며 조심스레 운전대를 꺾었다.
[약 300미터 앞, 좌회전 후 우측 도로입니다.]
내비게이션엔 ‘SCB’ 스튜디오가 목적지로 찍혀 있었다.
쏴아아아아…….
창을 때리는 빗소리와 주혁은 말없이 운전하고, 상현은 조수석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기사가 떴구나.’
출연 확정 기사가 떴다.
촬영을 가는 이 시점에서야 말이다.
[화제가 되었던 양궁 소년, 스트리머 아몬드. 금일, SCB 이브닝와이드의 23번째 게스트로 초대]
이브닝와이드는 라이브 채널에서 한 번 송출된 후. 편집본은 따로 올튜브와 상위 채널에 방영되는 식이다.
즉, 오늘 바로 방송이 나간다.
그걸 감안하면 기사는 조금 늦었다.
-와 오늘 바로 볼 수 있는 거임?
-이브닝와이드 월클이네~ 아몬드도 초대하고~
-SCB 열일하누 ㅋㅋㅋㅋ 오늘만큼은 SCV로 인정해 주마.
-이제 완전 메이저로 자리 잡으려고 빠릿하게 움직이네요 ㅎㅎ
-아몬드? 사람 이름이 아몬드임?
-와 오늘 치킨 시켜야지
이 기사가 난 후에 제이버 등의 포털에서도 따로 소식이 전해졌고.
당연히 소식은 커뮤니티로 퍼져 나갔다.
[속보) 아몬드 이브닝와이드 게스트!]
[큐트파이가 나왔던 이브닝와이드 아몬드 입성!]
각종 게임 커뮤니티에 이런 류의 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와 진짜야?
-이브닝와이드에서 아몬드를 보게 되다니 ㅋㅋ
-아몬드 후려치던 놈들 다 어디? ㅋㅋㅋㅋ
└게임 실력이랑 저기 나가는 거랑 뭔 상관 ㅋㅋㅋ
└인지도도르ㅋㅋㅋ
└겜돌이가 저기 나가면 인싸 맞지 ㅋㅋㅋ
└어휴 견과류단 또 시! 작! 됐! 다!
-이브닝와이드 메이저 중에서도 듣보 아님? ㅋㅋ
‘듣보라…….’
상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알아본바, SCB는 분명히 상급 메이저 채널은 아니었다.
아슬아슬하게 메이저 느낌이 나는 곳이라고 보는 게 좋다.
‘근데 요즘 시청률 잘 나온다던데.’
그럼에도 이 채널로의 진출이 의미가 있는 이유.
이브닝와이드가 요즘 뜨기 시작하는 토크쇼이기 때문이고.
‘스트리머가 나간 적도 거의 없고.’
게임 스트리머가 이브닝와이드 같은 메이저 채널에 들어가는 건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 상현 전에 게임 스트리머들 중 초대됐던 사람은 큐트파이 하나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댓글에서도 큐트파이를 언급한다.
-큐트파이 이후로 게임 스트리머는 처음 아닌가?
└큐트파이를 게임 스트리머라고 봐야 하냐?ㅋㅋㅋ
└어쨌든 게임이 주 컨텐츠잖아.
└걘 걸그룹 출신이잖아. 메이저 채널에선 성골이라 봐야지
└전자파도 거절 안 했으면 나갔음. 방송 노출 겁나 꺼려서 못 나갔지.
└순도 100퍼 겜돌이는 거의 못 나감
이들 말처럼, 사정이 어찌 됐든 큐트파이 이후로는 아몬드가 첫 출연이다.
그렇기에 방송 출연 사실만으로도 커뮤니티가 이렇게 들썩이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의견도 있었다.
-이브닝와이드는 그냥 양궁 유망주 사연남으로 나가는 건데 왜 겜돌이들 계급 상승한 것처럼 나댐??
└맞네 ㅋㅋㅋㅋㅋ
└ㄹㅇㅋㅋ
-팩트) 게임 스트리머 아몬드가 아니라 양궁 선수 유상현이 나간 것.
이브닝와이드에 나간다고 게임 스트리머로서의 명예가 올라가는 건 아니라는 주장이다.
얼추 맞는 말이기도 했다.
‘상관없지.’
하나 상현은 그런 세세한 것에 별 신경 쓰지 않았다.
게임 스트리머로서 나가든, 인간 유상현으로서 나가든.
어찌 됐든 유상현이라는 사람은 메이저 채널에 입성했다.
오직 그것만이 의미를 갖는 사실이다.
‘주혁이 사정을 생각하면 이만한 호재가 없지.’
상현은 옆에서 운전하고 있는 주혁을 곁눈질하며 생각했다.
뭐가 됐든 메이저 채널에 가는 게 중요한 이유.
그중엔 주혁에 관한 이유가 비중이 꽤 컸다.
아닌 척해도 그는 주혁의 커리어를 신경 쓰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은 이런 데 나오는 걸 더 높이 치니까.’
상현에겐 아닐 수도 있지만, 주혁에겐 메이저냐 마이너냐는 꽤 중요한 요소다.
바로 주변인들의, 특히 부모님의 시선 때문이다.
현재 주혁은 부모님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 않던가?
주혁 입으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며 평생 안 볼 거라고 말하지만.
‘누구보다 인정을 원하잖아.’
상현에겐 뻔히 보였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그런 데 있어서는 메이저 채널 진출만 한 호재가 없다.
그냥 돈 잘 버는 졸부에서, 1등 사윗감으로 바뀌는 루트다.
아직도 어른들은 메이저 채널에 나오는 게 ‘연예인’ 그 비스무리한 거라고 인식하니까.
그리고 우습게도 그건 어른들뿐 아니라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유저들도 그렇다.
사실, 그들의 평소 태도를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다.
이들은 거의 늘 기성세대의 것들을 깎아내리고 폄하하지 않던가?
퇴물, 한물간, 틀딱…… 등의 단어가 쓰이는 빈도를 보아라.
그런데 알고 보면 이들은 사실 누구보다 기성세대의 인정을 바라고 있다.
학력, 번듯한 직장, 전문직 등…….
요즘 세상엔 수익이나 삶의 질과는 딱히 직결되지 않는 것들을, 이들은 아직도 더 높게 치고 있으며, 이 길에서 벗어난 종류의 성공을 얕잡아 본다.
이해가 되기도, 안 되기도 한다.
[약 500미터 앞. 곧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 방송국 건물.
조수석 창에 붙어 올려다보며, 상현은 직감했다.
‘판타지아 때랑은 다를 거야.’
최근 상현이 활동했던 곳, 디스월드, 판타지아, 난트전, 릴프로…….
그런 곳들과는 전혀 다른 논리로 흘러가는 세상에 도착했다는 것을.
그럼에도 낯설진 않았다.
되려 익숙한 느낌이다. 별로 그립지는 않은.
‘아성 같아.’
아성 다니던 시절 매일같이 그를 짓누르던 그 압박감이 다시 전해져 온다.
그렇다.
그는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온 것이다.
약 반년 만에.
“다 왔다.”
“그래.”
쉬이익.
안전벨트가 소리를 내며 빨려 올라가고, 둘이 내렸다.
텅……
문 닫는 소리가 휑하게 울려 퍼진 후.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