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8화
6. 전투(2)
“화장실 한번 갔다 오기 힘드네.”
매점 안으로 터벅터벅 걸어들어오는 아몬드.
그의 셔츠는 온통 피에 젖고, 손에 든 걸레 자루도 시뻘겋게 물들었다.
점원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 친다.
“너, 너…… 어떻게 살았어……? 저 좀비들은 다…….”
“얼른 문이나 닫아. 죽은 건 아니니까.”
“……?”
죽은 게 아니다? 영락없이 죽은 꼴인데.
점원은 다시 까치발을 들어 아몬드의 어깨너머를 본다.
‘움직여……?’
아몬드의 말이 맞았다. 좀비들은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매우 굼뜨게. 그러니까 원래 느린 것보다도 더 느리게 움직이고 있단 말이다.
“닫아.”
“아, 응.”
쿵.
점원은 순순히 문을 닫았다. 다시는 좀비와 마주치고 싶지 않으니.
-말 잘 듣누 ㅋㅋㅋ
-???: (그래도 누나인데 가오가 있지……) 아! 응!
-이제 아몬드가 닫으라면 닫아야지~ 별수 있나 ㅋㅋㅋ
“어, 어떻게 된 거야? 쟤네 왜 저렇게 된 건데? 혹시 밤 되면 못 움직여?”
“……밤?”
점원의 말에 아몬드가 더 놀라 반문한다.
밤이라니.
“응. 지금 밤인데? 오후 9시.”
“……?”
매점 점원이 내민 휴대폰에는 정말 오후 9시라고 되어 있었다.
“에러 아니야?”
“무슨 소리야. 뉴스 기사들도 전부 시간 맞잖아.”
처음 아몬드가 그녀를 설득할 때 썼던 방식 그대로, 아몬드는 설득당했다.
그는 마이크 채널을 방송 쪽으로 돌린 후 묻는다.
“지금 밤 아니죠?”
-ㅇㅇ
-여긴 아님ㅋㅋㅋ
-시간 빨리 흐르겠죠! 게임이니까!
“……저번에 수업 들을 땐 시간 그대로 흐르던데. 이게 상대성 이론인가.”
-아인슈타인: 너 내 강의 때 졸았지?
-그건 걍 님이 졸려서
-이게 상대성 이론이 아님 뭐임!
-아인슈타인이랑 아몬드랑 같은 아씨임. ㄹㅇㅋㅋ만 치셈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니 실제로 현실 쪽은 시간이 많이 흐른 게 아니고, 여기만 빠르게 흐른 거다.
대부분의 생존 게임이 이런 방식을 택하고 있으니 이상할 건 없는데.
억울(?)한 건 수업 시간에는 제대로 시간이 리얼 타임으로 흘렀다는 거다.
“그래서 배고팠구나.”
아몬드는 이제야 왜 이 캐릭터가 그리도 배고픔을 호소했는지 알 것 같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생각하면 얼추 맞는다.
-오. 그런가 봄
-왜 점심 하나 못 먹고 죽으려 하나 했네 ㅋㅋㅋ
-걍 성장기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니…….
점점 이 게임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 같다.
가만히 테이블에 있던 더벅머리가 말을 꺼낸다.
“그건 뭐야.”
그가 가리킨 건 아무래도 걸레 자루다.
“이거…….”
아몬드는 자신이 대걸레 자루를 분질러서 날을 깎아 만든 창이라고 설명했다.
꽤 자랑스럽게 설명했으나…….
‘비슷한 게 이미 있네.’
이곳에도 창이 있었다. 어디서 구한 건지 쇠파이프 같은 곳에 커터칼을 묶어놓은 것이다.
-자랑하려다가 창 발견 ㅋㅋㅋ
-그 정도 호두는 누구나 있다구여~!
-몬드 표정 커여워
-???: 나, 나만 창이 있는 게 아녔어!?
표정에 감정이 조금 드러났는지 시청자들이 놀려댄다.
크흠.
아몬드는 헛기침을 한번 시전 후. 이만 다른 주제로 돌리려 했다.
“왜 못 죽인 거야? 그 무기로는 안 돼?”
그러나 저 더벅머리는 대화를 끝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
어. 그래. 인마. 안 된다.
아몬드는 뒤따라오는 수많은 말을 삼키고, 마침 이렇게 된 거 설명을 해줘야 한다 느낀다. 그가 좀비를 상대하면서 습득한 정보를.
“좀비를 죽이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
* * *
더벅머리는 아몬드가 말한 것들을 찬찬히 정리했다.
“네 생각에 좀비는 머리를 부수는 게 아니면 안 죽는다?”
“그래. 정확히는 뇌.”
“심장도 찔러봤는데, 여전히 잘만 움직였고…… 저기 누워 있는 좀비들은 네가 팔 근육 다리 근육 허리 근육을 전부 끊어내서 만든 결과라는 거지.”
“그래.”
“너…… 뭐 하는 놈인데.”
더벅머리는 어이가 없는 눈으로 아몬드를 훑어본다.
매점 점원도 마찬가지다.
“와. 너 무슨 특전사야? 그렇게 안 봤는데…….”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 못 한 설정인데 특전사는 너무한 거 아닌가.
아몬드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는데, 고맙게도 더벅머리는 그냥 다음으로 넘어간다.
“여튼. 요약하자면 머리통을 부술 만한 무기가 필요하다는 거지.”
“그래.”
더벅머리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망치…… 정도면 되려나…….”
“혹시 활 같은 거도 되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더벅머리는 잠시 눈을 껌뻑였다.
“……활?”
활이라는 말 자체가 평소에 쓰이는 말이 아니기에,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건 아몬드도 이해한다.
“응. 활. 쏘는 거.”
아몬드가 자세를 잡으며 보여주자, 더벅머리는 고개를 젓는다.
“그걸 내가 어떻게 만들어?”
“…….”
실망한 눈치의 아몬드.
-왜 풀 죽냐고 ㅋㅋㅋㅋ
-쟤가 만들길 바란 거냐??
-어이. 난 평범한 고등학생이라고?!
-???: 뭐야…… ㅈ밥이었네.
-쟤가 대장장이 역할인 줄 알았더니. 아니어서 실망했나 봄ㅋㅋㅋ
“네가 잘 모르나 본데. 활로 두개골을 뚫을 정도로 정확하게 맞히려면, 엄청난 숙련자여야 돼. 괜히 총이 나오고 나서 혁명이 유행한 줄 알아?”
“나 숙련자야.”
“……?”
-NPC 그만 고장 내 이 새키얔ㅋㅋㅋ
-아니 왜 토크쇼에서 봤던 한민구 표정이 여기에도??
아몬드의 말에 더벅머리는 잠시 그를 위아래로 살핀다.
“너 정체가 뭐냐…… 양궁부라도 돼?”
양궁부?
학교를 구현한 배경, 그 시절의 교복 등 노스텔지아를 불러일으키는 환경 때문일까.
두근.
아몬드는 그 말에 순간 가슴이 뛰었다.
‘양궁부가 있다는 소린가?’
한국 학교를 배경으로 만들었다면, 그리 흔하게 있는 건 아니다.
만약 양궁부가 있다면, 그건 무기를 위해서 넣은 것일 터다.
“체육관에 양궁 연습장에 가면 활이 있어. 근데…… 화살촉이 없는 화살로 쏘는 걸로 아는데…….”
더벅머리는 턱을 긁적거린다.
“화살촉 정도는 만들어서 바꿔 낄 수 있을지도.”
좋은 정보다.
일단 체육관까지 가면 활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니까.
“근데 체육관까지 가는 건 당장은 무리 아닐까! 여기에도 저 정도로 좀비가 많은데!?”
매점 점원이 끼어들어서 말리듯이 말한다.
“……그건 그래.”
더벅머리도 동의한다.
아몬드도 이건 동의하는 바다. 지금 여기 있는 좀비들도 못 죽이는데. 체육관은 운동장 가로질러 가야 할 정도로 멀리 있다.
‘당장은 창을 만들어서 쓰는 게 최선이겠다.’
일단은 근거리 무기로 싸우는 게 좋아 보인다.
“머리통을 깨는 게 답인 것 같다고 했지?”
더벅머리는 망치를 하나 들어 보인다.
“이거라면…… 그래도 좀 나을 거야.”
찌익.
박스테이프로 망치를 쇠파이프에 감아내는 모습. 능숙해 보인다.
“여기.”
쇠파이프 끝에 손망치가 달린 기다란 둔기가 완성됐다.
“시험해 보자.”
그러자 점원이 기겁한다.
“시험?!”
“……?”
더벅머리가 점원을 가만히 돌아본다.
“누나가 화장실이 제일 필요할 거 아냐.”
“아…… 그, 근데 좀비들을 다 죽여도 결국 또 다른 데서 오지 않겠어? 내가 올튜브에서 보니까 좀비들은 소리에 제일 민감하고 그다음이 냄새래. 사실 앞은 잘 보이지 않는다더라고.”
올튜브에 그런 게 올라오고 있어? 의아함이 들지만. 네트워크는 살아 있는 채로 좀비들이 돌아다니면 확실히 그럴법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좀비를 망치로 후려 패는 소리가 위층까지 들릴 테고. 그러면 또 좀비들이 올 테고…….”
한마디로 화장실을 갈 때마다 결국 매번 좀비들을 마주칠 거라는 이야기다. 이래서는 삶의 질이 개판이다.
“그건 내가 생각이 있어.”
아몬드가 한 말이다.
놀랍게도 이번엔 그가 전략을 제시한다.
‘미니맵 상으로도 표현되어 있고. 분명히 있던 걸 봤지.’
그는 그가 떠올린 작전을 설명한다.
“방화문이라는 게 있어.”
“아!”
더벅머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뭔지 알았는지 손뼉을 친다.
“복도, 계단, 통로마다 일정 거리 이상 벌어지면 반드시 설치하게 되어 있어. 학교 시설에는.”
“……아. 그 철문!”
점원도 이제야 뭔지 안 것 같다.
“서쪽 계단은 우리 매점 바로 옆이니까. 잠깐 나가서 닫으면 되고. 핵심은 동쪽 계단이지.”
“동쪽 계단까지 닫으면……?”
“우리는 여기 지하에 있는 음악실, 화장실, 실내 체육실까지 전부 우리가 쓸 수 있는 거야.”
“!”
그렇다.
이 학교…… 아니, 사실 전국의 모든 학교는 이런 식으로 영역 확장이 가능하다.
방화문이라는 천연 바리케이드 덕분이다. 심지어 그 방화문 위에 진짜 바리케이드를 쌓을 책상이나 무거운 물건들이 넘치는 곳이 학교다.
“이런 식으로 하면 학교의 어디든 계속 영역으로 만들 수 있어.”
“와……! 그렇네!”
-무친 호두 스핀ㄷㄷㄷ
-솔직하게 말해 너 김주혁이지?
-자 이제 아몬드 님 다시 캡슐로 들어와 주심 됩니다~
굉장히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계획이었다.
화장실을 포함한 이 지하 복도 전체를 영역화한다면 식량에 이어서 위생까지도 나름대로 커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좀비들이 상태가 안 좋을 때 우리는 북쪽 계단까지 가서 문을 닫는 게 어때.”
이게 아몬드의 제안이다.
좀비들이 무력화된 지금이 기회였다.
“좀비들을 죽이면 소리가 나게 될 거야. 그러니까 죽이지 않고 조용히 북쪽 계단까지 가는 거지.”
굳이 좀비들을 죽일 필요도 없는 계획이다.
나머지 둘도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인 셈이다.
“그래. 해보자.”
점원이 뭔가 다짐한 듯 말한다.
“나, 나도 저런 상태의 좀비들이라면 좀 해볼 수 있을 거 같아. 아니. 해봐야지. 올튜브에서 엄청 봤어. 할 수 있어.”
그녀는 자신에게 말하듯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더벅머리도 끄덕인다.
“……당연히 해야지. 살아야 되는데.”
생존.
아직은 이 단어가 셋에게 그리 와닿지는 않지만, 오늘이 지나서 내일이 온다면 달라질 수 있다.
그때 가서 이 계획을 실천하기엔 늦을 수 있다.
“우, 우리, 정확히 작전을 짜보자. 혹시 나가서 꼬일 수 있잖아?”
점원이 제안한다.
아몬드도 동감하는 이야기다.
이미 화장실을 한번 이용했던 터라 전혀 서두를 이유는 없다.
* * *
아몬드는 정확히 보여주기 위해 노트 한 장을 찢어서 그림을 그려 보여주었다.
“여기 계단 앞에 있는 방화문 2개를 닫는 거야. 그러면 더 이상 좀비들이 못 내려오지.”
매점 점원과 더벅머리는 그제야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아…….”
“이제 제대로 알았어.”
셋은 나란히 매점 문 앞에 섰다. 모두 새로운 무기를 든 채였다.
“그럼 연다.”
아몬드가 매점 문손잡이를 잡고 묻는다.
‘응.’
‘그래.’
두근. 두근.
점원의 심장 소리가 밖까지 울려 퍼진다.
이해할 수 있다. 긴장할 만했다. 과연 아직도 좀비들은 무력화된 상태일지. 이들은 알 수 없었다.
나가자마자 좀비와 싸우게 될 수도 있으니 무서운 게 당연했다.
하지만 별수 있나. 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끼익.
아몬드가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