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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2부-22화 (302/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22화

8. 손님(1)

쿵……!

방화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여기도 됐어.”

“오케이. 여기도!”

복도의 양 끝인 서쪽과 동쪽 계단 방화문이 닫혔다.

이로써 아무도 이 문을 열지 않고는 복도 안에 도달할 수가 없게 됐다.

이곳엔 이제 매점 점원과 아몬드, 그리고 더벅머리 소년뿐이다. 물론 거기에 다수의 좀비들도 포함.

“크르르르!”

“크아아악!”

위험하진 않았다. 제대로 무력화되어서 이빨만 딱딱 부딪히는 그들은 그저 위험한 관상용 물고기 수준에 불과했다.

다만 눈먼 이빨에 발목이 거덜 나지 않도록 조심은 해야 한다.

“조심. 조심…….”

아몬드를 포함한 셋은 징검다리를 건너듯 조심히 걸어서, 다시 매점으로 돌아와 문을 잠갔다.

철컹.

문이 잠기자마자 쓰러지는 더벅머리와 점원.

“하아. 이제 이 매점이 집 같네.”

“지, 진짜 죽는 줄 알았어.”

현재 시각 새벽 2시.

충분히 피곤할 시간이다.

아몬드는 제외다. 그는 애초에 이들과는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존재이니. 바로 화이트보드 앞에 설 수 있었다.

“이제 화장실이랑 매점, 필요한진 모르겠지만 음악실까지 우리가 다 쓸 수 있는 거야.”

아몬드가 아까 전에 그렸던 도면 위로 색칠을 시작했다.

복도와 매점, 화장실, 그리고 음악실까지 전부 한 색으로 칠해진다.

이제 이들의 영역이다. 이로써 식량과 기본적인 생리 현상에 대한 해결책까지 확보했다.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이 정도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엄청난 축복이다. 그런데, 인간이 어디 그렇게 쉽게 만족할 수 있던가?

“근데…….”

매점 점원. 그녀는 피가 묻은 자신의 옷을 집게 손으로 들어 올린다.

“……빨래는 무리겠지?”

아몬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빨래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빨래도 해야 되냐!?

-그냥 천국 가서 다 해결하시죠 누님.

-위로 올려보내 드리겠습니다! 거긴 다 있어요!

-점원한테 넘 뭐라 하지 마 ㅋㅋㅋ 이게 쟤 역할이야 ㅋㅋㅋ

빨래라…….

비누만 있다면 화장실에서 못 할 건 없을 터다.

근데 이게 급한 일일까? 아몬드는 일단 상태창을 켜본다. 이 게임에선 내가 어떤 상태인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그도 슬슬 터득해가는 거다.

[배고픔]

[피곤함]

[불쾌함]

이렇게 3개의 상태가 진행 중이다. 상쾌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불쾌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배고픈 거랑 피곤한 건 알겠고…….’

불쾌한 건 뭘까.

아몬드는 그걸 한번 눌러본다.

==== ====

끈적거리는 핏자국과 땀…… 불쾌하다. 씻고 싶다.

신경질성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으며, 정신력이 미약하게 감소한다.

(*정신력이 급격히 하락하면 분열 증세가 시작되어 환각, 어지럼증 등이 발생하고 모든 능력치가 감소됩니다.)

==== ====

아직까진 별다른 디버프는 없었다. 단순히 기분이 좀 나쁘다 수준.

‘정신이 피폐해지는 게 가장 큰 리스크야.’

다만, 정신력이 하락했을 때 오는 분열 증세 등…… 발발하면 감당하기 힘들어 보이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미래의 위험성과 현재의 편의성…….

아몬드는 결정을 내린다.

“오늘은 자고, 내일 아침에 비누로 화장실에서 빨래를 하면 되지 않을까?”

“오. 그렇구나. 근데…… 그러면 말리는 동안 입을 건?”

매점 점원은 아무래도 여기서 혼자만 여자다 보니 걱정이 되나 보다.

아몬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옷이 필요해. 이 게임 특성상 옷 안 입고 있어도 뭔가 불리한 게 생길 테니.’

진짜 고인물마냥 팬티 바람으로 좀비들을 죽이는 것도 즐거운 상상이지만, 이 게임 특성상 전혀 이로울 건 없어 보인다.

잠깐. 팬티 바람?

아몬드는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겉옷만 빨고, 속옷을 입고 마를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다음에 속옷을 빨면 안 되나?”

좀 창피할 순 있겠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법이다. 어차피 해변가 가면 다들 속옷 차림이나 다름없으니.

매점 점원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좀 그렇긴 한데. 별수 없네.”

아몬드가 자신이 내린 솔루션에 나름 자랑스러워하며 채팅창을 흘끔 볼 무렵.

테이블에 엎드려 졸고 있던 더벅머리가 고개를 들어 올린다.

“누나 바보야? 여기 체육복 팔잖아.”

“아! 미친! 나 바본가 봐!”

체육복? 그런 게 있었어?

아몬드는 약간 실망하고 만다.

“그거 그냥 파는 물건이라고만 생각해서 옷이라고 생각을 못 했네!”

매점 점원은 좋아서 펄쩍 뛴다.

-ㅋㅋㅋㅋㅋㅋㅋ기껏 호두 굴려줬더니

-아니 옷이 있었어???

-매점에서 체육복을 팔다니ㄷㄷ 존나 개념 매점이네

-우리 학교도 이랬으면 내가 체육 선생한테 한 20대는 덜 맞았을 듯.

-까비

매점 점원이 가판대 밑을 뒤지더니, 먼지 쌓인 박스를 하나 꺼내 든다.

“이거. 잘 안 팔려서 먼지가 좀 쌓이긴 했네.”

한 벌에 2만 원짜리 체육복.

가격만큼이나 형편없는 품질은 아니었다. 학생들을 위해서 사실상 원가에 파는 물건이니까.

“사이즈 찾아보자.”

* * *

잠시 후.

셋은 모두 새로운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갈아입는 장면은 다행히 스킵되었다.

-아쉽네

-아 이게 무슨 리얼 생존임!

-ㅋㅋㅋㅋ이제 두 번은 안 속누 ㅋㅋ

시청자들은 이번에도 그를 속이려 했으나, 아몬드가 바보가 아닌 이상 두 번 속진 않았다.

매점 점원은 한결 산뜻해진 표정으로 머리를 묶어 올리며 말했다.

“하. 훨 낫다.”

“그러게.”

“우리 내일 저기 있는 걸 다 빨면 되겠다.”

“응.”

오늘 입은 속옷과 겉옷 전부를 담은 박스를 문 앞에 두고, 내일 아침을 기약하는 셋.

“으. 근데 좀 꺼칠하네.”

더벅머리는 속옷을 입지 않은 느낌이 거슬리는지 체육복을 이리저리 당겨댄다. 매점에서 속옷은 팔지 않았던 것이다.

점원도 어색한지 계속 자기 옷을 내려봤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이 정도도 충분히 감지덕지여야 한다. 적어도 아몬드는 그렇게 생각한다.

‘불쾌함이 사라졌어.’

옷을 바꿔입은 것만으로도 불쾌함은 사라졌다. 대신 다른 상태가 자리 잡는다.

[만족스러움]

아몬드는 그 상태 메시지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야. 피자빵. 우리 잠은 이 박스 해체해서 위에서 자는 거 어때?”

“그래. 노숙자마냥.”

처음엔 말이 거의 없던 더벅머리도 이제 점원과 꽤 말을 잘 섞는다.

그들은 매점 바닥에 박스를 넓게 펼쳐서,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 잠을 청했다.

다행히 이곳은 지하였고, 날씨는 여름. 지하의 서늘함과 여름의 따뜻함이 겹쳐져 꽤 자기 적절한 온도가 되었다.

[잠자기: 7시간]

아몬드는 7시간의 잠을 설정해 두고, 잠을 청했다.

* * *

아몬드의 기준으로는 잠시 후였다만, 이곳의 시각으로는 7시간 후.

짹. 짹. 짹.

매점 위쪽의 조그만 창문에서 새소리가 들려오며 햇살이 내리쬔다.

햇살…….

아몬드는 불현듯 문 쪽을 바라본다.

빨래를 위해 모셔둔 박스가 있다.

“이제 빨래해야 하는군요.”

빨래를 하러 간다. 이 말 자체가 지금의 생활 수준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몬드는 단 하루 만에 꽤 많은 인프라를 확보해 냈다.

“으으…….”

휴대폰 알람 소리에 매점 점원이 몸을 일으킨다. 더벅머리도 마찬가지.

“하아. 맨바닥…….”

딱딱한 바닥에서 자니 죽을 맛일 터다.

“우리 다음엔 양호실까지 먹어보는 게 어때. 거기 침대 있잖아.”

“……오! 그거 좋다! 피자빵!”

-무친 ㅋㅋㅋ

-지들이 먹을 거처럼 얘기하누 ㅋㅋㅋ

-아몬드 눈치 주는 거야??ㅋㅋㅋ

시청자들은 NPC들에게 핀잔을 주었으나, 아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호실. 그렇구나. 다음은 양호실이다.’

침대를 얻을 수 있다면, 양호실로 진격하는 게 옳아 보인다.

“마침 양호실이 여기 별관 1층에 있거든.”

“오. 그래. 동선도 딱이네!”

마치 아몬드 들으라는 듯이 말하는 둘. 아무래도 다음 목표는 양호실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일단 빨래부터 하자. 따라와.”

아몬드는 그리 말하며 빨래 박스를 들고 문을 열었다.

“크아아아악!”

“카아악!”

문 열리는 소리에 팔다리조차 못움직이는 좀비들이 괴성을 지른다.

그러나 아몬드는 별다른 내색 없이 박스를 들고 화장실로 걸어갔다.

따악! 딱!

좀비들이 있는 힘껏 그의 발목이라도 물으려 했으나. 단 하나의 이빨도 그에게 닿지 못했다. 좀비들이 못 움직이기 때문에?

아니다.

좀비들은 꿈틀댈 수는 있다. 게다가 숫자 때문에 자칫하면 발목 정도는 물리기 십상인 상황이다.

그래서 NPC들은 쉽게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야! 소, 소보루! 혼자 그렇게 가면 어떡해?!”

이 질문에, 아몬드는 머리를 긁적인다.

“좀비가 물려고 할 때 피해.”

“뭐? 그걸 어떻게 하냐고! 한 번 물리면 끝장인데!”

“……이 좀비들도 못 피하면 어쩌라는 거야.”

-ㅋㅋㅋㅋㅋ님이 이상한 거

-너무 촘촘한디요?

-타이밍 안 맞으면 물리겠는데

-기~만!

“야! 우, 우리가 다 너 같은 괴물인 줄 알아!?”

결국 아몬드는 빨래 박스를 화장실에 두고, 방안을 생각해 냈다.

* * *

잠시 후.

탁탁.

아몬드가 손을 털며 물었다.

“이러면 어때.”

복도에 있던 좀비들은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그가 일일이 음악실 안으로 치운 것이다.

“오……! 너 머리 좋다!”

점원은 핏자국을 제외하면 나름대로 깔끔해진 복도를 보고 좋아했다.

“그럼 우리 일 시작할까? 빨래는 내가 할 테니까. 너희 둘은 복도 닦아.”

“응? 혼자서 빨래를 다 한다고?”

혼자 처리하기엔 빨래 양이 꽤 있는데.

“응. 혼자 할게. 복도가 일이 더 많을 거야.”

빨래가 일이 더 많을 텐데. 아무래도 자기 속옷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 어쩌겠나. 자연스럽게 아몬드와 더벅머리가 복도를 걸레로 밀기로 했다.

“그래. 그럼 우리가 먼저 끝나면 도와줄게.”

“응. 그래.”

* * *

철퍽.

물을 흠뻑 적신 대걸레가 복도의 싸구려 대리석 위로 떨어진다.

스으으윽, 밀려 나가는 대걸레. 이게 청소가 되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는 건 여전하다.

‘진짜 오랜만이네.’

복도까지 닦고 있으니 진짜 학교에 온 것 같았다. 복도에 흥건한 피를 닦고 있다는 디테일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말이다.

현실 시간으로 한 10여 분이 흘렀을까?

아몬드는 마침내 방화문이 닫힌 동쪽 계단 끝까지 핏자국을 다 닦아낸다.

[상쾌함]

그러자 또 떠오르는 상쾌한 상태.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하면 정신력이 영구히 증가할 뿐 아니라, 가벼운 상처들도 더 빨리 낫는다고 한다.

“와. 다 했다.”

더벅머리도 그렇게 말하며 힘들었는지 복도 끝에 기대 선다.

“이제 빨래 도와──”

슬슬 점원 누나의 빨래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할 무렵.

──쿵!

꽤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방화문 쪽이다.

‘뭐지? 어느 쪽이지?’

‘몰라.’

다시, 쿵……!

또 울린다.

이번엔 확실히 알겠다. 동쪽이다. 매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둘은 숨을 죽이고 서쪽 방화문 근처로 다가갔다.

‘좀비가 몇이나 되려나.’

좀비 숫자가 너무 많아지면 문이 부서질 수도 있다. 그럴 시엔 반대쪽 서쪽 방화문을 열고 도망가야 할 수도 있다.

쿵. 쿠웅.

문이 계속 두들겨진다.

그리고 이런 소리도 들려온다.

“여기 원래 닫혀 있었나?

“아니? 이게 뭐야? 이거 복도에 있는 문 아냐? 왜 닫혀 있어?!”

“아, 씨발. 매점 못 가?!”

학생들의 목소리다.

아몬드는 더벅머리 쪽을 돌아본다. 더벅머리의 눈이 큼지막해져 있다.

‘사람이었어.’

아몬드는 입술에 검지를 올려대며 조용히 하라는 싸인을 보냈다.

쿵! 쿠웅!

놈들은 문을 좀 더 두들겼다.

그러다가 웬 여자 목소리가 말한다.

이 목소리, 잊을 리가 없다.

“야. 백준수. 네가 이거 부숴봐. 할 수 있지?”

말한 사람은 윤소희.

“음. 이걸 어떻게…….”

대답한 놈은 백준수.

“이 안에 누구 있는 거 아냐?”

꽤 날카로운 추리를 하며 끼어드는 놈은…….

‘김우중.’

김우중이다.

쿵. 쿵.

이건 문 소리가 아니다.

아몬드의…… 김주혁의 심장이 뛰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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