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27화
9. 반응(2)
어두컴컴한 공간.
아주 희미한 빛만이 내려온다.
마치 장엄하게 시작하는 뮤지컬의 아리아처럼.
그 스포트라이트가 내리쬐는 곳 끝. 상현이 앉아 있었다.
화장실 변기에!
-와아아아아아!
-앵콜! 앵콜!
어두컴컴한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들려온다.
변기에 앉아 있는데, 앵콜이라니.
진짜 뮤지컬 무대인 걸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상현은 실제로 배가 아팠고, 그의 바지도 내려가 있었다.
이건 진짜였다.
당장 바지를 올리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었다.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사랑해요! 아몬드!
-엄마 나 커서 아몬드의 똥이 될래요!
-꺄아아아아!
관중들은 더 적나라하게 환호했다.
상현은 당황하며 관중석을 돌아본다.
어? 텅 비었다.
소리는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게 아니었다.
다시 보니 수많은 반딧불 같은 게 주변을 맴돌고 있다. 저기서 흘러나오는 소리다.
-ㅋㅋㅋㅋ
-엌ㅋㅋ
-앜ㅋㅋㅋㅋ
이 반딧불이들의 머리(혹은 그렇게 생각되는 쪽) 위에는 ‘성좌’라고 적혀 있었다.
상현은 이들의 관람을 거부할 수 없었다. 동서남북 상하좌우를 돌아다니며 그를 훑고 다니는데도.
성좌라는 게 원래 그런 거란다.
억울하기 짝이 없다.
* * *
이른 아침.
상현은 흠칫 놀라서 벌떡 일어난다.
“하아…… 하아…….”
이마를 훔친 소매가 축축해진 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꿈이었구나.”
캡슐이 바뀐 뒤로는 간만에 운동도 없이 흘리는 땀이었다. 그 정도로 꿈은 충격이었다. 실감 나는 것은 물론, 다시는 벌어져선 안 될 일이 계속해서 재생됐다.
‘무슨 이딴 꿈이…….’
아무래도 어제 주혁에게 들은 말 때문이다.
「오늘은 란 스토리 모드 업로드됐고. 내일 좀비 스쿨 영상 업로드된대. 저녁엔 이브닝와이드도 방영되고.」
내일…… 그러니까 오늘 올튜브에 좀비 스쿨 첫 영상이 업로드된다고 했다. 아마 점심일 거다. 이브닝와이드랑 겹치면 안 되니까.
‘분명 그게 올라가겠지.’
상현도 스트리머 생활이 나름 경력이 쌓인 터라, 그 영상에 어떤 게 포함될지는 대강 알 수 있었는데.
가장 확실한 건 아무래도 시청자들에게 속아서 로그아웃하고 허둥대는 장면일 터다.
이미 클립으로도 일파만파 퍼져서 유명한 장면이니. 올튜브 영상에 포함되지 않을 리가 없고.
따로 ‘Short’ 영상으로 편집해서 추가로 안 올라가면 다행일 터지만…….
상현이 다행이라고 느낄 상황은 아마 오지 않을 거다. 지아는 센스가 좋은 편집자니까.
수많은 관련 영상이 올튜브에 돌아다니게 될 거다.
“후우.”
여튼 이게 개꿈을 꾼 이유다. 전 국민에게 똥 싸고 로그아웃하는 모습이 퍼지는, 그런 막중한 무게감(?)을 느끼고 잠을 청했던 터라 요상한 꿈마저 꾼 것이다.
상현은 그렇게 자신의 상황을 정리하고, 이불을 개어둔 후 거실로 나섰다.
아주 자연스럽게 동선은 주방의 찬장으로 향했다.
그곳을 열면 늘 기다리고 있는 건 그린다이아몬드사의 아몬드.
오드득.
상현은 아주 빠른 동작으로 그걸 입에 몇 개 털어놓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몸을 가볍게 유지하면서 대충 배도 채우는 데에는 볶은 아몬드와 우유만 한 게 없는 듯했다.
오드득. 오드득.
재밌는 식감과 함께 고소한 풍미가 입에 퍼져 나가면, 흰 우유를 쭉 들이켠다.
꿀꺽.
고소함이 배가 되면서 만족감이 솟구친다.
“어. 일어났냐.”
상현은 입가에 하얀 자국을 닦아내며 인사를 건넨다. 방금 주혁이 방에서 나온 것이다.
“아, 어…….”
“너도 먹을래?”
“……아, 어.”
주혁은 방금 일어나서 그런지 정신이 없어 보인다. 상현이 주는 아몬드를 곧이곧대로 받아먹은 게 그 이유다.
오드드득.
주혁은 멍한 표정으로 아몬드를 입에 넣고 씹는다. 마치 영양제를 억지로 먹듯이 무감정한 표정.
고소하다거나, 맛있다거나 하는 표현 비슷한 것도 표정이나 몸짓에 느껴지지 않는다.
상현은 불현듯 뒤편의 찬장을 가리키며 말한다.
“넌 다음부터, 저걸로 먹어.”
“……?”
주혁은 어리둥절했다.
‘저것도 아몬드인데.’
상현이 다음부터 먹으라고 가리킨 것도 역시나 아몬드였기 때문이다.
‘내가 잠이 덜 깼나.’
그는 자신이 헛것을 보나 하며 눈을 비빈다.
그러나 눈을 비빈다고 아몬드가 갑자기 호두가 되진 않을 터다.
여전히 아몬드다.
“저것도…… 아몬드인데.”
“응.”
“근데 난 왜 저걸로 먹어.”
“저게 더 싼 거야.”
“……?”
주혁은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그의 사회생활이 몇 년이던가. 대번에 상현의 의도를 눈치챘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다른 사람도 먹고 너무 맛있다고 해주길 바라는 그런 심리 있잖은가.
“아. 그린다이아몬드의 아몬드. 참 고소하다! 이게 캘리포니아의 최고등급…….”
“내가 바보냐. 그냥 저거 먹어.”
“오케이.”
주혁은 쉽게 납득했다.
그는 어차피 맛 차이를 모른다. 괜히 비싼 걸 먹고 싶어서 한번 시도해본 것이다. 그게 실패했으니 그냥 싼 걸 먹는다. 그뿐이다.
상현은 고소하다는 듯 피식거린다. 하나 애석하게도 무슨 아몬드를 먹느냐는 주혁에게 그리 중대한 일이 아니었다.
아몬드 종류 따위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오늘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나저나 장 피디님. 편집본 왜 안 오냐.”
어제 오기로 되어 있던 편집본이 오늘 아침까지 안 오고 있다.
이미 편집본을 보고 뭘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은 한참 지났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미리 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더군다나 주혁에게 아몬드의 메이저 진출은 상당히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애가 탈 수밖에 없으리라.
“조금 기다려 봐. 그런 프로그램 편집이 원래 좀 걸리잖아.”
막상 출연 당사자인 상현이 그를 안심시켜 주는 신기한 광경이다.
“원래 좀 걸리고 뭐고 데드라인은 지켜야지. 허 참. 방송국 놈들 일 편하게 하네.”
오드득.
주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몬드를 입에 털어 넣었다.
누군가는 주혁의 불만에, 너무 빡빡하게 구는 것 아니냐 할 수도 있겠다만. 상현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주혁이는 그렇게 생각할 만하지.’
상현은 그가 아성에서 일할 때의 모습을 항상 봐왔으니 누구보다 잘 안다.
주혁은 저런 말 할 자격이 충분히 있는 놈이다.
정해진 일을 정해진 시간에 처리하는 능력이 얼마나 발군인지. 어떤 변수가 튀어나와도, 처리해 내는 능력은 옆에서 보면서도 신기한 수준이었다.
상현은 그건 어쩌면 초능력 같은 게 아닌가 고민한 적이 있었다. 왜냐면 그의 능력을 ‘처리 능력’이라는 하나의 능력으로 표현하기엔, 너무 다양한 상황에 다양한 능력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현은 저건 일종의 초능력이라고 결론 내렸었다.
“마음 편히 가져라. 어차피 보챈다고 뚝딱 나오는 것도 아니고.”
상현은 그 초능력자에겐 한가하기 짝이 없게 들릴 말을 던지며, 자신의 방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래. 난 공지라도 올리고 있어야겠다.”
주혁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컴퓨터 앞에 앉아 공지를 타이핑했다.
와중에도 제 할 일은 척척 찾는 것이다.
* * *
방으로 돌아온 상현.
그는 침대에 누워 커뮤니티 사이트를 둘러본다.
친구에 비하면 그것참 한가한 놈이라 생각될법하나, 이것도 상현에겐 일이다.
새로 시작한 게임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아는 게 중요했다.
그는 일단 최근 그래도 가장 많이 방문했던 ‘릴프로’부터 가 본다.
여긴 릴 얘기를 하는 곳이지만, 그의 주된 시청자층이 릴 유저이기 때문에 살펴봐야 하는 곳 중 하나다.
빅 게시판을 쭉 둘러봤으나. 좀비 스쿨에 대한 언급은 없다. 적어도 ‘빅’으로 올라가진 못한 것 같다. 아마 올라갔어도 릴 얘기가 아니라 잘렸겠지만.
대신 아몬드에 대한 이야기는 있었다.
[아몬드 오늘자 올튜브 업로드 영상 쌉기만]
기만?
아몬드는 대체 뭔 소리인지 몰라 글을 클릭해 본다.
거기엔 클립 영상이 있었는데.
썸네일부터 레이나가 아몬드를 심상치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중이다.
재생해 보니, 레이나와 아몬드가 마지막에 헤어지는 장면이다.
[이제 곧…… 가는 거지?]
[아마도.]
레이나는 악수를 하며 손을 흔들더니…….
휙.
그를 잡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잘 가.]
스토리모드 같은 경우에는 채팅을 거의 보지 않으면서 소규모 방송으로 진행했었기에, 아마 올튜브로 처음 보게 된 사람들이 많을 터다.
-이게 뭐냐?
-지금 저거 레이나야?
-아몬드 얼굴 그대로 구현돼 있네???
└얼굴 씹오피 너프좀
그래서인지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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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스토리모드 중 조력자이던 용병 단장이 사실 레이나였던 걸로 밝혀짐. 아마 3별 클리어해서 이스터에그 개념으로 나온 듯.
여튼 그런 상황에서 아몬드가 란 친구인 레테에 강신해서 싸우다가 서로 발견하고 아주 지지고 볶고 하는 장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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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설명이 첨부되어 있긴 했는데. 대체로 커뮤니티 유저들이 그렇듯이, 3줄 이상은 읽지 않았다.
‘지지고 볶은 적은 없는데…….’
아몬드는 조금 억울한 설명에 머리를 긁적이며 다른 댓글 반응을 더 봤다.
-이게 란 스토리모드임? 풀버전 보러 간다;
-레입도 어게인 ㅅㅂ……
-레입도! 레입도! 레입도!
-아니 레이나 입술이 이렇게 쉬운 거였어!? 어?! 누나!!! 그런 거였냐고오오!!!
-레이나 초월 스킨도 다 질렀던 데협이었던 내가 밉다…….
-트럭 보냅시다. 이대로 묵인할 수 없군요.
└2222
└33333
상황을 이해한 사람들은 레이나의 입술을 또 뺏어(?)간 상황에 분노하기 바빴다.
이 관련 영상은 이것 하나가 아니었는데.
-레이나 입술 도둑 된 사연 떴다. (링크) 레이나 입술 도둑 된 사연 떴다. (링크) 레이나 입술 도둑 된 사연 떴다. (링크)
└빅 구걸 역겹누.
└도배 자제좀;
댓글 중에 이런 링크가 있어 타고 들어가 보니, 댓글에 도배하고 다닌 노력이 가상해서일까?
이 글도 이미 ‘빅’ 게시판으로 옮겨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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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게 이유였냐! 레이나아!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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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첨부한 영상을 틀어보자, 레이나는 아몬드를 흘끔 올려보고 있다.
[……그게 네 원래 얼굴인가?]
질문을 던지고 바로 시선을 피하는 모습.
[아. 그렇지. 이게 내 원래 얼굴이야.]
[그렇구나. 훨씬 더 잘 어울려.]
원래 얼굴이라는 말에 밝은 웃음이 만개한다. 얼굴 전체가 반짝 빛나는 듯한 미소다.
-이거 다음 바로 키스함 ㅅㅂ
-레이나 입술 아이폰인가요? 왜 페이스아이디로 열리죠!? 예!?
-페이스 체크하고 바로 딜 욱여넣는 게 역시 원딜러네요 ㅎㅎ
└페이스체킄ㅋㅋㅋㅋㅋㅋㅋ
-훨씬 더 잘 어울려! ㅇㅈㄹㅋㅋㅋㅋㅋ
-비주얼 너프좀……
-원래 얼굴 아니라고 했으면 레입도 불가능했다에 내 전 재산 1만 5천 원을 건다.
└ㄹㅇㅋㅋ
└ㄹㅇ
란 스토리 모드에 대한 게시글은 거의 절반이 레이나 얘기였고. 40% 정도가 구태여 어렵게 불을 안 쓰고 귀병을 잡는 아몬드의 뛰어난 호두에 대한 찬양. 10%가 레테나 로랑 떡밥에 대한 내용이다.
이것도 나쁜 이슈는 아니지만, 좀비 스쿨에 대한 반응은 보기 어려웠다.
‘역시 거기로 가야 하나.’
상현은 릴프로를 나와, 새로운 커뮤니티로 향했다.
바로 ‘좀스 가든’이다.
여긴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설 커뮤니티여서 사람 수는 적다.
그러나 아쉬울 건 없다. 아직 정식 출시되지 않은 얼리 억세스(Early Access) 게임에 커뮤니티가 생겼다는 것 자체로 엄청난 호재다.
이는 풍선껌이 좀비 스쿨을 플레이해 준 덕도 컸다.
살펴보니, 역시 풍선껌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무려 이슈글 1위다.
1위) 풍선껌이랑 아몬드 루트 분석ㅋㅋ
분석을 하는 내용인데.
아직 숫자가 적은 마이너한 커뮤니티답게 분석글이 이슈글이구나. 정말 게임에 진심인 사람들만 있구나…… 생각하며 클릭해 본 상현.
그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는 거였어?’
그가 여태 했던 좀비 스쿨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를, 풍선껌은 플레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