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36화
12. 브레인 VS 호두(3)
스크롤을 점차 위로 올려보던 윤소희.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바뀐다.
‘뭐지. 뭐가 바뀐 거지.’
말투라는 건 애매한 뉘앙스의 차이다. 그런 작은 차이를 다른 아이들에게 표현할 언변은 없지만.
‘이모티콘!’
이모티콘의 사용 유무 정도는 충분히 말로 꺼내 볼 법했다.
“장성수가 맨날 쓰는 이모티콘 있잖아. 그거 왜 안 쓰지?”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물어볼까?”
“미쳤냐?”
윤소희가 버럭 화를 낸다.
그런 걸 물어봤다가, 만약 장성수 폰이 적들에게 있는 거라면 꼬투리 안 잡히게 도와주는 꼴이다.
“왜. 화를 내? 설마. 이게 걔네한테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한 아이가 폰을 흔들어 보이며 묻는다.
“다음 순번 보초는 그런 말 없었잖아.”
그는 그럴 리가 없단다.
다음으로 간 보초가 특이사항을 보고하지 않았으니까.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쫄았네.”
“아니, 그런 생각까지 했다고?”
푸하핫.
아이들이 윤소희의 걱정이 과하다며 웃는다.
굵직한 목소리가 끼어들기 전까진.
“시끄러워 이 새끼들아.”
옆에 눈을 가리며 누워 있던 백준수다.
그는 누운 채로 시계를 가리킨다.
“너네 안 자냐. 2시에 갈 때 못 일어나면 제일 앞에 방패로 세운다.”
“…….”
그 말에 아이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너.”
와중에 가장 늦게 누우려 했던 한 명이 지목당한다.
“어……?”
“그래. 박동현. 너. 소희가 말한 거 확인해.”
“뭐, 뭔데?”
“뭐긴. 아래 내려간 보초. 잘 있나 보라고.”
그렇다.
그냥 직접 확인하면 빠르다.
무슨 몇 시간 거리 근무 나가는 것도 아니고. 바로 아래층이잖은가?
물론, 지목당한 자의 입장에선 혼자서 이곳을 빠져나가 지하 1층까지 가야 하는 게 좋을 수만은 없다.
“……알았어.”
그러나 고개를 끄덕인다.
백준수의 명령에는 거역할 수 없었다.
김우중을 가차 없이 패 죽이는 걸 두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그때 김우중이 실제로 물렸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백준수가 그렇다고 하니 그럴 뿐이다.
예전부터 그랬다. 놈의 말이 법이었다.
“갔다 올게.”
그가 나간 후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잠시 후.
쿵. 쿵. 쿵.
양호실 문을 급히 두들기는 소리.
“나야. 나. 박동현.”
문이 열렸다.
그는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마냥 퀭한 눈으로 허겁지겁 들어온다.
말을 굳이 듣지 않아도 무슨 상황인지 이미 알 수 있었다.
“그, 그, 그게…… 크, 큰일 났어!”
* * *
어두컴컴한 음악실.
첫 번째 보초였던 장성수.
그는 폰이며 무기며 모든 걸 빼앗긴 채 팔다리가 묶여 있다.
이대로 그냥 죽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눈 뜬 채로 굶어 죽는 게 내 삶의 끝이라니. 장성수는 허망한 얼굴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옆에 있는 다른 친구는 이미 삶을 포기한 듯 우는 것조차 멈췄다.
그때였다.
쾅!
음악실 문이 반쯤 부서지며 거칠게 열렸다.
어두웠던 음악실에, 밝은 빛이 파고들었다.
빛을 등진 자들의 실루엣은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자로 보였다. 적어도 장성수의 눈엔 그랬다.
드러난 실체는 백준수다.
구원자와는 거리가 먼 존재.
그럼에도 장성수의 눈에선 희망이 철철 흘러넘쳤다.
“우웁! 우우우웁!”
테이프로 묶인 입으로 열렬히 자신의 구원자를 불렀다.
백준수가 손짓하자, 학생 하나가 튀어나와 박스테이프를 떼어낸다.
찌익.
“후아! 흐아아. 씨, 씨발…… 죽, 죽는 줄 알았잖아.”
“어떻게 된 거냐.”
백준수가 멀찌감치 떨어진 채 물었다.
장성수는 횡설수설하긴 했으나. 어찌 됐든 상황을 설명해 냈다.
“……그러니까, 김주혁이 정면으로 뚜벅뚜벅 걸어와서 널 쥐어팼다는 거냐?”
백준수가 깔끔하게 결과를 정리하자, 이런 식이 되어버린다.
뒤에서 기습한 것도 아니고, 매점 문 열고 바리케이드 치우고 걸어와서 대걸레 자루로 개 패듯이 패버렸다는 식.
“그, 그렇게 말하면 또 그런 게 아니긴 한데. 맞는 말도 있긴 하고…….”
“하?”
백준수는 고개를 까닥이며 오함마를 어깨에 얹었다.
장성수는 흠칫하며 꿈틀거렸다.
그러나 백준수는 오함마를 내려치진 않았다. 그의 눈길은 장성수의 다음 순번 보초였던 자에게로 향한다.
“넌 어떻게 당했어.”
“나, 난 바통 터치하려고 지하로 내려갔는데. 갑자기 뒤에서 놈이 튀어나왔어!”
“넌 뒤통수에서 기습당했다는 거네.”
“어, 어! 기, 기습당한 거지!”
백준수는 잠시 뒤로 물러나서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게 끝이냐.”
“……그, 그리고 폰을 뺏기고…… 무기도 뺏기고…….”
“아니.”
백준수는 이미 다 아는 걸 뭘 보고하냐는 듯 말을 자른다.
“걔네 어디로 갔어. 왜 너흴 여기 두고 갔냐.”
“……?”
질문받은 자의 눈이 멍해진다.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바닥에 누워 있던 터라 밖의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매, 매점 안에 있겠지?”
애써 짜낸 건 추측이다.
“음.”
백준수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자신의 옆쪽에 묻는다.
“어떻게 생각하냐. 최기수.”
최기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매점을 벗어나진 않았겠지.”
놈들이 매점을 버리고 어딘가로 갈 이유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여기 놈들을 묶어놓고 바리케이드를 칠 시간을 벌 생각이었나 본데.”
최기수는 여기저기 널려 있는 음악실의 책상들을 보며 말한다.
누워있던 장성수가 끼어든다.
“기수 말이 맞아! 걔네들 책상 꺼내서 여기 막는다고 자기들끼리 말했어.”
최기수 추측이 맞는가 싶은 순간.
백준수는 반문했다.
“근데 왜 코빼기도 안 보여. 바리케이드를 치던 중이면 우리가 왔을 때 맞춰서 도망칠 수가 없는데.”
“…….”
다들 말문이 막힌다.
최기수가 끄덕인다.
“그래. 나도 그게 이상해. 근데 그렇다고 매점을 버려? 너무 극단적인데. 양호실을 빈집 털려고 어디 숨은 거라고 해도…….”
거의 정답에 가까운 추론을 하던 최기수.
그러나 그는 정답에 닿을 수 없었다.
“그게 말이 되나? 매점이랑 양호실 교환? 우리한테 언제고 다시 뺏길 텐데.”
아몬드의 전투력이라는 핵심요소가 그에게 파악이 되기 전이기에, 제대로 된 분석이 안 나오는 거다.
“그래서 어딨다는 거냐. 최기수.”
백준수가 재차 묻자,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매점 안에 있을 확률이 높아. 우리의 동태를 휴대폰을 통해서 파악하고 있었잖아. 낌새가 이상한 걸 느끼고 미리 대피했을 수 있지. 단…….”
“?”
“얘네들이 제3의 장소로 피신했을 확률도 30% 정도.”
백준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지금 매점을 뚫는다. 이 두 새끼는 좀비한테 물렸을 수도 있으니까. 여기에 오늘 하루 동안 방치해 놔.”
아이들이 놀란다.
둘을 방치하라는 것에 놀라는 게 아니라, 계획이 너무 앞당겨졌다. 원래 새벽 2시에 하기로 되었던 것 아니던가.
“지, 지금!?”
“놈들은 셋뿐이다. 그리고 우리 단톡을 다 보고 있었어. 새벽 2시 기습은 무의미야.”
백준수는 망설일 게 없었다.
“연장 갖고 와.”
“오케이. 드릴도?”
드릴은 리스크가 있다.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데, 적들은 이미 단톡방에서 그들이 사용법을 모른다는 걸 알고 있다.
가짜 위협조차 안 먹히고 위험하기만 한 물건이다.
“그냥 빠루만 갖고 와. 그걸로 충분해 보여.”
“알았어.”
아이들이 양호실로 뛰어가서 빠루를 여러 개 들고 온다. 문을 뜯어내는 용도의 쇠지렛대인데. 생각보다 상당히 효과가 좋다.
“꽂아.”
“오케이.”
기리리릭.
하단과 좌우에서 아이들이 쇠지렛대를 욱여넣었다. 시작 부분이 매우 날카롭고 얇게 되어 있어서, 어떻게든 넣은 다음 살살 흔들면 안쪽으로 잘 들어갔다.
“하나, 둘── 셋!”
기익!
문이 비명을 지르며 찌그러진다.
“자.”
백준수가 문 앞에 서서 문고리 안을 들여다보며 외친다.
“기회 준다. 지금부터 1분 준다. 그사이에 나오면 목숨은 살려줄게.”
그 사이에도 아이들은 “하나, 둘, 셋”을 외치며 빠루를 밀었다.
지렛대 원리로 앞쪽의 들개가 철문을 조금씩 들썩이게 했다.
끼이이이익……!
낌새를 보니 열리는 건 확정이다.
백준수는 저들이 1분 안에 분명히 나올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퍼엉!
문이 통째로 뜯겨나오는 순간까지도 그들은 나오지 않았다. 어떤 말도 없었다.
“…….”
시커먼 먼지를 일으키며 쓰러진 문.
그 위로 올라선 백준수는 사납게 중얼거렸다.
“씨발.”
없다.
놈들은 이미 사라졌다.
* * *
드르르륵.
쿠궁.
바리케이드를 치워내면서도, 아이들은 계속 의아해했다.
“뭐야. 진짜 없잖아.”
“어?”
“뭐야 이게?”
이미 없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계속 신기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매점을 두고 어디로 도망을 치다니?
“빵들도 아직 있는데?”
“그러게.”
심지어 식량은 남아 있었다.
이들의 입장에선 처음에 얼마나 많은 양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일주일을 버틸 만큼의 빵을 가져갔는지, 어쨌는지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애초에 너무 많은 양이 있었으니까.
“와, 우리 이제 부자다!”
“냉동도 있어. 씨발. 뒤진다.”
아이들은 일단 대량의 식량을 확보했다는 것에 기뻐하기 바빴다. 3일 내내 초코파이로만 연명하다가 드디어 식사 비슷한 걸 할 수 있게 됐으니. 당연하다.
“일단 먹자.”
백준수도 배가 고팠는지, 일단 식사부터 진행했다.
그들은 냉동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한바탕 진수성찬을 차려놓았다.
처음 5분은 허겁지겁 먹어댔으나. 이후는 지금의 상황 파악에 열을 올렸다.
“우리한테 쫄아서 튄 거 아니겠어?”
“맞아. 우리 톡 다 봤을 거 아냐.”
“쳐들어오는 걸 대비해서 튄 거네! 맞네!”
그들이 휴대폰을 보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퍼즐이 맞춰진다.
빠루 사진을 보고는 안 되겠다 싶어 이사를 감행한 것이다.
근데, 문제는 어디로 갔냐는 거다.
“어디로 간 건데. 1층 문은 하나도 건드린 흔적이 없던데.”
1층의 정문은 좀비들이 아직 그대로 우르르 몰린 상태이며, 뒷문은 나가서는 열쇠로만 잠긴다. 근데 지금 잠긴 상태였다.
그 말은 나가지 않았다는 거다.
결론은 하나뿐이다.
“2층……?”
2층으로 간 거다.
* * *
식사 후.
백준수 패거리는 우르르 몰려 2층으로 향하는 방화문을 확인했다.
“……잠겨 있는데.”
“이거 열고 들어갈 방법이 있나?”
그러나 2층으로 향하는 방화문 역시 굳건히 잠긴 채였다. 설마하니 머리핀으로 따고 들어가서 잠갔다고는 생각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아무도 안 받아들여 줄 터다.
“놈들이 그럼 증발했다는 거냐. 1층 샅샅이 뒤져.”
백준수는 놈들이 1층의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한 시간이 흐르고, 두 시간이 흐르고, 한참이 지나도 소식은 없었다.
새로 판 단톡방에서는 계속 없다는 이야기만 올라왔다.
그나마 발견한 흔적은 딱 하나.
[여기 2층으로 가는 계단에 박스지가 하나 있어.]
박스지가 뜬금없이 서쪽 계단 쪽에서 발견된 것이다.
[거기서 모여]
백준수 패거리는 우르르 그곳으로 몰려가 확인했다.
박스지 여러 장을 겹쳐둔 판자가 있었는데.
커다란 박스지가 온전히 있는 게 아니라, 찢어져 있었다.
카트를 위로 굴리다가 찢어진 파편인데. 수현이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간 것이다.
“……2층으로 갔군.”
2층으로 갔다니.
백준수는 시간을 확인한다.
“5시간이나 지났어.”
놈들이 떠난 지 최소 5시간이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비로소 백준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미 뒤졌겠네.”
놈들은 죽었다고.
“거긴 괴물이 있거든.”
그는 회상하듯 창밖을 바라봤다.
오후 4시.
여름이라 아직 해가 쨍쨍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역광 탓에 저 멀리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알았어도 어쩔 텐가. 사람 하나가 창밖 멀리 서 있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날씨가 참 맑다. 모든 게 해결된 순간에 어울리는 날씨였다.
이런 한가한 감상이 오히려 더 중요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제 귀찮은 일은 없──”
──쨍그랑!
그의 말을 집어삼키며, 복도의 창문이 깨졌다.
쉬이이이익──
순간 눈에 보인 것은 커다란 쇠붙이.
아니, 사실은 아주 작은 화살촉.
그것이 눈에 박히기 직전이라 거대해 보였던 것일 뿐이다.
──푹!
“……!?”
시야의 절반이 암전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