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41화
14. 반격의 서막(2)
대기업 다니던 모 부장이 결국 잘렸다더라.
요즘 세상에 흔하디흔한 이야기다.
대기업 오래 다니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부장까지 했으면 많이 해 처먹었다.
이런 게 주변의 반응이다.
그러나, 박 부장은 달랐다.
그는 임원까지 승승장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상현은 고작 해봐야 5년 정도 다녔던지라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고 있지 않지만.
사내의 분위기상 그랬다. 박 부장은 임원까지 갈 라인이라고.
“……결국 나갔구나.”
그런데 그는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그래도 20년 넘게 근속했다고 해고는 안 당하더라. 온갖 이슈 다 한 번에 터졌는데도.
└인사 정보 좀 속인 걸로 부장 해고는 오바지. 회사 차원에서도.
└인사 정보는 생각보다 큰 사건이 아님. 그간 사내에서 평 안 좋았던 거, 성희롱, 폭언 이런 거 다 튀어나옴.
그렇다.
해고가 아니라 퇴사다.
그래도 20년간 일해준 그에 대한 회사의 마지막 자비였던 것 같다.
징계로 해고되면 다음 일자리는 물 건너간 셈이니까.
상현의 인사 정보를 일부러 왜곡하여 전달한 건 사실 큰 사건까진 아니었다.
장애인이냐, 낙하산이냐.
가시의 모양만 다를 뿐 똑같은 가시밭길이다.
이는 그저 관심을 많이 받은 사건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 관심이 모인 틈을 타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그의 업보다.
객관적으로 봐도 박 부장은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버틸 만한 인간이기도 했다.
딱 그 선을 가지고 사람을 옥죄이는 타입이었다.
하나, 그것이 이제 선을 넘었다.
그간 ‘조금 거추장스러운 부장님’ 정도로 넘어갔던 일들이 이젠 ‘사내 성희롱, 폭력, 폭언, 추행…….’ 등의 단어로 재정의됐다.
아니, 제대로 정의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솔직히 박 부장이 하던 거 다 성희롱, 폭언 폭행이지ㅋㅋㅋㅋㅋ
└엄밀히 보면 맞음
└솔직히 갑자기? 라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ㅋㅋ 사람이 워낙에 개새끼라 그냥 골로 갔으면
-아 존나 꼬시네. 병신새끼
-저 새끼 툭하면 서류 던지는 거 진짜 인격이 모자란 새끼 같음
└ㄹㅇ 난 저런 놈이 진짜 임원 가면 어쩌나 ㅈㄴ 걱정함 이제 발 뻗고 잔다ㅋㅋㅋ
익명의 힘을 빌려, 회사원들은 신이 난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댓글에 분출하고 있었다.
“잠이나 자자.”
상현은 흐릿한 휴대폰 화면을 이만 치워두고, 눈을 감았다.
저 휴대폰 속 세상의 사람들은 굉장히 흥분하고 있었지만.
그에게 있어선 이미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만약 지금까지 회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박 부장이 해고됐다는 건 그야말로 대서특필급 특보였을 테지.
하루 종일 그 사건으로 직원들이 떠들어댔을 거고. 다음 부장은 누가 승진하느냐로 눈치 싸움이 오갔겠다.
이제 그런 피곤한 것들은 상현과 거리가 멀다.
그는 지금의 자신이 있어 다행이라고 느꼈다.
“흐아암.”
나지막한 하품 후, 색색거리는 숨을 뱉으며 곤히 잠들었다.
오늘은 이상한 꿈조차 꾸지 않았다.
* * *
다음 날.
아침 식사 중, 그를 맞이한 특별한 소식이 있었다.
“야. 우리 이제 구독자 50만이다.”
주혁이 아몬드 후레이크를 입에 우걱우걱 넣으며 말했다.
오늘은 스케줄이 바쁘기 때문이다.
바로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다.
그래서 주혁도 딱히 아침밥을 먹겠다고 고집을 피우진 않았다.
“와. 50만…….”
상현은 아몬드 후레이크를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러운 결과인 모양이다.
단순히 구독자가 50만인 게 아니라, 평균 조회 수는 거의 100만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 정도 수익이라면 주혁, 지아, 상현이 사이좋게 나눠 가져도 박 부장 월급만큼 나온다.
“이벤트 같은 거 하나 해야 할 것 같은데. 우리 10만도 안 하고 20만도 안 했거든.”
이게 다 시청자들 덕분이니, 축하 이벤트라도 해주는 것이 상도이다.
그런데 상현은 생각해 둔 게 없었다.
“이런 건 지아가 잘 알지 않나?”
그는 넌지시 지아에게 토스해 버린다.
그녀는 팬서비스 관련이라면 꽤 정통한 편이다. 아몬드 팸(?) 셋 중에서 유일하게 아이돌을 팠던 사람이기도 하고.
아이돌 쪽은 팬서비스 문화가 상당히 발달한 편이니, 어느 정도 참고해서 따라 하면 좋을 것이다.
“지아는 팬미팅하면 제일 좋아할 거 같대.”
“……팬미팅?”
생각지도 못했던 콘텐츠다.
팬들을 직접 만난다니.
그의 머릿속으로 그간 만나봤던 팬들이 스르륵 지나간다.
‘잰──슨!’
쫄쫄이 파워 슈트를 입고 아몬드를 끈덕지게 쫓아왔던 잰슨이라는 배틀 라지 플레이어.
‘킹~ 너네 나 못 이겨! ~덤!’
지하철에서 갑자기 돌발 행동을 했던 킹덤 빌런.
이 외에는 직접 만난 팬이랄 게 없다.
‘아, 지아도 팬이었지.’
유일하게 정상적인 팬은 지아뿐이었다.
‘아니지. 걔도 사실…….’
아니, 사실 그녀도 정상은 아니었다.
돈에 쪼들리면서도 계속 누군가에게 후원을 하고 다니는 이상한 소비 습관을 가진 여자였다.
게다가 세상을 묘하게 삐딱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요즘은 지갑 사정도, 그 시니컬한 시선도 훨씬 나아졌지만 말이다.
“팬미팅…… 괜찮을까?”
상현은 걱정스레 물어본다.
“오. 그럼. 괜찮지. 사람들이 좋아할걸?”
주혁은 천진난만한 대답을 돌려준다.
사람들이 괜찮을지 물어본 게 아니라, 내가 괜찮을지 물어봤던 건데. 상현은 쩝 입맛을 다시며 다시 아몬드를 퍼먹었다.
생각을 하려면 영양분이 필요하니까.
‘꼭 그런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닐 테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도…… 피해 주는 것도 아니니까.’
이상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진 않았다.
혹여나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이 또한 스트리머로서 감당해야 할 일.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팬이니 말이다.
“아, 그리고 벌룬스타즈 멤버들 화보 찍는다는데? 시상식 때 쓸 거래. 근데 조금 급한가 봐. 어젯밤에 연락이 와서 당장 언제 되냐고 하네. 오늘 병원 스케줄 있으니까 내일 된다고 했어.”
“내일?”
화보 촬영 스케줄을 잡는 것치고는 상당히 급박했다.
“아, 이게 오프라인 촬영이 아니라 디스월드에서 하는 거야.”
“아…….”
디스월드 촬영이라면 당장 오늘내일 잡히는 게 흔한 일이긴 했다. 딱히 준비할 것 없이 안에 프로그램 세팅만 되어 있으면 어떤 각도에서든 촬영할 수 있으니까.
“근데 우리가 상 받는 게 정해진 것도 아닌데. 괜찮은 거야?”
시상식에 후보로 오른 팀은 꽤 있었다.
“아. 벌룬스타즈만 하는 건 아니고, 난트전 팀들도 꽤 온대.”
“아. 그렇구나.”
단체 화보인 모양이다.
“난트전에서 경쟁했던 모든 팀들이 사이좋게 화보를 찍어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라고 보냈어.”
“그렇구나.”
“연말 시상식이다 보니, 약간 화합? 이런 이미지로 가는 것 같다. 그나저나 너 봤냐?”
“응.”
“뭔지 알고?”
주혁의 표정만 봐도 상현은 이제 대강 무슨 소식이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박 부장?”
“오! 그래.”
주혁은 커뮤니티가 아니라 단톡방에서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야.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유상현이 박 부장을 잘라버릴 줄이야.”
“그러게. 보통 반대로는 많이 예상했을 텐데.”
상현의 농담에 주혁이 낄낄대며 좋아한다.
이런 시니컬한 개그가 주혁의 취향이다.
“다 먹었으면 이제 가자. 오늘 일찍 출발해야겠더라.”
“아, 그래.”
그들은 채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 * *
하얀 입김이 풀풀 날리는 추운 날씨.
다행히 눈은 오지 않았으나, 군데군데 물이 언 곳이 있다.
계단을 조심히 내려가야 했다.
“후아. 이 계단은 진짜 적응이…….”
주혁은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겨우 한 발씩 내디딘다.
“……안 된단…… 말이지.”
다리도 길고 덩치가 꽤 큰 편이라, 아마 내려가며 중심 잡는 게 더 힘든 것이다.
게다가 얼음이라도 밟는 날엔 그대로 엉덩방아다.
쭉 내려가던 둘은 어느 한 구역에서 잠시 멈춘다.
휙!
그들 앞에서 낡은 대문 하나가 열린다.
“오. 주혁쓰. 피했네?”
빨간 목도리를 꽁꽁 싸맨 소녀가 키득거린다.
서지아다.
오늘 그녀도 차에 함께 타기로 했다.
“야. 너 그거 진짜로 사람 죽어~”
“저번에도 몇 번이나 맞혀봤는데. 안 죽더만. 곰이라 그런가.”
“……? 이, 일부러 한 거였어?!”
주혁은 저 문에 맞아 넘어진 적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럴 리가.”
지아는 아리송한 말을 남기며 옆으로 착 붙었다.
“아몬드! 좋은 아침!”
기분이 좋아 보인다.
“간만이네. 지아.”
“응. 간만 간만~”
기분이 좋은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 지아가 합류한 이유와 같으니까.
지아와 주혁 둘이 놀러 간단다.
상현이 진료받는 동안 주혁이 할 게 없어서 지아랑 근처 공원에 간다는 게 일단 대의명분이다.
대놓고 데이트이지만, 주혁은 굳이 ‘효율적인 팀워크 향상 프로젝트’라며 둘러댔다.
상현은 모른 척 ‘오 좋은 생각이네’라며 대꾸했다.
대체 효율적 팀워크 향상 프로젝트가 무슨 말인지 진짜 모르기 때문에, 연기하는 게 어렵진 않았다.
“얼른 가자~!”
지아는 평소 그녀답지 않게 무지하게 밝은 표정으로 계단을 껑충껑충 뛰어갔다.
주혁은 위험하다며 열심히 그녀를 쫓아갔으나. 누가 봐도 주혁이 더 위험해 보이는 모습에 상현이 빵 터졌다.
* * *
병원까지는 약 두어 시간 정도 걸렸다.
교외 지역에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있는 터라, 가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우린 근처에 커피라도 마시고 있을게.”
“어. 그래.”
지아와 주혁이 차를 타고 사라지고, 상현은 홀로 정원을 가로질러 걸었다.
사실 이곳은 병원이라기보단, 송하나의 연구실이라 봐야 옳았다.
정원을 통해 걸어 들어가다 보면 병원이라기보단, 고급 전시장에 온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정원의 한 부분인 것처럼 소복하게 솟은 건물로 들어가자, 접수원이 상현을 알아본다.
“아. 오셨구나. 유상현 님 맞으시죠?”
“아. 네.”
“안내해 드릴게요.”
접수원이 안내해 준 곳으로 가니, 송하나는 누군가와 대화 중이다.
“……니까요. 따로 얘기해 보고 왔어요.”
“아쉽다. 그분이 좀만 더 협조적이었으면…….”
중요한 얘기 중인지 꽤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소장님. 유상현 씨 오셨어요.”
똑똑.
노크 소리가 울리고서야 상현 쪽을 보는 둘.
“아, 상현 씨!”
송하나는 벌떡 일어나며 상현에게 의자를 내줬다.
“앉으세요.”
“네.”
“잘 지내셨죠?”
“네.”
상현의 시선은 자연스레 옆에 함께 앉은 여자에게 향했다.
최사랑이었다.
상현이 무어라 입을 떼기 전에 그녀가 먼저 말한다.
“간만이에요?”
그녀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언제 봐도 기품이 흘러나오는 몸짓이다.
안 그래도 어딘가 어려운 느낌인데.
상현은 그녀의 정체를 알고는 조금 더 대하기 어려웠다.
“아, 네. 잘 지내셨나요.”
“네. 흥미진진해요.”
“흥미진진이요?”
잘 지냈냐는 질문에 흔히 쓰는 답변은 아닐뿐더러. 이 여자는 필요한 말 외에 사족을 붙이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렇기에 궁금했다. 뭐가 흥미진진하다는 건지.
“아. 뭐가 흥미진진한지는 제가 알려드릴게요.”
송하나는 씩 웃으며 뭔 데이터를 화면에 띄웠다.
당연히 뭐가 뭔지 알아먹을 수는 없겠으나.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
그녀의 말, 그리고 슬며시 웃는 최사랑의 표정.
대강의 분위기를 봤을 때.
‘뭐야.’
뭔가 희망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오른손이 치료된다.
이런 말은 한 적도 없지만. 이미 그의 망상은 거기까지 닿아버렸다.
‘설마…….’
펑.
머릿속에서 엄청난 분량의 도파민이 휘몰아쳤다.
아주 잠깐의 상상만으로 온몸이 덜덜 떨리고 짜릿했다.
예기치 않게 길에서 첫사랑을 마주한 것과 비슷한 반응이다.
숨이 턱 먹힐 것 같은 설렘.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창백한 하얀색이 아닌, 오팔 빛의 눈부심으로 하얘진다.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 검은 먹물이 부어졌다.
‘잠깐.’
상현의 머릿속에선 방어기제처럼, 마치 백혈구같이 어떤 생각들이 튀어나와 커튼을 쳐버렸다.
빛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설레발 치면 안 돼.’
괜히 희망을 갖지 마.
또 실망할 자신이 있어? 감당되겠어? 그냥 지금으로서 만족하고 살아.
만약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면 어쩔 거야?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아파.
애초에 올라가지 마.
잠시 밝아지던 상현의 표정은 이내 다시 평소의 모습이었고.
차갑게 내려앉은 차분한 눈이 송하나를 응시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