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2부-48화 (328/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48화

18. 슈뢰딩거의 아몬드(1)

‘여기서 바로 결정하는 거구나.’

회의를 위해 뒤돌아선 감독들의 뒤통수를 보며 아몬드는 생각했다.

‘누가 이기나.’

보통 이런 대결에선 누가 될 것 같다는 감이 오는데.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몬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다른 팀들 컨셉이 너무 세서…….’

감독들에게 명확하게 팀의 약점을 지적당했었다.

벌룬스타즈의 촬영 컨셉이 모솔이나 그린티배깅에 비하면 조금 약했다.

그나마 풍선껌이 발리볼이라는 게 뒤에 밝혀져서 조금 완화되긴 했는데.

다른 팀들도 비슷한 개그 요소가 있다.

그린티배깅은 그린티와 피클이 아예 격투기로 링 위에서 싸우는 컨셉이고.

이름도 ‘은평구 물주먹’이라고 센스 있게 붙였다.

그리고, 솔직히 피클은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스타일이다.

어찌 보면 아몬드에겐 불공평한 일이다.

웃음을 줘야 한다는 차원에선 그는 한없이 불리한 얼굴을 갖고 있으니까.

‘모솔 쪽도 컨셉이 재밌어.’

그린티배깅뿐 아니라, 모솔팀도 꽤 재밌다.

모솔이 혼자서 팀원들의 물총을 다 얻어맞는 컨셉이다. 모든 팀원들의 짐을 떠안아야 한다는 걸 표현한 거라고 한다.

심지어 모솔의 고결(?)한 이미지마저 십자가와 눈을 가린 붕대로 승화시켰다.

그린티배깅과 솔로이즈백.

이 두 팀이 상당히 유력해 보인다.

의외로 레드카펫츠는 특유의 팀 분위기를 살리지 못한 것 같았다.

“아이고. 우리는 지겠네요. 언니.”

“끄응…….”

레몬과 홍차도 밀린다는 걸 느낀 모양인지 중얼거린다.

그 외로, 다른 팀원들도 저마다 누가 될 것 같다 혹은 우린 뭐가 약했다는 등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잠시 후.

회의가 끝났는지 감독 중 한 명이 나와서 말한다.

“어차피 딱 한 팀만 굿즈 선정이 되거든요. 한 팀 발표하고 끝낼게요.”

굳이 나머지 팀들 줄 세우기 안 하고 딱 한 팀만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와…… 화끈하네요. 타코 형 머리처럼.”

모솔이 심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양손을 비비적거린다.

“피지컬 화보 이벤트로 올릴 팀은…….”

두구두구.

뒤에 있는 스태프들이 무릎 드럼을 치면서 소리를 만들어주었다.

* * *

주혁은 오늘 늦잠을 잤다.

그는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허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난다.

“으으.”

잠을 잘못 잔 모양이다.

……라기보단, 어제 술 약속이 있었다.

“술 마신 날은 일하지 말아야 되는데.”

아몬드 방송이 일찍 끝나기도 했고, 부른 사람이 사람이었던 터라 안 갈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다이버즈 대표님과의 회동이었으니 말이다.

그분 재력에 비하면 소탈하게 소곱창과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대로시란 말이지.”

주혁은 어린 시절 아버지 지인으로서 대표를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시절이다. 박 대표가 꿈 많은 청년이었던 시절.

그 시절부터 곱창을 좋아한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그의 위치, 태도, 품격 모든 게 다 변했어도.

“나는 그대로고.”

하아.

주혁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그는 어린 시절과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변한다는 것은 발전인데.

난 발전하고 있는가?

잘 모르겠다. 난 집을 뛰쳐나온 게 인생 최대 업적인 30살일 뿐이다.

그나마 내세울 게 있다면, 역시나 근면성실함이겠지.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술 먹고 와서도 일을 한 거냐.”

이는 사실 주혁의 술버릇이다.

일하는 게 술버릇이라니, 놀랍지만 진짜다.

유학 시절에 생긴 버릇인데.

아무래도 외국인으로서 네이티브들과 똑같은 과제를 똑같은 시간에 수행하기는 불가능했다.

자연스레 그는 남들보다 과제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렇다고 술자리도 빠질 수는 없었다.

서양권 문화에서 파티 등을 다 빠진다면, 유학을 간 의미가 없다고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셨었고.

그곳에서 파티는 단순히 놀고먹는 곳이 아니라, 자신을 알리고 인맥을 쌓을 수 있는 사교장이다.

사교와 과제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그냥 술을 마시면서 과제도 했다.

된통 마시고 토한 날에도 과제를 했다.

그 습관은 아성에까지 이어져서 늘 회식 당일에도 일 있으면 일하러 오는 미친놈으로 유명했다.

“뭐…… 진상 부리는 거보단 낫지. 그래도 이제 완전히 정해서 좋네.”

드르륵.

모니터 앞에 앉아 스크롤을 내려보는 주혁은 미소를 지었다.

어제 그가 분석해 놓은 게임들이다.

분석 목적은 당연히 아몬드가 어떤 게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전에도 한 번 목록을 뽑은 적이 있지만, 이번엔 아예 전면 재검토했다.

최대한 활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게임을 뽑고자 했다. 그는 결국 수십 개의 게임 중에 단 한 게임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게임은 그간 했던 게임과는 달라.’

이 게임이 주혁의 선택을 받은 가장 큰 이유.

그건 바로 소위 ‘국뽕’이라고 하는 요소 때문이다.

주혁은 애국심이랄 게 거의 없는 편이지만, 그런 그조차도 가끔 세계를 놀래키고 경악시키고 일본을 쥐잡듯 패는 한국의 미친 기술력과 컨텐츠에 대한 영상을 보다 보면 괜히 웃음이 나온다.

그뿐이 아니다.

놀랍게도 상현의 올튜브 추천 영상에도 가끔 그런 영상이 뜬다.

그만큼 먹히는 코드라는 것이다.

피식.

주혁은 자신의 시청자들의 주모 찾는 댓글을 상상하며 미소를 머금었으나, 이내 쓰디쓴 표정으로 바뀐다.

“으. 속 쓰려.”

숙취다.

해장을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장도 봐왔냐.”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몰랐는데, 냉장고를 열어보니 딱 순두부찌개 재료들이 들어 있다.

주혁이 보통 해장으로 자주 먹는 찌개이다.

“아닌 거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장 본 걸 까먹나?

주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확실히 신선한 제품이다.

“맞나 보지.”

생각하는 걸 그만뒀다.

배가 고프고 속이 쓰리니까.

슥.

그는 뚝배기를 꺼내고, 불을 올렸다.

* * *

스르륵.

상현의 캡슐이 마치 살아 있는 것마냥 부드럽게 열렸다.

꽤나 산뜻한 표정의 상현이 걸어 나온다.

문을 열고 나가자 따뜻한 찌개 냄새가 가득하다.

“잘했냐?”

주혁이 순두부찌개를 후루룩 먹으며 물었다.

상현은 주혁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얼른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오. 역시 했네.”

“……?”

주혁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설마…… 네가 사 왔냐?”

“어. 너 술 먹고 다음 날 이거 해 먹잖아.”

“…….”

주혁은 괜히 뭔가 당한 느낌이었다.

상현이 바지락 순두부찌개를 먹고 싶어서 자신을 이용한 것 같은 느낌.

그러나, 저 녀석이 밥을 먹는 것에 점점 익숙해진다는 건 좋은 일이긴 했으니 넘어간다.

“혹시나 해서 2인분 했다.”

툭.

그는 밥을 퍼서 앞에 내놓으며 웃는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촬영에서 뭐 선정한다며. 됐냐?”

“어. 우리 팀 굿즈 나온대. 1등했어.”

상현이 약간 흥분한 투로 말했다.

굿즈에 흥분한 건지, 순두부찌개 위 노른자를 보고 흥분한 건지 구분이 안 간다만.

“오?”

주혁은 잘됐다며 끄덕인다.

“재밌었나 보다?”

무엇보다 상현의 표정이 밝아 보이는 게 좋았다.

“으응. 개차나찌.”

흐아.

뜨거운 것을 먹으며 대답하느라 발음이 뭉개졌지만.

괜찮았다는 말은 잘 전달됐다.

후릅.

한입을 다 먹고 나서야 상현이 덧붙인다.

“요즘 디스월드 기술력 장난 아니더라.”

연이어 수영장 파티 세트장에 대해서도 한참 떠들었다.

‘재밌었나 보네.’

괜찮았지, 정도로 말했으나.

누가 봐도 재밌어서 신이 난 모습이었다.

주혁은 이만 화제를 바꾼다.

“근데…… 이거 봐.”

주혁이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의 화면엔 올튜브가 떠 있었는데.

“이거 지아가 어제 반응 좋다고 쇼츠로 급하게 편집해서 올린 거야.”

“오…….”

“조회수 잘 나오더라.”

[좀비 스쿨) 견과류…… 첫 데스?]

……라는 제목으로 올라간 쇼츠(Shorts) 영상이다. 짤막하게 볼 수 있어서 사람들의 반응을 간 보기에 딱 좋은 형식.

[조회수 37만]

올라간 지 몇 시간 만에 37만 조회 수다.

역시 지아가 팬들 다루는 센스가 있다고 느끼며 상현은 영상을 본다.

[리액션 갑니다!]

리액션 한답시고 화살을 자기에게 돌아오게 쏘면서 머리를 내미는 모습.

그러다가 화살이 꽂히기 직전, 방송이 꺼져 버린다.

-이거 죽은 거야? 그럼 첨부터 다시 가야 함?

-정보) 아몬드는 죽으면 다시 해야 하는 걸 몰랐다

-이건 죽었지. 2트 가야겠네

2트.

두 번째 트라이라는 말로, 쉽게 말해서 두 번째 판이란 뜻이다.

좀비 스쿨은 흔히 말하는 로그라이크 게임이기 때문에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사람들이 다 죽은 줄로 아네?”

상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 정도로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할 줄은 몰랐는데.

-저 날 방송 레전드ㅋㅋㅋㅋ 방송 시간이 레전드임 한 3시간 했나?ㅋㅋㅋㅋ

└킹덤은 안 해주고 마음가짐만 킹덤 시절로 돌아간 견과류ㅠㅠㅠ

-오늘 리셋해서 양호실부터 가면 개쩔텐데

└걍 처음부터 체육관으로 뛰어서 활로 백준수 쏘면 안 됨?ㅋㅋㅋㅋ

└바로 공사장 가서 공사장 디펜스 해도 됨

└제작사 오열ㅋㅋㅋㅋ

이젠 댓글에서 아예 2번째 판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작전까지 짜고 있다.

“와, 다들 죽은 줄 아네?”

“그래도 몇 명 정도는 있어. 네가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주혁이 댓글을 보여준다.

그래도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 아몬드가 죽지 않았다는 이론을 펼치고는 있긴 했다.

-아몬드 좀비 스쿨 사실 죽은 거 아닌데? 마지막에 끔

└응 맞아 UFO도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응 투팍도 살아 있어.

그러나 반응은 참담했다.

투팍은 살아 있다, 존 F. 케네디는 죽지 않았다 따위를 주장하는 미국의 음모론자들 같은 취급이다.

└견과류단들 정신이 나갔네 ㄹㅇㅋㅋㅋㅋ

└인지부조화 걸림 ㅄ들ㅋㅋㅋ

└이건 견까가 일부러 까이라고 쓴 댓이잖아 ㅅㅂ

└ㅋㅋㅋㅋㅋ견과류 망상

망상이라고, 혹은 인지부조화가 걸렸다고 하거나, 심지어는 이걸 일부러 안티들이 조작해서 올리는 거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만큼 이들은 아몬드가 죽었다 확신한다.

어떤 댓글에서는 아예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견과류단 쉑들 ㅋㅋㅋㅋ 원트에 깰 거라고 나대더니만, 결국 죽었죠?!

└좀비 스쿨을 깰 게 아니라, 열등감에 절여진 니 머리통을 깼어야 하는데ㅋ

└견과류견ㅋㅋㅋ견견 ㅋㅋㅋ 견^2ㅋㅋㅋㅋㅋ

└견^2이래 ㅋㅋㅋㅅㅂ 견제곱ㅋㅋㅋ

└어휴 억까 새끼들 ㅡㅡ 아직 죽은지도 모르는데 왜 나댐

└죽은지 모르는 건 ^견^ 뿐 ㅋㅋㅋㅋㅋㅋ

└팬덤 이름이 어떻게 견견 ㅋㅋㅋㅋㅋ

아무래도 아몬드의 팬들이 아몬드가 단 한 번 시도로 게임을 완전히 깰 거라고 많이 떠벌리고 다녔던 모양이다.

찬양이 많다 보면, 비난도 거세진다.

괜히 깎아내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리고 그들은 늘 기회를 옅보다가, 상대가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물어뜯는다.

그게 바로 지금이다.

-아몬드는 100만 원에 니들 기대 다 갖다버렸다 ㅋㅋㅋㅋㅋㅋ

-내팽개쳐진 견과류의 개들……ㅋㅋㅋㅠㅠ

바로 아몬드가 100만 원 리액션을 하다가 죽은 것처럼 보이는 지금.

-주인님들한테 버림받은 그저 ^견^들

└걍 잘생겨서 깐다고 해 ㅄ아 ㅋㅋㅋ

└왈! 왈왈!

└아몬드가 주, 주인……? 오히려 좋아…….

신이 나서 견과류단을 공격하는 것이다.

사실, 인터넷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엎치락뒤치락이며, 이에 대해서 감정 소모를 할 필요는 없었다.

동물들이 저들끼리 노는 게 꼭 싸우는 것처럼 보이듯이, 이들도 싸우는 것 같지만, 본질은 이러면서 노는 것이다.

다만…….

“크흠. 이 자식들 이거. 참교육 좀 해야겠네.”

상현이 보기에 그리 좋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오~ 자신이 넘치네. 살 수 있어?”

주혁이 박수를 치며 묻는다.

“응? 살아 있다니까?”

상현은 무슨 소리냐며 되묻는다.

“아니, 살아는 있는데. 화살 날아오는 건 어쩌려고?”

“그게 무슨…….”

“너. 화살 날아오는 순간에 방송 껐잖아. 그건 어쩌게. 또 날아오고 있을 텐데.”

“…….”

상현은 순간 벙어리가 됐다.

거기까지 생각은 안 했던 모양이다.

“……피하면 되지. 뭐.”

잠시 후.

상현은 캡슐로 들어갔고.

[‘아몬드’ 님의 스트리밍이 시작됐습니다!]

아몬드의 방송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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