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2부-63화 (343/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63화

23. 떠돌이 중 최고였어요(2)

“소장님. 팩스 왔어요.”

“음? 팩스?”

송하나는 오늘 팩스를 하나 받게 됐다.

“진짜네. 얘넨 참…….”

의외로 미국의 의료계는 굉장히 보수적이라, 아직도 이런 팩스 소통을 선호한다.

특히나 그 자료가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말이다.

요즘 세상에 이런 통신 수단을 이용한다니. 송하나는 개인적으로 수치스럽다 생각하지만.

‘연구 결과 왔구나.’

팩스로 왔다는 말에 어떤 자료를 보낸 건지 바로 감이 왔다.

촤락.

익숙한 동작으로 종이를 한번 흔들어 펼친 후.

서류에 한참 눈을 붙이고 훑어본다.

잘근잘근 깨무는 손톱.

흥미로운 걸 볼 때, 혹은 무서울 때. 하여간 심장이 빨리 뛸 때마다 나오는 버릇이다.

“이거…….”

그녀는 자신의 연구실로 들어가, 책상 위에 서류를 흩뿌려놨다.

그 서류의 맨 첫 장엔 곱게 생긴 얼굴 둘이 박혀 있었다.

[최사랑]

[유상현]

* * *

게임 속에 들어가자.

팡!

웬 요정이 하나 튀어나왔다.

“안녕하세여! 떠돌이 용병님!”

그녀는 아몬드의 오른손 주먹 정도 크기의 아주 작은 요정이었다.

“저는 이번에 떠돌이 용병님의 안내를 맡게 된…….”

말을 하다 말고 메시지가 뜬다.

[요정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본인 이름보다 요정의 이름을 먼저 정해야 한다니. 아몬드는 미처 먼저 생각해 두지 않았는데. 대답은 빨리 튀어나왔다.

“피넛.”

-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하네 ㅋㅋ

-ㄹㅇ임?ㅋㅋ

[그 이름은 현재 사용 불가합니다.]

“아……”

아쉽게도 피넛은 안 됐다.

딱 어울리는데 말이다.

그러나 아몬드는 피넛을 포기하기 힘들었는지, 그 비슷한 류로 계속 시도해 봤다.

“피넛버터.”

[그 이름은 현재 사용 불가합니다.]

“피넛잼.”

[그 이름은 현재 사용 불가합니다.]

“피넛알러지.”

[그 이름은 현재 사용 불가합니다.]

-미친놈이냐 ㅋㅋㅋ

-광기 ㅋㅋ

-그렇게까지…….

“땅콩.”

[그 이름은 현재 사용 불가합니다.]

-아니 그냥 마카다미아쯤으로 타협해 ㅋㅋ

-넛츠펑크 세계관을 향한 그의 의지……

-이거 끝말잇기 게임인가요?

아몬드는 한참 머리를 굴려보더니.

“아…… 이건 진짜 될 거 같아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말했다.

아주 천천히. 음미하듯이.

“따앙코옹.”

약간의 편법을 곁들인 이름이다.

-ㅋㅋㅋㅋㅋㅋㅋ

-도랏 ㅋㅋ

-따앙코옹ㅋㅋㅋㅋㅋㅋ

-부를 때 졸라 힘들겠네

-따앙ㅋㅋㅋㅋㅋㅋ

띠링!

[요정의 이름이 ‘따앙코옹’으로 정해졌습니다.]

“와. 됐다!”

아몬드는 주먹을 불끈 쥐어 올렸다.

-안 되겠냨ㅋㅋㅋ

-딱콩 마렵네 ㄹㅇ ㅋㅋㅋ

-팡대력 ㅈㄹ 상승했넼ㅋㅋㅋ

-ㅊㅊㅊ

-따앙코옹!

멈춰 있던 요정이 다시 밝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안내를 맡은 요정 ‘따앙코옹’이라고 해요! 떠돌이 용병님의 이름을 알려주시겠어요!?”

-어감 뒤지네

-이제 평생 자기 이름을 렉 걸린 거처럼 말해야 하누 ㅋㅋ

-ㅈ간이 미안해 요정아 ㅠㅠ

“아몬드.”

[그 이름은 현재 사용 불가합니다.]

당연하다는 듯 이미 먹힌 아몬드라는 닉네임.

사실 굳이 스트리머 아몬드가 아니더라도, 이런 간단한 사물 혹은 식품 이름은 닉네임으로 먹기 힘든 편이다.

“아…….”

-누구야 대체 ㅋㅋ

-아이디 사자

-설마 망나니용사?

-좀비스쿨ㄱ

-김주혁 ㄱㄱ

사람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지만, 상현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아아몬드.”

[닉네임이 ‘아아몬드’로 생성되었습니다.]

“……아아!몬드!님! 반갑습니다!”

-와우……

-만능이네 ㅋㅋㅋ

-아아모온드으 아닌 게 다행ㅋㅋㅋ

-아아! 몬듴ㅋㅋㅋㅋㅋ

-아아가……

요정은 파르르 날갯짓을 하더니 아몬드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수많은 전투에는 늘 영웅이 존재했습니다.”

-갑자기?

-급대사 읊기 ㅋㅋㅋ

-???:아 맞다 일해야지

“그들은 존재만으로 전장을 압도하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그 영웅들도 처음엔 그저 당신처럼 떠돌이 용병이었죠.”

쉬리릭.

그녀가 앞으로 손을 내젓자, 수많은 전쟁들이 청사진처럼 지나갔다. 그 안엔 영웅들의 멋진 활약도, 병사들의 치열한 생존도 담겨 있었다.

“영웅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늘에 닿은 자들입니다.”

슈웅!

그녀가 금가루를 뿌리며 날아다녔다.

“제가 모시는 아아몬드 님도 언젠가 전장을 누비는 영웅이 되실 수 있을 겁니다!”

요정이 작은 완드를 휘휘 젓자, 자신이 뿌린 금가루들이 모여들었다.

금빛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더니, 어느새 타원의 문이 되었다.

파지지직……!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 안으로 들어간다면 다른 세계로 간다는 것을.

비로소 게임이 시작된 된다는 것을.

“야욕과 패기가 넘치는 떠돌이 용병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기회! 가서 원하는 전장을 마음껏 누벼보세요!”

슝.

아몬드가 포탈 안으로 발을 들이자, 순식간에 전신이 빨려들어 가며 풍경이 바뀌었다.

* * *

꺼칠한 원목 테이블 위로 거대한 맥주잔이 사납게 놓인다.

쿵!

“크아!”

덥수룩한 수염의 덩치가 맥주 맛을 요란하게 음미하더니 외친다.

“빌어먹을 용병 생활! 이러다 훅 가면 장례는 누가 치러준단 말야!?”

‘용병?’

아몬드는 그 말에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선술집이었다.

아몬드의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자신의 차림새를 확인하는 것이다.

‘갑옷이다. 싸구려지만.’

너저분한 가죽 갑옷과 짤막한 대거.

그게 그가 가진 전부다.

그는 신기한 눈으로 다시 주변을 훑었다. 중세풍의 선술집. 꼭 킹덤을 하던 시절 같은데. 그러고 보니 킹덤에서 술집을 간 적은 없었던가.

“어이! 거기! 차림새를 보니 떠돌이 용병이라도 하려고 기웃대는 거 같은데!”

어떤 목소리가 아몬드를 불러 세운다.

아까 술을 마시고 한탄하던 그 남자는 아니다. 이곳과 어울리지 않게 좀 더 젠틀하게 생긴 자다.

왜 있잖은가, 산적 무리 속에서도 머리를 쓰는 자들이 하나씩은.

꼭 그런 역할을 맡은 사람 같았다.

그가 거대한 칠판을 두들긴다.

“여기 이름이라도 적어놔! 그래야 뭐라도 들어오지!”

그곳엔 대기 목록이라는 것이 써 있었는데. 조금 우습게도 그게 실시간으로 마구 바뀌고 있었다. 마치 마법처럼.

아무래도 출정 대기를 걸어놓은 유저들의 이름인 것이다.

이름들은 E, D, C로 분류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수행할 임무의 랭크 같았다.

“이름이 뭔가!”

“아아몬드.”

“아아아! 몬드! 알았네!”

그는 칠판 중에 E랭크라고 적힌 칸에 아몬드의 이름을 적었다.

그때였다.

턱.

뒤쪽에서 누군가 그를 밀치며 등장한다.

커다란 덩치와 험악한 인상의 소유자 셋이었다.

“뭐야. 신참이냐. 네가 무슨 용병밥을 먹겠다는 거냐.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지.”

으하하하!

상투적인 시비와 그에 못지않게 흔해 빠진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옆에 붙은 둘도 한마디씩 거든다.

“C랭크 형님들 보면 인사부터 하란 말이야. 이놈 새끼야~”

“용병이라고 다 같은 용병이 아니야. 이놈 새끼야~”

나름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협박하고 있으나, 아몬드도 시청자들도 그들이 위협적이라고 느끼진 않았다.

-말투 뭔데 ㅋㅋㅋ

-덤 앤 더머 ㅋㅋㅋ

-ㅋㅋㅋㅋ엑스트라 커엽누

위협을 느끼는 건 오히려 선술집에 있는 다른 NPC들이다.

“C랭크의 트롤 3형제다……!”

“저, 저놈들이 왜 여기에…….”

“이럴 수가.”

트롤 3형제니 뭐니 하며 호들갑을 떤다.

아몬드는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C랭크면 좋은 건가요?”

어감상 사실 C는 별로 좋은 느낌이 아니니까.

물론 E나 D보다야 낫지만.

학점만 해도 C는 전혀 좋다 할 수 없다.

-ㄴㄴ 그냥 낮은 거임

-현 단계에선 좋지 님은 E자나요 ㅋㅋㅋ

-떠돌이 용병 중엔 최고.

띠링.

[엠잘알 님이 2천 원 후원했습니다.]

[떠돌이 용병은 C가 맥스임. 노련한 용병 돼야 B~A 가능이고, 정예 용병 돼야 A+에서 S급 의뢰 수행 가능]

“오…… 설명 감사합니다. 엠……잘알 님.”

-사람 이름이 어케 엠잘알ㅋㅋㅋ

-아이디 어감 ㅈ되누 ㅋㅋㅋㅋ

-엌ㅋㅋㅋ

“여튼 제가 지금 떠돌이 용병이고, 여기도 떠돌이 용병들이 있는 선술집이니까, C랭크가 최상이군요?”

아몬드는 선술집의 간판을 가리켰다.

[떠돌이 용병의 낭만]

굳이 떠돌이 용병이라는 말을 끼워 넣은 이유는 아마 이들의 전용 공간이라는 뜻이겠다.

-ㅔ

-맞습니다

-ㅇㅇ

“그럼 여기서 얘네가 젤 세다는 건데…….”

젤 센 놈들이 시비를 건 거구나. 아몬드는 눈앞에 선 세 명의 남정네를 보며 되뇌었다.

‘그것도 셋이나.’

제일 센 랭크의 용병이 셋이나 시비를 건 셈이다.

“어이. 똘마니. 뭘 그리 멍때려? 내 말이 안 들려? 이 새끼야~”

“오줌이라도 지렸냐? 이 새끼야~”

-말투 왜 저랰ㅋㅋ

-포켓몬임?ㅋㅋㅋ

-개웃기네 ㅋㅋㅋ

놈들은 그렇게 정해진 대사를 날리며 다가와 협박했다.

“그냥 갖고 있는 갑옷이나 다 놓고 꺼져. 그게 신참들이 선배를 대하는 예의다.”

분명 명예도 어이도 없는 요구임에도 술집에 가득 들어찬 사내들은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말리긴커녕 오히려 부추긴다.

“그래! 씨발 다 뺏어!”

“이게 트롤 3형제지!”

“키야아! 한 대 날려어!”

-ㄷㄷ 이게 중세 알파메일들?

-도랏네 ㅋㅋㅋㅋㅋㅋ

-와 기 빨린닼ㅋㅋ

-ㄹㅇ 광기

-창밖에 똥 던지면서 사는 놈들이니 뭐…….

‘아. 이런 건가.’

아몬드는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 알 것 같았다.

파르르.

어깨에 요정 따앙코옹이 내려앉아 혹시 있을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부연 설명했다.

[평소 악질적인 행동을 하는 트롤 3형제랍니다. 당신의 용병으로서의 자질도 보여줄 겸. 한번 싸워보세요!]

요정의 목소리는 이제 아몬드에게만 들려왔다.

[트롤 3형제는 힘이 굉장히 강하고 덩치가 커서 거리를 좁혀……]

어쩌구저쩌구.

아몬드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대거를 뽑아 들었다.

어차피 이미 그의 귀엔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후─”

얕게 내쉬는 호흡에서, 얕은 긴장과 깊은 집중력이 느껴졌다.

시선만으로 상대의 이마를 뚫을 듯했다.

그 이마의 주인, 가운데 선 리더 트롤이 무식한 검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오호? 칼을 뽑아? 뽑았으면, 너도 칼에 맞─”

──푹!

가장 가운데 있던 트롤의 이마에 대거가 박혔다.

“!?”

쿵……!

거구가 맥없이 뒤로 자빠졌다.

순간 흐르는 침묵.

-???

-야 죽이면 어떡해! ㅋㅋㅋ

-ㅁㅊ 바로 사살ㅋㅋㅋㅋ

-헐ㅋㅋㅋ

-이래도 되는 거야?

그제야 들리는 소리.

그제야 보이는 채팅들.

“아…….”

그제야 아몬드는 뭔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그냥 결투인데, 죽여 버리다니.

너무 몰입했나.

“좀비 스쿨 하던 게 습관이 돼서…….”

이제 어떡해야 하나, 멋쩍은 표정으로 술집을 쭉 둘러보는 아몬드.

혹시라도 단체로 달려드는 거 아냐?

그러나 오산이었다.

남정네들 몇이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기 시작하더니, 기어코 모든 손님들이 팔을 허공에 휘둘러, 함성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찌르르.

어찌나 소리가 큰지 땅에 미세한 전율이 흐른다.

“와! 죽이는데?!”

“말 그대로 죽이는데!? 형씨!”

“던지는 게 보이지도 않았어!!”

칠판 앞에 용병들 이름을 적던 남자가 무리를 뚫고 튀어나와 손을 내밀었다.

“아아몬드! 자네! 내가 본 신참 떠돌이 중에 최고구만! 여기서부터 시작해 보게!”

탕!

그가 막대로 후려치듯 가리킨 칸은 C랭크였다.

-와우.

-시작부터 C랭크 ㄷㄷ

-???: 아아몬드…… 그는 내가 아는 떠돌이 중 최고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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