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65화
24. 게임 속 창병이 되었다(2)
하늘에서 내려온 한 줄기의 빛.
핑이다.
-아 저게 릴에서 찍는 핑 같은 거네
-따앙코옹 지금 건방지게 명령하는 거임?ㅋㅋ
-땅콩이…… 명령?! 넛츠펑크 세계관 서열정리 한번 가야겠네 ㅉㅉ
-ㄱㄱㄱ가자!
창병들이 그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헛. 헛.
군인들처럼 구호를 붙이며 달리긴 하는데. 봇들이라 그런가 아무런 말 한마디도 없다. 이질감이 든다.
어찌 됐든 아몬드도 따라 달렸다.
얼마 안 되어 일꾼들을 공격하는 창병들이 보인다.
“으아아아!”
일꾼 하나가 쓰러지며 비명을 지른다.
이미 쓰러진 일꾼이 셋이다.
“와아아아아! 죽여라아아아!”
갑자기 옆에 달리던 창병이 고함을 내지르며 달렸다.
아몬드도 같이 달렸다.
“튀어!”
적들은 도망을 간다.
‘잡을 수 있나? 이속 제한 있을 텐데.’
역할별로 이속이 똑같이 나오게 보정되는 게임의 경우. 이러면 잡을 수 없는 게 보통이다.
‘어?’
그런데, 놀랍게도 달리는 대로 달려진다.
보통 이런 게임은 이속 제한이 있어야 하는데.
여긴 용병의 역량 그대로 달릴 수가 있다.
‘이래서 용병들 랭크 제도가…….’
이러면 역량이 뛰어난 용병은 골드를 많이 부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봇이라 그런지, 아군이든 적이든 병사들은 그리 달리기가 빠르지 못했다.
아몬드는 어느새 가장 선두로 치고 나왔다.
타다다닥!
‘거의 닿는다!’
적의 뒤통수가 눈앞이다.
그는 튀어나온 바위 하나를 밟고 박찼다.
그의 몸이 날래게 뛰어 날아, 창을 뻗었다.
한 놈의 뒷목에 창날이 박혀 들어갔다.
푸욱!
“끄악!”
잔인한 장면은 딱히 없이 그냥 쓰러졌다.
표현 방식 자체가 캐주얼하니, 좀비 스쿨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그냥 인형 하나를 쓰러뜨린 느낌.
“오…….”
그래도 손맛은 좋았다.
찌르르…….
창에 전해져 오는 진동이 조금 인위적일 만큼 컸는데. 이게 오히려 느낌이 괜찮았다.
“뭐야! 따라잡혔어! 죽여!”
적들은 도망치는 것을 멈추더니, 선두로 먼저 치고 나온 아몬드를 역으로 둘러쌌다.
-M신공 ㄷㄷ
-이것도 명령인가?
-감싸지면 죽어!
후방을 제외하면 모든 방향이 막혔다.
정면을 막은 놈이 창을 내지른다.
카앙!
아몬드의 창이 우로 쳐냈다.
양옆에서도 창을 찔렀는데.
카가강!
창은 저들끼리 부딪힐 뿐이었다. 아몬드는 납작 숙여 정면으로 굴렀다.
다만 창을 들고 구를 수는 없어 창을 바닥에 내팽개친다.
대신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단검이 하나 있었다.
그것을 뽑아 들고 정면을 막아섰던 창병의 아래턱을 찔러 버렸다.
푹!
“끄어억!”
놈은 비명을 내질렀으나. 죽진 않았다.
대미지가 부족한 모양이다.
타닥!
아몬드의 발이 그의 뒤로 가며, 휘릭! 몸 전체가 돌았다.
병사를 구심점 삼아 턴한 것이다.
이러면 뒤를 쉽게 잡는다.
그 후 팔로 목을 감싸 인질처럼 붙잡았다.
이 병사를 방패 삼아 적들이 창을 함부로 못 찌르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적들은 인질 따위 생각해 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봇이라서 그런 듯하다.
푸욱!
놈들은 아예 죽으라는 듯 자신들의 아군이었던 대상을 향해 창을 찔렀고.
“?!”
푹!
그 창은 등 뒤로도 튀어나와.
결국 아몬드에게도 일부 닿았다.
[체력 89%]
얕게 찔린 상처라 체력이 많이 달진 않았다.
-아닠ㅋㅋㅋ 매정한 봇새끼들
-감성과 우정이 넘치던 현아 누님 그립읍니다 ㅠㅠ
-ㅁㅊ 이새끼들은 진짜 봇이넼ㅋㅋㅋ
봇들이라 해도 이렇게 매정하다니. 이건 예상치 못했는데.
아몬드는 인질을 내려놓고, 적의 창을 들고 다시 휘둘렀다. 적들도 그에 맞춰 휘두른다.
카가강!
창 3개가 맞부딪히며 튀는 불꽃.
언뜻 막상막하인 듯했으나.
불꽃 사이로 베어 들어오는 공격.
──촤아악!
눈 깜짝하니, 아몬드의 창이 적 하나의 목을 그었다.
-뭐야 방금?
-와우
-4명 중에 혼자서 셋을…… ㄷㄷ
셋 중에 홀로 남게 된 창병은 놀라 주춤하며 거리를 벌렸다. 시간이라도 끌 셈인 것 같은데.
잘못된 선택이다. 시간은 아몬드 편이었다.
여긴 아몬드 진영이니까.
적의 추가 병력은 올 수 없었고, 아몬드의 쪽은 무려 병력이 10명이었다.
결국 홀로 남았던 창병은 자신의 등 뒤에서 오는 병력에게 벌집처럼 쑤셔져 죽었다.
그때, 훈련 모드가 종료됐다.
* * *
다시 지휘관의 시점으로 돌아왔다.
아래를 내려보니, 일꾼들은 다시 금광을 안전하게 캐고 있다. 병사들은 둘로 나뉘어 일꾼을 호위하거나 적의 기지를 향해 정찰을 떠났다.
짝짝짝!
따앙코옹이 박수를 치며 등장했다.
[와아! 너무 잘했어요! 아아몬드 님! 혼자서 몇을 처치하신 거죠!?]
그녀는 다시 완드를 휘둘러 포탈을 만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실전에 바로 투입되실 수 있답니다! 가 보실게요!]
이제 아몬드가 게임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제 선술집에서 의뢰를 기다려 보자구요!]
아몬드는 끄덕이며 포탈에 발을 들이밀었다.
우웅!
순식간에 다시 선술집이다.
“으하하하!”
“그렇다니까!? 방금 트롤 3형제가…….”
“농담도 지나치시네!”
선술집의 시끄러운 분위기는 여전했다.
아몬드는 곧바로 용병 칠판 쪽으로 향했다.
아까 전과는 목록이 많이 바뀐 느낌이다.
그가 게임을 하는 사이 다들 불려간 모양이다.
==== ====
[C 랭크]
아아몬드
jon$now
我想成??主
蝶の谷
wackjassey
.
.
.
==== ====
비인기 게임이라 대기시간을 걱정했는데.
금세 다 팔려나간 걸 보면 그렇진 않은가 보다.
“대기가 길면 어쩌나 했는데. 글로벌이라 그런가 금방이네요.”
-전세계 서버 통합 개꿀 ㄹㅇ
-그래도 어지간하면 같은 나라들끼리 부르게 되어 있긴 함
-한국인 거의 없는 거 보소 ㅋㅋㅋ
그러던 중.
아몬드에게도 기회가 왔다.
[지휘관 ‘그건제밥상입니다만’ 님이 당신께 지원을 요청합니다.]
“오.”
한국인 지휘관이다.
곧바로 의뢰 내용이 뜬다.
[의뢰비: 1골드]
[성공 보수: 기병 하나 처치당 1골드]
[병과: 창병]
[전황: 수비전. 적군이 평지에서 기마대를 몰고 진격 중. 이들을 막을 창병이 필요.(불리)]
1골드에 성공 보수까지 있다.
전황은 불리하지만, 오히려 싸울 기회가 많아서 좋을 수도 있다.
아몬드는 수락하기로 했다.
그런데…….
팅!
[기본 무기 ‘창’ 필요]
창병으로 지원하는 건데 창이 없어 안 된다고 한다.
“뭐야. 제가 무기를 사야 되는 거예요?”
-ㅇㅇ 님이 보수로 받는 걸로
-자기 무장은 자기가 하는 거임
-보수를 왜 받겠냐고 ㅋㅋㅋ
사야 하는 거구나. 딱히 불만은 없다.
다만 지금 의뢰가 들어왔는데.
언제 무기점에 들러 창을 사온단 말인가?
[아! 창이 없으시군요! 첫 임무시니까 제가 특별히 하나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펑!
요정이 손짓하자 그저 그런 창 하나가 허공에 등장했다.
“아…… 고맙다. 따앙코옹. 그런데 이럴 거면 그냥 활──”
[자! 얼른 가서 활약해 보자구요!]
뾰로롱!
요정이 한 번 더 완드를 휘두르자, 아몬드는 어떤 포탈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 * *
정신을 차려보니 수많은 병사 틈바구니였다.
‘뭐야.’
병사들의 머리 위엔 제각각 다른 아이디가 써 있었다.
[부추맨ㅋ]
[지랄ㄴㄴ해]
[wackjassey]
[롤케익 맛있다]
.
.
.
의외로 한국인이 꽤 보인다.
한국인 지휘관이라 그런 모양이다.
“진짜 사람이 지휘하는 건 어떤가 기대가 되네요.”
-ㄹㅇㅋㅋ
-RTS를 민속놀이로 했던 민족이니 애지간히 할 듯
-지휘관도 근데 초보 아닐까?
-이거 왜 인기 없냐 존잼 각인데?
-지휘는 언제 가능한 거지
피잉!
저 멀리 눈 부신 빛이 내리꽂힌다.
피잉! 피잉!
[집합]
빛줄기 위로 떠오른 텍스트.
“가 보겠습니다.”
우르르.
아몬드 포함, 모든 병사는 아무런 말 없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뛰기 시작한다.
“확실히 다들 무장이 다르네요? 저만 초보자인가 본데…….”
사람마다 전부 장비가 달랐다.
그러던 중 갑자기 숫자가 떴다.
[1-6]
“……이게 뭐지.”
-그거 집합 번호임
-지휘관 디테일하네;
-??뭐임
아몬드가 혼란스러워 어기적대자 한 사람이 말을 건다.
“거기. 한국인이지. 처음?”
빨간 머리의 외국 여성이다.
입에서 한국말이 튀어나와 깜짝 놀랐다.
자동 통역 시스템이다.
[wackjassey]
머리에 뜬 아이디는 이런 식.
아까 대기 목록에서 봤던 것 같다.
“……아, 응.”
“내 바로 옆이야. 여기. 옆이 없으면 불리해서.”
그녀는 자신의 옆구리를 가리킨다.
자세히 보니 그 자리에 ‘1-6’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 고마워.”
-존예
-“레이나”당할 예정
-외쿡 누님 미모 ㄷㄷ
확실히 전쟁터에 선 새빨간 머리의 여자는 매력적이긴 했다. 그냥 그 존재만으로도.
‘로제니타 생각나네.’
머리 색을 제외하면 로제니타와 비슷한 분위기다.
둘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시선이 위아래로 잠시 오가더니.
“근데 너 처음 맞아?”
처음이 맞느냐 묻는다.
“차림새는 확실히 처음인데…….”
“맞는데? 왜?”
“처음이면 1열로 안 세우는데. 여기 보수가 큰 대신 어렵거든.”
“처음이긴 한데, C랭크야.”
“오올.”
그녀는 몰라봤다는 듯 인사를 건넨다.
“실력자였네. 잘 부탁해.”
그녀의 에메랄드빛 눈웃음.
채팅창에선 한바탕 난리가 나서, 컵라면 먹던 주혁이 달려와 수도 없이 쳐내야 했다.
-모두 숙여! 호두 폭격이다!
-으악!
-나, 난 이만…….
열사들이 밴 당하고 있는 그때.
두두두두두……!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북소리.
두두두두두두!
아니, 말발굽 소리다.
그것은 이내 기관총 소리처럼 변했다.
쿠구구구!!
“온다.”
앞의 초원에서.
꿀꺽.
사방에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띠링.
[지휘관: 막아.]
지휘관으로 내려온 간단한 명령.
옆에서 요정이 부연한다.
[차, 차, 창병은 기병의 카운터예요! 어, 어떻게든 창을 들이대면 주, 죽일 수 있어요!]
그녀도 초보인 걸까? 잔뜩 긴장한 듯 말을 더듬는다. 아니면 몸이 작아서 말들의 진동을 견디기 어려운 것일지도.
쿠구구구구구……!
[여, 여, 여기서 활약하면 명예수치를 쌓아서 베테랑 용병이 되실 수 있구여…… 으아아아!]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말발굽 소리에 요정의 말은 묻혀 버렸다.
적들의 함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돌겨어어어어억!!!”
이쪽도 가장 선두에 선 자가 창을 번쩍 들며 외친다.
“막아아아아아아아!!”
아무래도 저 사람이 베테랑 용병 같은 건가 보다.
“와아아아아아아!”
이쪽 병사들도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한다.
아몬드도 따라서 외쳤다.
-와 이거 ㄹㅇ 전쟁 같아
-진짜 다 사람들임?? ㄷㄷ
-릴보다 갓겜이네ㅋㅋ 왜 인기 없지?
릴보다 갓겜처럼 보이는데, 왜 릴보다 인기가 없는지는 바로 다음 순간 알 수 있었다.
“창! 창을 앞으로 들이대!”
“온다! 온다아──!”
거대한 군마가 앞발을 치켜세우며 달려온다.
이제 코앞이다.
쿠궁!
쿠구궁!
그들의 말발굽 소리에 심장이 짓눌렸다.
이히이잉!
말 투레질 소리와 함께, 온몸을 철저히 두른 은갑의 기사가 거대한 하나의 랜스가 되어 돌격해 온다.
흐응!
말의 뜨거운 콧김이 수증기로 뿜어지는 순간.
──퍼어억!!
기마대가 창병들을 덮쳤다.
창병의 창이 기마대를 찔렀다.
“!?”
세상이 뒤집어지더니, 시야가 암전했다.
쿵!
머리 쪽에 큰 충격이 온다.
눈을 뜨니, 아군의 절반이 사라졌다.
‘무, 무슨…….’
흙바닥에 박혔던 고개를 치켜든 아몬드.
그는 그때 깨달았다.
‘그냥 안 되잖아?’
지금 단순히 운이 좋아서 살았고.
지휘관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다간 다 죽을 거라는 걸.
* * *
어느 어두운 방 한쪽.
“……엇. 아. 쓸렸네. 이거 참.”
사탕을 입에 문 소년이 머리를 긁적인다.
그의 모니터 화면엔 절반이 날아간 창병부대가 보였다.
“이런. 이 금액 창병으론 안 되나. 저 기마대 대체 돈을 얼마 쓴 거야? 올인 러쉬야?”
그는 마우스를 딸깍하며, 절반도 채 남지 않은 창병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공격]
저들을 밟고 지나간 기병들을 향해 다시 돌격시킨 것이다.
시간이라도 잠시 끌려는 것이다. 병사는 다시 생산하면 되니까.
“시간 좀 끌어. 너희들 값으로 시간이라도 끌면 이득이다. 겁내 비싼 기사들 같으니.”
그는 잠시 생산 파트 쪽에 집중했다. 일꾼들이 금과 나무 등의 자원을 잘 캐오고 있는지, 적의 견제는 없었는지, 다음 건물은 어떤 걸 올릴지. 등등.
“다음 테크 타려면 철광…….”
그는 아까의 초원 전투 지역을 다시 봤다.
이쪽에 있는 철을 꼭 먹어야 하니까, 다시 군사를 파견할 생각이었다.
“……뭐야?”
그런데, 죽어가며 시간을 끌라고 공격 명령을 내려둔 창병들이 아직도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