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66화
24. 게임 속 창병이 되었다(3)
RTS류 게임에선 정말 잘 쓰이지 않는 말이 있다.
지금 땅바닥에 누워 다 죽어가는 창병들이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듯 내뱉는 말.
“으으거…… 운빨 좃망겜 시바…….”
“지휘관 뽑기 개망…… 으으…….”
운빨.
다른 RTS 게임류에선 정말 쓰이지 않는 이 말이.
시빌 엠파이어에선 흔히 쓰인다.
그리고 아무도 그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큰 수의 법칙으로 실력이 좋으면 랭크가 상승하는 건 부정할 수 없으나. 분명 운에 의한 변수가 굉장한 게임이다.
용병 입장에선 지휘관의 실력이 없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희생시킬 부대로 뽑았다거나.
지휘관 입장에선 용병이 트롤링을 하는 경우. 돈만 날린 셈이 되는 거다.
더군다나 초보일수록 값이 싸서 희생시킬 목적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으니.
초보들의 게임 경험이 지옥이나 다름없다.
이러니 인기가 좋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한국 문명이 밸런스가 안 좋다니…….’
거기에 더해, 문명전에서 한국 문명이 굉장히 좋지 않은 밸런스를 갖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문명에 상관없이 아무런 무기나 갑옷을 착용하고 싸우는 ‘밀리’ 모드이지만.
문명전에서는 선택한 문명의 아이템만 착용할 수 있으며, 각 문명의 특별한 능력을 얻을 수 있는데.
한국은 별로 좋지 못하다는 말이 많다.
한국이 안 좋으면 다른 문명 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국가 대항전을 생각하면 그게 안 된다.
거기선 자신이 소속된 국가만 플레이 가능하며, 이 컨텐츠가 사실상 시빌 엠파이어를 하는 이유라서.
여기서 불리한 한국 유저들은 하나둘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거기까지 갈 수나 있나.’
시작하자마자 허무하게 죽을 뻔한 주제에 국가 대항전까지 생각하고 있다니.
아몬드는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후아. 너도 살았네?”
옆에서 누가 흙을 털고 일어나며 말을 건다.
wackjassey였다. 그녀도 살아남은 것이다.
“운이 좋네. 이 맛이지.”
운이 좋다니.
여기선 시작하자마자 팀 절반이 살해당하는 게 운이 좋은 건가 보다.
어찌 됐든 그녀가 살았다니 마침 잘됐다. 궁금한 걸 물어볼 사람이 있으니까.
“내가 듣기로 창병이 기병에 카운터라 했는데. 대체 무슨 원리야?”
방금 겪은 바로는 도저히 정면에서 부딪히면 싸움이 안 되기에 하는 질문이다.
“카운터? 아, 그건 창 자체가 기마대에 보너스 대미지가 들어가고, 구조적으로 그냥 내밀고만 있으면 기마대가 꼬라박는 격이라서.”
“오…….”
들어보면 진짜 카운터가 맞는 것 같다.
“근데 왜 진 건지 모르겠지? 저 상성은 어디까지나 가격이 같을 때 이야기라서야.”
가격?
아몬드는 그 말에 자신의 차림새를 내려본다.
너저분한 가죽 갑옷에 좀비 스쿨에서 쓰던 것보다 뭐가 나은지 모르겠는 싸구려 창.
반면 상대방은 척 보기에도 굉장히 차려입은 느낌이었다.
“쟤네 무기 갑옷 생각하면, 가격이 5배 차이는 날 거야.”
여자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지휘관도 우리한테 큰 기대 없을걸? 그냥 시간이나 끌라고 배치한 거지.”
그러면서 여자는 위에 뜬 명령을 가리킨다.
[소초를 파괴하고 있는 기마대를 추적하여 공격하라.]
“봐바. 그냥 다 죽으라잖아.”
저 기마대와 싸움이 안 된다는 건 지휘관이 가장 잘 알 텐데. 별다른 충원 없이 또 싸우라 하는 건 죽으라는 소리다.
그게 애초에 임무였던 것이다.
-시간 끌기구나 ㅠ
-헐……
-이게 전쟁이군
이 게임 특성상 아몬드는 전체의 전쟁에서 하나의 유닛일 뿐.
절대 주인공은 아니었다.
시빌 엠파이어에선 이 전제를 항상 유념해야 했다.
‘음. 진짜 죽어야 되나.’
아몬드는 적 기마대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우리를 짓밟고 지나 아군 전진 초소에 불을 지르고 있다. 병사 훈련소도 같이 불타고 있다.
저곳이 없어진다면 병력 추가 지원은 기대할 수 없었다.
‘어쩌지.’
아몬드는 주변을 둘러본다.
아까의 동료들처럼 개죽음당하긴 싫었다.
이럴 거면 기마대 하나당 1골드 보너스는 왜 달았단 말인가?
그냥 사기꾼 아냐?
따위의 생각이 들며 괜한 오기가 생겼다.
이 지휘관 놈에게 1골드라도 더 털어가겠다는.
‘보너스…… 받아 간다.’
보너스 앞에서 그냥 돌아간다면, 아성 상사맨의 5년 경력이 울지. 암 그렇지.
“뭐해. 지휘관 명령은 절대적이야. 어기면 페널티 있을 수가 있어.”
척.
여자는 어디서 주웠는지, 아까는 없던 투구를 깊게 눌러쓰더니 앞장선다.
아몬드는 다급히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뭐야?”
여자는 당황한 얼굴로 돌아본다.
“다른 방법 없을까?”
“페널티 있다니까?”
“조금만 다르게 해보자.”
“뭘 어떻게?”
척. 척. 척.
그사이, 살아남았던 아군 창병들은 이미 기병들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너네 둘 뭐 하냐~ 연애질 하지 말고 싸워~!”
“어차피 희생팟인데. 그냥 돌격하고 한 놈이라도 어떻게든 잡고 끝내자고!”
그들도 자신들이 죽을 걸 알고 지휘관이 가리킨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뭐 해. 놔. 쟤네 말 안 들려?”
“아.”
아몬드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뭔가 깨달은 듯 말한다.
“저기 떨어진 창들. 들고 따라와.”
갑작스러운 명령조.
아몬드는 좀비 스쿨 하던 버릇이 그대로 나온 것에 불과하지만, 그녀는 기분이 상당히 나쁠 수밖에 없었다.
‘뭐 하자는 거야. 이 자식이.’
친절을 베풀어 주니까, 만만하게 보였나?
별생각이 다 드는 wackjassey.
그럼에도 단번에 거절하진 못했는데.
‘핏자국……?’
아몬드의 창에 묻은 핏자국 때문이다.
‘뭐야. 기병을 찔렀어?’
첫 출전.
처음 상대해 본 기마대.
모든 게 처음이었을 텐데.
적 기마대는 가격이 많게는 5배까지도 차이 나는 고급 병력이었다.
완전 무장을 갖춘 왕실 기사단 급의 전력.
창병이 아무리 기병에게 보너스 대미지를 받는다지만…….
이런 싸구려 창으로 그들에게 대미지를 주는 판정을 받으려면, 갑옷을 찔러선 안 된다.
갑옷이 보호하지 못하는 이음새를 찔러야 한다.
말과 창이 격돌하는 짧은 찰나에 그 이음새를 창으로 찌른다는 건…… 아무리 게임이어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냥 비싼 창을 들고 오는 게 빠른 길이다.
그런데 놈은 어떻게 찔렀을까?
‘우연이겠지.’
그녀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하기로 했다.
병사끼리의 명령은 금물이다. 상관은 오직 지휘관뿐.
“……꺼져. 뭔데 명령질이야.”
그녀는 손을 뿌리친 뒤.
돌격태세를 갖췄다. 지휘관이 명령한 대로 기마대를 따라 마저 돌진할 생각이다.
그 순간, 가장 앞에 돌격했던 창병 하나의 목이 데구르르 굴러왔다.
아까 전에 기병 하나라도 죽여보자고 했던 그 사람이다.
달려가면 개죽음이라는 게 명확히 두 눈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발걸음이 절로 멈춘다.
그녀는 다시 아몬드를 힐끔 바라봤다.
그녀의 눈이 아몬드를 이리저리 자세히 살펴본다.
‘흠…….’
그녀는 결심했다.
마음을 돌리기로.
“이봐.”
“……?”
“무슨 생각인지 말이나 말해봐. 같이 가줄게.”
* * *
쭈욱.
사탕을 한껏 들이빤 소년.
설탕으로 코팅돼 맨질맨질한 그의 입이 중얼거렸다.
스트레스받을 땐 당분만 한 게 없다.
“뭐 하는 거지.”
공격을 명령했는데, 요상한 돌발행동을 하고 있는 창병 둘이 있다.
다른 놈들 다 일직선으로 돌격할 때 둘이서만 저 멀리 돌아서 가고 있다.
뭔가 나름의 전략이 있는 걸까?
“전략이 있긴 개뿔. 얘네 1골드짜리 아닌가.”
나름대로 전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들의 랭크는 C랭크다.
용병 중에서도 떠돌이 용병이다.
그나마 베테랑 용병도 아닌 것이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한 명은 여자다.
지휘관은 아이디를 볼 수가 없어 어느 나라 여자인지는 모르겠으나 붉은 머리의 서양인이다.
함께 달리는 남자는 동양인이다.
둘 다 얼굴이 반반하니, 사랑의 도주라도 하고 있는 것 같다.
쯔쯧.
“이래서 인싸들은 이 게임 하면 안 된다고 내가 그렇게~~ 설명했거늘.”
나이에 맞지 않게 꽤 노련한 지휘관인 소년, ‘그건제밥상입니다만’은 이런 경우 꽤 봤다.
이것도 사람이 하는 게임인지라, 둘이서 눈 맞아서 쏘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다.
이 게임에 진심 그 이상인 그로선 어이가 없지만 말이다.
“이건 전쟁이라고. 전쟁! 어? 왜 이렇게 긴장감이 없냐 C랭크들은.”
……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굳이 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럴 여념이 없었다.
지휘관의 일 중 전투 지휘는 사실 지분이 40%밖에 안 된다.
생산 지휘가 더 중요할 때가 많았다.
생산 지휘란, 일꾼을 생산하고, 자원을 캐고, 그걸로 다시 병력 초소를 지어 병력을 훈련하는 일 따위를 말한다.
한마디로 실제 전쟁에선 ‘보급’ 담당 같은 것이다. 병사를 쓰는 덴 돈이 들고, 건물과 성벽을 올리는 데엔 나무와 석재가 든다.
이 사이클을 최대한 빠르게 올리면서 많은 수의 병력, 질이 좋은 병력을 뽑아내는 게 지휘관의 임무다.
그 병사들을 지휘하는 건 그다음 일이라 할 수 있다.
“나무 없네.”
그러니 소년은 다시 생산 파트를 향해 화면을 돌렸다. 본진 쪽의 나무가 다 사라졌다. 새로운 캠프를 차려야 했다.
뚝딱!
일꾼 몇을 시키자 캠프가 순식간에 지어진다.
“금은…….”
용병을 쓰는 데 가장 주요한 자원인 금.
금광 쪽은 한창 잘 굴러가고 있었지만…….
“아. 아. 견제…… 아아!”
적 궁수 부대의 기습 견제가 들어왔다. 멀리서 활로 계속 일꾼들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미친 수비 병력 다 뺐는데!”
결국, 그는 사랑의 도피 중인 창병 둘에 대해선 까맣게 잊어버렸다.
* * *
후우.
낮은 숨을 뱉으며, 아몬드는 수풀 뒤로 몸을 숨겼다.
제시-앞으로 그냥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도 헉헉대며 옆으로 따라붙었다.
“진짜 한참 걸리네.”
기마대에게 들키지 않고 접근하기 위해 한참을 돌아와야 했다.
둘은 가져왔던 창을 바닥에 조심히 풀어놨다.
‘창이 서른 개는 되네.’
혼자서는 이만큼을 가져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제시가 도와줘서 해볼 만해졌다.
아몬드는 초소를 파괴하고 있는 기병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초소는 이미 불이 활활 타고 있다.
[보병 훈련 초소]
[체력 23%]
현실이라면 도저히 손 쓸 수가 없는 상태인 셈이지만, 아마 게임이니까 일꾼 몇이 붙으면 다시 고칠 수 있을 거다.
지금 기병들을 물리치기만 한다면 말이다.
척.
아몬드는 창 하나를 어깨에 둘러 쥔 후.
호흡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내뱉으며 힘껏 던졌다.
“후우!”
후우웅!
창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았다.
제시는 옆에서 ‘이걸 정말 하네……’라는 눈으로 지켜볼 뿐 큰 감흥은 없는 듯했는데.
──퍼억!
날아간 창이 한 기병의 목에 꽂혀 버린 순간.
“!?”
그녀의 눈이 놀라움에 번쩍 떠졌다.
목에 창이 꽂힌 기병은 마치 원래 죽어 있던 사람마냥 스르르 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쿵.
[기병 처치 +1]
아몬드의 시야에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죽은 것이다.
“……오.”
아몬드는 이게 되긴 하네, 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다음 창을 들어 올렸다.
“오? 끝이야? 이, 이건 무슨…….”
그 태연한 반응에 제시가 어이없어했다.
“바, 방금 한 방에 최대 5골드짜리 기병을 죽인 거라고!? 어떻게 한 거야?!”
“……왜 그래? 미리 말해줬었잖아. 어떻게 할지.”
아몬드는 의아한 눈으로 그녀에게 대꾸했다.
분명 아까 전에 수풀에 숨어서 창을 던져 기병을 최대한 죽인다고, 다 설명했기 때문이다.
왜 놀라는 건지.
“그야! 그걸 누가 진짜 할 거라고 생각해! 멀리서 창을 던져서 풀무장 기병을 잡는다니!”
창병은 기병에게 보너스 대미지가 있어서, 장비 차이가 아무리 많이 나도 목 부위를 맞히기만 한다면 즉사 판정을 받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런데 이 거리에서, 이런 창으로 죽이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이런 플레이가 된다면, 아무도 고급 기병을 안 뽑을 거다. 1골드 창병으로 5골드 투자한 기병을 잡을 수 있는데. 누가 뽑나.
그만큼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신 들린 정확도와 힘 배분, 그리고 운까지 합쳐져야 나오는 결과다.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런 주제에 아몬드는 왜 안 될 거라고 생각했냐고 묻는다. 표정을 보니 자기 실력을 얕잡아본 걸 아쉬워하는 것 같기까지 했다.
‘왜 섭섭해하는데?’
제시는 어이가 없어 반박한다.
“당연하지! 다른 창병들이 그런 거 시도 안 해본 줄 알아!? 이런 게 되면 경제 파괴라고!”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가격 차이라는 게 있고, 그녀도 경험해 본 바가 있었을 테니까.
아몬드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뭐야. 그럼…….’
다만 그러면 아몬드는 이런 의문이 생긴다.
“……그럼 왜 따라왔는데?”
실패할 거 같은 작전에 왜 따라왔는지.
이에 제시는 왜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냥 네가 귀엽게 생겨서.”
“?”
순간, 채팅창이 폭발하듯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