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69화
25. 특수 임무(3)
시빌 엠파이어에서 방어 건물들은 대체로 보병에 비해 압도적이다.
공성 병기가 나오기 전까진 보병들이 이 방어탑을 부술 방법은 전무했다.
그렇기에 피해가거나 운이 좋게 적의 화살이 빗나가길 비는 게 최선이다.
다행히 눈앞에 있는 목재 방어탑은 가장 기초적인 것이고. 공격은 안에 들어가 보초를 서는 궁수가 활을 쏘는 게 전부다.
물론 그마저도 일개 보병에겐 치명적이긴 했다. 일방적인 공격을 계속 맞아야 하니까.
그런데─
“……저 안으로 가자고?”
“응.”
그런 방어탑을 몰래 피해 가도 모자랄 판에 안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 활과 화살만 있다면 누구든 죽일 수 있어!
-선수입장~ 게임 오버!
-겜 끝이누ㅋㅋㅋ
시청자들은 대번에 아몬드의 의도를 눈치채고 좋아라 했으나.
제시는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왜인지 물어봐도 될까?”
“안에 활이 있을 거 아냐.”
“단지 그거 때문에?”
단지 그것이라…….
제시 입장에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아몬드가 활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모르니까.
‘음.’
아몬드는 이거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했으나. 그냥 그만두었다.
대신 그는 진심을 담아 또박또박 분명하게 전했다.
“그것만 얻으면 잘될 거야.”
그녀는 아몬드의 눈을 빤히 들여다봤다.
올곧은 그의 눈빛 깊숙한 곳에 단단히 자리 잡은 자신감.
내일도 해가 뜬다는 것처럼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표정.
‘앞서 보여준 게 있으니. 믿어볼까?’
조금 독특한 사람 같긴 하지만, 분명 능력은 있다.
앞서서도 창을 던져 기사 넷을 잡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
‘귀엽잖아!’
귀엽게 생겼다.
“뭐…… 좋아! 알아서 해. 따라갈게.”
“오케이.”
아몬드가 앞장서고 제시가 뒤따라왔다.
그들은 방패를 들어 올린 후, 최대한 수풀에 숨어 보이지 않게 기어서 방어탑으로 접근했다.
혹여나 들킬까 최대한 천천히, 조심히. 한참을 기어갔다.
스스스슥.
수풀 스치는 소리가 유달리 크게 느껴진다.
-ㄷㄷ
-왜 안 쏘지?
-안 보임?
아직 적이 이쪽을 못 본 건지. 수풀 안으로 기어가는 게 효과가 있었는지, 화살이 날아오지 않고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반응도 오지 않는다.
그래도 아몬드는 일단 기어갔다.
잠시 후. 제시가 뒤쪽에서 의미심장하게 말을 꺼냈다.
“이거 인종 차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
“보통 동양인은 머리가 좋던데 말이야. 우리 학교 상위권은 다 중국인이랑 한국인이었거든.”
“맞아. 동양인 머리 좋지.”
아몬드는 마치 자긴 동양인이 아니라는 듯 대충 대답하며 계속 기었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적의 반응이 없었다.
그는 이상하여 방패 사이로 힐끔 위를 바라본다.
‘없나?’
방어탑을 본 후, 그는 아차 싶었다.
‘이런.’
그제야 왜 제시가 동양인 머리 어쩌고 했는지 깨달았다. 뒤돌아보니 제시는 이미 방패를 거두고 일어서 있었다.
아몬드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없었구나.”
-헐ㅋㅋ
-개꿀잼 몰카 ㄷㄷ
-쉐도우 복싱이었네
방어탑엔 아무도 없었다.
궁수가 배치되어 있지 않은 방어탑은 그냥 시야나 밝혀주는 감시탑에 불과했다.
그러니 이렇게 접근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푸핫!
그녀는 아몬드의 반응이 재밌어 죽겠다는 듯 웃었다.
“너 되게 잘 기어간다.”
-ㅋㅋㅋㅋㅋㅋㅋ맵다 매워
-쌤통이다 견과류쉑ㅋㅋㅋㅋ
-엌ㅋㅋㅋ
아몬드는 머쓱하여 무릎을 털고 일어섰다.
적 방어탑에 아무도 들어 있지 않았다니. 그렇다면 궁수도 없다는 뜻인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던 중.
[왜 거기로 갔어? 얼른! 저기로 돌아가!]
지휘관의 재촉이 들려왔다.
그는 방어탑 근처에 너무 가까이 붙은 둘을 보고 놀랐던 모양이다.
다른 길로 가라며 핑을 찍어준다.
‘어차피 안에 활은 없으니. 가야겠지.’
이미 방어탑 안에 활이 없을 걸 확인한 둘은 별말 없이 지휘관이 안내하는 루트로 다시 복귀했다.
* * *
스르륵.
우거진 나무들을 겨우 해치고 가자, 드디어 지휘관이 종착지로 표시한 곳까지 닿았다.
“……여기가 끝인데.”
“어두워. 하나도 안 보여.”
그 자리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거진 숲인 것도 그렇고. 지금 해가 떨어져 이미 밤이 되어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잘 안 보이는데, 숲 안은 더 컴컴한 칠흑이다.
“하아. 진짜 아무것도 안 보이네.”
노련할 터인 제시가 연달아 불평한다. 그 정도로 어둡다.
“어디야?”
“여기.”
“손 좀. 안 보여.”
“잡아.”
둘은 시각을 포기하고 촉각이나 청각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엇 이게 무슨 상황?
-캄캄한 곳에서 단둘이 손을……?
-어허!
-레이나: 아몬드. 쟤 누구야?
-호두 칼춤 춘다! 숙여!
사실 이런 어두운 밤에 도착하는 건 지휘관 이밥만이 의도한 바였다.
그 의도라는 게 제시와 아몬드의 연애전선을 불태워보겠다는 건 당연히 아니고.
소위 ‘시야 컨트롤’ 때문이다.
[적 일꾼들이 나무를 캐는 곳은 불이 켜져 있다. 우리 쪽은 안 보이니까. 시야 잘 활용해서 창을 던져]
적의 일꾼들은 일을 해야 하니, 반드시 불을 밝혀놓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이쪽은 불을 지피지 않고, 어두운 숲에 머문다면?
적은 우리를 못 보고 우리는 적이 훤히 보이는 상황이 나온다.
이게 지휘관들이 자주 활용하는 시야 컨트롤의 한 예다.
-시야컨 디테일 ㄷㄷ
-ㄹㅇ 전쟁 같다
-밥만아. 넌 다 계획이 있구나?
-지휘관 좀 치는데?
적은 숫자로 많은 적을 상대하려면 이런 디테일한 계책은 필수다.
다만, 아무리 지휘관이 전략을 잘 짜더라도 실제 작전에서 효용성이 있느냐는 다른 문제.
만약 적 일꾼들이 횃불을 지피고 있지 않다면? 다른 곳으로 나무 일터를 옮겨놨다면?
그럼 모든 게 허투루 돌아간다.
그러나 하늘은 그렇게 매정하지 않았다.
제시가 옆에서 툭 치며 어딘가를 가리킨다.
“저긴가 봐.”
시커먼 어둠 사이, 부드럽게 밝혀져 있는 주홍색 불빛.
[목재 캠프]
적의 일꾼들이 목재를 캐고 저장하는 목재 캠프다.
조심스레 기어서 다가가니 일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아!”
“……아으!……하아!”
퉁! 투웅!
수많은 일꾼들이 기합 소리와 함께 나무를 베어내고 있었다.
끼익……!
쿵!
꺾여 쓰러진 나무들은 이내, 말끔히 다듬어진 목재로 변하고. 이 목재들은 전부 목재 캠프로 간다.
옆에서 제시가 속삭였다.
“목재 캠프 규모가 상당히 큰데? 제대로 온 거 같아.”
소규모 캠프인 경우도 있는데.
이밥만의 정찰이 꽤 정확했는지, 대량으로 채취하는 캠프로 잘 찾아왔다.
여기를 박살 내면 적은 목재 생산량을 상당량 잃어버릴 것이다.
목재는 건물이나 공성 무기를 제조할 때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니.
당장의 전투에선 상관없을지라도 전쟁의 큰 그림에서 밀리게 될 터다.
“시작하자.”
“응.”
아몬드와 제시는 들고 온 창을 바닥에 전부 내려놓았다. 둘은 그중에 창을 하나씩 골라잡았다.
“흡!”
아몬드가 먼저 던지고, 제시가 곧바로 따라 던졌다.
“하압!”
푸욱!
퍼억!
기사들과는 다르게, 일꾼들은 맨몸이나 다름없었기에, 제대로 급소 쪽에 박히기만 하면 그대로 쓰러졌다.
아몬드가 던진 창은 일꾼 하나의 숨통을 깔끔하게 끊어냈고.
그는 비명도 못 지르고, 목재를 엎으며 쓰러졌다.
-나이샤!
-크! 1골드!
-된다! 된다아아!
그러나, 이런 어둠 속에서 이런 장거리에서 창을 던져 급소를 맞히는 건 아몬드나 가능한 것이고.
“엇.”
제시가 던진 창은 적의 다리 부근을 애매하게 맞혀 버렸다.
“끄아악!”
부상당한 일꾼이 비명을 질렀다.
-ㄷㄷ
-ㅈ됐다
-헐
-다쳐도 일은 계속하넼ㅋㅋ
-망한 거?
즉사시키면 이런 사태가 없었을 텐데. 후회하긴 늦었다.
비명은 이미 울려 퍼졌다.
아몬드는 다시 어둠 속으로 숨어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했는데.
“계속 던져!”
제시가 외쳤다.
“비명 질러도 바로 안 들켜! 지휘관이 그걸 알아채야 들켜! 그러니까 한 번 정도는 괜찮아! 얘넨 NPC거든!”
“아.”
아몬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창 하나를 다시 집어 들어 던졌다.
후웅!
‘하나.’
푸욱!
곧게 날아간 창이 일꾼의 목덜미를 뚫고 지나갔다.
그것을 미처 눈으로 보기도 전에 아몬드는 이미 다음 창을 집어 들고 던졌다.
‘두울.’
푹!
또 명중.
조준이랄 것도 없었다.
‘정해진 대로 움직이니까.’
투창이 활보다 맞히기 힘들다지만, 아몬드의 VNS 수치와 일꾼들의 정해진 동선이라는 조건이 맞물려, 100%의 정확도를 선사했다.
푹!
‘셋.’
또 쓰러지는 일꾼.
일꾼들은 저들의 동료가 쓰러지는데도 마치 보이지 않는 듯 아랑곳 않고 계속 목재를 날랐다.
제시의 말대로 지휘관이 반응하지 않으면 일꾼들은 그저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와 벌써 셋
-걍 빗나가질 않네
-ㄷㄷㄷ
-근데 제시는 뭐 하누?ㅋㅋㅋ
-제시니뮤ㅠㅠ
아몬드가 일꾼을 셋을 죽이는 사이. 제시는 아까 부상입힌 일꾼을 마저 잡는 것에 그쳤다.
“아…… 잘 안 되네.”
무려 창 3개를 던져 일꾼 하나를 잡은 거다.
창이 아까울 지경이다.
그녀는 작전을 바꾸는 게 낫다 생각했다.
“이, 이거 다 너가 던져! 난 호위할게!”
-ㅋㅋㅋㅋ제시니뮤ㅠㅠ
-눈치 빠른 제시
-진작 이랬어야 함ㅋㅋㅋ
제시는 방패와 창을 들고 아몬드 주변을 지키기로 한다.
* * *
그 시각, 이밥만.
그는 제시와 아몬드를 보고 있지 못했다.
피잉! 피이잉!
그에겐 계속 이런 경고문이 뜨고 있기 때문이다.
[아군 기지가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기마대가 본진을 뚫고 들어오고 있다.
‘궁병 견제 겨우 처리했더니…….’
다행인 건 일꾼을 죽이던 적 궁수들을 다 처리했다는 건데.
이 기마대는 아까의 궁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화력이다.
막을 수 있을까?
글쎄.
판단하기 힘들었다.
다만 희망은 있다.
시빌 엠파이어는 막는 사람이 훨씬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일꾼들을 특정 건물 안에 넣으면 일꾼들이 모두 궁수로 변하여 활을 쏜다.
일꾼 보호도 되는 동시에 일꾼을 병력처럼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방어하는 쪽이 훨씬 유리한 건 맞았다.
문제는 그사이에 자원을 채취하지 못한다는 것.
비유하자면 아성 반도체 연구원들이 연구실에서 다 튀어나와 갑자기 영업을 뛰는 상황이다.
당장 판매 수는 올라갈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반도체의 퀄리티는 경쟁사에게 따라잡힐 터다.
시빌 엠파이어도 마찬가지다.
당장 막아내더라도 자원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하고, 그게 문명 발전 속도 차이로 이어진다.
‘그럼 끝이야.’
그렇게 되면 기마대의 공격을 막는다고 해도 희망이 있을지 어떨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밥만도 전혀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까 특수 임무가 잘 풀린다면…….’
시빌 엠파이어에서뿐 아니라 거의 모든 RTS 게임에서 불리한 쪽이 역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 일꾼을 죽이는 것이다.
아까 보낸 두 창병의 활약이 중요했다.
지금 전황으로 봐선 한두 명으로는 안되고, 욕심을 부리자면 10명, 최소 7명 이상은 잡아야 할 것이다.
‘잘돼야 하는데.’
그들이 성공한다면 전황은 훨씬 더 나아질 거다.
그러나 확률은 낮다.
‘잘하고 있나?’
그는 잠시 틈이 생기자, 두 창병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다못해 일꾼 한둘이라도 잡기를 바라며.
그런데 그곳의 전황을 본 순간.
이밥만은 육성으로 외쳤다.
“미친. 이게 뭐야.”
이들은 이미 15명의 일꾼을 학살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