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76화
28. 증명(1)
-OMG Hawk Eye just lost his job lol
└he already did years ago……
└rofl
“호크아이가 방금 직업을 잃었네. 이미 잃은 지 오래야…… 웃겨 죽겠다.”
주혁이 무미건조한 어투로 댓글을 번역해 주고 있다.
상현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물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영어야 상현도 거의 다 알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주혁을 통해서 듣는 거니까.
-whaaat??
-what kinda program is that? any guess?
└nothing……
└I havent seen anything can perform like that
“대체 뭔 프로그램인데? 생각나는 거 있냐? 없음…… 저렇게 되는 건 본 적이 없어…….”
주혁은 안경을 고쳐 올리며 총평을 덧붙인다.
“일단 핵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는 반응인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제목을 이런 식으로 올렸으니…….”
“아…….”
상현의 표정이 멍해졌다.
전부 핵이라고 생각한다니.
“칭찬도 있어.”
“칭찬?”
혹시 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걸까?
주혁은 그래도 스크롤을 내리며 최대한 번역해 본다.
-Since when Chinese guy look so cute?
└I think he is Korean…….
“대체 언제부터 중국인 남자가 이렇게 귀여웠냐. 쟤 한국인이다…… 뭐 이런 거.”
“…….”
현재로서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반응이었다.
‘관심을 받는 건 좋지만…….’
핵쟁이라고 오인을 받는 건 플레이어로서 큰 영광이다.
그가 핵쟁이가 아니라고 밝혀졌다는 전제하에.
상현은 허탈한 숨을 뱉었다.
‘잘 될까. 그게?’
배틀 라지 때의 그 억울한 계정 정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옛날 핵이 판치던 시절 자신이 억울하다 주장하던 여러 스트리머들이 있었는데.
그땐 별생각 없었던 상현은 이제 보니 그들이 정말로 억울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든다.
“표정이 왜 그래? 이거 잘하면 우리 채널 또 한 번 크게 도약할 수 있어. 릴 난트전 이후로는 큰 성장은 없었거든.”
주혁은 역시 이게 기회라고 생각하는지. 기분이 좋아 보인다.
“근데 배틀 라지 때처럼 또 갑자기 계정 정지되고 이러는 게. 조금 피곤할 거 같아서.”
상현의 걱정에 주혁은 손사래를 쳤다.
“에이. 배틀 라지 때는 사고였고. 겨우 한 번 신고로 정지는 안 들어가겠지. 근데…….”
주혁은 댓글 반응을 쭉 살폈다.
“심한 말이 나온 걸 안 읽어서 그런데. 핵쟁이들이 한동안 꽤 이슈였는지 그걸 욕하는 사람이 많네. 물론 이 영상 댓글의 경우엔 그게 너지.”
“그렇구나.”
뭐, 욕하는 거야 상현은 딱히 개의치 않았다. 생판 모르는 지구 반대편 사람들이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로 욕을 하는 게 크게 와닿진 않았다.
그냥 정지만 안 당하길 바랄 뿐이다.
“근데 요즘 게임들은 핵 같은 프로그램에 면역이 있다던데. 이건 아닌가 보다.”
상현의 이런 질문에, 주혁은 나무위키에서 한 구절을 보며 읊었다.
“국가 대항전 팀전 기준 최대 1,200명이 맞붙어야 하는 pvp 게임이라, 거의 모든 성능을 최적화에 몰빵했다. 그로 인해 각종 잡스러운 버그나 불법 프로그램 등을 잡아내지 못한다. 사실 규모를 생각해 봤을 때 치명적인 버그를 막아내는 게 용할 정도…….”
그렇다.
고성능 게임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릴만 해도 최대 10명이서 싸우는데.
시빌엠은 팀전으로 가게 되면 이론상 무려 1,200명이 한 전장에서 싸울 수도 있었다.
그들은 이 무지막지한 데이터에 대한 최적화 및 버그 관리에만 온 인력을 투입해야 했다.
거기에 불법 프로그램까지 잡아내 달라고 하는 건 어찌 보면 욕심이다.
“뭐…… 그래도 발견할 때마다 잡고 있긴 하고. 게임이 무너질 정도로 엄청난 핵이 등장한 적은 없대. 캡슐 기반 게임이 워낙 그런 거 만드는 게 어렵다네.”
주혁은 그 외에도 잡다한 이야기들을 더 읽어줬다.
어떤 나라 기업의 스폰이 많이 붙어서 문명 밸런스가 그쪽으로 맞춰지는 경우도 있었다던가…… 하는 구설수 같은 것들.
“이야. 이 시빌 엠파이어가 인기 많은 나라에선 국가 대항전 몇 달 전부터 그 나라 기업들이 광고를 주면서 은근히 압박을 넣는가 봐.”
그렇구나. 신기한 느낌이다.
‘근데 지금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네.’
뭐가 어찌 됐든 현재 ‘기본전’만 플레이하고 있는 상현의 입장에선 문명 간의 밸런스라든가 국가 대항전 같은 건 너무 먼 나라 이야기다.
“그래. 고맙다. 잠이나 자자. 이제.”
자려다가 일어나서인지 상당히 졸립다.
그는 이만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워버리고 내일을 위해 잠에 든다.
* * *
다음 날.
주혁, 상현, 지아 셋은 대형 창고형 마트로 향했다.
팬미팅을 위해 이것저것 미리 준비할 게 있었기 때문이다.
운전은 당연히 주혁의 몫이었고.
조수석엔 지아가 뒷좌석엔 상현이 앉았다.
“아. 그런데, 아몬드.”
조수석의 지아가 백미러를 보며 말을 걸었다.
“내가 오는 길에 업로드한 영상 확인했는데. 누가 이상한 댓글 달았던데?”
“댓글?”
무슨 댓글이길래.
띠링.
그녀가 메시지로 링크를 띄워줬다.
[지아: (링크)]
[지아: 이거야]
들어가 보니 아몬드의 올튜브 영상 중 하나였다.
업로드 시간은 약 두어 시간 전.
[아,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
이런 알 수 없는 제목의 영상이었는데.
아몬드가 활을 잡고 나서 기마병들을 학살해 버리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쇼츠잖아?”
1분 이내의 짧은 영상이었다.
“응. 요즘 내가 하고 있는 프로세스. 일단 1분 쇼츠로 다 뿌리고, 여기서 반응이 좋으면 그거 위주로 편집해서 20분 30분짜리 만드는 거지.”
“아…….”
왜 시빌 엠파이어 영상이 벌써 올라가나 했더니, 1분짜리라서 가능했던 모양이다.
“여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댓글 봐봐.”
어떤 댓글을 보라고 하는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베스트 댓글이었다.
-아아몬드님. 저희는 시빌엠의 관리자입니다. 당신의 플레이는 믿을 수 없게 멋지군요. 어쩌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
이런 어색한 말투의 댓글이었는데.
그 밑으로는 이미 수많은 대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ㅁㅊㅋㅋ 찐이야?
└찐이다 올려
└아아몬드 ㅇㅈㄹ ㅋㅋㅋㅋㅋ 개웃기넼ㅋㅋㅋ
└아니 왜 또 신고먹었냐고 ㅋㅋㅋ
└아아가는 그런거 몰라! 응애! 그냥 게임 하게 해줘!
.
.
.
“연락해 봐야겠지?”
상현이 운전하고 있는 주혁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음. 그렇지. 근데…… 일단 오늘 끝나고 생각해 보자.”
잠시 후 그들은 창고형 대형마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 * *
주차장에서 마트로 올라가는 길.
누군가 다가와 묻는다.
“안녕하세요. 아몬드 님 맞으시죠?”
상현은 처음엔 그의 팬이 얼굴을 알아본 줄로만 알았는데. 주혁이 휙 나가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아. 맞습니다. 오래 기다리셨겠습니다. 차가 조금 막혀서…… 저는 매니저 김주혁입니다.”
“아니요. 저도 방금 왔어요. 플래너 정호윤입니다.”
플래너?
지아와 상현은 서로 얼굴만 멀뚱히 쳐다본다.
자신을 플래너라고 소개한 그는 지아와 상현에게도 명함을 내민다.
“파티플래너이자, 공간 연출가인 정호윤이라고합니다. 장 피디님 소개로 왔어요.”
장 피디?
상현은 순간 그게 누군가 고민했다가 깨닫고는 깜짝 놀란다.
이브닝 와이드 때 메인 피디 아니던가?
“아. 내가 부탁드렸어. 이런 사람 알 만한 분이 누굴까 하다가 장 피디님이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달라고 하셔서.”
“아…….”
그제야 상현은 상대의 인상을 조금 살핀다.
정호윤은 서글서글하고 어딘가 섬세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같이 일하기 편한 타입이다.
“가실까요?”
정호윤은 주혁과 함께 앞장섰다.
마트로 들어가고 나서부턴, 지아와 상현은 할 게 별로 없었다.
둘이서 알아서 파티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둘 카트에 옮겨 담았다.
“이 풍선에 줄무늬를 그려서 말씀하셨던 아몬드 모양으로 만들 수 있어요. 요즘 풍선 중에 이렇게 럭비공 모양으로 나오는 게 있거든요.”
“오! 좋아 보입니다. 마침 갈색이 있네요?”
“네. 넷이서 굵은 매직으로 그리면 아마 금세 할 겁니다. 이런 파티는 또 손수 만든 맛이 있어야 따뜻해 보이거든요.”
“아하하. 그렇죠.”
지아와 상현은 그저 뒤에서 먹을 거나 잘 고르면 되는 상황이다.
마치 부모님 장 보는 걸 따라 나온 아이들 꼴이 된 셈이다.
“우린 먹을 거나 고르자. 아몬드.”
“그래. 난 저거.”
“헐…… 스카치 캔디 아몬드…….”
“왜?”
“아냐…….”
지아는 못말린다는 듯 피식 웃으며 그걸 집어 들었다.
* * *
오후 2시.
후계동의 집엔 상현 혼자였다.
마트에서 장 보기는 12시 전에 끝났지만, 주혁과 지아는 플래너와 더 준비할 게 있어서 아직 카페에서 회의 중이고, 상현은 방송을 위해서 집에 먼저 온 것이다.
그는 평소 주혁이 앉던 컴퓨터 책상 의자에 앉더니. 머리를 뒤로 휙 젖히고는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간만이네에…… 혼자느으은…….”
혼자 남은 집이 어딘가 허한 기분이 드는 모양이다.
“둘은 준비할 게 많으니까아…… 아.”
상현은 뭔가 생각난 듯, 빙글빙글 도는 것을 멈췄다.
방송을 먼저 켜려는 것일까?
“으음.”
주방으로 가서 찬장을 열더니, 아몬드를 꺼낸다.
역시, 방송을 하려는 게 아니라 아몬드를 먹을 생각이었던 거다.
아몬드를 원하는 대로 한 움큼 퍼온 후.
옆엔 우유 한 잔을 따라 컴퓨터로 다시 가져간다.
“옛날 생각나네.”
예전 주혁이 없을 땐, 이렇게 끼니를 떼우면서 혼자 풍선껌 방송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거나 해결해 보자.”
그는 방송을 보거나, 하는 대신 오늘 알게 된 문제를 해결해 보려 한다.
-아아몬드님. 저희는 시빌엠의 관리자입니다. 당신의 플레이는 믿을 수 없게 멋지군요. 어쩌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바로 이 댓글.
“근데 왜 하필 내 올튜브에 댓글을 달았지.”
보통은 개인 메시지로 보낼 텐데. 이상하게 이놈들은 올튜브까지 찾아와서 댓글을 남겼다. 일을 잘한다고 해야 할지, 못한다고 해야 할지…….
혹시나 해서 메일로 들어가 본 상현.
“아. 보냈었구나.”
이미 관리자 쪽에서 메일을 보냈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 대체로 메일 확인을 거의 안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미리 연락을 넣으려 했던 것 같다.
“게임 내 메시지도 와 있었네.”
굳이 댓글 링크를 탈 것도 없이 게임 내 메시지에서 [상담하기]를 클릭해 보니 곧바로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배정받은 담당자 유혜원이라고 합니다. 핵 사용자로 지금 신고가 들어와 있는 ‘아아몬드’ 유저님 맞으시죠?]
실시간인 모양이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핵 안 썼습니다. 어떻게 쓰는지도 몰라요.]
상현은 우선 자신의 결백부터 주장했다.
[예. 유저님. 하지만 본사에서 모니터링했을 때 유저님의 움직임이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판명이 나서요.]
이게 무슨 소리야. 상현은 당황했다.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핵이라고 생각할 줄은 몰랐다.
“내가 잘하긴 하지…….”
동시에 자신의 뛰어난 실력에 감탄하는 것도 잊지 않는 아몬드.
하나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게임을 정지당하면 무용지물이다.
그는 다시 한번 결백을 주장했다.
[확인해 보시면 아실 텐데 그런 프로그램 쓴 적이 없습니다. 그냥 제가 게임을 너무 잘해서 그런 건데요.]
여기까지만 해도 솔직히 별로 걱정 안 했다. 정지당할 리가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일한 생각이 아니다. 당연한 생각이다.
그야, 핵을 안 썼으니까!
[아 네^^ 저희도 유저님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현재 유저님께서는 불법 프로그램 사용자 신고가 총 23건 들어와 계셔서, 저희로서는 반드시 확인 절차를 거쳐야만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23건?
도대체가…….
‘그 영상 때문인가?’
그 영상 하나 때문에 굳이 생판 모르는 사람을 신고하는 사람들은 제정신일까? 조금 어이가 없었다.
[아, 네. 어떻게 확인하나요?]
[일단 저희 옵저버가 고객님의 접속 시간에 일대일로 화면을 공유하여 관전합니다. 이에 동의해 주셔야해요.]
‘관전을 한다고?’
좋게 말하면 아날로그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무식한 방법.
최신 기술력의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쓸 법한 방법은 아니었다.
상현은 그제야 오늘 주혁이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모든 성능을 최적화에 몰빵했다. 그로 인해 각종 잡스러운 버그나 불법 프로그램 등을 잡아내지 못한……」
아무래도 이 사람들은 정말로 핵을 원격에서 잡아낼 기술력이 없는가 보다.
상현은 별수 없이 동의했다.
[동의 감사합니다. 앞으로 옵저버는 3번의 게임을 관전할 예정입니다. 아아몬드 님의 캡슐과 화면이 공유된 상태로요. 정확한 판정은 그 이후에 내려지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뭔가 상당히 억울한 기분이다.
그러나, 그도 이젠 스트리머.
찰칵.
[스크린샷을 저장했습니다.]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대화 내용을 전부 캡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상현: 지아야. 이거 봐봐.]
그리고 그걸 편집자에게 보내고 있다.
아마 꽤 많은 관심이 모아질 거다.
[지아: 짜릿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