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80화
29. 이게 조선의 활이다(2)
보글보글.
옵저버는 끓는 물을 컵라면에 부었다.
분명 물을 끓이기 시작할 때 아아몬드의 두 번째 게임이 같이 시작했던 것 같은데. 라면이 채 익기도 전에 두 번째 게임이 끝났다.
“허. 이거 참. 스게임이네. 육개장보다 빨리 끝나다니.”
후루룹.
드디어 익은 컵라면을 먹으며 옵저버는 중얼거렸다.
“이게 되려나.”
첫 번째 게임은 애매한 수준이었다면 두 번째 게임은 그냥 망한 판이었다.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었을뿐더러, 결과적으로 패배하기까지 했다.
이제 증명할 기회는 딱 한 판이고, 사실상 그 한 판으로 핵쟁이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그럴 리가 없다.
‘끝났다고 본다.’
사람이라는 건 궁지에 몰리면 제 실력이 더 나오지 않는 법이다.
앞의 두 기회를 허무하게 날린 지금, 저 스트리머는 심리적으로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을 것이다.
설사 그가 진짜 실력자라고 해도, 마지막 남은 한 판에 그 실력을 온전히 다 보여준다는 건 무리다.
실력과는 별개의 문제다.
플레이어가 어찌 됐든 사람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
이런 상황에서 해낼 수 있는 인간은 매우 소수이며 그런 자들을 우리는 스타라고 부른다.
빛이 나는 존재들.
옵저버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런 사람이 흔할 리가 없지.
“운이 좋네.”
운이 나쁘다가 아니라, 좋다고 말하는 옵저버.
아아몬드 입장에서는 운이 나쁜 거지만, 그의 입장에선 좋은게 맞다.
“어찌 됐든 실적이 쌓이겠어.”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옵저버들은 핵 유저를 잡아내는 쪽을 더 좋아라 한다.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은가? 실적에 핵 유저를 하나도 못 잡았다고 보고할 바에야, 핵 유저를 몇 명 검거했다고 써놓는 게 훨씬 더 보기 좋을 것이다. 그런 단순한 이유다.
이런 심플한 논리로, 옵저버들은 기왕이면 유저들이 핵을 사용했기를 바란다.
“자~ 빨리빨리 들어가자. 왜 계속 제안을 거절하는 거야?”
후르릅.
옵저버는 라면을 한 젓가락 더 뜨며 아아몬드를 재촉한다.
아아몬드는 여태껏 그냥 오는 대로 들어가더니, 이번엔 신중하게 의뢰를 걸러내고 있었다.
* * *
‘잘 골라야 된다.’
아몬드는 간만에 정말 신중하게 뭔가를 고민 중이다.
‘마지막 기회야.’
마지막 기회를 앞두고, 함부로 기분따라 선택을 할 수는 없다.
‘게다가 50골드나 썼잖아.’
심지어 이번에 투자한 돈도 있으니. 절대로 유야무야 아무거나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일단 궁병으로만 골라 볼게요.”
-굳
-잘생각하셨음
-진작 이러지 ㅠ
창병은 창을 들고 입장하고, 궁병은 활을 들고 입장한다.
그간은 그냥 들어가서 줍지 뭐, 라는 생각으로 임했다면.
이번엔 50골드짜리 활을 들고 왔으니 반드시 궁병으로 들어갈 생각이다.
조금 기다리자 궁병을 찾는 의뢰도 꽤 많이 도착했다.
띠링.
띠링.
분명 전부 궁병을 모집하는 의뢰였는데.
그는 전부 거절했다.
-???
-왜 거절?
-뭐야
그것들 중에선 용병들 사이에서 ‘꽁승’이라고 불리는 의뢰서들도 있었다.
고르기만 하면 돈과 랭크가 오르는 그런 것들인데.
“허얼! 아아몬드 님? 저걸 넘기신다구요!? 대체 뭘 찾고 계신 거예요!?”
옆에선 따앙코옹이 대체 왜 게임을 진행하지 않는 거냐 재촉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의 입장에선 돈과 랭크 포인트 복사 버튼이 있는데, 누르지 않고 있는 걸로 보일 터다.
하지만 아몬드의 목적은 현재 단순한 ‘상승’이 아니다.
주식으로 따지자면, 단순히 주식으로 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그래프를 그리겠다고 기다리는 것이다.
이 얼마나 미친 짓인가?
‘완벽하게 활약할 수 있는 장이 와야 된다.’
그냥 돈 버는 것도 어려운 마당에 그래프의 모양까지 제 맘에 들어야 한다니.
애석하게도 그게 아몬드가 지금 처한 상황이다.
아군이 유리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비등한 것도 안 된다. 아몬드가 각궁을 들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유리해질 테니까.
그렇다고 ‘매우 불리’는 곤란하다. 시작도 못 해보고 이미 게임이 터지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니.
가장 좋은 건 ‘불리’이다.
띠링!
[지휘관 ‘Kimchi Warrior’ 님이 지원을 요청합니다!]
==== ====
의뢰비: 3 골드
성공 보수: 일꾼 하나당 2골드
병과: 궁병
전황: 적과의 방어선 대치 중. 성벽 위에서 수성으로 활약하길 요망(불리)
==== ====
-오 약간 불리!
-ㅅㅂ 드디어!?
-왔다!
기다리던 전황이 왔다.
매우 불리가 아닌 그냥 불리.
이 정도는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격차다.
‘그렇다고 해도…….’
한데 아몬드는 선뜻 고르지 못했다.
-수성전인데 일꾼 하나당 1골드 ㅇㅈㄹㅋㅋ
-이걸로도 지휘관 인격이 보이네
-ㅅㅂ ㅋㅋㅋ 이걸 속여?
분명 기다리던 의뢰서이긴 했다만 이상한 점이 있다.
바로 일꾼 두당 2골드라고 적혀 있는 성공 보수.
‘수성전인데 일꾼이 성공 보수라니. 어쩐지 너무 높다 했어.’
수성 상황이면 일꾼이라고는 머리카락도 보지 못할 텐데.
거창하게 일꾼 하나당 2골드를 걸어놓은 문구를 보라.
너무 속이 보인다.
일단 정상적인 지휘관은 아닐 것이다.
‘이름도 김치워리어. 한국인인가?’
아이디도 뭔가 정상이 아니다.
‘넘어갈까…….’
고민이 된다.
만약 거절하면 의뢰를 기다리는 데 몇 분이나 소요될지 모른다.
몇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옵저버도 업무 시간이 있으니 24시간 붙어주진 않을 거다.
“그냥 가겠습니다. 어차피 성공 보수 보고 고르는 것도 아닌데.”
그는 아까 들어왔던 의뢰를 수락하기로 한다.
* * *
드디어 입장한 전장.
역시나 시작은 훈련소다.
다만 보병 훈련소가 아닌, 궁술 훈련장이었다.
물론 여기서 실제로 훈련을 한다든가 하는 일은 없다. 그냥 구색만 갖춰놨을 뿐.
설정상 이들은 이미 훈련이 다 된 병력이기 때문에 바로 실전으로 투입된다.
피잉!
지휘관의 핑이 떨어진다.
[집합]
궁병들에게 떨어진 명령이다.
그가 핑을 찍은 곳은 성벽 위.
“진짜로 수성전 하나 봐요.”
아아몬드는 수성전이 처음이었기에 조금 신기한 듯 말하며 그곳으로 달렸다.
이미 다른 궁병들도 하나둘 성벽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고.
“!”
너른 평야를 따라 지어진 궁술 훈련장이 10채가 넘어가고, 그곳에서 튀어나오는 수십의 궁병들이 달리고 있었다.
-헐 이렇게나 많이?
-ㄹㅇ 총력전인가 봐
-ㄷㄷ
병력들은 생산되는 즉시 모두 성벽을 향해 달리게끔 명령이 내려져 있는 듯했다.
아마 성벽에선 지금 적군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터.
아니나 다를까.
근처에 다다르니 함성이 들려온다.
“와아아아아아……!”
퍼엉!
함성에 뒤섞여 웬 폭약이 터지는 소리들도 들려왔다.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공성병기들이 내는 소리다.
“이제 여기로 올라가서 막으면 되나 봐요.”
아몬드는 시청자들에게 설명하며 성벽의 계단을 올랐다.
그의 앞엔 줄을 서서 올라가고 있는 궁병들이 한가득이었는데. 마치 놀이기구를 타려고 줄 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설렜다.
그러나─
“어…… 어?!”
여긴 놀이공원이 아닌 전쟁터다.
우르르르!
묵직한 진동이 느껴지더니, 하늘에서 돌무더기가 하나둘 떨어진다.
“투석기다아!”
적군의 투석기가 돌을 쏘아낸 것이다.
활과 칼로는 성벽과 건물을 무너뜨릴 수 없으니, 이런 공성전에선 ‘공성병기’를 주로 사용하는데.
공성병기로는 거대한 돌을 던지는 투석기, 커다란 쇠를 그네처럼 흔들어 문을 부숴 버리는 공성추, 성벽 위로 아군을 한 번에 실어나르는 공성차 등이 있다.
지금 마주한 건 적의 투석기다.
그것도 한 번에 여러 돌을 던지는 ‘망고넬 투석기’라는 종류다. 성벽을 부수기보다 그 위에 병력을 치우는 데 특화된 공성병기다.
쿠웅!
쿠우웅!
돌무더기들이 성벽 위로 떨어지고.
“끄아악!”
“아 씹!”
성벽 위에 올라갔던 병사들이 무슨 개미 떼처럼 튕겨 나간다.
아직 성벽에 오르지 않고 계단에 있었던 아몬드는 안심했다.
“휴…… 저는 피해갔네요.”
만약 한 템포만 먼저 올라갔으면 저기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ㅋㅋㄹㅇ
-진짜 운좋았다 와
-ㅁㅊ 개재밌엌ㅋㅋ
하나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구, 굴러떨어진다아!”
“아 빌어먹을.”
쿠르르르!
거대한 돌덩이 하나가, 성벽 계단 위쪽에서부터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망고넬 투석기가 던진 돌 중 하나가 남아서, 중력을 따라 굴러오는 거다.
줄지어 계단을 올라가던 궁병들이 비명을 질렀다.
“내려가! 내려가!”
“미친 여기서 어떻게 내려가!”
가장 앞에 있던 궁병들이 발작을 일으키며 뒷사람을 민다.
뒤쪽은 당연히 밀려봐야 또 뒤에 사람이 있으니 샌드위치 신세다.
“차라리 막아! 병신들아!”
“바위를 어떻게 막아!”
대혼란.
성벽 위로 올라가려고 섰던 줄이, 지옥행 대기줄이 되어버렸다.
퍼억……!
선두에 있던 궁병 둘이 이미 바위에 깔려 죽어버렸고. 그 바위는 피가 묻은 채로 계속 굴러오기 시작했다.
멈추기는커녕 계단의 기울기를 중력 삼아 미친 듯이 가속도가 붙었다.
계단에 있는 병사가 전부 몰살당하게 생겼다.
“아. 던져! 던져!”
“아 진짜!”
“아. 내 돈.”
궁병들 중 노련한 자들은 자기 무기를 갑자기 저 밑으로 던져버렸는데. 부활한 뒤 와서 다시 사용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만큼 현재 희망이 없는 것이다.
아몬드도 그럴까 했으나 자신의 무기를 보고 멈칫한다.
‘이걸……?’
무려 50골드짜리 조선 각궁. 아마 여기 있는 궁병들 중 그의 무기가 가장 비쌀 터다. 아몬드가 가지러 오기 전에 누군가 분명히 채갈 것이고.
‘게다가 난 죽으면 안 되잖아?’
그는 이번 판이 시험대에 오른 마지막 판이었다.
‘절대 죽으면 안 된다!’
그의 결심과는 별개로 바위는 가차 없이 굴러오며 궁병들을 묵사발 내고 있었다.
콰과과광……!
* * *
성벽에 올라타자마자 만나게 된 투석기의 바윗덩어리. 이런 경우에 일개 보병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아아몬드의 앞선 병사들이 그랬듯 그냥 다음 생을 기약하는 것이 최선이고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옵저버는 아아몬드의 행동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
그는 커다랗게 뜬 두 눈을 껌벅였다.
일단은 아몬드의 놀라운 움직임 때문이었고.
“이, 이걸 이렇게? 근데 굳이 왜…….”
둘째로는 굳이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그 대답은 화면 속의 아몬드가 들려줬다.
[와 바로 끝날 뻔했네요.]
그때 옵저버는 깨달았다.
아아몬드가 뭔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게임 안에서 죽는 걸 한 판으로 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게임 관리자가 제시한 ‘3판 안에 증명하시오’라는 말에서 3판은 지휘관의 입장에서 3판이다.
즉, 병사인 아몬드는 일단 전장에 들어간 다음부턴 몇 번을 죽어도 상관없다. 어찌 됐든 활약상만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앞선 두 전장 모두 허무하게 끝나버려서 미쳐 아몬드가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허. 참.’
옵저버는 그걸 그렇게 이해했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대체 우릴 뭘로 보고…….”
죽는 게 일상인 이 게임에서 딱 세 목숨을 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근데도 불만 한마디 없었다니. 갑자기 아아몬드라는 사람이 달라 보인다.
‘알려줘야 하나.’
그는 고민됐다. 이 사실을 아아몬드에게 알려주는 게 맞을지.
‘일단 보자.’
고민하던 그는 일단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죽으면 그때 알려줘도 늦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