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2부-93화 (373/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93화

33. 팬미팅(1)

잰슨.

배틀 라지 시절 단 한 번의 등장으로 엄청난 인상을 남긴 빌런이다.

사람들은 그를 저격러라고 기억하고 있으나, 정확히 말하면 그렇진 않다. 방송을 보면서 저격하는 게 막혀 있는 배틀 라지 시스템상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일 뿐이다.

애초에 잰슨은 아몬드를 게임에서 딱 한 번뿐이 만나지 못했기에. 저격러라고 부르기엔 한계가 있다.

딱 한 번 등장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잰슨을 기억한다. 왜일까?

아마 그가 시청자들 중엔 거의 유일하게 아몬드를 궁지로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파워슈트’라는 아이템을 얻었었는데. 이는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는 아이템이다.

얻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얻기만 하면 우승이 쉬워지는 아이템인데. 이 덕분에 아몬드와 호각으로 겨룰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수많은 저격러들 중에 그가 가장 기억에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파워슈트도 그가 아몬드를 궁지에 몰았기 때문도 아니다.

“잰──슨!!!”

바로 이 요상한 고함 소리 때문이다.

지금 팬미팅 현장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고함.

“아. 뭐야. 저 미친놈이 왜 또 소리를.”

“이야. 견과류단 진짜 어디까지 가는 거냐.”

“뭐, 뭐냐…… 여기가 넛츠펑크 세계?!”

첫 번째 도착한 팬이 저런 소리를 내고 있으니 다른 팬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그래서 스태프가 그를 제지한다.

“저. 잰슨 님. 기쁘신 건 알겠는데. 자중해 주세요.”

“아, 네…….”

잰슨은 의외로 단박에 얌전해졌으나…….

잠시 후 다시 병이 도진 거마냥 외친다.

“재, 잰──슨! 잰슨!!!”

그는 뭔가 말하고 싶은 것처럼 삿대질을 했는데.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린다.

“그냥, 말을 해 말을. 응?”

“어이쿠. 포켓몬이야 뭐야.”

그 와중에 잰슨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 몇몇 사람들이 중얼거린다.

“어…… 아몬드다.”

그 말에 그쪽을 보니 정말로 문 사이로 누군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어? 아몬드?”

“아몬드다.”

“진짜?”

긴가민가하여 잠시 웅성대던 팬들.

“잰──슨! 잰──슨!”

그들은 잰슨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치는 소리에 드디어 아몬드가 맞다는 확신을 했고.

“와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아! 아몬드다!”

폭죽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오로지 인간의 함성만으로 말이다.

지나가는 차들도 잠시 창문을 내려 무슨 일인가 살펴볼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게 잰슨의 뒤로 주루룩 줄을 선 팬들의 숫자가 상당하다.

오늘 지정석을 받은 팬미팅 참석자가 100명.

지정석을 받지 못한 팬들 중에서도 그냥 아몬드를 한번 구경하겠다고 치맥집을 둘러싼 사람들이 수십 아니, 어쩌면 이들도 백 단위.

“아몬드! 아몬드!”

“견! 견! 견!”

“오빠아! 여기 한 번만 봐줘요!”

그들은 아몬드의 팬미팅에 오지 못했음에도 혹시나 지나가는 길에라도 얼굴을 볼까 싶어 이곳으로 모여든 것이다.

아성의 사옥이 들어선 이곳은 오피스 상권의 메카이기도 하지만, 인기 데이트 장소라 그냥 지나가다 들르기에도 딱 좋다.

“와! 유상현! 유상현!”

“아몬드으!”

근처에 약속이 있었거나 이 도시에서 일하는 그의 팬들은 물론이고.

“아몬드가 누군데? 어?”

“뭐야? 사람 엄청 많아…….”

“유상현?”

그를 모르던 사람들, 심지어는 아성 다니던 유상현만 알던 사람들도 호기심에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즉, 모인 인파는 수백 명이다. 그들이 질러대는 함성이니, 폭죽 터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다.

상현은 그 함성에 깜짝 놀라 움찔거리더니.

“!”

내밀었던 고개를 도로 집어넣고 문을 닫아버린다.

쿵.

* * *

“후아.”

문 뒤에 기대어 숨을 헐떡이는 상현.

‘뭐야?’

쿵. 쿵.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왜 저리 많은 거야?

팬미팅 숫자는 사실 정해져 있었다.

이 호프집의 최대 수용 인원인 120명보다 조금 안 되는 100명이다.

그래서 아몬드는 벌써 줄을 섰다는 팬들이 아무리 많아 봐야 8~90명일 줄 알았다.

지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까보고 나니 그게 아니었다.

‘이건 생각 못 했는데.’

일단 100명 전부가 줄을 서고 있었고. 그들은 지정석이 정해진 당첨된 팬들이다.

문제는 팬미팅에 당첨이 안 됐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밖의 추운 날씨를 생각하면 여기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벌벌 떨며 고생할 게 뻔했다.

얼굴 한번 보겠다고 그 고생을 하는 것이다.

‘어떡하냐…….’

그 얼굴의 주인공인 상현. 그가 아무리 평소 뻔뻔한 편이라 해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받아주면 안 돼.”

상현이 무슨 생각하는지 뻔히 알고 있다는 듯 누군가 말한다.

“하나둘 받아주다가, 말 나오기 시작하면 도미노처럼 다 무너져.”

목소리의 주인공은 지아였다.

그녀는 상현이 갑자기 자리를 벗어나는 걸 보고는 혹시나 싶어 따라 나온 것이다.

“아…… 음. 그래.”

상현은 별 딴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백번 옳았다.

저들에게 미안하다고 뭔가를 더 하려다 보면 애써서 팬미팅에 당첨되고 오게 된 사람들을 역차별하는 결과를 낳는다.

‘별수 없긴 하지.’

유명인은 이런 무거운 마음을 짊어지고 사는구나. 상현은 다시금 스트리머로서의 삶이 마냥 쉬운 건 아님을 깨닫는다.

“저 사람들은 아몬드 얼굴만 봐도 그냥 좋은 거고. 본인들이 못 들어간다는 거 알고 선택해서 온 거야. 이미 행복할 거야.”

지아는 특유의 단호함으로 상현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니까. 자리로 돌아가. 견과류 씨.”

상현은 결국 자리로 돌아갔고. 주혁과 지아 등 일을 도우러 나와준 사람들이 이제 슬슬 지정석을 안내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

문밖에선 ‘여러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너무 소란피우시면 안 돼요!’ 등의 말로 사람들을 달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1번부터 입장이 시작됐다.

* * *

“입장하세요!”

왁자지껄, 시장바닥.

“와아아!”

이런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 아마 지금의 아몬드 팬미팅 장소일 듯했다.

“와아! 아몬드 풍선!”

“라이브로 봤던 거다!

“어떡해. 나 너무 떨려…….”

팬들은 저들끼리도 어느 정도 일면식이 있는 건지, 아몬드를 만나기 전에 서로 사진을 찍기도 했고.

“재애애애앤슨!”

“잰슨 님 나랑 사진 찍어줘!”

잰슨을 욕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잰슨의 팬들도 있었다. 그들은 사진을 찍으며 잰슨 포즈를 해 보인다.

잰슨뿐이 아니다.

“키, 킹덤좌다.”

“와씨…….”

“등빨 좃된다.”

아몬드와 지하철에서 마주친 후 올튜브에서 화제가 됐던 ‘킹~ 너네 나 못 이겨 덤~’의 주인공.

그 역시도 화제 인물이었다.

일명 ‘킹무새’ 혹은 ‘킹덤좌’를 알아보는 팬들은 그와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ㅁㅊ ㅋㅋㅋㅋ

-사람들 소리만 들려도 ㅈㄹ 웃기넼ㅋ

-견과류단 커엽네 ㅋㅋ

-저, 저 사람이 킹덤좌!? ㅇㅈㄹㅋㅋㅋ

한편 아직 아몬드는 2층 파티션 너머에 앉아, 사람들의 소리만 듣고 있을 뿐이다.

사인을 받으러 오는 팬들을 일대일로 맞이해서 대화를 한 뒤에 전부 끝나면 그때 치맥 파티를 하며 자유롭게 돌아다닐 예정이다.

“후우.”

아몬드는 아까부터 멘트도 치지 않고, 숨만 고르고 있다.

긴장되는 것이다.

그러던 중 마침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자. 아몬드는 2층에 있어요! 팬미팅 번호대로 들어갈게요!”

“잰──슨! 입장 순서로는 안 돼요!?”

“안 돼요. 잰슨! 팬미팅 번호대로예요!”

“재, 잰……슨…….”

안내자가 1번부터 10번을 먼저 호명해서 안내한다.

“자 10번까지 2층으로 가실게요~!”

우르르.

10명의 사람들이 일어나 계단으로 줄을 섰다.

잠시 후.

‘!’

1번 팬이 등장한다.

“아, 안녕하세요. 아몬드 님……!”

잰슨이나 킹덤좌 혹은 그 비슷한 우락부락한 근육맨일 줄 알았는데.

웬 여자 팬이었다. 그것도 공주 머리 같은 반곱슬을 길게 늘어뜨리고, 단정한 카디건을 입은, 단아한 인상의 여성.

‘정상인이다.’

1번치고는 조금 무난한 등장.

상현은 왠지 모르게 안도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몬드 왜 안도의 숨 쉬냐곸ㅋㅋㅋ 딱 들킴ㅋㅋ

-ㅁㅊ 정상인이네?

-1번이 가장 강한 거 아니었음? 실망ㅋ

-미친놈들 여기가 무투대회냐고 ㅋㅋㅋ

-어이어이! 견과류단! 이거밖에 안 돼!?

“여기…… 앉는 건가요?”

“네. 앉으세요.”

아몬드에겐 안도를, 시청자들에겐 실망을 안겨준 1번 팬은 조심히 상현의 앞자리에 앉았다.

‘분위기가 참.’

거리가 매우 가깝다는 걸 제외하면 한 명씩 들어오는 게 꼭 기업 면접 보는 것 같았다.

“오…… 채, 채팅창이 이렇게 보이네요?”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상현의 우측을 가리켰다.

재미를 위해서 팬미팅을 하러 온 사람들도 아몬드 방의 채팅을 볼 수 있었다. 꽤 좋은 컨텐츠 같다.

-해외 인턴은 왜 하셨어요?

-입사하고 싶은 이유가 뭔가요.

-회사에 들어온다면 어떤 역할을 원하시나요.

시청자들은 장난스럽게 그녀에게 회사 면접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ㅋㅋㅋㅋㅁㅊ 다 똑같이 생각해

-헐 이쁘시다 ㅠㅠ

-1번 받을 정도로 후원했는데 얼굴도 예쁘다고? 분명 싸이코일 거임 기다려 보셈.

푸핫.

1번 팬은 질투와 혼돈이 섞인 채팅 내용을 보더니 재차 웃어댔다.

그러던 중 상현과 눈을 마주친다.

“안녕하세요. 1번님.”

인사를 하며 손을 내민 상현. 그녀는 손을 맞잡으며 부끄러워한다.

“어, 어떡해…….”

그러면서도 환히 웃는 게 어지간히 아몬드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이는 사실 당연한 일이다. 1번 팬이니까.

-너무 좋아하시네 ㅋㅋ

-헐 찐팬인가 보다 ㅠㅠ

-개부럽 ㅠ

-지상 최악의 스트리머 아몬드……

아몬드도 팬미팅이 처음이고, 이 팬도 아몬드를 처음 보니. 잠시 서로 대화가 없는 정적이 흘렀다.

그러던 중, 그녀가 먼저 묻는다.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상현은 추측하려 눈을 마주쳤으나, 그녀는 계속 시선을 돌린다.

물론 애초에 눈을 본다고 맞힐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걸 어케 아누 ㅋㅋㅋ

-아몬드 동체 시력이면 알아야제!

-아니 뭐라도 알려주고 물어봐 ㅋㅋ

모르겠다 대답하려던 찰나.

“모르…….”

“못 맞히시면 이거…… 써주세요.”

그녀는 인생의 모든 용기를 끌어낸 듯한 어조로 상현에게 뭔가를 들이밀고 있었다.

상현은 인생 최대 시련이 닥친 것만 같은 눈으로 그것을 빤히 보고 있었고.

-ㅁㅊㅋㅋㅋㅋ

-갑자기 존나 중요해졌엌ㅋㅋㅋ

-유상현 호두 고속스핀ㅋㅋㅋ

-표정 ㅅㅂㅋㅋㅋ

‘미친. 누구지.’

당황한 것치고는, 예상보다 빠르게 상현의 입이 열렸다.

“루비소드 님?”

상현은 그냥 직감으로 던진 말이었다.

루비소드의 성별도 직업도 나이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왠지 항상 1번을 차지하고, 별다른 어그로도 없이 무난한 후원을 쏴주고, 늘 방송에 도움이 될 법한 일만 처리해 주시는 분이었으니.

뭔가 이 여자가 갖고 있는 무해한 분위기와 닮았다고 여긴 것이다.

-오. 왠지 그런 것 같아!

-설마 진짜야??

-맞힘??? ㅅㅂㅋㅋㅋ

-이왜진

-ㄹㅇ??

1번 팬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아니면 실망감에 잠시 고개를 떨군 것일까?

‘맞는 건지 아닌 건지.’

아직 대답이 없으니 알 수가 없었다.

잠시 후.

1번 팬이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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