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94화
33. 팬미팅(2)
상현은 사실 조금 당황했다.
‘어떻게 맞히지.’
1번 팬은 매우 기대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자기가 누군지 아몬드가 꼭 알아줬으면 하는 듯한.
그러나 상현이 신도 아니고, 얼굴도 목소리도 들어본 적 없이 텍스트로만 후원받아 본 사람의 정체를 맞힐 수는 없었다.
그래도 사람은 직감이란 게 있다고 했던가?
“루비소드 님?”
그 말에 고개를 든 그녀는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마, 맞히시네…… 어떻게 아셨지……?”
1번 팬은 루비소드였다.
-왜 헬창 근육남이 아님??
-아니 ㅁㅊ 진짜 존예보스 요조숙녀였다고!?
-아몬드 심장 터뜨려버린다는 마동석 어디 갔어!
-왤케 어려? ㄷㄷ
-금수저 ㄷㄷ
루비소드의 후원 금액 총합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렇다고 1등은 아니지만.
꾸준함으로 따지면 누구보다 압도적인 1등일 것이다. 아마 그 점이 팬 번호 1번을 달게 된 요인일 터.
‘나이가 어려서 헷갈렸어.’
상현은 그런 후원을 한 사람이 나이가 이렇게 어릴 거라고는 솔직히 생각 못 했다.
‘지아 같은 케이스는 아니겠지.’
설마하니 지아 같은 케이스일까 봐 걱정이 되는데. 행색만 봐도 잘사는 집 따님 같아 보이긴 한다. 아니, 그러길 빈다.
“아…… 아쉽다.”
루비소드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린다.
뭐가 아쉽다는 거지.
“이거 써주시면 좋았을 텐데.”
왜 저러는가 했더니 그녀가 가져온 물건을 상현이 써주지 않아서다.
-빨리 써라 유상현!
-???: 응~ 안 써~ 치키챠~
-당 장 써 라
-지상 최악의 스트리머 유상현……
무해하기 짝이 없는 루비소드의 실망한 표정에 시청자들이 난동을 피웠다.
문제를 맞혔는데도 불구하고 벌칙을 수행하라 하는 억울한 상황.
‘이게 벌칙은 아니지.’
그러나 상현은 일단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주세요.”
그의 말에 놀란 눈이 된 루비소드.
“정말요?”
“네. 당연히 써야죠.”
-오오오오오!
-크 이거지
-이 남자는 이겨도 써줍니다!
“가, 감사합니다.”
탁.
루비소드가 내민 선물을 잡은 상현. 그는 그 물건을 보며 떠올렸다. 지아가 보여줬던 수많은 팬사인회 영상들. 거기서도 이런 일을 했다.
‘막상 쓰려니 쉽지 않긴 해.’
원래 알고 있었지만, 아이돌이란 참 쉬운 직업이 아니다 싶었다.
이런 걸 거침없이 쓸 수 있다니.
수만 명이 보는 앞에서!
‘잠깐. 수만 명?’
생각해 보니 아이돌은 수만 명이 보는 앞에서 쓰진 않는다.
팬들 앞에서만 써준다.
반면 상현은 실시간 라이브로 송출되고 있고, 심지어 오피스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들도 전광판으로 뭐 하는 놈인가 구경하고 가는 중이다.
‘……이런.’
일단 패기 좋게 쓰겠다곤 했지만, 쉽게 머리로 손이 가질 않는다.
괜히 눈만 이리저리 굴리게 되는 상현.
-눈 돌아가는 거 개웃곀ㅋ
-크 눈치 피지컬 지립니다 행님! 그냥 쓰시죠!
-써줘! 써줘! 써줘!
그가 잠시 뜸을 들이니 심지어 마구 재촉하는 괘씸한 채팅들.
‘카메라 정도는 돌리고 쓸까.’
상현 역시 이런 괘씸한 생각을 잠시 하던 중.
빠바밤!
[아몬드 토끼귀 존버단 님이 무려 10만 원 후원하셨습니다!]
[성──불]
-아토존ㅋㅋㅋㅋ
-ㄷㄷ
-ㅋㅋㅋㅋ아몬드 동공지진ㅋㅋㅋ
-깤ㅋ 부끄몬듴ㅋㅋ 너무 귀여워 어떡해 ㅠㅠ
-이제 무조건 써야함ㅋㅋㅋㅋ
상현이 이 토끼 귀를 쓴다는 걸 이미 기정사실화하여 보낸 후원.
그것도 무려 10만 원이다.
그 순간 상현은 눈을 딱 감고 결심했고.
척!
어느새 그의 머리엔 토끼 귀가 씌워져 있었다.
“헐…….”
루비소드는 감탄하며 입을 가린다.
“와! 너무 잘 어울려요!”
그녀는 신나서 박수까지 짝짝 친다.
루비소드가 기뻐하는 것까지는 좋았다만.
-허류ㅠㅠㅠ 나도 갈래 나도 갈래
-심장개박살난다 ㄹㅇ
-형님…… 스트리머의 길. 쉽지 않군요.
-와 난 아몬드한테 수갑채워도 됨? ㅋㅋㅋ엌ㅋㅋ
-아 난 입에 화살 물려야짘ㅋㅋㅋ
카메라 앞에서 하면 이게 문제다.
이 뒤에 대기하던 멀쩡한 팬들도 이 장면을 보고 뭔가를 준비하려 하고 있었다.
물론 그에 따른 보상도 톡톡히 주어지고 있긴 했다.
[아몬드 토끼귀 존버단2 님이 무려 20만 원 후원하셨습니다!]
[우ㅏ미온히ㅓ뫠ㅕㄷ호ㅝ바ㅣㅠㅜㄹ험;ㄴ화ㅓㅣ]
이걸 오랫동안 기다려온 팬들이 엄청난 후원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미친ㅋㅋㅋㅋ
-“진짜 광기”
-ㄹㅇ 도랏ㅋㅋㅋㅋ
[오빠나죽어 님이 1만 원 후원하셨습니다!]
[끄어어어어어어!]
[루비신도 님이 무려 10만 원 후원하셨습니다!]
[루비 만세! 아몬드 만세! 이런걸 보게되다니 ㅠㅠㅠ 엉엉]
[미래 님이 2천 원 후원했습니다.]
[???: 다음 팬미팅은 미드빵 1대1로 정하겠습니다~]
이런저런 후원들이 터져 나오던 사이.
혼자 아몬드를 정면에서 감상하던 루비소드.
“사, 사진 같이 찍어도 되죠?”
그녀는 옆으로 다가와 사진을 요청했다.
기대에 찬 그녀의 눈을 보니 도저히 거절할 수 없다. 애초에 이건 팬미팅이니 거절해서도 안 되고.
상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네. 당연히.”
“와!”
그녀는 활짝 웃으며 촬영 버튼을 누른다.
찰칵!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 굳은 상현과 세상 다 가진 듯 웃는 소녀가 함께 찍힌 사진이 완성됐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후 루비소드는 연거푸 감사하다며, 자신이 가져온 선물 보따리를 풀어서 잔뜩 올려두기 시작했는데.
쿵. 쿵.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거대한 쇼핑백들이 책상 위로 척척 올려진다.
“전 갈게요! 좀 이따 봐요!”
“저…… 이걸 왜 두고 가세요?”
팬미팅도 처음이고, 만난 (정상적인)팬도 루비소드가 처음인지라 상현은 그녀가 올려두고 간 게 전부 선물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선물이에요! 선물! 사이즈도 맞을 거예요!”
2층을 내려가기 전, 그녀가 외친 말을 듣고서야 전부 선물임을 알게 됐다.
‘이게 전부?’
명품 브랜드 로고가 박힌 박스들이 너댓 개는 되어 보이고, 크기도 꽤 큰 게 스카프나 단순한 선물용 액세서리가 들어 있는 게 아니었다.
외투나 가방 신발 같은 게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조공 클라쓰;
-이, 이게 루비소드!?
-성공한 스트리머의 삶…….
너무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서 상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찰나.
주혁이 들어와 슥 수거해 간다.
“일단 챙겨놓을게. 선물이잖아.”
“……아, 어.”
주혁은 지금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상현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적응이 안 되네.’
스트리머로서 유명해진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걸 받아도 되는 건지, 혼란스럽다.
“다음 들어오실게요.”
파티션 너머의 안내원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음은 또 누구일까.
상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아까 누가 수갑 가져온다던데.’
농담이겠지.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 * *
루비소드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야 알았는데. 루비소드는 사실 엄청나게 붙임성이 좋은 팬에 속했다.
다음 순번으로 들어온 팬은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은 채 조용히 사인을 받고 사진만 찍어 갔고. 그다음 팬도 쩔쩔매다가 사진만 겨우 찍고, 선물을 놓고는 도망쳐 버렸다.
채팅창에서 보여주던 패기는 온데간데없고 다들 숫기 없는 모습으로 우물거리다가 선물을 던지듯이 주고 후다닥 도망가버렸다.
‘이게 보통이구나.’
대부분의 팬들은 원래 이런 식이구나. 슬슬 대충 감을 잡아가고 있던 시점.
한 열다섯 번째쯤이었던가?
기억에 남는 팬이 하나 있었다.
“흠흠.”
그는 한 20대 초반,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대뜸 요즘 보기도 힘든 저금통을 선물로 내미는 게 아닌가?
“선물입니다. 아몬드 님.”
“아…….”
-헐 ㅠ
-저금통 뭔데 ㅠㅠ 모은거 주는거야?ㅠㅠ
-짠하누……
손때 잔뜩 묻은 저금통이라니. 척 보기에도 그냥 받기엔 정말 눈물 나도록 미안한 선물 아닌가.
할머니 생각이 나면서 상현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 이런 건 선물로 받기 좀 그래요. 오랜 기간 모은 것 같은데. 현금이기도 하고…… 마음만 받겠──”
정중히 거절하려던 찰나. 남자가 씩 웃으며 이런 소리를 한다.
“아닙니다. 아몬드 님. 제가 모은 게 아니거든요.”
-???
-예?
-……?
채팅창을 수놓는 수많은 물음표의 향연.
와중에 저금통의 남자는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저 새끼 누군지 알았다 ㅋㅋㅋ 가볶쉑ㅋㅋㅋㅋ
누군가가 먼저 그의 정체를 눈치챘다.
그리고 상현도 다음 말을 듣고서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거 제 동생 거예요.”
“!?”
-미친새낔ㅋㅋㅋㅋㅋ
-컨셉에 잡아먹혔냐곸ㅋㅋ
-엌ㅋㅋㅋㅋ
갑자기 감동이 와르르 무너진다.
“가지볶음 노…… 아니, 님이죠?”
-가지볶음놈ㅋㅋㅋㅋ
-놈 뭔뎈ㅋㅋ
-엌ㅋㅋㅋ
말실수까지 범하며 물은 보람이 있었다.
그가 가지볶음이 맞았으니까.
“예. 바로 알아보시네요! 하하!”
‘당연하지. 겹치는 컨셉이 한 놈도 없으니까.’
참 특이한 사람이다. 생각하며 상현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던 중, 가지볶음은 저금통을 다시 가방에 넣더니, 이제 다른 선물을 꺼내 든다.
“자. 진짜 선물 받아가시죠!”
“……?”
그런데 이번 선물도 만만찮게 이상한 거였는데.
-이번엔 뭔 갓난 아기 조카한테 훔쳐왔냐?
-밥경찰이던 내가 이세계에선 선물 도둑?!
-이건 또 뭔뎈ㅋㅋ
-아아가 만들기!?ㅋㅋㅋ
토끼 귀에 이어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이거…… 착용해 주시죠!”
* * *
어느 한 광장에 남자 둘 여자 하나가 모여 있다.
그들 중 가장 키가 큰 남성이 불평한다.
“근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그는 ‘곱스피어’라는 아이디를 가진 국가 대항전 팀의 지휘관이다.
“쿠키 형이 어떻게든 오늘 직접 만나고 오라 했어…….”
변명하듯 말하는 이는 아몬드를 영입한 주역. 김치 워리어이다.
“아니, 이미 하겠다고 했다며?! 그럼 끝 아니냐고!?”
“아니, 오빠…….”
그때 옆에서 한 여자가 끼어든다. 가장 어려 보이는 얼굴인 그녀의 아이디는 ‘물만두’다.
“그러다가 쿠키 오빠 말대로 중간에 하차라도 하면? 그럼 그 구멍 어떻게 떼울 건데! 그냥 가 좀!”
“에휴…….”
이들이 계속 언급하는 ‘쿠키’라는 자는 모든 지휘관 중에서도 가장 리더이다.
한국 지휘관 현재 랭킹 1위인 것은 물론, 국가 대항전에서 유일하게 본선 진출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래…… 쿠키가 그랬다면 어쩔 수 없지.”
한 성격 하기로는 뒤지지 않는 곱스피어가 그의 말에 껌뻑 죽는 이유도 위의 경력 때문.
사실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없다.
「찾아보니까 그 사람 건강에 문제가 있던데. 앞으로 스케줄에 대해 제대로 설명한 거 맞아?」
김치워리어는 아몬드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았고.
「그러다 중간에 하차하면 타격이 클 거야. 차라리 지금 빨리 제대로 설명하고 결정해.」
국가 대항전이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남은 상황. 심지어 아몬드를 키우려면 그 한 달을 온전히 랭크를 올리는 데에만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그가 만약 결국 건강상 문제로 하차한다면?
문제가 너무 커진다.
“후. 이쯤이던데.”
그렇기에 현재 김치워리어는 오피스 빌딩이 즐비한 거리를 걷는 중이다. 아몬드의 팬미팅 장소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입장할 수 없다는 건 안다.
일단 가서 막무가내로 앞에서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어? 저기 같은데?”
물만두가 어딘가를 가리킨다.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한 장소. 누가 봐도 저기가 팬미팅 장소였다.
‘저렇게나 인기가…….’
꿀꺽.
김치워리어는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니, 커다란 전광판에서 아몬드의 생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와ㅋㅋㅋㅋㅋ
-아아가는 ‘물리’야. 아무도 못 막아
-이게 왜 진짜냐곸ㅋㅋ
이런 채팅이 올라오고 있었다.
김치워리어를 포함한 셋은 아몬드의 현재 상황이 흘러나오는 그 전광판에서 눈을 떼지 못했는데.
“……이, 이게 뭐지.”
심히 당황한 듯한 눈치였다.
그야 아몬드의 차림새(?)가 너무나 희한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