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2부-96화 (376/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96화

34. 내 직업(2)

주혁의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회사는 너한테 뭘 알려주는 곳이 아니다. 네가 스스로 파악하고, 헤쳐나가는 거다. 주체성 있게.」

아무래도 한 기업의 대표이다 보니. 그는 늘 회사 생활에 빗대어서 교훈을 주시는 편이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멋대로 행동하지 마라. 사회 나가서도 그런 식이라면, 넌 바로 낙오된다.」

그가 말하는 회사라는 단어를 그저 ‘세상’으로 바꿔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세상을 주체성 있게 살아야 하는 건 당연지사 맞는 말이다.

그는 이런 말도 자주 하셨다.

「부모 말 잘 들으면 세상 아쉬울 거 하나 없다.」

이 또한 맞는 말이었다.

그들의 말대로, 아쉬울 게 없다.

어머니 친구분들이 오시면 늘 이렇게 말할 정도였으니까.

「주혁이는 키도 크지, 인물도 훤칠하지, 명문대에 아성까지 입사해서…… 정말 아쉬울 거 하나도 없으시겠어요.」

여기 어디에 틀린 말이 있던가?

다 맞는 말이다.

굳이 먼지까지 탈탈 털어 따지고 들지 않는다면, 전부 맞는 말이다. 따지고 드는 자가 예민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만큼.

그게 이런 말들의 무서운 점이다.

처음엔 알지 못한다.

먼지는 삶의 시간 내내 조용히 쌓이기 시작한다.

조금씩 쌓여온 먼지는 어느새 점점 두꺼워지다가, 단단해지고, 산이 된다.

더 이상 훌훌 털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없애려면 불도저와 다이너마이트가 필요하게 된다.

주혁은 똑똑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의식 안에 쌓여 버린 이 거대한 산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미 늦었다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는 어느 순간부터 아주 작은 불씨라도 발견하면 바로 폭탄의 심지에다 옮겨붙였다.

치지직.

‘틀렸잖아. 대상이.’

우선 그는 어머니 친구의 말에서 모순을 찾아냈다.

「주혁이는 키도 크지, 인물도 훤칠하지, 명문대에 아성까지 입사해서…… 정말 아쉬울 거 하나도 없으시겠어요.」

아쉬울 거 하나 없다 말하는 대상이 주혁이 아니다. 그의 어머니다.

주혁의 인생이 아쉬울 게 없는 게 아니라, 그런 주혁을 키워낸 어머니가 아쉬울 게 없다 말하는 것이지 않나?

실제로 주혁이 겪은 바도 정확히 같았다.

명문대를 가도, 아성을 다녀도, 그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남들이 보는 김주혁이라는 사람의 삶만 나아지고 있었다.

그의 명패만 더 화려해질 뿐이었고.

그 명패의 소유자는 늘 부모님이었다.

‘지독한 모순이다.’

치지직.

주혁은 아버지의 말들을 다시 곱씹어봤다.

「회사는 너한테 뭘 알려주는 곳이 아니다. 네가 스스로 파악하고, 헤쳐나가는 거다. 주체성 있게.」

「멋대로 행동하지 마라. 사회 나가서도 그런 식이라면, 넌 바로 낙오된다.」

주체성 있게 행동하라는 것과 멋대로 하지 말라는 것.

둘 다 맞는 말이나.

이 두 문장을 연결하면 이런 말이 된다.

‘알아서 행동하는 로봇이 돼라.’

일일이 시키지 않아도 주인이 원하는 것을 척척 해내는 로봇이 되라는 말이다.

이 말을 뱉은 사람이 그렇게 의도했든 안 했든.

이런 말이 되어버렸다.

5년간의 회사 생활 중에 마지막 1년을 보낼 때쯤이었던가.

이미 그때부터 주혁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여태 들어왔던 말들을 하나씩 부정하고 수정하면서.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냈다.

「사립고에 입학하면 원하는 대로 해라.」

「명문대에 입학하면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그때까진 안 돼.」

「미국 대학원에 원서를 넣어봐라. 딴생각 말고. 다른 집에선 이런 지원 해줄 수나 있는 줄 아느냐?」

「취업까진 해야지. 일단 사회에 나가 배워야 네 사업을 할 수도 있는 거다.」

「그다음부턴 마음대로 해라.」

주혁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그다음은 결혼입니까?’

치지직.

그가 불을 붙인 심지는 길고 길었지만.

아무리 길어도 불이 붙어만 있다면 언젠가는 다 타버리고 만다.

그렇게 선택한 길은 그냥 일단 무작정 집을 나오는 것이다.

솔직히 처음엔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매니저? 그런 거 뭔지 알지도 못했다.

당장 친분이 있는 사람 중에 홀로 살면서 편안한 친구에게 갔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 그가 주혁의 불씨를 완전히 터뜨린 사람이기도 했다.

주혁은 그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다.

그래서 그가 잘되기를 바랐고, 자연스럽게 매니저가 되어준 것이다.

늦게라도 꿈을 쫓는…… 아니, 그 꿈 비슷한 거라도 쫓는 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고쳐나갔다.

물론 아직 다 고쳐나가지 못했다.

그리 높게 쌓인 산을 죄다 터뜨려 부숴 버렸으니 사방에 흙먼지가 튀고 상태가 말도 아닐 것이다.

치우는 데만 한세월이겠지.

하지만 언젠간 다 치워질 것이다. 그의 심지가 결국 다 타버렸듯.

결국 순리는 이뤄진다.

그리고 마치 그 순리가 현재의 주혁을 시험에 들게 한 것처럼, 이런 질문이 떨어졌다.

“야. 주혁아. 요즘 무슨 일하는 건데? 아까 그 아가씨는 뭐고.”

현재 눈앞의 과장이 재차 던진 질문.

지금 저 유상현 매니저예요.

이 말이 입 밖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주혁은 꾹 닫혀 버린 입술을 짓씹었다.

‘하지만 이게 지금의 내 처지다.’

그는 받아들이기로 한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한 자신을. 새로 만들어낸, 아니, 새로 만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당당하게 말하기로 한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아성의 후광에서 벗어난 온전한 독립된 인간 김주혁은 지금 이 위치라고.

후.

‘더듬지 말고 한 번에.’

얕은 숨을 내쉰 그가 단박에 말했다.

“제가 상현이 매니저입니다.”

매니저.

아무도 이 단어가 나타내는 직업을 대단하게 봐주지 않는다.

연예인 매니저가 연예인에게 갑질당하고 쥐어 터져서 뉴스 나오는 경우는 있어도, 대단한 업적을 쌓아서 알려지는 경우는 없으니까.

게다가 이들의 수익이란 것도 뻔하다. 심지어 미디어에 얼굴 좀 비춘 매니저들도 수익은 아성 같은 대기업 직장인들만 못하다.

비교가 실례일 정도로 많이 모자라다.

지금 주혁의 수익도 높은 편이 아니다. 상현이 직장 다니던 시절은 맞춰주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분배받는 건 주혁이 거절했다.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애초에 매니저가 그 이상을 받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건 페이가 아니라 동정심에 주는 사료다.

이제 겨우 부모에게 떨어지는 사료 먹는 일을 그만뒀는데. 유상현에게 사료를 받아 처먹겠다는 건 주혁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싶다면 주혁은 스스로 움직여 사업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아직 시작조차 못 한 단계.

그렇기에 지금 주혁은 경제적으로도 사회적 평판으로도 눈앞의 이들보다 나을 게 하나 없었다.

아니, 한참 모자랐다.

그들이 동경하던 에이스가 이런 꼴이 되었으니, 모두 황당한 눈빛을 해버린다.

“……?”

“매, 매니저?”

“무슨…… 알바 같은 건가?”

아예 이해를 못 한 사람들도 있었다. 혹은 못한 척하거나.

주혁은 주눅 들지 않았다. 물음표와 비아냥이 섞인 시선도 구태여 피하지 않았다.

“스트리머 매니저죠. 연예인 매니저 같은.”

“……!”

정확히 못 박아주니 그제야 침묵하는 그들.

그는 꼭 기억하라는 듯 이어 말했다.

“이번 팬미팅도 제가 다 기획한 거고, 거의 시작부터 같이했어요. 나중에 회사도 차려볼 생각입니다.”

이 시작을 잘 봐두라고. 후에 내가 빛나게 되면, 그때도 이 시작을 잊지 않게.

“아……”

“오우…… 고, 고생이다. 야.”

“진짜 세상 모르는 거구나…….”

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주혁의 결정이 어떤 무게를 갖는 건지.

그리고 그가 했던 고민과 선택들을 자신들도 결국엔 언젠가 해야 한다는 것도.

지금은 관심도 없겠지.

나중에 주혁이 누구도 무시 못 할 빛을 내뿜게 되면 그때야 관심을 가질 터다.

지금 상현에게 그렇듯이.

어색한 공기를 치우려는 듯 사원들이 하하 웃으며 묻는다.

“근데 주혁이 네가 매니저면 우리도 저기 들어가 봐도 되는 거냐?”

“아, 헐! 나도! 나도요! 주혁 씨! 나도 들어가도 돼요!?”

그에 주혁은 흔쾌히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 * *

아성 동료들이 물러간 후.

팬미팅은 이미 순번이 절반은 넘게 지나갔고. 아몬드는 이미 사진을 100장은 넘게 찍었다.

주혁은 잠시 1층 구석의 빈 테이블에 앉아 숨을 돌렸다.

“빡세네.”

그는 잠시 눈을 붙일 겸 고개를 파묻었다. 피곤해서라기보단 잠시 세상을 보는 걸 멈추고 싶었다.

‘……회사 차린다고는 괜히 말했나.’

아직도 조급하구나.

주혁은 아까 했던 말의 붙은 사족을 후회한다.

그냥 매니저라고 말하는 게 맞았다. 그게 지금의 자신이니까. 회사를 차릴 거라는 둥, 시작부터 함께했다는 둥…….

난 일반적인 매니저가 아니야! 라며 발버둥 치는 것 같지 않은가?

저들도 눈치챘을 것이다.

‘아닌가. 그래도 그거라도 말해서 잘한 건가?’

“잘했어.”

놀랍게도 어딘가에서 그에 대한 대답이 들려왔다. 누군가 옆에 앉으며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지아였다.

주혁은 여전히 고개를 파묻은 채로 물었다.

그녀는 뭔가를 알고 한 말일까? 아니면 다른 주제로 이야기하는 걸까.

“뭘 잘했다는 건데.”

“그냥. 전부 다. 오늘 진짜 완벽하잖아.”

아. 그녀는 팬미팅 준비를 두고 한 말이다.

그래도 참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물론 내가 만든 영상들이 쩔었던 것도 한몫…….”

주혁은 파묻었던 고개를 들고 지아를 마주 봤다.

“……?”

순간 그는 무어라 말하려 했는지를 잊었다.

지아는 멍하니 있는 그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가 그렇게 놀랐다는 듯이 쳐다보는데. 잘난 척 좀 하면 안 되나.”

“아니. 그런 게 아니라.”

“?”

“오늘 너무 예뻐서.”

그는 진심이었다.

이 여자가 원래 이렇게 생겼던가?

빤히 쳐다보던 지아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심장의 쿵쾅 소리가 채우는 잠시의 적막.

지아가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헛소리하지 마.”

“헛소리가 나오네. 절로.”

지아는 다시 한번 웃어댄다.

“명문대에선 멘트도 외우게 하나 봐.”

“외울 필요가 없어. 절로 나와. 절로.”

이곳에 있는 수많은 팬들이 그렇듯, 둘도 웃으며 떠든다.

“오늘 우리도 소개한다길래. 조금 꾸민 건데.”

“조금?”

“어. 쪼오금.”

푸하하.

시끌벅적한 술집의 소음 사이로, 신기하리만치 서로의 목소리는 잘 들렸다. 마치 귀에 대고 속삭이듯 조곤조곤 말하는 것처럼.

“근데 우리 나가서 뭐 하지. 나 그런 거 못 하는데.”

“글쎄. 주인공은 아몬드니까. 우린 그냥 호두입니다. 땅콩입니다. 하고 말겠지.”

“나 갑자기 땅콩 된 거 뭔데.”

“남은 게 그거뿐이라.”

꺄르르.

또 터져 나오는 지아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주혁은 불현듯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나저나 아까 누구누구를 만났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놀랍게도 아까 만났던 동료들이 누구였는지 모르겠다.

과장 정도는 기억나는데. 옆엔 누군지…….

마치 한 1년 전 일인 것 같았다.

뒤이어, 잊었단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뭔 생각 중이었더라?’

어차피 그의 시야와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눈앞의 이 아름다운 여성이다. 현재로선 그 이상의 무언가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자! 마지막 100번 팬분까지 다 사인을 마쳤네요! 이제 각자 지정석에 앉으시면, 치킨 맥주! 콜라! 싹 돌려드릴 거예요!”

2층의 난간에서 사회자가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아몬드 님이랑 다트…… 아니! 미니 양궁장에서 활도 쏘실 겁니다! 음주 사격해도 문제없게 뭉툭한 활이니까. 아몬드 님이랑 일대일 활쏘기 데이트 즐겨주시고──”

“와아아아아아!”

데이트라는 말에 팬들의 함성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지아와 주혁이 시선을 마주치며 웃는다. 이렇게 반응이 좋다니.

“자, 자! 그전에! 우리 아몬드 님이 혼자서만 활동해 온 건 아니라는 거! 아실 분들은 다 아시죠? 지금의 아몬드를 있게 한! 우리 동료들을 소개해 보는 시간을 좀 갖겠습니다!”

지금?

둘은 미처 움직이지 못하고 서로 마주 본다. 그러나 사회자는 그들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나오세요! 주혁 씨! 지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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