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05화
37. 커지는 판(1)
‘뭐?’
아몬드의 단 한 발을 보고 항복해 버린 적 지휘관.
-무친판단ㅋㅋㅋㅋㅋ
-와 멘사 출신인가? 개똑똑하네
-???: 응~ 항복하면 그만이야~!
-미친ㅋㅋㅋㅋㅋㅋ 판단속도 무엇;
처음엔 무슨 문제가 생겨서 나가는 건 줄 알았는데.
상대 지휘관이 ‘언제적 빌드를 쓰냐, 엿이나 먹어라, 뒈져라’ 등의 욕을 하고 나가는 걸 보니.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왜 나간 거죠?”
적이 뭔가 화가 나서 나간 건 알겠는데. 아몬드는 아직 왜인지 정확히 몰랐다.
RTS 게임 플레이 경험이 적은 사람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와 꽁승이네.”
“허허. 이런 판도 있는 거지.”
“시시해.”
이로써, 아몬드 팀의 궁병들은 싸움 한번 제대로 못 하고 게임이 끝나버렸다.
[승리]
두 글자의 등장과 함께 화면이 넘어가 버린다.
짤랑! 짤랑!
돈이 정산되긴 했으나. 플레이 시간이 워낙 짧아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다.
“너무 쉽게 이겼네요.”
사실 첫 번째 경기가 이상하게 운이 별로였던 거였을까? 아니면 이 지휘관이 너무 못하는 사람인가?
아몬드는 판단하기 힘들었다.
〔와아. 이상하네요? 이번 지휘관은 랭크가 저보다 훨씬 높았는데…….〕
본투비 역시 당황한 듯한 모습.
-지휘관 랭크 A+였음
-이건 김치워리어의 승리다 솔직힠ㅋㅋㅋ
-빌드 싸먹혔으니까 나가지 ㅋㅋ
이에 김치워리어가 메시지로 설명을 보탠다.
[김치워리어: 전략 상성 싸움에서 너무 크게 져서 바로 나간 거예요. 저쪽은 마을 회관 두개로 늘리면서 일꾼 불려서 빠르게 3시대 극한 펌핑으로 이기려 했던 건데. 우리가 모든 걸 다 걸고 초반 러쉬하니까 이길 수가 없죠.]
상대는 3시대까지 쭉 버티는 식의 전략을 준비했는데.
이쪽이 정반대 전략인 패스트 궁병 러쉬라는 걸 눈치채고 포기한 것이다.
[김치워리어: 그때 유일한 희망이 상대 궁수가 시원찮을 경우인데. 아몬드 님이 일꾼 원샷 원킬 내는 거 보고 바로 ㅈㅈ 친 겁니다.]
“아…… 이해했습니다.”
아몬드도 이제 어떻게 흘러간 건지 대충 알게 됐다.
뭔가 찝찝하긴 하지만, 어찌 됐든 2연승이다.
엠불 커뮤니티에도 글이 마구 올라온다.
[겜시작 6분도 전에 적 항복ㅋㅋㅋㅋㅋ]
[견까 쉑들 개같이 멸망ㅋㅋㅋㅋㅋ]
[응~ 이기면 그만이야~~]
로그인을 해야만 하는 사이트임에도 불구하고, 아몬드의 팬들이 보인다.
해킹이라도 한 걸까?
그럴 리가 없다.
애초에 엠불 안에도 그의 팬들이 있는 것이다.
-꽈베기 저 새낔ㅋㅋㅋ 견과류단이었누
-숨어있던 견과류단 개같이 부화!
-엌ㅋㅋㅋㅋ
그동안은 여론이 너무 안 좋아 몸을 사리고 있었지만.
2연승을 챙기게 되면서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
-이것도 2연승이라고 바로 나대네
-4드론 칼지지 치고 나간걸 승리??
-어쨌든 이긴건 맞지…… 애초에 전략으로 이기는 게임을 전략으로 이겼다고 ㅈㄹ하고, 아까는 또 전략으로 못이겼다고 지랄하고ㅋㅋㅋ 어쩌라고?
└ㄹㅇㅋㅋ
-아 패스트 궁병 해지 맬래구~~ 해지마~~
└ㅋㅋㅋㅋㅋㅋㅋㅋ
-정찰도 없이 마을회관 더블로 올려서 묻지마 3시대 가는건 ㅅㅂ 잘하는거고?ㅋㅋㅋ 그것도 날빌 아녀? 이중적인거보소
└ㄹㅇ 나도 이 생각함. 쌩더블충들 박멸해서 개 통쾌한뎈ㅋ
날빌.
날림 빌드라는 뜻으로. RTS의 취지에 맞지 않게 별다른 전략적 생각 없이 그냥 외운 도박적 전략만 써서, 이기면 좋고 아님 그만 식으로 플레이하는 걸 포괄하여 말한다.
당연히 유저들 사이에선 인식이 좋지 않다.
고인물들의 시각으로는 아까 상대편의 전략도 날빌에 포함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와중에 아몬드는 다음 게임을 진행했다.
“다음 게임 갈게요.”
흐름을 탄 걸까?
아니면 김치워리어의 복고식 ‘날빌’이 제대로 허를 찌른 걸까.
이때부턴 말 그대로 파죽지세였다.
[승리!]
-또 ㅋㅋㅋㅋ
-일꾼 하나 쏘면 걍 각이 보이나봐
-왘ㅋㅋ
아까 게임만큼은 아니지만, 일꾼 한 열 명 썰어버리니 바로 항복하는 게임이 나왔다.
아몬드로서는 의아할 만큼 빠른 포기다.
“자…… 여튼 3연승이네요? 다음 게임 갈게요.”
[승리!]
4연승은 상대가 그나마 조금 버티는가 싶더니. 자기 창병 셋이 동시에 쓰러지는 꼴을 보곤 신고한다면서 나가버린다.
“또 신고 먹으면 어떻게 되죠?”
아몬드는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는 이미 오늘 진행한 첫판부터 신고를 먹었었는데 말이다.
-또 신고 먹냐곸ㅋㅋㅋ
-우리도 모르죠 ㅋㅋ
-첫 번째 만난 애가 근성이 좋은 애였네
-벌써 4연 ㅋㅋㅋㅋ
-렛고 재평가
이후 5연승, 6연승, 7연승.
[승리!]
[승리!]
[승리!]
.
.
.
[승리!]
미칠 듯한 연승으로 랭크를 뚫고 올라가는 아아몬드.
결국 9연승까지 챙긴다.
-9연승???
-아니 한 시간 만에 ㅋㅋㅋ
-돌았다
배치도 이미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점수 상승 폭이 엄청났고.
결국 그는 B랭크의 끄트머리까지 도달해 버린다.
[A랭크 승급전을 치를 자격이 생겼습니다!]
벌써 승급전이다.
그것도 B+는 스킵한 채 바로 A랭크로 올라가는 승급전.
연승 덕에 2단 승급을 하는 것이다.
처음 김치워리어를 불신하던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
[시엠처돌이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아몬드 혼자할 땐 승률 50%였음 지금 승률 생각하면 김치식 패스트 궁병 전략 개쩌는 거 맞음]
-ㄹㅇ이네
-김치식 붙으니까 개 쎄보이누
-아몬드 승률 50%였어??ㅋㅋㅋ 운빨 ㅈ망겜ㅋㅋ
-와 그러네 ㅋㅋ
-미드 오픈 중에서도 젤 쎄다는 김치식 미드 오픈이 있지요~
패스트 궁병 전략이 어떻게 비칠진 몰라도, 아몬드의 승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 건 사실이다.
시청자들도 그 결과를 보고 그를 인정해 주는 듯하다.
[재평가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그는 그저 아몬드한테 딱 맞는 전술을 가져왔던 거였어…… 여태 어떤 싸움을……]
[네이밍센스 님이 10만 원 후원했습니다!]
[ㅈ치워리어. 아…… 그는 빛이었군요. 빛치워리어!!]
-사람 이름이 빛칰ㅋㅋㅋㅋ
-ㅈㄴ 도랏넼ㅋ
-ㅁㅊㅋㅋㅋㅋㅋㅋ
-빛은 빛이넼ㅋㅋ
-무친 어감ㅋㅋㅋ
그때, 김치워리어에게 메시지가 왔다.
[김치워리어: 아몬드 님. 오늘 여기까지 하죠. 할당량은 다 채웠네요.]
“어. 벌써요?”
아몬드가 예상하던 것보단 훨씬 시간이 덜 걸렸다. 김치워리어가 준비해 온 패스트 궁병 전략의 특성이다.
‘그러고 보니 내 몸 상태 하고도 딱 맞는 전략이야.’
우연인지 뭔진 몰라도, 김치워리어가 정말 아몬드에 최적화된 전략을 짜온 건 맞는 것 같았다.
* * *
다음 날.
아몬드의 올튜브.
아니나 다를까 어제의 9연승에 관한 영상이 하나 올라왔는데.
1분짜리 쇼츠 영상 딱 하나이다.
어제 게임을 꽤 많이 했는데 영상은 하나인 게 조금 의아할 수 있으나, 사실 당연한 일이다.
어제 아홉 게임 중 아홉 게임이 패스트 궁병 러쉬였다.
게임은 아홉 게임 진행했지만, 사실상 편집자 입장에선 똑같은 게임이다.
그러니 지아는 차라리 이걸 아주 짧게 편집해서 쭉 이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세계가 놀랐던 역대급 성장! 한방의 기적!]
이런 제목의 영상이었는데.
-제목 무엇 ㅋㅋㅋ
-썸넬 한강 뭔뎈ㅋㅋㅋㅋ
-한강이 아니라 한방이었누 ㅋㅋ
-시엠은 아예 이 컨셉으로 정함?ㅋㅋㅋ
제목부터 심상치 않으니, 일단 구독자들이 먼저 댓글을 다는 모습.
영상의 내용은 당연히 어제 있었던 9연승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하자마자 아몬드는 수풀 안에서 적 일꾼들을 관찰하고 있다.
그가 무어라 말하거나, 지휘관이 명령하는 장면은 죄다 금세 지나가고.
슥.
일어나서 갑자기 활시위를 당기고 쏘는 장면이 정상 속도로 나오는데.
푸욱!
일꾼 하나가 허무하게 쓰러지는 장면이 클로즈업되더니.
[적 지휘관이 항복했습니다!]
적이 바로 항복한다.
이후 다음 게임에서도 아몬드는 시작하자마자 미친 듯이 달려서 활을 한 발 쏘고.
적이 항복하고.
또 쏘고, 적이 항복하고를 반복하면서.
그의 랭크 그래프를 보여준다.
순식간에 치솟으며, B+를 넘어 A 랭크 승급전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마치 한국의 전성기 시절 경제 성장 그래프인 것처럼 연출해 놨다.
심지어 마지막엔 괜히 태극기를 띄우고 애국가가 나오며 영상이 마무리된다.
-도랏냐고 마지막ㅋㅋㅋㅋㅋ
-이게 한방침인가 뭔가 하는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그거냐?
-이게 이게! 대한민국이야! 어!? 알아들어!?
이 영상은 꽤 많은 주목을 받게 되는데.
지난번 나니좌처럼 영상이 웃겨서는 아니다.
-정보) 아몬드는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S+ 랭크로 한 달 안에 가야 한다.
└아 그런거임??
└웬일로 하루에 게임을 저렇게 많이하나 했음……
└와 진짜?
그의 S+ 랭크 도전기가 소문이 퍼진 것이다.
올튜브 유저들은 그가 국가대항전을 위해 S+ 랭크를 가고자 한다는 걸 이제 알게 된 것이다.
라이브 플랫폼이나 커뮤니티보단 소식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와중에 그제서야 그 소식을 알게 된 인물이 하나 더 있었으니.
“여러분. 이번에 릴드컵 우승 못 했다고. 너무들 그렇게 화나 있지 마시고요…… 하아. 그래 맞아. 우리 관계자들도…… 진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바로 릴챔스(*국내 릴 프로 리그) 공식 해설자 킹귤이었다.
그는 개인 방송에서 최근 릴드컵(*릴 세계 대회. 공식 명칭은 월즈 챔피언쉽) 4강에서 우리나라 팀이 모두 탈락하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해명 아닌 해명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떡하냐. 아. 일단 결승 올라간 두 팀. MEDG랑 G4 축하드리고요…….”
-엠이디쥐 같은 팀한테 지다니…….
-아직도 어질어질하네요. 이거 꿈인가…….
-쥐포 새끼들 대진운 하난 쩔던데.
-운이 없었어 ㅠㅠ
릴드컵은 올림픽으로 치면 양궁 쇼트트랙 같은 종목이라, 우승이 아니면 욕먹는 경기인데.
충격적이게도 국내 팀이 4강에서 전원 탈락해 버린 것이다.
전자파가 있었을 땐 4강 4팀이 전부 한국이었던 걸 생각하면, 큰 변화였다.
“다음을 봐야지. 다음을…….”
결승도 못 가고 다 탈락한 건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킹귤도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다음을 봐야 한다 중얼거릴 뿐이다.
“아, 저 결승 해설은 안 해요. 순번이 안 돌아서…… 그리고 뭐…… 굳이 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허허.
농담을 하며 실없이 웃는 킹귤.
-ㅋㅋㅋㅋㅋ
-하깈ㅋㅋ
-손──절
-아 안 하시는구나 ㅋㅋ
-무빙 쩔었네요.
왠지 모르게 축 처진 분위기 속, 트럼펫이 울린다.
빠밤.
[제주감귤 님이 무려 10만 원 후원하셨습니다!]
[출산 축하드려요!]
갑자기 확 표정이 밝아지는 킹귤.
“아. 제주감귤 님 10만 워어언! 감사합니다아! 감사합니다! 애기 기저귓값에 잘 보태겠습니다!”
그는 최근 사랑하는 부인과 결실을 맺어 아이가 생기기도 했다.
이제 가장인 셈이다.
그런 와중에 릴드컵에서 한국 팀이 죽을 쒀서, 컨텐츠가 많이 날아가 버렸다.
-그럼 한동안 해설 쉬시나요?
-타겜 해설도 하세요~
-킹귤님은 딴겜 해설은 아예 안하시던데.
시청자들은 그의 공백기가 걱정되는 듯하다.
“다른 게임 해설요? 아…… 그러게요. 제가 여태 릴만 해설했잖아요? 보통 해설자분들은 다른 게임도 많이하시죠. 저는 아직 준비된 게 없어서요…….”
그는 릴 초창기, 캡슐 게임이 아닐 때부터 역사와 함께한 사람이다.
젊을 때는 플레이어로서, 후에는 해설자로.
인생을 다 갈아 넣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젠 릴에서 국내 팀의 위상이 한풀 꺾이려는 것 같았다.
대회에 대한 관심도 서서히 식어갈 것만 같았다.
아이가 없다면 모를까, 이젠 가장으로서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
“나도 보험 몇 개는 들어놔야 되긴 하는데. 뭐 한번 알아볼까? 요즘 뭔 겜 인기지…….”
그는 실시간 화제 영상 랭킹을 들여다봤고. 와중에 그의 눈에 들어온게 아몬드의 영상이다.
위스키가 나오는 그 영상.
“어…… 아몬드 이분?”
난트전 우승을 차지했던 그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는 킹귤.
채팅창에서도 아몬드를 아는 사람들이 근황을 전해준다.
-아몬드님 이번에 시빌엠 국대 나가신대여
-와 아몬드 간만이넼ㅋㅋ
-아몬드 채널 성장 무엇???
-레이나 버린 그 새끼 아냐 ㅡㅡ
-데협은 기억하고 있다……
레이나를 버렸다거나, 채널이 성장했다거나 여러 소식이 있지만.
그중 킹귤의 귀를 사로잡은 건 하나.
“……아몬드 님이 국대 나간다고요?”
아몬드가 국가대항전을 나간다는 것.
“시빌 엠파이어…… 저도 모르는 게임은 아닌데.”
킹귤은 관심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