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25화
43. 네임드(2)
가히 영웅적인 등장이었다.
마치 전쟁 영화의 주인공 같았다. 가장 위기의 순간에 등장해 아군을 승리로 이끄는…….
다만 이건 영화가 아니었고.
얀코스에겐 멋진 대사조차 없었다.
그는 무표정으로 다음 타깃을 죽일 뿐이다.
기계처럼 곡도를 휘둘렀을 뿐이다.
촤아아악!
눈을 한 번 깜짝하니, 어떤 목이 하늘을 날고 있다. 아마 아군일 거다.
다시 곡도가 휘둘러지고.
촤아악!
이어서 또 한 명이 쓰러진다.
아몬드의 바로 앞에 있던 궁병이다.
그리고─
“!”
──카앙!
그의 검에서 불꽃이 튄다.
화살이 튕겨 나간 것이다.
이는 아몬드가 쏜 화살이다.
‘안 먹혀.’
저번에 봤던 베테랑 기사와 같았다.
원거리 공격은 먹히지 않는다.
화살처럼 면적이 좁은 공격은 소용이 없었다.
카앙!
캉!
그는 방패조차 쓰지 않는다. 전부 그의 건틀릿 혹은 검에 막혔다.
그는 서두르지도 않는다.
아몬드의 화살을 몇 번 받아봤음에도, 조금의 동요도 없이 자기 주변에 있는 병사들부터 물리친다.
촤아악!
또 누군가의 목이 날아간다.
아몬드는 그걸 일일이 봐줄 여유가 없었다.
‘다음은 나다.’
그는 좌로 몸을 굴려야 했다.
후웅!
베테랑 기사의 검이 방금 그의 목이 있던 곳을 지나갔다.
파앙!
동시에 아몬드의 화살이 쏘아졌다.
쉬이이익──
이번엔 소리가 다르다.
커브샷.
아주 가파르게 꺾이는 커브샷이다. 상대의 눈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한.
얀코스는 얼른 건틀릿으로 목 뒤를 가린다.
──카앙!
또 막혔다.
‘조금은 먹힌다.’
아몬드의 눈으론 미세한 차이가 보였다.
이번엔 조금 느리게 막았다. 미약하게나마 당황했던 것이다.
“……?”
아니나 다를까 얀코스는 아몬드를 빤히 쳐다본다.
둘은 서로 대치 상태가 되었다.
참 신기했다.
누구든 기회가 된다면 뒤에서 그를 찌르거나, 아니면 아몬드를 공격해 올 수도 있었는데.
마치 모두가 자리를 넘겨주듯이, 둘 사이엔 아무도 서지 않았다.
이것이 소위 ‘기류’라 하는 것일까?
포식자들 간의 싸움에, 초식동물은 감히 끼지 못하는 것이다.
스릉.
얀코스는 곡도를 잠시 거둬들이듯 어깨에 걸쳤으나.
언제든 화살을 튕겨낼 수 있어 보였다.
그는 마치 아몬드에게 유언을 하려면 지금이라는 듯 턱짓을 한다.
일종의 도발이다.
그의 소원대로 아몬드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말을 뱉었다.
“70만 원.”
-ㅁㅊㅋㅋㅋㅋ
-아 저게 70만 원째구낰ㅋㅋ
-엌ㅋㅋㅋㅋ
-ㅅㅂㅋㅋㅋ
상대는 알아듣지 못한다.
통역이 제대로 돼도 의미를 알 수 없을 터다.
아마 맥락을 이해했다면 조금은 화가 났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평온해 보였다. 잠시 목을 풀듯이 고개를 꺾기까지 했는데.
우드득.
그 순간 아몬드의 화살이 날았다.
파앙──
그리고, 그의 눈이 기다렸다는 듯 번뜩인다.
당연히 여유는 위장이었다.
──캉!
화살이 부러진다.
아몬드는 다시 쏜다. 속사다.
파바방!
연이어 3개의 화살.
터더덩!
방패에 막힌다.
‘방패?’
방패는 분명 없었는데. 아까 목을 푸는 척하며, 뒤로 보낸 손으로 든 것 같다.
안장에 달려 있었던 모양이지.
아몬드는 거리를 벌리는 것을 택하고, 다시 활을 쏜다.
파방!
이번엔 2연사.
그는 건틀릿으로 가볍게 쳐냈으나.
그의 말은 그러지 못했다.
이히이잉.
말이 투레질과 함께 고통스러워한다. 말도 좋은 말인지 한 발로는 도저히 죽을 생각도 없다.
그럼에도 얀코스는 빠르게 말에서 뛰어내린다.
그 과정에서 아군 병사 하나가 더 썰린다.
촤악!
아몬드의 화살도 막는다.
퍼버벅!
아군 창병의 시체에 연이어 3개 화살이 박힌다.
-ㅅㅂ 존나 강한 빌런같아
-헐
-이, 이게 국대전?! 이게 국대전?!
시청자들은 동요했다.
국대전엔 다 저런 괴물들만 나오는 게 아닐까?
-와 씨 ㅠ
-기사랑 궁병 차이가 넘 큼 ㅠㅠ
-애초에 불공정한 싸움임
-아몬드도 기사해라
아몬드더러 기사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생긴다.
현재 아몬드의 병과인 궁병과 베테랑 기사는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애초에 같은 실력이더라도, 궁병이 베테랑 기사 앞에서 숨을 쉬는 것도 용기가 필요할 정도의 차이가 난다.
‘온다.’
어느새 다가온 얀코스는 터벅터벅 걸어와 자연스럽게 곡도를 휘두른다.
후웅!
아몬드는 이번엔 뒤로 가지 않았다.
검격을 흘리며 앞으로 구른다.
‘근접 해보자.’
초근접에서 한번 쏴보자. 어떻게 피할지.
이런 생각이다.
기리릭!
활을 당기는 것과 거의 동시에 놓는다. 어차피 조준할 필요조차 없는 근접.
파앙!
구르면서 쏜 화살이 그의 옆구리 관절을 뚫는다.
“!”
──퍼억!
맞았다.
그러나, 적의 옆구리에선 피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원거리 방어력이 높아.’
플레이트 갑옷이 보호하고 있지 않을 뿐. 내피로 입고 있는 체인메일도 있을 테고, 애초에 여긴 급소 판정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궁수의 대미지가 들어가 버린다.
[체력 92%]
10명의 궁수가 동시에 쐈더라도, 20%의 여유가 남아버리는 방어력.
상대는 이걸 알기에 구태여 애써 막지도 않은 것이었는지, 동요하는 기색도 없이 아몬드에게 검을 휘둘렀다.
사악!
너무 근접했던 바람에, 그는 종아리 뒤쪽이 베인다.
큰 상처는 아니었다.
[체력 71%]
스쳐도 30%가 날아간다.
딜교환이 성립이 안 된다.
릴로 치자면 이미 성장 차이가 3배 이상 벌어진 상대와 싸우는 것이었다.
장비의 차이, 경험의 차이, 그리고 상성의 차이.
모든 게 아몬드에게 불리했다.
다만, 유일하게 그의 편이었던 게 있었으니…….
바로 시간이다.
“와아아아아아아!”
북쪽에서부터 적 기마대를 전멸시키고 온 아군 기마본대가 돌아오고 있다.
저쪽엔 아군 베테랑 기사도 포함이었다.
“전부 쓸어버려라아아!”
얀코스의 표정에 처음으로 아주 미약하게나마 짜증이 스쳐 간다.
저들을 상대해야 해서?
아니다.
그의 눈앞에 떠오른 이 텍스트 때문이다.
[상대와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 * *
약 2분 전.
“제기랄.”
AK47. 그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제발 죽여주세요! 제발!”
그는 얀코스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베테랑 기사를 뽑았더니 운이 좋게도 S+등급이 나왔다.
심지어 랭킹 18위의 얀코스.
그의 등장으로 전쟁의 판세가 뒤집혔다.
그리고, 지금 아몬드를 죽이기 직전…….
“……이 미친. 아몬드 저 자식 뭐 하는 놈이지?”
AK는 어이가 없어 탄식했다.
내정을 좀 살피다 오면 죽어 있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베테랑 기사랑! 그것도 얀코스랑 싸우는데 아직 살아 있냐고!”
금세 처리될 거라고 여겼는데. 얀코스가 아직도 아몬드를 제대로 죽이지 못한 모습.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적 기마병들이 이제 전부 아몬드 쪽으로 합류하기 시작한다.
AK는 다시 내정을 살피러 화면을 돌리고, 계속해서 기마병을 뽑아서 지원 보내기 시작했다.
“지휘관 실력은 내가 위야. 지휘관 실력은…….”
자원을 뽑아먹고, 병력으로 전환시켜서 지원 보내는 속도는 분명 이쪽이 위였다.
다만 인정하기 싫지만, 본투비의 전술 몇 가지는 허를 찔렀다.
전투에선 본투비와 아몬드 듀오가 우위였다.
그리고, 이 게임은 원래 지휘관만 잘한다고 이기는 건 아니다.
그럴 거면 용병 역할의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왜 하겠나?
저들도 잘해야 이기는 게임이긴 하다.
그걸 AK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얀코스 나왔잖아. 얀코스.’
이제 그런 핑계를 댈 수도 없다.
얀코스라는 거물이 베테랑 기사로 등장한 마당에, 뽑기 운의 뽑 자도 거론할 수 없게 됐다.
그때─
“어?”
──쿠웅!
갑자기 온 세상이 뒤흔들렸다.
치지지지직……!
화면에 노이즈가 끼더니.
저 멀리서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동현아! 너 또 거기 들어가 있니?! 어?! 얼른 안 나와!?]
팡!
캡슐의 전원이 꺼져 버렸다.
치이이익!
유압기 소리와 함께 캡슐 문이 벌컥 열린다.
“……어, 엄마! 다 이겼는데!”
“너 지금 과제는 다 하고 이러고 있니?! 어? 도대체가 넌 대학생이 돼서도 왜 똑같은 거야!?”
폭풍처럼 쏟아지는 잔소리.
그러나, AK47은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아. 명예로운 죽음이다.’
B랭크 지휘관에게 저격까지 걸고서도 질 뻔한 게임이었다.
그걸 엄마가 와서 꺼줘 버렸으니, 그래도 진 건 아니잖나.
그는 엄마에게 한참을 설교를 듣고 나서야, 과제를 하는 척 노트북을 켰다.
[샤르르: 뭐야. 인터넷 끊겼나???]
[외성고: 음…… 엄크?]
[샤르르: 아…… 그건가?]
안 그래도 단톡방에선 대체 어떻게 된 거냐는 말들이 수두룩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이미 게임은 패배 처리된 모양이다.
아몬드와 본투비도 이미 다른 게임을 찾고 있었다.
[AK47: 아…… ㅈㅅㅈㅅ 엄크 떠서…… 하…… 게임할 때도 계속 뭐라하셨는데…… 그거땜에 넘 대충했네……ㅋ]
그는 나름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이 악물고 날빌까지 쓰면서 덤빈 게임을 ‘대충 했다’라고 평했다.
[날빌심판자: 아. 대충하셨구나 ㅎㅎ 엄크는 어쩔 수 없긴 한데…… 대학생 아님?]
[AK47: 아닌데요? 고딩임.]
[날빌심판자: 저번에 술먹자고 하시길래. 양아치시네요.]
[샤르르: 너 대학생이잖아? 뭔 고딩이여 ㅋㅋㅋ]
아…… AK는 순간 얼굴이 시뻘게졌다.
어떤 말이 나올지 뻔했으니.
[날빌심판자: 엄크 맞음? 대학생인데 뭔 엄크여……?]
[AK47: 엄마가 좀 ㅎㅎ 성격이 불같으셔서 ㅎㅎ]
[샤르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외성고: 대학생이면 아직 애지! 애야! 신입생이죠?]
[샤르르: 취준도 물어보고 그러던데. 4학년일듯ㅋㅋㅋㅋ]
[외성고: 아~ ㅎㅎ 엄한 집안에서 자라시네 ㅎㅎㅎㅎ]
[날빌심판자: 아하 ㅎㅎ]
왜 이렇게 ‘ㅎ’은 많이 치는 건지.
AK47은 빨리 이 대화를 마무리하기 위해 채팅을 친다.
[AK47: 아 완전 빡집중했으면 이겼는데. 진짜 아쉽네요. ㅈㅅㅈㅅ 다음 타자님들 건투를 빕니다!]
[외성고: ㄲㅂ 마지막에 전투 좋았는데……]
[날빌심판자: 날빌까지 썼는데 이걸 지네 ㅋㅋ]
“하…… 저 미친 광신도 새끼가.”
참 여러모로 수치스러운 상황이다.
대학교 4학년이 기본적인 자유조차 없다는 사실부터, 날빌을 썼는데도 게임을 진 것까지.
그나마 엄마 때문에 졌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AK47: 그러니까 엄마가 계속 들어와서 집중을 못 했다니까요!? 저새끼들은 개빡겜하는데 내가 어떻게 이기냐고! 5분마다 캡슐 두들기는데!?]
이렇게까지 말하면 솔직히 그냥 넘어가 줄 줄 알았다.
그런데 날빌심판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런 말을 한다.
[날빌심판자: 아~ 저쪽은 미션 수행까지 하면서 겜하던데? 그게 빡겜인가? ㅋㅋㅋㅋㅋ]
[외성고: 즉당히 패라 임마 ㅋㅋㅋㅋㅋ]
[샤르르: 엌ㅋㅋㅋㅋㅋ 나도 봄. 돈 세면서 겜하던뎈ㅋㅋㅋ]
[날빌심판자: 아마 초반에 아몬드가 일부러 겜 안 끝낸 것도 있을걸? 킬당미션이라 ㅋㅋㅋ]
[샤르르: 에이 설마 ㅋㅋㅋ]
킬당 미션?
AK47은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여 커뮤니티로 들어가 본다.
대충 검색해서 글을 찾아보니……
[상대 튕겨서 70만 원 못채웠누]
[와 상대 진짜 개매너네]
[이걸 69만 원으로 끝내냐 ㄲㅂ ㅠ]
정말로 아몬드가 킬당 미션을 받고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한타 박살 났는데 웃참 중인 아몬드]
이런 인기글을 들어가 영상을 켜본다.
[45만 원~ 46만 원~ 47만 원!]
돈을 세면서 활을 쏘고 있는 모습.
스트리머로서 일종의 퍼포먼스였겠지만, AK의 입장에선 조롱으로 비춰졌다.
-ㅋㅋㅋㅋㅋㄹㅇ 광기네
-완벽한 스트리머
-킬당 미션 진짜 간만이라 기분 내본 듯
-혼자 즐겜이여 ㅋㅋㅋ
-아니 엄마 그러니까! 저 줄만 당기면 그냥 만 원이 나온다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왜진ㅋㅋㅋ
모든 댓글을 하나 하나 다 읽어본 AK47.
그는 노트북을 닫아버린 후.
“하아.”
한동안 시빌 엠은 물론, 엠불 커뮤니티에도 접속하지 않았다.
이때를 기점으로, 아주 오랜 기간 반반을 유지하던 엠불 커뮤니티의 여론이 서서히 아몬드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1위) 아몬드 걍 국대 스트레이트로 꽂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개같이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