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28화
44. 쿠키(2)
다음 날, 아침.
상현이 느긋하게 시리얼을 먹고 있던 반면, 주혁은 세상 분주하게 움직였다.
“야. 너 맡긴다는 옷이 이거 맞지?”
“아, 응……”
그는 오늘 상현의 슈트를 세탁소에 맡기러 간다. 내일 시상식을 위해서다.
“근데 오늘 맡겨서 되나?”
“예약해 놨지. 넌 메이크업 따로 안 받아도 되냐?”
“……내가?”
상현은 아직도 메이크업이 익숙치 않다.
애초에 광고 찍을 때나 한두 번 받던 게 전부니까.
“너 예능 섭외 같은 거 계속 들어오는데. 이런 거 익숙해져야지.”
“음.”
예능이라…….
상현은 혼란스러웠다.
저번에 나갔던 토크쇼 형식의 예능도 운이 좋아서 반응이 좋았을 뿐이지.
다른 곳에 나가면 또 어떨지 모른다.
“지금은 스트리밍에 집중한다고 다 거절하고 있긴 한데…… 뭐, 잘 생각해 봐.”
주혁은 상현이 예능까지 발 뻗기를 원하는 눈치다.
‘주혁인 언제나 위로 가고 싶어 하니까.’
개인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 사실 김주혁이란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다.
늘 위를 지향하는…….
그런데 난 어떤가? 상현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님 지아랑 같이 받아. 무슨 샵 예약한다는데.”
“지아는 그런 거 가기 싫다더니. 적극적이네.”
푸하하.
상현의 일침에 주혁이 한바탕 웃는다.
“그러게나 말이다.”
“난 기본적인 것만 하고 갈게.”
“그래. 그러자 그럼.”
주혁은 그것도 괜찮다는 듯 끄덕인다.
“그럼 메이크업은 기본만 하고…… 옷은 이걸로…… 차는 내가 승합차로 렌트 넣어놨고.”
주혁은 자신의 휴대폰에 메모하며 중얼거리더니, 나갔다 온다면서 휙 나가버렸다.
상현은 집에 혼자 남게 됐다.
“…….”
적막하니 괜히 잡생각이 떠올랐다. 시상식에 가면 풍선껌 형이랑 타코 형 등등 보겠구나.
간만에 실물로 얼굴을 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시상식 때 무슨 아이돌들 공연도 있다고 하던데. 같이 보면 재밌으려나……?
여자 아이돌 공연이라 아마 벌룬스타즈 팀 멤버들은 다 좋아할 것 같았다. 미호를 제외한다면.
‘아, 그러고 보니 커플상…….’
생각해 보니 미호 상현은 커플상 후보에 올랐다.
그것도 받을 수 있을까?
그런 상들은 정말 재미로 받는 것들이라, 알기 어렵다.
상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아에게 선물 받았던 커피 머신을 작동시켰다.
지이잉.
향긋한 커피향이 집 안에 퍼진다.
그는 서랍에서 미호에게 선물 받은 아몬드 쿠키를 꺼냈다.
팬들에게 나눠주고도 한참 남아 있었다.
와그작.
고소한 풍미가 퍼진다.
커피도 함께 들이켜니 좋다.
‘미호한테 뭘 선물로 주지.’
답례로 뭐라도 줘야 할 것 같은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주혁이한테 말하면 알아서 잘 고르긴 할 것이다.
상현은 창가로 기대며 창문을 열었다.
휘이잉.
찬바람이 들이친다.
기분 나쁜 추위는 아니다.
겨울 아침의 산뜻함이 느껴지는, 산소 가득한 공기였다.
‘여기가 공기는 좋은 편인데.’
달동네 언덕 맨 위. 걸어가기 더럽게 힘들고 차도 못 들어오고 택배 기사도 맨날 욕하는 곳이지만…….
뒤가 바로 산이라 공기는 참 좋다.
스읍.
상현은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본다.
겨울 아침 느즈막하게 떠오르는 해를 본다.
올해 떠오르는 해 중에서 거의 마지막이다.
‘내년엔…… 떠나게 되려나.’
내년엔 새로운 집을 알아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제 할머니도 여기 안 계시다. 유골은 꽤 괜찮은 납골당에 안치됐다.
할머니 살아계실 적, 늘 돈 많이 벌어 이 동네를 떠나라 하셨다. 사는 공간이 좋아야 일도 잘 풀린다고.
무슨 뜻인지 상현도 이제 슬슬 이해가 간다. 그래서 당신의 소원을 지켜드릴 예정이다.
지잉.
메시지가 왔다.
[미호: 낼 어떻게 입어요!?]
이런 거 묻기엔 많이 늦은 거 아닌가. 상현은 고개를 갸웃한다.
사실 그녀가 한참 고민하다가 뒤늦게서야 보냈다는 걸 모르니 말이다.
후르릅.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 후, 답장을 보낸다.
[상현: 커플룩 때문에?]
[미호: 네! ㅎㅎ]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그냥 갖고 있는 것 중에 조금 비싼 검은 슈트다. 그 외 다른 말로 설명을 해주고 싶어도, 패션 용어를 하나도 모르니 방법이 없었다.
[상현: 나 검은색 슈트인데…… 방금 주혁이가 가져가 버려서 사진이 없는데……]
[미호: 아하. 알았어요!]
[상현: 근데 여자분들 검은색 잘 안 입지 않아? 시상식에서.]
상현은 미호가 색을 맞춰서 오려는 것인 줄로 알았기에 걱정된 모양이지만.
[미호: 저는 레드예요!]
[미호: 핑크머리 이 드레스에 안 어울려서 검은색으로 다시 염색함 ㅋㅋㅋ]
[미호: (사진) (사진)]
[상현: ?]
그녀는 검은색이 아니었다.
이럴 거면 왜 물어본 건지 모르겠다는 듯 상현은 갸웃거렸다.
[미호: ㅋㅋㅋㅋㅋㅋ답정너ㅋㅋㅋ]
스스로 자백하는 미호에 상현은 피식했다.
[미호: 대신 악세사리 블랙으로 할게요!]
[미호: 살짝 억지 시밀러룩으로 ㅋㅋㅋ]
[상현: ㅋㅋㅋㅋㅋ좋네]
[미호: 네! 그때 봐요! 상 받았음 좋겠다아아!]
미호와의 메시지가 끝나고, 상현은 중얼거렸다.
“엄청 신났네.”
그는 미호가 보낸 드레스 사진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꾸미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자리에 가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신나는 모양이다.
‘이제 곧 1시네.’
오늘 쿠키와 1시에 미리 접속해서 만나기로 했었다.
아몬드는 슬슬 캡슐로 들어갈 채비를 한다.
* * *
오후 1시.
점심을 먹은 직후.
상현은 캡슐로 들어갔다.
[스트리밍을 시작합니다.]
방송도 켰다.
대회 직전까지 가면 방송을 하는 게 예의가 아니겠지만, 지금은 국대 룰만 익히는 것이다 보니 방송을 켜도 좋다고 했다.
정확히는 몰라도 쿠키라는 사람도 좋다고 허락한 모양이다.
-ㅎㅇㅎㅇ
-앗싸 인생 2시간 이득봄ㅋㅋ
-왤케 빨리킴?
-아니 갑자기 기본 방제 뭔데 ㅋㅋㅋ
방송이 빨리 켜졌음에도 불구하고 몰려드는 시청자들.
최근 시빌엠 랭크 프로젝트를 하면서 기본 시청자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현재 시청자 9천]
방송 오픈 직후, 오후 1시에 9천 명이 보는 방송이 되어버렸다.
“트하!”
아몬드는 빠르게 인사 후 오늘 할 일을 설명했다.
“랭크전은 원래대로 3시에 시작하고, 지금은 국가대항전 룰을 배우러 왔…….”
그런데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후원이 들어온다.
띠링!
[갓지아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국뽕 제목 빨리 다셈]
“아. 갓지아 님. 만 원 감사합니다. 제목…… 급하게 켜서 자동 생성인데…….”
아몬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그간의 제목은 주혁이나 지아가 정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둘 다 자리에 없다. 상현도 방송을 급하게 켰고 말이다.
[루비소드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그거 아몬드가 하는 게 아니라 호두가 하는 거예요 ㅎㅎ]
-ㅋㅋㅋㅋㅋㅋㅋㄹㅇ??
-루비가 그렇다면 그런것
-그런가보네 ㄹㅇㅋㅋㅋ
“루비소드 님. 1만 원 감사합니다. 흠. 제목은 제가 일단 게임 하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몬드는 방송 켠 지 거의 5분 만에 게임으로 곧장 전환했다.
-벌써 게임감? ㅠ
-우린 비즈니스 관계야!? 어디가!!
-ㅋㅋㅋㅋㅋㅋ역시 아몬드.
다른 스트리머들은 대체로 두어 시간가량은 소통 시간을 갖는 반면, 아몬드는 말주변에 딱히 자신이 없어서 곧바로 들어가는 게 보통이었다.
어쩌다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나 소통 시간을 가져왔었다.
그렇게 했어도 그간 별다른 말은 없었는데.
-여긴 소통이없누
-냉혹한 스트리머 아몬드;
-오빠 좀만 더 말하자ㅠㅠ
이런 채팅들이 요즘 들어 자주 보인다.
‘사람이 많아지니까, 그런 걸 원하는 사람도 많아졌나 봐.’
아무래도 그간은 하드하게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많았다면, 이젠 라이트 유저들이 훨씬 더 많아진 것이다.
‘오늘은 그냥 가야지.’
오늘까지는 그냥 바로 게임으로 들어가려 한다.
[김치워리어: 코드 드릴게요!]
[TUH37PK]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여러분. 오늘은 좀 중요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소통 시간 다음에 가질게요.”
-ㄹㅇ??
-소통을 하겠다구요!?
-누구?
-헐 소통방송 간만에 하나? ㅋㅋㅋ
-님 소통 어케하는지 아셈?
사람들은 중요한 사람이 온다는 언급보단 소통 방송에 더 관심이 많은 듯 보였으나.
아몬드는 스스로 묻고 대답해 버렸다.
“아. 누구냐구요? 쿠키라고, 저희 국대 총사령관 같은 사람입니다.”
-와 쿠키
-아! 쿠키! 아시는구나!
-폰질문ㅋㅋㅋ
-누가 물어봄?
-유명한 사람임?
모르는 사람 반 아는 사람 반.
하드한 유저들이 주로 채팅을 치는 편이라 반반처럼 보이지, 사실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거다.
여기 시청자들 중 90%는 시빌 엠파이어가 집에 깔려 있지도 않을 테니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는 이런 말과 함께 김치워리어가 줬던 코드를 입력했다.
* * *
암전했던 세상이 다시 하얗게 밝아진 후.
두둥……!
북소리와 함께 이런 텍스트가 떠올랐다.
[연습 모드 - 국가대항전]
김치워리어가 줬던 코드는 디스월드 입장 코드가 아니었다.
시빌 엠파이어 연습 모드 입장 코드였다.
‘여긴…….’
드넓은 초원과 언덕이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로는 강도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슈웅!
곳곳에서 파란 빛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슈웅! 슝! 슝!
아몬드의 주변에도 수많은 푸른 빛이 떨어져 내렸다.
슈슈슝!!!
일일이 셀 수도 없었다.
푸른 빛을 타고 등장한 건 사람이었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
단순한 사람이 아니다. 무장을 한 병사들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순식간에 수백 명의 병사들이 도열했고, 아몬드는 그들의 진형 한가운데에 갇혀 버렸다.
거대한 등과 어깨가 사방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뭐야???
-???
-와 ㅁㅊ
-깜짝이야
잠시 후, 그 병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땅에 찍었다.
쿠웅──!!!
엄청난 진동이었다.
이어서 모두가 짧은 함성을 내질렀다.
“워!!!”
소리만으로 땅이 들썩인다.
묵직한 파동이 짓누르는 듯한 느낌.
피부로 느껴지는 중압감.
쿠웅──
또다시 발을 구르며 병사들이 외친다.
“워!!!”
이번엔 연속으로.
“워!!! 워!!!! 워!!!!!”
심장이 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쿵쾅쿵쾅!
그때였다.
한편의 병사들이 일제히 길을 비켜서기 시작한다. 마치 성서에 나오는 갈라지는 바다처럼.
스르르륵.
인벽이 옆으로 비켜서며 생긴 길의 그 소실점 끝. 그곳에 세 사람이 등장한다.
셋 모두 말을 타고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말을 거닐어, 아몬드에게 다가왔다.
가운데에서 오는 차분한 인상의 남성. 그가 점차 뚜렷하게 보였다.
겉으로 보기엔 주혁보다 조금 더 많은, 3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다른 두 사람은 멈췄고, 그는 점점 가까이 왔다.
얼굴이 완전히 또렷이 보일 때. 그가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몬드는 굳이 그가 소개하지 않아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쿠키였다.
그는 말에서 내리며 정식으로 인사를 건네왔다.
우선 첫인상.
그는 상당히 말랐다.
피부색도 초췌하고, 왠지 아파 보이는 느낌.
그럼에도…….
“저는 이번 국대 총지휘관 맡은 쿠키라고 합니다.”
“예. 아몬드입니다.”
눈빛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바로 설명 들어가겠습니다. 참고로 앞으로 존칭은 생략합니다.”
쿠키가 운을 떼며 뒤로 휙 돌았다.
“우선.”
척.
그가 손가락을 높이 치들었다.
목소리 톤부터가 바뀌었다.
군의 장군들처럼 쩌렁쩌렁한 톤은 아니지만, 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음성엔 차갑게 날이 서려 있었다. 고막을 삭삭 그어버리는 것처럼. 확실하고 또렷하게 들려왔다.
“국가대항전에선 200명의 병사 모두가 처음부터 소환된 상태로 시작한다.”
꿀꺽.
아몬드는 마른침을 삼키며 최대한 집중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