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38화
48. 세간의 평가(1)
갑작스러운 본투비의 눈물에 잠시 모두 당황했다.
-헐 ㅠㅠ
-왜 울어ㅠㅠㅠ
-짠하누…… 마지막 잘했는데 ㅠㅠ
채팅창도 눈물바다가 되고. 한참 본투비를 놀리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고 있던 킹귤도 잠시 프로펠러를 멈추고 숙연해졌다.
아몬드도 잠시 말을 멈추고 본투비를 응시했다.
‘힘들었나.’
그에겐 이 여정이 꽤나 힘들었던 것 같다. 동시에 뜻깊었던 것 같았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그의 행보를 가벼운 놀림거리로 삼아도, 그가 이고 있는 무게가 실제로 가벼워지는 것은 아닐 테니.
B급 지휘관의 실력으로 여태까지 해왔던 모든 습관과 버릇을 버리고 매일의 저녁 시간을 불태웠다.
그는 스트리머도 프로게이머도 아닌, 한창 바쁠 20대 청년이지만 꽤나 진지하게 임했다.
그가 노력했다는 건 같이 플레이했던 아몬드가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처음 그의 실력과 마지막 날인 오늘의 실력을 비교해 보자면, 아예 다른 사람이 플레이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런 본투비가 지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써 인사를 전한다.
“와하하! 아 게임 갖고 왜 울고 난리! 여튼…… 제가 너무 못하는데. 여기까지 해주셔서 진짜 미안하고 재밌고 고마…….”
“본투비 님!”
“……예?”
본투비가 울먹이느라 말끝이 흐려진 틈에 아몬드가 얼른 말을 뱉었다.
“실력이 엄청 늘었어요.”
“……?”
“아직 아무도 말 안 해준 거 같아서요.”
조금 어색한 타이밍이었지만, 아몬드는 애초에 이런 일에 능숙하지 못하다. 그래도, 서툴고 투박하게라도 마음이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그…… 진짜요?”
본투비는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아몬드만 꿈뻑이며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다.
본인이 실력이 늘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아몬드는 끄덕이며 덧붙인다.
“그리고, 본투비 님은 게임을 재밌게 하잖아요.”
본투비는 이 힘든 여정을 이어가면서도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고. 늘 웃는 모습이었다. 게임을 진행하는 와중에도 그는 항상 즐거워 보였다.
누구나 게임을 이기려고만 플레이하지 않는다.
아몬드는 그런 사람을 하나 더 알고 있다.
‘풍선껌.’
풍선껌은 게임을 잘하지 못한다. 머리가 영리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아몬드는 그의 방송을 보며 많은 힘을 얻었다.
삶의 고난으로부터 잠시 대피할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때론 못한다고 열받아 할 때도 있었지만, 그 또한 지나고 보면 하나의 재밌는 과정이다.
그는 게임을 즐길 줄 아니까.
그 에너지는 스크린 너머로 보는 사람들에게까지 이어진다.
“그게 게임에선 제일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아몬드는 애초에 스트리머의 본질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었다.
게임을 재밌게 하는 것. 정말 즐겨주는 것.
지금까지 딱히 누군가에게 말해본 적은 없었으나 본투비에겐 말해주면 좋을 것 같았다.
“……!”
꿀꺽.
본투비는 마른침을 삼키더니, 눈이 한층 더 그렁그렁해진다.
그의 울음이 그치길 바라며 했던 말이지만, 오히려 반대의 효과를 낳아버린 듯했다.
“흐윽…….”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감사…….”
연신 고맙다는 말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애 좀 그만 울려라
-ㅠㅠㅠㅠ
-기억할게! 백투비!
* * *
승급전 마지막 판이 진행되고 있었던 무렵.
엠불 커뮤니티에도 역시나 글리젠이 굉장히 빨라졌다.
[아니 쟤 저격 아닌가?ㅋㅋㅋ]
[저격충 개같이 멸망ㅋㅋㅋㅋ]
[저격 맞긴 하냐?]
외성고가 과연 저격이 맞긴 하느냐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저격이라고 하기엔 너무 허점이 많고, 허무하리만치 빨리 패배해 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저격 아닌 거 아님?
└창병 러쉬 개구린데 그거 한 거부터가 저격 인증이지;
└뒤도 안돌아보고 1시대 러쉬 준비하긴함
어떤 이들은 창병 러쉬 자체가 저격에 대한 증거라고 했고…….
-저격이 아니라기엔 너무 타락했고, 저격이라 하기엔 너무 늦었다.
└뭔데 이 명언충 ㅅㅂㅋㅋㅋㅋ
└너무 늦었다(창병러쉬가) ㅋㅋㅋㅋ
-걍 창병 러쉬 한번 해보려다가 망한 거 같은데.
└걍 지나가던 한국인 1이었을 수도 ㅋㅋㅋㅋ
어떤 이들은 간만에 창병 러쉬나 한번 해보려던 선량한 시민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본투비는 저격뿐이 아니라 무려 방플까지도 이겨내고 승리를 거머쥔 것이지만.
커뮤니티 유저들이 이 사건의 진위를 알 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엠불에서 가장 흥미로운 반응이 하나 있었는데.
[본투비 갑자기 호감이라 생각하면 추천]
[날빌 속도 뭔데 ㅋㅋㅋ 개쩌는데?]
[이건 본투비가 압승이네]
본투비에 대한 호의적인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경기에서 패스트 궁병 러쉬의 스타트 시간을 무려 14초가량이나 앞당긴 게 큰 인상을 남긴 것 같았다.
[걍 저격충이 제일 병신같고 한심하면 추천 ㅋㅋ]
[B의 희망! 본투비!]
[날빌이고 뭐고 저격충 혼내주는 갓투비 그냥 사랑하면 개같이 추천ㅋㅋ]
저격러들을 비판하는 글을 넘어, 본투비가 쓰는 날빌에조차 가치를 부여했다.
그리고 마침내 외성고가 항복을 선언했을 때.
[날빌의 지배자 ㅈ투비! 인정한다!!!]
이런 글이 올라오며 추천을 우르르 받아버렸다.
-ㅁㅊㅋㅋㅋㅋ
-이명 지리네
-캬 날갈공명
└ㅁㅊㅋㅋㅋㅋㅋ
└날갈족 ㅋ
└날갈공명 ㅇㅈㄹㅋㅋㅋㅋ
그는 ‘날빌의 지배자’ 혹은 ‘날갈공명’ 등의 명예로운(?) 호칭을 획득하기도 했으며.
[여태까지 본투비 반응 호감인 점]
[본투비 재평가]
[날갈공명이 소름 돋는 점]
한 커뮤니티에서 한참 까이다가 버티고 버티면 받는 선물 같은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앞서서 했던 행동들도 전부 좋게 평가되는 것이다.
그들은 본투비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밝은 태도를 잃지 않은 점을 칭찬했는데.
이는 사실 그들이 욕하던 점이기도 했다.
-미친놈들 첨엔 ㅋㅋㅋ 대가리 꽃밭이라고 욕하더니 ㅋㅋㅋㅋ
└대가리 꽃밭은 약한 편이고 날것 그대로 대가리라고 함ㅋㅋㅋ
한번 호감으로 돌아서면, 모든 특징들이 좋게 보이는 법.
이런 반론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들은 애초에 언제 본투비를 욕했냐는 듯이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마저도 추켜세우기 시작했다.
└‘날것의 브레인’이…… 뭐 어쨌다는 거지? 넌 “날”의 칭호가 부끄럽나?
└날브레인 ㅅㅂㅋㅋㅋㅋ
└그 또한 “날”이지요……
└날! 날!
심지어 최근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날빌’의 뜻마저도 저들 마음대로 바꾼 것을 넘어.
도라애몬드와 본진구라고 놀림을 받던 것도 재평가해 버렸다.
-퉁퉁이들 존내 많네ㅉㅉ 결국 본진구가 도라애몬드와 에이슬이를 다 갖는 거 모르냐?
└ㅁㅊㅋㅋㅋㅋ
└A슬잌ㅋㅋㅋㅋ
└에이슬이 ㅁㅊ뭔가했네 ㅋㅋㅋ 결국 플러스는 유지 못하는거임?ㅋㅋㅋ
결국 원작의 만화 도라애몽에선 진구가 모든 걸 다 이루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지금의 본투비처럼.
-억까 퉁퉁이들은 집에 가라. 여긴 본진구가 접수했다.
└(대충 진구 중지 짤)
└ㅋㅋㅋㅋㅋㅋㄹㅇ
이어서 이들은 본투비를 욕하는 자들을 ‘퉁퉁이’라고 표현하며 몰아세우기도 했는데.
아몬드에 관한 칭찬들은 진짜였다. 꼭 그의 실력처럼 말이다.
12위) 누가 아몬드 활 잘 쏜댓냐? ㅡㅡ
이런 제목이 이슈글이라 클릭해 들어가 보면, 말을 타고 등장한 아몬드의 칼에 썰리고 있는 병사 사진이 나온다. 밑에는 ‘갑자기 달려와서 칼로 썰던데?’라는 문구가 써 있는 채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
-활만 잘 쏜다고 안했닼ㅋㅋㅋ
-ㅈㄴ 웃기게 죽었넼ㅋㅋ
이들은 아몬드가 단순히 양궁 선수 출신이기에 활만 잘 쏜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오늘 게임에서 확실히 체감한 것이다.
아몬드는 이제 국가대항전의 플레이어로서 상당히 큰 신뢰를 얻은 것 같았다.
[아몬드가 뛰는 국가대항전 존나 기대된다]
[오늘 아몬드 스크림 아니냐? ㄹㅇ 기대중]
[아몬드 스크림 관전 대기방]
유저들은 아몬드가 포함된 국가대항전 팀의 전력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아니, 기대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번 스크림이 사실상 국가대항전 팀의 전력을 최초로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상황인지라, 그 기대는 더욱 컸다.
[스크림 언제임??]
[스크림 시간 아는 사람?]
[오늘 스크림 공개한다고???]
[쿠키도 그럼 방송 나오냐? 대박이다]
.
.
.
오늘 스크림 시간을 물어보는 글들이 엠불에 우르르 올라오기 시작한다.
* * *
모니터만 빛나는 어두운 방 안.
희철은 미동도 없이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화면에선 아몬드가 말을 타고 내달리는 장면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지옥에서 돌아왔다! 아몬드! 개같이 부활!]
킹귤의 흥분 섞인 목소리도 계속 반복됐다.
구간 반복을 걸어놓은 것이다.
이는 희철이 뭔가 분석하고 싶은 장면이 있을 때 자주 쓰는 방식이다.
[지옥에서 돌아왔다! 아몬드! 개같……]
한 번 더 재생되고.
[지옥에서 돌아왔다! 아몬……]
또 재생됐다.
느리게도 재생됐다가, 클로즈업을 해보기도 한다.
이후, 그는 다음 장면으로 넘긴다.
아몬드가 활로 적 베테랑 기사를 잡는 장면이다.
크게 원을 그리며 돌면서 계속 활을 쏴서 결국 베테랑 기사를 잡아냈다.
그 장면 역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돌려본 후.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뱉는다.
“하아.”
그때 누군가 옆으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는다.
“자기야. 왜 그래? 뭐가 잘 안되는 거야?”
희철의 연인이다. 그녀는 커피를 내려놓으며 화면을 주시했다.
“이 사람 새로 들어왔다는 그 사람?”
“어.”
참. 별로 관심 없는 척하더니, 라고 하며 그녀는 희철의 안색을 다시 살핀다.
“이 사람 플레이가 마음에 안 드나 봐.”
“……그래 보여?”
“응. 자기 표정이 별로 안 좋잖아.”
“아쉬워.”
그 말에 연인은 그의 어깨를 감싸 쥐며 위로했다.
“엄청 잘하진 못하겠지. 이제 막 들어왔으니까. 하지만 치승이가 데려온 거니까 분명…….”
“우리나라는 이번 연도에도 결국 우승은 못 할 거야.”
희철은 계속 아몬드의 화면을 주시하며 말했다.
“자기야. 우승은…….”
우승이라니. 국가대항전 우승이 얼마나 불가능한 이야기인지, 희철의 연인도 알고 있었다.
우승을 못 할 것 같다고 좌절한다면 너무 쉬운 좌절인 셈이다.
그녀는 다시 한번 어깨에 얹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우승을 못 할 거라고 아쉬워할 순 없──”
“내년에 할 것 같아.”
“……뭐?”
그녀는 무슨 말인지 몰라 주춤했다.
“이번 연도에는 무리야. 이 사람. 아직 가르칠 게 많아.”
희철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방 안을 거닐었다. 꼭 초조한 사람처럼.
“전투 구도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지고, 지형을 쓸 줄도 몰라.”
“…….”
“하지만!”
이리저리 걷던 희철이 뚝 멈춰 섰다.
“내년이면 분명 우리가 우승할 거야. 이 사람이 그때까지만 있다면. 그리고 우리 팀도 그때 되면 더 완성도가 높아질 거야. 역대 최고의 드림팀이 될 거야.”
“……!”
그를 바라보는 연인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 그러면…….”
희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치승이가 제대로 골라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