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41화
49. 진짜 인정(2)
「신용 카드 한도 다 채워서. 그냥 요즘은 체크 카드만 써. 빌어먹을 프리랜서.」
이 말이 주혁의 머리에서 계속 빙빙 울리고 있었다.
지아는 신용 카드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방금 그거 체크 카드였지?’
방금 그 카드는 체크 카드였다. 스치며 봤지만 분명 기억한다.
점원이 말을 실수한 것 같았다.
보통 백화점에선 잔액 부족보다는 한도가 부족한 경우가 많으니 그럴 만하다.
사실은 잔액 부족이었던 거다.
그렇다면 지아의 그 표정이 이해가 된다.
‘왜…… 돈이 없지?’
지이잉. 지잉.
휴대폰이 울린다. 주혁은 알지 못한다.
한참 울리던 휴대폰이 멈추고 이젠 지아의 가방에서 진동이 울린다.
“아. 잠시 전화 좀.”
지아가 전화를 받는다.
“아, 응. 나랑 같이 있어. 아…… 그래. 알았어. 바꿔줄게.”
그녀가 옆으로 휙 휴대폰을 내민다.
상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주혁은 멍하니 대답한다.
“아 그래? 아…….”
그런데 상현이 전달하는 내용이 워낙에 어이가 없는지라 정신이 곧바로 돌아왔다.
“엥? 모, 모래숟가락이…… 뭐?”
상현의 말에 따르면 모래숟가락이라는 단톡방 멤버는 사실 아군이란다.
모래숟가락이라면 주혁도 누군지 안다. 시종일관 저격러들에게 시비를 걸었던 사람인데.
지금 들어보니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아…… 지아야 잠깐만.”
“응.”
그는 주차장을 가다 말고 백화점 내부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모래숟가락이 여기에 같이 찍혔나?’
1위) 아몬드 본투비 승급전 마지막 판 방플이었음 (증거 있음)
어느새 1위까지 찍어버린 게시글.
불길은 주혁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활활 타올랐다.
그럴 만도 했다.
이 게시글에는 단순히 방플에 대한 정황 증거뿐이 아니라 그간 이들이 조직적으로 저격을 해왔다는 증거도 있었고,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한 과정까지도 담겨 있었다.
반응은 당연히 뜨거웠다.
현재도 실시간으로 욕설이 달린다.
-ㄷㄷ 아예 저격팟을 만들어서 저격을 돌리고 있던 거네???
-날빌 하나 잡겠다가 초가삼간을 다 태웠누……
-ㅈㄴ 광신도 새끼들 지들끼리 물고빨고 난리도 아니었구먼ㅋㅋㅋㅋㅋㅋ
아몬드라는 큰 규모의 스트리머가 들어와서 시빌엠 게임에 관한 주목이 상당히 쏠린 상황에 벌어진 일이니.
엠불의 반응이 더 격한 게 당연했다.
-쪽도 이런 개쪽이 없는듯
-???: 오빠 엠불해?(경멸하는 시선) <<현실화되기 5초 전
└ㅁㅊㅋㅋㅋㅋ
└아…… 즐거웠다. 엠불.
유저들은 이 사건이 엠불 이미지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고까지 생각했다.
어쨌든 저 단톡방 역시 엠불에서 파생된 극단주의자들이 만든 것이니까.
이런 일이 터지면 늘상 그렇듯이 불난 집에 기름 붓는 듯한 게시글도 계속 올라온다.
[저 단톡방 나도 잠깐 들어갔던 곳인데 소름……]
[이게 별거 아니라고 넘어가려는 분들에게.]
[그냥 고발자 말대로 개같이 해산하자 ㅅㅂ 즐거웠다 엠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사건은 훨씬 악랄해진다.
결국 여론은 이렇게 흘러가 버린다.
-이건 엠불 측에서 뭔가 해야 할 듯?
└시빌엠에서 뭘 해야지
└일단 랭크 초기화부터 드가자~~!ㅋㅋㅋ
랭크 초기화까지 거론된다.
이 정도면 이들이 주장하는 형벌 중에선 양반인 편이다.
-랭크는 초기화시켜봐야 실력대로 다시 금방 오름. 오히려 mmr만 좋아질 기회 주는 거임. 걍 게임 3년 정지가 좋음
└ㄹㅇ걍 영정 먹여
└안구 정지는 어떰? 캡슐 홍채 인식할 때, 레이저 온도를 존나 높여서 쏴버리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임.
└ㅁㅊㅋㅋㅋㅋㅋㅋㅋ
└그건 정지가 아니라 취소인데?ㅋㅋㅋㅋㅋㅋ
여론이 격해지고 있다.
‘이거…… 일이 커졌는데?’
주혁은 곤란한 듯 머리를 한 번 쓸어넘겼다.
나머지 놈들이야 처벌이 마땅하다 해도 억울한 사람이 하나 있다.
‘모래숟가락이…… 여기 있네.’
주혁이 올린 게시글에 모래숟가락이 등장하긴 했다.
다만 그는 저격 활동을 하지 않았고, 시종일관 저들의 신경을 긁는 말만 했으니.
캡처본에서도 크게 이상할 건 없었다.
“휴.”
이 정도면 양호했다만…….
대중들은 그냥 스크린샷에 실린 멤버 전체를 불태울 심산이었다.
‘사실 스파이였다고 말해줘?’
모래숟가락은 치승이 심었던 스파이라고 말해야 할까?
글쎄…… 그게 어떻게 비칠지 의문이다. 그렇게 되면 김치워리어는 일단 저들의 행동을 꽤 오래 묵인한 게 된다.
본인이 고발을 했다면 괜찮았겠지만, 주혁이 고발하면서부터 그림이 이상하달까?
‘그럼 그냥 게시글 수정?’
주혁의 머리에 첫 번째 떠오른 생각은 치승의 말대로 수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모래숟가락이 나오는 부분을 다 지우는 거다.
‘안 돼.’
그러나 이 안은 바로 기각된다.
이미 원본을 본 사람이 몇인데.
왜 수정했는지 물어보면 뭐라 할 것인가?
차라리 주혁은 글을 하나 작성하기로 한다.
그는 결국 가방에서 작은 노트북 하나를 꺼내 들었다.
“지아야. 미안한데…….”
“어. 일 봐~”
지아는 예상했던 일이었나 보다. 이미 평온한 표정으로 옆에 앉아 올튜브를 보고 있다.
“후우. 그래. 고맙다.”
타다다닥.
주혁은 제목을 작성한다.
[방플 저격 단톡방에 대한 추가 자료]
그래. 증거를 더 제시한답시고 추가적인 캡처본을 넣는 거다.
대외적인 목적은 추가 증거 제시이지만, 사실 주혁의 목적은 ‘모래숟가락은 정상인이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 증거들 사이에 은근슬쩍 모래숟가락이 통쾌한 발언을 한 사진들을 끼워 넣으면 된다.
* * *
잠시 후.
주혁의 글이 등재된다.
[방플 저격 단톡방에 대한 추가 자료]
그냥 읽어보면 단순히 저격 단톡방에 대한 추가 자료였으나.
여기엔 교묘하게 모래숟가락이 그들을 비판한 장면들이 많이 섞여 있다.
-와 또 나오네
-파도 파도 괴담만……
-얘넨 진짜 ㅋㅋㅋㅋㅋ
처음 사람들은 추가 증거가 또 나온다는 것에 대해 기염을 토했으나. 점차 모래숟가락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저 중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말을 하고 있으니까.
-저기서 모래숟가락이 유일한 정상인이네 ㅋㅋㅋ
-모래숟가락이 제보인임?
└아님 제보인은 호날두
-모래숟가락 말하는 거 개사이닼ㅋㅋㅋㅋㅋ
└ㄹㅇㅋㅋㅋ
└샌드스푼좌……
점차 주혁의 의도대로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모래숟가락 혓바닥 매드무비냐?ㅋㅋ
-ㅋㅋㅋㅋ정상인도 있었나 봄
-단톡방에서 쟤네 4천왕? 만 ㅈㄹ했던거임.
이때다 싶어 댓글 몇 개도 끼워 넣은 주혁.
이제 이 글이 주목만 받으면 되는데. 그건 어렵지 않았다.
해당 글은 추천이 마구 박히며, 순식간에 이슈글로 등재됐다.
1위를 먹은 게시글의 다음 내용이니 당연한 일이다.
대박 난 마블 시리즈의 후속작이 나왔다는데 일단 보지 않을 사람은 적을 테니까.
주혁의 글 역시 금세 이슈글로 올라갔다.
그 결과, 엠불에 이런 글이 올라온다.
[제대로 공론화해서 처벌 들어갑시다]
제목도 살벌하지만, 작성자 이름도 무게가 있다.
바로 엠불에서 꽤 네임드 유저인 ‘패링’이다.
그는 일찍이 아몬드를 인정하는 듯한 글을 썼었고, 그 외에도 다수 엠불을 위해 좋은 일들을 했다.
그의 말은 주혁이 이슈글 몇십 개 보내는 것보다 여기선 영향력이 있을 터다.
주혁은 마른침을 삼키며 그 게시글을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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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커뮤니티가 주도적으로라도 처벌을 해야겠다고 느낍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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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까지 본 주혁은 순간 아찔했다.
모래숟가락까지 같이 끌려 들어가면 어쩌나.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다음 문단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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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톡방 자체는 별문제가 안 됩니다. 원래 예전부터 조금 극단으로 간 애들이 모여서 노는 톡방이었죠.
문제는 그 장소에서 너덧 명 정도의 유저들이 조직적으로 저격을 했다는 것이고. 저격에 실제로 가담한 사람부터 가담하겠다고 한 사람까지 처벌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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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글을 다 읽은 주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러면 모래숟가락은 빠져나갔다.
-ㅇㅈ~
-지지합니다
-안구 정지 가즈아~~~
패링의 의견은 많은 지지를 받으며 역시나 이슈글에 등재됐고.
엠불 운영진이 처벌의 정도를 구상해 게임사에 의견을 구하는 것으로 결정이 됐다.
처벌을 받기로 된 대상은 샤르르, AK47, 외성고. 이렇게가 확실했고.
나머지 후보자는 날빌심판자, 무지무지성 정도였다.
딱 필요한 인원들만 선발된 셈이다.
“후우.”
주혁이 등을 기대며 한시름 놓자, 지아가 묻는다.
“끝났나 봐.”
“응. 잘 풀렸어.”
일이 전체적으로 잘 풀렸다.
이 일로 인해서 앞으로 S+까지의 여정에 저격은 꿈도 못 꾸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또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게 하나 더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이런 여론이 생긴 거다.
-아니 쟤네 처벌은 둘쨰 치고 ㅋㅋㅋ 그럼 그동안 이런 조직적인 저격을 당하면서도 전승한 본투비랑 아몬드는 뭐임?
└ㄹㅇㅋㅋ
└시즌1238호 재평가……
-아니 마지막 경기 방플인데 본투비가 빌드 속도로 씹어먹었다고 ㅋㅋㅋㅋ 시발ㅋㅋㅋㅋㅋ 말 안되네 ㅋㅋㅋㅋ
└어?? 그렇네? 저격에 방플까지 이겼누 ㅋㅋㅋㅋㅋ
처음엔 오로지 저격러들의 추태에 대한 분노만 터뜨리던 사람들이, 점점 제정신으로 돌아오면서 피해자들에게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간 본투비와 아몬드가 헤쳐나온 과정이 본래 알려졌던 것보다 훨씬 더 험난한 것이었음을 깨달은 거다.
-A+랭크가 마음먹고 조지려고 저격에 방플까지 했는데 살아남은 본진구와 도라애몬드 ㅋㅋㅋㅋ
└환상의 듀오
└상남 2인조급 아님?ㅋㅋㅋㅋㅋ
└ㅁㅊㅋㅋㅋㅋㅋ
└상남 2인조 vs 하남 4인조
└ㅋㅋㅋㅋㅋㅋㅋㅁㅊ 그 상남이냐곸ㅋㅋ
주혁은 이쯤까지 본 후.
만족하며 노트북을 닫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아까 전 지아에게 가졌던 의문은 자연스레 다시 잊혀졌다.
* * *
오후 8시 반 경.
국가대항전 스크림까지 30분 전.
“흐아암.”
다시 잠들었던 상현이 또 일어났다.
“이번엔 제대로 일어났네.”
대항전 시작까지 딱 30분 남은 시점이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됐나…….’
그는 치승이 급히 부탁했던 일이 생각나, 엠불을 들어가 봤다.
모래숟가락이라는 사람이 억울하게 처벌받을 수도 있었다고 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글이 이런 식이다.
1위) 이번 사건 처형자 명단
다행히 명단에 모래숟가락은 없었다.
‘오.’
그리고 상현의 눈길을 끈 신기한 여론이 있었는데. 엠불이 다시 본투비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아몬드의 이야기도 함께.
[본투비도 재재평가 시급 ㅋㅋㅋ]
[이걸 이긴거라고? 전부?]
[아몬드 도랏맨ㅋㅋㅋㅋ]
이는 본투비와 아몬드가 조직적인 저격과 방플까지 뚫고 이겼다는 사실이 이제야 밝혀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더 이상 B와 A가 같다는 식의 논리의 재료로 본투비를 쓰고 있지 않았다.
[본투비는 B라고 볼 수가 없네 솔직히]
[이야 킵투비ㄷㄷ]
[탈투비]
즉, 이건 가짜가 아닌 진짜 인정이라는 것이다.
순수한 칭찬이었다.
이렇게 일이 좋게 풀리다니.
상현은 신기할 정도였다.
그 밑으로는 또 이런 글도 있었다.
5위) 오늘부로 엠불은 갓투비 강점기가 시작됐음을 선언합니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상현은 그렇게 생각하고 조금 스크롤을 내려보는데.
7위) 오늘부로 엠불을 ㅈ투비 강점기에서 해방됐음을 선언합니다!
바로 서너 시간 전에 강점기에서 해방이라더니, 이젠 또다시 강점기란다.
심지어 이름도 ㅈ투비에서 갓투비로 바뀌었다.
-순식간에 창씨개명 된 거 보니 강점기 맞누 ㅋㅋㅋㅋ
└ㅁㅊㅋㅋㅋㅋ
└역사 고증 무엇 ㅅㅂㅋㅋㅋ
-이게 이렇게 되냐 ㅋㅋㅋ
-갓투비는 이제 까방권이다 억까 쉑들 다 개같이 해산!!!
-투비님 ㅠㅠㅠ 돌아와 ㅠㅠ
상현은 기분이 좋았다.
세상 사람들이 본투비를 드디어 알아준 기분.
잠도 실컷 잤겠다.
상현은 오늘 스크림도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스트레칭을 한다.
잠시 후. 그는 캡슐 안으로 들어갔고.
[김치워리어: 아몬드 님! 갑시다!]
국가대항전 첫 번째 스크림이 시작됐다.
[조선 vs 잉글랜드]
상대는 잉글랜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