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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2부-146화 (426/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46화

51. 집중(3)

치승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그렇구나. 그냥 맞춰 쏜 거야.’

아몬드는 아마 그냥 지휘관의 호령에 맞춰서 쏜 것일 터다. 그야 아몬드는 조선 단궁을 처음 만져보니까, 자기 판단을 지휘관에게 맡겼던 거다.

“아몬드 선수 진짜 당황한 것 같은데요?”

옆에서 킹귤의 말을 듣고 아몬드 표정을 보니, 정말 그렇다.

저런 얼굴을 한 건 랭크전에선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근데 킹귤은 한 번 봤던 모양이다.

“제가 알기로 좀비 스쿨에서 겪은 화장실 대란 제외하고 이렇게 당황한 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걸 어케 앎?

-샤이 견과류단 킹귤……

-그게 머임

-앗 그건……ㅋㅋㅋㅋㅋ

“아몬드 선수가 이런 실수를 다 하네요! 그만큼 국가대항전이 긴장된다는 것이겠죠!?”

-실수가 아니라 쟨 원래 설명 안 읽어…….

-상남자 특) 3글자 이상 안 읽음.

-집중을 모르는 우리 아이! 어떻게 해결할까요!?

킹귤은 대충 실수라고 표현했으나, 치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몬드가 실수를 했다고 하기엔 적절치 않았다. 그는 특성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모를 수밖에 없었다.

‘간극…….’

이게 문제다.

우리 같은 너드 오타쿠들은 이게 문제야.

‘너무 시빌엠 고인물 기준으로만 생각했어.’

일반인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그렇게 스스로 되뇌었는데.

결국 안 된다.

치승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는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해설을 끼어들었다.

“실수라고 하기엔 좀 힘들죠.”

“예? 그런가요?”

“예. 이건 제 불찰입니다. 국가대항전 서버에선 스킬 설명이 진짜 작게 빠르게 지나가요.”

“아…….”

“왜냐면 고수들만 하는 게 국가대항전이니까…… 당연히 고려 안 하는 겁니다. 제가 이런 필수 스킬팁은 전달을 했어야 하는데. 제 입장에선 너무 당연한 스킬이다 보니…….”

치승이 국가대항전을 대비해서 아몬드에게 당부했던 오히려 조직력과 팀플레이에 관한 것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 때문이잖아.’

킹귤이 탄식한다.

“아…… 그럼 일단 이번 판 안에서는 앞으로도 모를 가능성이 높겠네요?!”

“예…… 아마 파악을 해야 할 텐데.”

“아. 지금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바로 시험해 보고 있습니다.”

파앙……

아몬드는 뭔가 자신의 활만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괜히 허공에다가 한 발 더 발사해 보고, 또 위로도 쏴본다.

파앙……

파앙……

뭔가 버그가 걸린 거 같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어차피 화살은 무제한이니 상관없다만.

“이거 괜찮나요?”

“모,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그냥 쏘면 딱 일반적인 단궁 사거리만큼 나가니까요. 아몬드 선수 입장에선 큰 상관 없을 겁니다!”

아몬드 입장에서야 상관없다만. 전방에서 지휘관 커피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보고 있다.

사납게 울부짖는 잉글랜드 전사들보다 커피의 얼굴이 더 무서울 지경이었다.

치승은 절로 눈이 질끈 감겼다.

‘아…… 이럴 수가.’

차마 이 꼴을 두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커피가 이걸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 치승은 대충 예상이 갔다.

이미 커피의 눈에 아몬드는 기행을 벌이고 있는 괴짜 초보 신입일 것이다.

* * *

‘?’

물음표.

이것만이 현재 커피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으리라.

처음 빗나갔을 때는 그나마 물음표에서 끝났지만.

‘……장난을 치는 건가?’

아몬드가 또 허공에다가 삽질하듯 화살을 쏘고, 또 쏘는 모습은 누가 봐도 기행이다.

혹은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오해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

특히나 커피는 이미 그가 자신의 머리 위로 화살을 쏘아 올려 자결하는 걸 대표적인 스트리머 리액션으로 보여준다고 알고 있었다.

‘설마 방송을?’

대형 스트리머들을 상대해 본 적이 없는 커피로서는 그가 설마 지금 이 순간에도 방송을 신경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별생각이 다 스쳐 갔다.

그의 평소 성격 같아선 다가가서 ‘릴을 잘한다고 이것도 잘하는 건 아니야’라며 한 소리 해주고 싶었으나.

‘아니지. 쿠키 님이 최대한 냅두라고 했으니.’

아몬드를 방치하는 건 이번 스크림에서 지휘관들에게 내려진 꽤 중요한 명령 중 하나였다.

순수한 데이터를 모으는 것. 쿠키는 그걸 꽤 중요시하는 지휘관이다.

그사이 아몬드는 테스트를 거의 마쳐갔다.

‘사거리가…… 이쯤인가.’

일단 확실하게 활 사거리가 다른 조선 궁병들보다 짧다는 걸 파악했다. 빠른 테스트를 위해 활시위를 오래 당겨보지 않아서 집중 팩션을 알 수는 없었다.

‘음…….’

그는 혹시 뭔가 놓친 게 있나 싶어서 채팅을 슬쩍 봤으나. 애석하게도 이 타이밍엔 그에게 뭐라 하거나 웃기다는 채팅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여기서 스크롤까지 왔다 갔다 하며 찾을 시간은 없었다.

당장 저 앞에 잉글랜드의 야만 병사들이 한 무더기다.

활 사거리를 원상태로 돌리는 방법을 찾기 전에 저들의 도끼나 창이 아몬드 목을 칠 확률이 월등히 높았다.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는 중에도 대부분의 전사들은 죽지 않았다.

퍼버버벅……!

화살이 다 방패에 막히고 있으니까.

‘저 방패벽…… 아니, 방패돔…….’

저들은 방패를 ‘돔(Dome)’처럼 만들어서 사방을 방어했다.

방패벽 진형의 응용이었다.

‘저걸 어떻게 뚫는다?’

잠시 고민해 본 아몬드.

‘아.’

그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어차피 앞으로 가야 하잖아.’

그는 궁병인 주제에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 * *

한편, 커피는 머릿속에서 아몬드에 대한 것을 최대한 지워내고 있었다.

일단 이 전투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스트리머는 역시 관종에 불과하다.

저런 짓을 하는 게 재밌다고 생각하겠지.

커피는 입술을 짓씹었다.

‘재미로 둘까 보냐…….’

그에게 국가대항전은 단순히 재미로 치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자신에겐 그렇다. 모두가 본인의 가치에 공감할 순 없어도, 존중은 원한다.

최소 조롱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시선을 다시 잉글랜드의 야만병사들에게 돌린다.

척. 척.

사방을 방패로 막은 뒤 차근차근 진격해 오는 모습.

‘돔형 방패벽…….’

척 보기에도 화살로는 뚫는 게 불가능해 보이는 진형이다.

이게 게임이라 화살이 무제한이니 망정이지 현실이었다면 화살이 아까워 쏘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여기선 화살을 계속 쏘면서 적의 진격을 그나마 늦출 순 있었다.

지휘관이 머리를 짜낼 시간을 번 셈이다.

‘내가 돌아 들어가서 몸으로 무너뜨린다.’

화살로는 못 뚫는다.

그럼 결론이 났다.

“히랴아!”

그는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지휘관인 자신만이 현재 말을 타고 있으니. 달리 누가 하겠는가?

아마 쿠키도 그걸 고려해서 자신을 배치한 것일 터.

지휘관들은 방어력과 체력 보너스가 있다.

커피는 현재 이 역할에 최적이 바로 자신이라는 걸 확신했다.

아마 조선 플레이어들은 잠시 지휘관이 공백이 돼도 금세 다른 지휘관을 통해 적응해서 전투를 이어갈 것이다.

다그닥! 다그닥!

말이 거칠게 질주한다.

쏟아지는 화살비 속으로.

“내가 방패벽을 뚫겠다!”

우렁찬 외침.

그러자, 쏘아지던 수많은 화살들이 경로를 바꾸기 시작했다.

후두두두둑……!

마치 보이지 않는 길이라도 있다는 듯, 화살들이 지휘관만 피해서 날아간다.

어지간히 훈련해서는 나올 수 없는 팀워크.

그런데, 그 환상의 팀워크를 뚫고 나온 자가 하나 있었으니.

“?”

파아앗!

그는 궁병 대열을 벗어난 것도 모자라 미친 듯이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커피의 눈이 번쩍 뜨인다.

[아아몬드]

그는 아몬드다.

‘뭐 하는…….’

사거리를 늘리는 법을 몰라 앞으로 나와야만 하는 아몬드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커피.

‘따로 명령을 내려야 하나?’

아군과 호흡을 맞추지 않고 달리면 아군 화살에 고슴도치가 될 수도 있었다.

아군 궁병들은 아몬드가 튀어 나갈 걸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과연 저 궁병들이 갑자기 튀어나온 신참 하나를 위해 화살 경로를 굳이 바꿔줄지조차 의문이었다.

‘이런.’

그러나 남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지휘관이다아!”

잉글랜드의 병사들이 지휘관인 커피를 보고 눈을 빛내고 있다.

스스슥!

방패 돔 사이사이로 창이 고슴도치처럼 솟았다.

커피는 경로를 틀어야 했다.

저기로 부딪혔다간 진형 파괴와 동시에 꼬챙이가 되어 죽을 거다.

“히랴아!”

죽더라도 좀 의미 있게 죽어야 하는 게 지휘관이라는 포지션이다.

그는 방패돔의 근방을 빙 돌아가며 창을 치켜들었다. 후방은 분명 비어 있을 터.

‘후방으로 친다.’

방패벽의 후방부터 치고 들어가 진형을 망가뜨리면 도리가 없을 것이다.

커피는 정확하게 머릿속에 루트를 그리며 내달렸다. 레일을 깔아놓은 듯 깔끔하게 돌기 시작하는 말의 머리.

그런데─

“!?”

“와봐!”

방패벽의 후방.

적은 이미 대기 중이다.

‘한 명을 빼놨어?’

창을 길쭉하게 내밀고 말로 돌진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창병은 기본적으로 기병의 차징을 저지할 수 있다. 그게 그들이 카운터인 이유다.

‘어쩌지.’

그때, 해결책이 날아왔다.

──휘이이이익!!

뱀 같은 소리를 내며 투사체 하나가 꺾여 온다.

‘화살?’

화살이다.

푸욱!!

“컥!”

방패돔의 뒷면으로 돌아서 들어온 커브샷. 그게 그를 막아서던 창병의 목 옆에 박혀 반대편으로 뚫고 나와버렸다.

푸슛!

‘뭐야. 커브샷……?’

커피는 고개를 치켜들어 방패벽 너머를 바라봤다.

‘아아몬드……?’

화살의 주인은 아아몬드였다.

그가 어느새 방패벽으로부터 채 15미터 정도 떨어진 위치까지 와있었다.

‘아니, 언제 저기까지 왔어?’

커피는 그의 활 솜씨보다, 그가 살아서 저 자리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어떻게 살아있어? 저 화살비 속에서?’

그의 선배들이 관용을 베풀어 화살 경로를 바꿔준 걸까?

‘아니야.’

아니었다.

몇몇은 바꿔줬다 해도, 대부분은 그대로 날아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휘관 쪽 경로도 막힌 마당에 아몬드까지 피해서 쏘라는 건 무리였다.

그런데도 아몬드는 살아있었다.

그는 화살을 피하고 있었다. 아군의 화살을 피하면서 계속 달려와서 커브샷으로 후방의 창병을 죽인 것이다.

‘…….’

커피는 혼란스러웠다. 아몬드가 어떻게 이 작전을 예상하고 후방으로 화살을 날린 걸까?

계속 고민해 봐야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질문이 잘못됐다.

아몬드는 그저 정면이 막혔으니 뒤로 화살을 날린 것뿐이다.

근데 그 후방에서 커피를 막아서던 자가 얻어걸려 맞은 것뿐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결과는 비슷했다.

아몬드 덕분에 이제 커피를 막아서는 창병은 없다.

‘지금이다!’

커피는 말의 속력을 더 올렸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또 다른 창병이 후방을 마크할 것이다.

“으아아아아!”

고함과 함께 온몸으로 부딪혀 버린다.

콰아앙!!!

말과 사람이 뒤엉키며, 방패벽이 우르르 무너졌다.

“크아악!”

“지휘관이다! 죽여!!!”

퍼억!

퍼어억……!

잉글랜드 병사들의 도끼와 창이 커피를 후려쳤다.

커피는 창으로 적을 찌르는 대신, 위로 치켜든다.

“쏴라아아아!!!”

파바바바방──

수많은 파공음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가차 없이 화살비가 내려오며 잉글랜드의 야만 병사들의 살갗을 뚫어버렸다.

──퍼버버벅!

겨우 다시 방패를 들고 뛰쳐나가는 병사, 서로 발이 엉켜 밟혀 죽은 병사.

많이도 죽어 나갔다.

그중에 커피도 포함이었다.

털썩.

그는 전면에 화살을 수도 없이 맞으며 기쁘게 전사했다.

죽기 직전까지도 잉글랜드 병사 하나라도 더 찌르려다가 죽었다.

“지독한 새끼.”

“으…… 한국식 플레이 진짜…….”

“지옥에나 가라!”

잉글랜드 병사들은 대혼란.

그러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상황을 정비한다.

“적은 지휘관이 죽었으니! 혼란이 있을 거다!”

그는 커피를 죽인 자였으며, 잉글랜드의 유명한 ‘장궁의 제이드릴’이라 불리는 지휘관이다.

“우린 이미 거리를 많이 좁혔다! 뛰어라! 한 놈이라도 저승길 동무로 데려가란 말이다아!!!”

잉글랜드 병사들은 절반 이상은 아직 살아 있었고.

궁병들과 거리만 좁히면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아직 잉글랜드가 승리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가자아아아!!!”

“제일 지독한 새끼가 죽었으니! 우리가 이긴다!!”

그러나 제이드릴은 알지 못했다.

그들이 뛰어가는 경로 옆쪽 한구석의 수풀.

진짜 지독한 놈이 숨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는 걸.

아몬드는 방패벽을 무너뜨린 후, 적들의 돌진을 피해 옆 수풀로 몸을 피했던 것이다.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 적들은 후방에서 뛰어든 커피를 죽이느라 여념이 없었으니까.

기리릭.

그는 숨어서 천천히 시위를 당겨 숨을 골랐다.

처음엔 가장 가까이 있는 자를 노렸으나.

‘아니야.’

적들이 최대한 늦게 위치를 알아채야 하니, 가장 멀리 있는 자를 향해 표적을 바꾼다.

당겨놓은 활시위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초점만 움직였다.

그 순간.

기이이잉……!

그의 손 끝에 하얀 빛이 희미하게 모이기 시작했다.

아몬드의 눈이 커진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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