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48화
52. 막중한 책임(2)
아몬드는 수풀에 숨어 있었고, 제이드릴은 그 유명한 장궁 대신 창과 방패로 무장한 채였다.
상성은 아몬드가 우위.
자리도 아몬드가 우위였다.
“아몬드! 제이드릴과 마주쳤어요!”
“어떻게 하죠? 저거 제이드릴이면! 쉽게 떨쳐내진 못할 겁니다! 지휘관이잖아요!”
문제는 직책.
지휘관이라는 직책을 가진 터라 체력과 방어력이 월등하다.
일대일 대결로는 승산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나마 아직 잉글랜드가 1시대라! 장궁이 아닌 창과 방패인 게 다행입니다!”
“그, 그게 다행인 걸까요?”
“예?! 장궁으로 유명한 플레이어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아몬드 선수 입장에선 장궁이 더 나을 겁니다. 화살은 날아오면 피할 수 있으니까요.”
“예!? 얘기가 그렇게 되는군요?”
릴에서도 있는 일이다.
어떤 화신 A가 B의 완벽한 카운터라고 하더라도, 희한하게 특정 숙련도를 넘어선 챌린저 상위권의 경기에선 B가 오히려 A의 카운터가 된다.
서로의 플레이 이해도에 따라 오히려 상성이 역전되는 거다.
“그렇죠! 여기선 창병이 궁병보다 이동속도가 빠르거든요! 그러면 제이드릴은 방패로 아몬드 화살을 다 막으면서 붙기만 하면 이긴다는 말이에요! 심지어 지휘관이라 몇 대 맞아도 상관없죠!”
커브샷도 반응해서 막는 정도의 실력자다.
안 보이는 곳에서 기습하면 모를까, 보이는 데서 활을 쏘면 아마 방패로 다 막을 수도 있어 보였다.
설사 그걸 피해서 맞힌다고 해도 아몬드는 같은 짓을 두어 번 더 반복해야만 적을 죽일 수 있다.
‘죽일 순 있어. 하지만…….’
시간이 끌리게 될 거다.
그리고 시간은 조선이 아닌 잉글랜드의 편이다.
‘판단을 해야 된다.’
아몬드는 잠시 고민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제이드릴은 빠르게 뛰어오고 있었는데.
파앗!
갑자기 아몬드가 수풀을 박차고 나가 뛰기 시작했다.
아군들의 진영으로.
“여기서 그냥 뛰어나가 버리네요!? 안전한 수풀을 버립니다!?”
“엄청 노출이 되는데요! 적들이랑 나란히 달리게 됐어요!”
적들의 측면에 있다가, 그들과 같은 방향인 아군 진영으로 뛰다 보니 나란히 뛰게 된 아몬드.
“거짓말 좀 보태면 지금 적들은 아군인가 할 거예요!”
-ㅋㅋㅋㅋㄹㅇ
-저게 뭐얔ㅋㅋ
-뭐지? 빤쓰런??
“자기 진영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 같습니다! 아몬드!”
“근데 제이드릴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옵니다아!”
아몬드도 죽어라 뛰었지만.
상대의 속도가 더 굉장했다.
아마 이건 들고 있는 무기에 따른 페널티다.
“근접 무기를 들고 있으면 더 빠르다는 게 이 게임의 시스템이에요!? 이거 감안한 건가요!?”
타다다다닥!
놈은 무서운 속도로, 기계처럼 거리를 좁혀왔다. 언젠간 따라잡힐 게 자명했다.
‘그렇다면…….’
스윽.
아몬드는 화살통에서 동시에 화살 4개를 각각의 깍지에 끼워 꺼낸다.
‘이상한 스킬은 포기.’
그는 그걸 따라오는 제이드릴을 향해 조준하지 않았다.
휙.
상체를 우로 틀어 돌격하고 있는 잉글랜드 병사들을 향했다.
파바바방!
순식간에 쏘아진 4개의 화살이 차례로 날았다.
퍼억!
퍼버벅!
돌격하는 잉그랜드 병사 셋이 즉사하고, 하나가 넘어진다.
전혀 집중 팩션의 혜택을 받지 못했음에도.
“죽었습니다아! 맞혔습니다! 이런 난장판에서!”
연사로 쏘는 화살 중 그 무엇도 빗나가질 않고 각자가 다 다른 타겟에 제대로 박혀 버린다.
이러니 킹귤이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집중 팩션이 뭐 어쩌고 저째!? 상남자 특! 그냥 가서 쏴아아!”
-ㄹㅇㅋㅋ
-엌ㅋㅋㅋ
-무쳤누……
-내가 뭘 본 거냐.
무슨 기관총처럼 적을 쓰러뜨리는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였으나.
아몬드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화살통으로 다시 손을 가져갔다.
‘너무 많아.’
놀라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었다. 처리해야 할 적이 산더미다.
곧바로 다시 사격에 들어간다.
파바바방!
이번엔 달려가던 네 명의 병사가 나란히 데구르르 굴러 버린다.
즉사다.
네 명 전부.
“아니이이이! 다 죽어요! 다아아!”
킹귤이 몸부림을 치며 외쳤다.
-본인이 죽는거?ㅋㅋㅋㅋ
-엌ㅋㅋㅋ
-킹귤님 잉글랜드에 가족이 있나요?
-다아아ㅏㅏ 죽어ㅓㅓㅓ
“집중 팩션을 안 써도 한 방이 뜹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김치워리어 님!? 이거 또 핵으로 신고당해요! 우린 남한인데!!”
“예! 핵은 아니구요! 급소의 중앙에 가까운 곳을 맞힐수록 대미지가 배로 솟아서요! 복리의 마법이죠!”
“예!? 급소의 중앙에 가까울수록이요!? 단궁 대미지로 즉사시키려면…….”
“예! 정중앙에 맞는 겁니다!”
-킹덤의 아들 아몬드 ㄷㄷ
-유사 퍼펙트샷
-와 ㅋㅋㅋ
-킹~~~ 너네나 못이겨! 덤~~
-오진다;
“아니, 달리면서 쏘는데 그걸 맞혀요!?”
그러는 중에도 아몬드의 화살은 계속 쏘아졌다.
파바방!
파방!
정확도가 점점 올라가는지, 이젠 즉사 비율이 거의 9할.
“아아! 말하는 순간에도 계속 죽어요!!”
활시위를 당기고 놓는 게 어찌나 가볍고 부드러운지.
“계속! 계에에속!”
킹귤은 이걸 하프 연주에 비유한다
“꼭 하프 연주자처럼 활시위를 계속! 튕겨댑니다!”
티리링~!
킹귤이 어느새 하프를 소환해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물론 음은 엉망이었다.
“죽음의 하프예요! 죽음의 하프! 튕길 때마다 적의 머리통이 부숴집니다아!!”
-ㅁㅊㅋㅋㅋㅋ
-지옥에선 온 네이밍센스
-죽음의 하픜ㅋㅋㅋ
-얼탱이가 없네 ㄹㅇㅋㅋㅋㅋㅋ
-억지 멈춰~~
이 정도의 쇼를 보여줬기 때문일까?
관전 방에는 흔치 않은 후원이 터져나온다.
빠바밤!
[디오니소스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아몬드. 너 때문에 머리가 다 깨져버렸으니까 책임져]
킹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1만 원이 개별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후원이라는 게 흐름을 타기 때문에 한 번 들어오는 거 자체가 중요하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ㅁㅊㅋㅋㅋ
-앗ㅋㅋㅋㅋ 오랜만이넼ㅋㅋ
-흥이 아니라 머리갘ㅋㅋㅋ
-이걸?
킹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예! 디오니소스 님!”
……라고 외치더니, 하프를 마구 튕기기 시작했다.
광란의 연주였다.
마구 머리를 흔들며 있지도 않은 리듬이 있는 듯이 온몸을 비튼다.
-돌겠닼ㅋㅋㅋ
-헤비메탈이냨ㅋㅋㅋㅋ
-해드 뱅잉 하프ㅋㅋㅋ씹ㅋㅋ
-누가 브금좀ㅋㅋㅋ
-이게 1만원 리액션?!
킹귤이 옆에서 어벙하게 있는 김치워리어를 엉덩이로 툭, 치며 눈치 주자.
그제야 치승도 사태를 파악하고 일어나서 떨떠름하게 몸을 흔들어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왘ㅋㅋㅋㅋ
-순발력 무엇ㅋㅋㅋㅋㅋ
-이 자식도 광대였엌ㅋㅋㅋㅋ
흔치 않은 치승의 춤사위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브금술사 님이 2천 원 후원했습니다.]
[음원 후원 - 신청하신 헤비메탈입니다.]
음악 후원까지 들어오자, 킹귤은 이때다 싶어 머리를 더 거세게 흔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죽어어! 죽어어어!!”
“주, 죽어어! 죽어!”
광기가 전염된 건지, 치승도 덩달아서 따라 소리쳤다.
그러자 진짜 잉글랜드 병사들이 우르르 죽기 시작했다.
-와 진짜 죽었엌ㅋㅋㅋ
-어이 털리네 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죠?
-엌ㅋㅋㅋㅋ레전듴ㅋㅋㅋㅋ
-진짜 와르르 죽는게 개웃기넼ㅋㅋㅋㅋ
[??? 님이 5천 원 후원했습니다.]
[아몬드의 활쏘기는 정말 굉장한데? 아름다운 재능에 축복을!]
[어이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아몬드가 광대? “진짜” 앞에선 그저 숙연해질 뿐……]
* * *
제이드릴의 눈이 흔들렸다.
‘연사를 저렇게?’
놈이 쏘는 화살은 점점 빨라졌다.
파바방!
파방!
연사를 시작한 것이다.
이러면 집중 팩션은 안 쓰겠다는 소리.
‘대미지가 부족해야 하는데…….’
조선의 궁병이 무서운 이유는 집중 팩션 때문이다.
파괴력이 증가해서 날아오는 화살은, 경장갑을 입은 채라면 급소 근처에만 맞아도 즉사다.
저렇게 빨리 쏴버리면 집중의 파괴력 증가 효과를 받을 수 없다.
분명 그럴 텐데.
“으아!”
“젠장!”
쿵!
털썩……!
병사들이 단박에 쓰러진다.
‘……뭐?’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인정할 수가 없는 거다.
뭐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인지 안다.
원거리 대미지 계산 매커니즘 때문이다.
‘급소 정중앙을 타격하고 있다? 달리면서?’
급소의 중앙에 가까운 곳을 타격할수록 대미지가 배로 솟는다.
양궁 과녁으로 따지면 한 칸씩 안쪽으로 들어올 때마다 1.5배로 대미지가 계산되는 거다.
즉, 완벽한 중앙을 타격하면, 대미지가 복리의 마법으로 불어난다.
경장갑은커녕 맨몸이나 마찬가지인 잉글랜드 1시대 야만 전사들은 당연히 즉사다.
‘그건 말이 안 되는데?’
급소 정중앙을 맞힌다니.
그냥 급소를 맞히는 것도 힘든 일인데. 정중앙을 맞히는 건 정말 완벽한 기회에나 가능한 이야기지. 이렇게 먼지 휘날리며 뛰어다니는 상황에선 불가능하다.
골프에서 매번 홀인원을 치는 프로가 있던가?
그딴 게 있을 리가 없고, 가능해서도 안 된다.
‘심지어 놈은 달리고 있는데?’
놈은 달리면서, 조선의 화살은 피하고, 본인의 화살은 정중앙을 맞히고 있다.
아몬드의 뒤통수를 보고 있는 제이드릴의 인상이 사납게 굳었다.
인정할 수 없다.
‘이게 가능하다면…… 대체 난…….’
땅바닥을 딛고 달리는 그의 발에 힘이 꽉 들어간다.
타악!
타아악……!
점점 속력이 붙었다.
이제 거의 다 따라잡았다.
궁병은 기본 속도가 느려서 영원히 도망갈 순 없다.
‘놈은 내가 직접 잡는다.’
스윽……!
창을 높이 치켜든 그는, 그대로 무게를 실어 아몬드의 뒷목을 향해 내질렀다.
그 역시 급소의 중앙을 노린 것이며, 적의 반응은 완벽하지 못했다.
아니, 거의 하지 못했다.
‘죽어!’
놈은 화살을 쏘는 거에 너무 집중한 것이다.
여기서 끝낼 수 있다.
그런데─
측면에서 갑자기 강한 충격이 전해졌고.
──퍼버버버벅!
살갗이 수도 없이 뚫리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좌로 쭉 밀려났다.
몸이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아몬드에게서 멀어졌다.
“!?”
너무 흥분해서 큰 동작을 한 탓에, 조선 궁병들이 여전히 그를 노리고 있으리란 걸 잠시 잊어버렸다.
적은 눈앞에 있는 저 녀석 하나가 아니라, 조선 궁병 전체라는 걸.
분명 알고 있었는데.
분명……!
‘아.’
털썩!
제이드릴은 바닥에 쓰러진다.
체력이 없다.
급소에 맞은 건 거의 없다 쳐도 수십 발을 한 번에 맞아버렸으니.
‘수십…… 발?’
그러고 보니 왜 수십 발을 나한테 쏜 거지.
병사들이 돌진하고 있을 텐데?
유령이 된 제이드릴은 그제야 상황을 깨닫는다.
‘!’
이미 자신의 병사들은 전멸했다.
남은 게 자신뿐이었던 것이다.
‘……허.’
허무했다. 치욕이다.
상황을 이렇게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흥분했었단 말인가?
내가?
그의 시선이 아몬드에게 향한다.
“하아. 하아.”
그는 그제야 멈춰서 숨을 헐떡인다.
“안 쏴주는 줄 알았네.”
그는 제이드릴의 공격에 반응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애초에 아군을 믿고 그냥 달렸던 것이다.
등을 돌리고 뛰고 있던 자신보단 아군이 쏴주는 게 훨씬 정확하니까.
‘이런…….’
완전히 당해버렸다.
[이쪽 작전은 실패입니다.]
제이드릴 총지휘관에게 소식을 전하고, 이만 하늘 위로 올랐다.
지휘관은 한 번 죽으면 지휘권을 다음 타겟에게 넘겨주고 부활할 수 없으니.
여러 버프를 받는 대신 큰 리스크가 있는 셈이다.
[괜찮아. 아델왈드는 완승했다. 지휘권은 다음 순번으로 넘기겠다.]
[예.]
다행히 이 전투를 제외하곤 상황이 좋은 모양이다.
아마 전쟁은 이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럼에도 제이드릴은 방금 자신이 따라가던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전혀 못 보던 얼굴.’
기분 탓일까?
저자는 신예처럼 보인다.
‘그럴 리가. 한국에 이런 플레이어가 새로 나올 수가 없는데.’
그는 머리를 휘저으며 치를 떨었다. 정말 그의 예감이 맞아버릴까 봐.
저런 플레이를 하는 신예라니.
아무런 데이터도 없는데, 실력은 베테랑보다 위?
그보다 무서운 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