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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2부-150화 (430/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50화

53. 이 몸 등장(1)

다음 날 아침.

“으아으아악!”

악몽을 꾼 상현이 기상한다.

그는 다급하게 휴대폰을 쳐다보고는.

“……하.”

아까 전 집중을 못 한다며 양궁 코치님께 물구나무로 등산하라는 벌을 받고 있던 게 악몽임을 알게 된다.

‘코치님…… 그 집중이 아니라니까요…….’

상현은 집중 팩션을 처음에 모르고 있었던 게 어지간히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요즘 꿈자리가 뒤숭숭한가 보다?”

주혁은 놀란 얼굴로 문 근처에 서있었다. 아마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모양이다.

“아…….”

어디서 말하기도 쪽팔린 꿈이라, 상현은 그냥 어색하게 웃어넘겼다.

“난 또 무슨 사생이라도 쳐들어온 줄 알았어.”

“……그럴 리가. 사생도 여기 계단 오르다가 그만둘 거야.”

푸하하.

주혁은 맞는 말이라며 웃었다.

“이사 가면 어쩌냐. 사생 쳐들어오기 쉬워져서.”

“음…….”

아몬드의 사생팬. 그런 게 진짜로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데. 둘은 아침부터 이 주제로 이러쿵저러쿵 실없는 토론을 벌였다.

덕분에 상현은 잠에서 다 깼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선다. 거실 한구석 벽면 옷걸이에 정장이 떡하니 걸려 있다.

‘……그렇지.’

오늘이 시상식이다.

쿵. 쿵.

심장이 이상하다.

트리비 시상식이 뭐라고, 긴장이 된다.

요즘 들어 심장 박동이 잘 제어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오늘 저녁까지는 스케줄 없다고 하니까. 푹 쉬자.”

상현의 시선을 눈치챈 주혁이 마음을 느긋하게 먹으라는 듯 말해준다.

“아…… 어. 그래?”

“응. 쿠키 님 쪽에서 그렇게 먼저 제안했다고, 치승 씨가 그러던데.”

“치승 씨?”

“김치승. 김치워리어.”

“……아.”

“아니, 까먹었냐?”

“아침이라.”

상현은 그게 별거냐는 듯 대충 대답하고는 간만의 아침 루틴을 챙기러 옷장을 연다.

조깅을 해서 마음을 좀 달래보려는 것이다.

지이이익.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은 그가 점퍼를 턱 끝까지 올린 후, 현관을 나선다.

“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온다.”

“조금? 바람 많이 쐬고 올거다. 지금 날씨를 봐라.”

주혁의 일침에도 상현은 휭 나가 버렸다.

텅……!

바람 세기에 강하게 닫힌 현관.

“…….”

집에는 주혁 홀로 남았다.

‘저 자식은 무슨 몸이 강철인가.’

그는 닫혀 버린 현관문을 지긋이 보다가 말고는 다시 요리에 집중한다.

치이이이…….

두부부침이 고소한 내를 풍기며 구워지고 있다.

하나 주혁이 보기엔 그리 완전하진 않은 모양이다.

‘엄마가 해주는 게 더 낫네.’

원래 할 줄 모르는 요리인데. 어머니가 해주시던 게 생각나 한번 도전해 봤다.

탁.

그는 적당히 구워진 두부를 접시에 옮겨 담고 간장에 고추 마늘 등을 적당히 곁들인 양념장을 주욱 붓는다.

그것을 식탁에 올려놓은 후.

주혁은 남은 냄비로 시선을 돌렸다.

이 냄비는 찜기다. 선물로 들어온 보리굴비를 찌고 있었다.

보통 굴비와는 다르게 굽지 않고 찌는 거라 들어 이렇게 찌고는 있는데.

「이건 쪄서 녹차랑 같이 밥 말아가지고 딱 올려 먹는 거예요.」

조금 걱정이다.

보내준 사람이 요리를 잘 아는 것 같진 않았다.

「아하하. 물론 나도 그냥 펑크 본사에서 들은 거예요. VIP들 선물 돌릴 때 설명 드리라고. 에헤이~ 나도 한번 못받은 걸…….」

전화를 통해 들어서 그의 눈을 볼 순 없었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그의 눈이 이 선물을 향하는 것 같았다. 입맛을 다시며.

‘연말이라고 펑크에서 이런 걸 다 주네.’

그렇다.

이 선물을 보낸 사람은 오 실장.

펑크라는 대형 게임 플랫폼에서 파트너인 아몬드를 담당해 주고 계신 분이다.

그분이 미호, 풍선껌 등도 함께 담당하고 있어, 난트전의 벌룬스타즈를 만들어준 분이기도하다. 상현과 주혁에겐 꽤나 귀인이다.

그런 그가 간만에 연락이 오더니 선물을 보냈다는 소식을 전했다.

물론 서로 목소리가 닿은 김에 앞으로 들어오는 이야기도 더 나눴다.

광고 계획이나 시빌 엠파이어 관련 컨텐츠에 관해서.

「아니, 아몬드 참여 이후로 시빌엠 쪽 구매량이 꽤 상승했습니다? 하하.」

펑크사에서 시빌 엠파이어 구매량이 늘고, 국가대항전에도 관심이 생겨 뭔가 해보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국가대항전 말이야. 지금 잘될 거 같으니 하는 말이 아니라, 전부터 우리는 이게 꽤나 포텐이 있다고 보고 있었거든요?」

특히나 국가대항전은 게임계에서는 꽤 주목하고 있던 컨텐츠란다.

「한국에서만 인기 없다뿐이지, 세계적으로는 꽤 큰 팬층도 있고. 중국에선 이게 난리거든요. 게다가 한국에서도 아재들은 이걸 또 좋아라 해요.」

딱히 게임에 대한 지식이 있지 않아도, 창과 칼, 그리고 활로 싸우는 나라별 전투는 충분히 스포츠로서 큰 메리트가 있다.

「우리 예전에 국궁 쏘러 가자고 했던 이사님 기억하시죠? 그분도 글쎄 국가대항전 꼭 챙겨 보는 분이에요.」

심지어 펑크의 이사 중 한 명이 개인적으로 이걸 챙겨 본단다.

상현도 만난 적이 있던 그 이사이다.

‘한 이사…….’

주혁도 그에 대해서 조금 조사를 해본 바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한 사람이었지.’

그는 펑크 코리아가 아닌 본사 출신으로, 그가 펑크사 그리고 게임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국내에선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그런 사람이 개인적으로 챙겨 보는 게 국가대항전이란다.

국궁까지 취미라더니. 어지간히 우리나라에 대해 애착이 많은 모양이다.

가끔 그런 자들이 있다.

해외 생활을 오래해서 오히려 국내에 애착이 강한 사람들.

주혁도 그런 사람들을 꽤 봤다.

「내가 약간 쪼인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뭐 이건 이거고. 하아. 날씨 때문에 국궁도 못 쏘러 갔는데…… 보리굴비 맛있으니까. 잘 드시고. 연말 가기 전에 술이나 한잔 듭시다.」

뭐가 됐든 오실장은 진짜로 이번 국가대항전이 포텐이 좋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주혁도 동의하는 바다.

‘그렇긴 해.’

한국인들이 보기에 싫을 수가 없는 컨텐츠긴 했다.

뭐…… 항상 패배를 거듭했다는 게 유일한 진입장벽이긴 하다.

비인기 종목은 잘해야 인기가 좋다.

우리나라에서 양궁이나 쇼트트랙이 그나마 인지도가 있는 이유는 잘하기 때문이다.

김연아의 등장 전에 누가 피겨 스케이팅에 관심을 가졌던가?

씁쓸하지만 현실.

“아.”

치이이이익……!

수증기가 마구 새어 나온다.

뚜껑을 열자 하얀 수증기 위로 흩어진다. 그 밑으로는 먹음직스러운 빛깔의 보리굴비가 보인다.

이렇게 수증기 틈으로 보니 자태가 꼭 구름 사이 신선 같다.

신선이 아니라 생선이지만.

“그래. 말처럼 맛있는지 한번 먹어보자~”

그는 나이 든 사람마냥 혼잣말을 흘리며 조심스레 집게로 굴비를 집어 올린다.

혹여나 무너져 버릴까 조심조심.

다행히 굴비는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접시로 옮겨왔다.

접시는 아까 차려놓은 두부부침 옆에 놓인다.

이제 하얀 쌀밥을 퍼서 올리면 밥상은 끝.

그런데…….

“……?”

딴 생각하느라 잠시 잊었는데, 원래 상현이랑 같이 먹으려했던 것이다.

“아…… 참내.”

그는 궁시렁대며 그에게 전화를 건다.

“어. 어디야. 언제 와. 아, 너무 추워서 마침 오냐? 빨리 와라. 너랑 먹으려고 차렸는데 깜빡하고 말을 안 했다.”

* * *

상현의 젓가락이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불편한 손 대신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시작한 뒤부터는 그리 빨리 밥을 먹지 못했는데.

‘와.’

오늘 밥은 그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었다.

“이거 맛있는데? 오 실장님이 주셨다고?”

“정확히는 펑크에서 준 걸 전달해 주신거겠지만. 뭐…… 그렇지.”

“와…….”

의외로 상현 입맛에 딱 맞았나 보다.

‘막상 맛있는 걸 주면 잘 먹는단 말이지.’

꼭 아몬드만 먹을 것처럼 행동하지만, 맛있는 걸 가져다주면 되게 잘 먹는…….

희한한 녀석이다.

“할머니가 해주시던 것 같네. 이렇게 비싼 건 물론 해주신 적이 없겠지만.”

쓸데없이 현실 농도 높은 사족에 주혁이 밥을 넘기다 말고 쿨럭댄다.

“야, 얌마. 비, 비싸도 손주 먹으라고 해줬을 수도 있지.”

“응.”

“뭐가 응이야. 내 말을 듣긴 한 거냐?”

“응.”

상현은 굴비의 발라진 살을 입에 넣기 바쁘다.

‘듣고 싶은 말만 듣는구만.’

이젠 익숙한 상현의 고막 속 분리수거 센터의 일 처리에 주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러던 중, 상현은 불현듯 생각난 듯 묻는다.

“지아도 와서 먹지. 어차피 오늘 시상식 가는데.”

쿨럭!

주혁은 또 사레가 들린다.

“아…… 이, 이거 한 번 들리면 계속 들린다더니.”

“왜 그래?”

“남자 둘 사는 집에 아침부터 부르기 좀 그렇잖아.”

“……그랬나?”

그런가?가 아니라.

그랬나?라는 되물음이 정확하다.

남자 둘 사는 집에 부르기 어색하다 그랬던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주혁도 대강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덧붙인다.

“그, 그리고 오늘 시상식 가기 전에 영상 최대한 올리고 간다고 열일 중일걸.”

“아.”

다행히 상현은 딱히 그 이상의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보리굴비를 꼬리까지 거의 집어삼키듯 먹다가, 또 멈칫하는 상현.

“근데, 우리 광고…… 밀렸지? 한동안 안 했던 거 같은데.”

“어. 펑크에서 온 것들. 꽤 많다.”

“아…….”

이제야 오 실장 생각이 좀 나나 보다.

하기야 좀비 스쿨 이후로 펑크 파트너로서 조금 소홀했던 건 사실이다.

“네가 국가대항전까지 그렇게 쿨하게 수락하고 바로 시작할 줄 몰라서, 타이밍을 못 잡았다.”

주혁은 좀비 스쿨 이후로 천천히 광고를 진행해 보려 했지만, 갑자기 스케줄이 너무 바빠지는 바람에 얘기를 안 꺼내고 있었다.

“그럼 이 굴비…… 재촉장?”

상현이 갑자기 굴비에서 멀찌감찌 떨어진다.

주혁이 고개를 젓는다.

“아냐. 내가 봤을 땐 뇌물이지.”

“……엥?”

“그쪽 한 이사가 국가대항전 좋아한대. 그리고 오 실장도 국가대항전 포텐 있다고 보고…… 컨텐츠 하나 하고 싶은 건지 뭔지…… 뭔가 해보려는 거 같다.”

“오…… 그 국궁 쏘자고 했던 그 사람이구나.”

한 이사랑 잘 통하네. 상현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굴비를 입에 물었다.

이제 마음 편히 먹어도 되겠다 싶은 모양이다.

둘은 잠시 국가대항전을 펑크에서 주선하려는 거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상식 얘기로 넘어갔다.

“근데 내가 신인상 말고 뭐 더 타갈 게 있던가?”

“음…… 베스트 커플? 그거 후보라고 약간 소문이 있다.”

특별상은 후보를 현장에서 정한다만, 인터넷에 풀린 찌라시 정보가 있다.

거기에서 베스트 커플에 상현과 미호가 들어가 있다.

“아. 미호랑 화보 찍은 거 그거 때문인가?”

“어. 아 참…….”

이 기회에 주혁은 상현에게 물었다.

그는 아직도 미호가 쿠키 세트를 가져왔을 때의 표정을 기억한다.

그때 돌려보내야만 해서 주혁도 사람인데 마음이 아팠달까.

“근데, 미호 님…… 어떠냐?”

그래서 조심스레 떠본다.

만약 상현도 마음이 있는 거라면 굳이 이렇게까지 가로막을 일은 아니니까.

“……어떠냐니?”

“그니까…… 둘이 뭐 있냐?”

“?”

상현의 표정이 이미 대답이었다만 주혁은 좀 더 물었다.

“그, 그니까 미호 님이랑 조금 엮이잖아. 호감 표시 같은 거. 한다고 느낀 적 없냐?”

“호감? 그냥…… 원래 성격이 붙임성이 좋고. 음…… 여자분들 중에 그런 사람 많잖아? 엄청 밝고…… ENFP라고 하던데.”

‘아.’

주혁은 이 자식이 왜 아무렇지 않아 하는지 바로 깨달았다.

‘이 자식아. 그런 사람 많은 건 너만 그래.’

주변에 XX 염색체 가진 사람들 중 거의 8할은 호감 표시를 하다 보니 그게 원래 디폴트값인 줄 알고 사는 것이다.

하기야 회사에서 따돌림당할 때도 은근히 상현한테 뒤에서 잘해주는 여사원들이 많았지.

아마 저 녀석은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상냥하고 협조적인 생물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에라이.’

매니저로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자로선 열이 뻗친다.

그 화를 갈무리하며 주혁은 주제를 대충 마무리 지었다.

“크흠. 그래. 난 또 실제로 뭐 있나 했지. 사람들이 계속 엮으니까.”

“우결충이라고 하던데 그런 걸.”

푸하하하.

우결충. 아. 맞지. 맞지.

주혁은 괜히 더 크게 웃었으나.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는 와중.

띠링.

띠리링.

휴대폰에서 작은 알림이 울린다.

알림 설정을 해놓은 채널에서 영상이 업로드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알림 설정을 해놓은 채널은 딱 한 곳이다.

[멍청하면 그만이야~~]

[야. 진구야. 우냐?]

[“충신(忠臣)” 호우두우]

.

.

.

아몬드의 올튜브 채널이다.

그간 아몬드가 저격러들과 싸웠던 영상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 인상적인 썸네일을 갖고 있었는데.

해맑은 표정의 킹귤이 썸네일인 첫 번째 영상.

진구 캐릭터와 합성된 본투비가 울고 있는 두 번째 영상.

세 번째 영상은 사극 속의 충신 정몽주가 울부짖는 호우두우와 합성된 기괴한 모습.

마지막으로 올라온 네 번째 영상이 가장 인기가 많았는데.

[과거 양궁 챔피언이었던 한국인을 무시한 영국인들의 최후]

영국 뒷골목의 양아치들이 아몬드와 대치하고 있는 합성 사진이 썸네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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