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53화
54. 연회장(1)
포토존을 벗어나서 행사장으로 향하는 길.
반대로 이쪽으로 뛰어오는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는데.
모두 스태프들이었다.
‘뭐지?’
다들 뭔가를 급하게 준비하려는 듯한 움직임이었고.
“아. 예. 예.”
그린티도 인이어를 통해 무슨 말을 전달받는 듯했다.
‘무슨 이벤트가 있나.’
어찌 됐든 상현은 행사장 안으로 들어섰다.
언뜻 보이는 연회장 안쪽엔 스트리머들이 한가득이었다.
“후. 이제 살겠다.”
지아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더니. 힘을 주고 펴고 있던 허리를 구부린다.
“흐아. 좀 앉자.”
주혁 역시 넥타이를 조금 풀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디냐…… 우리 자리…… 어우.”
주혁 역시 카메라 세례에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다.
그나마 멀쩡한 건 상현이다. 이런 일이 그에겐 꽤 많았었으니까.
“내가 스태프분한테 물어볼게.”
그는 먼저 행사장 안쪽으로 걸어들어가, 안내자를 찾았다.
“저, 지정석 있다고 들었는데…… 어디죠?”
“아. 아, 안내를 맡던 스태프가…… 잠시 나갔군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아몬드 님 일행이시죠?”
셋은 스태프를 따라서 이동한다.
그 길에 수많은 턱시도와 알록달록한 드레스들을 지나쳐야 했다.
그들은 슬쩍 시선을 주기도 하고, 수군대기도 했다.
“오. 저 사람이 아몬드구나.”
“와. 아까 함성 장난 아니더라.”
“실물도 깡패네…….”
“뒤에 매니저야? 경호원이야? 떡대 지린다.”
“매니저는 그냥 깡패네…….”
이들이 단순히 팬이나 시청자가 아니라, 같은 스트리머들이라는 사실 때문일까?
괜히 조금 시선이 부담스러워지는 상현이다.
아는 사람이 하나 없는 곳에 떨어진 느낌.
뒤를 돌아보니 주혁과 지아도 마찬가지의 표정이다.
특히 지아가 거의 안색이 새파래졌는데.
‘우, 우리만…… 왕따야?’
아무래도 신인이다 보니 편집자들끼리의 인맥도, 스트리머들끼리의 이렇다 할 인맥도 없는 아몬드 팀이었다.
그러던 중.
“와아아아! 봐! 봤죠!?”
상현의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익숙한 늘씬한 실루엣에, 활기찬 목소리.
“아아아! 아냐! 이거 방플이야!”
“그래! 방플 아냐!? 어떻게 딱 맞는데!?”
그 앞엔 대머리 하나와 통통한 아저씨 하나.
“아니. 누가 올지 맞히는 내기하던 사람들 맞아요!? 막상 맞히니까 방플이래!”
씨익.
상현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누가 방플을 했는데요.”
그가 자연스럽게 끼어들자, 마구 언쟁하고 있던 미호가 그제야 휙 돌아본다.
검은 머리칼이 찰랑인다. 상현은 그녀가 검은 머리를 한 건 처음 봤다.
“허, 헉 오빠! 언제 여기까지…….”
미호는 행사장 안에 상현이 등장하자마자 싸우느라 막상 쭉 걸어오는 모습은 보지 못한 모양이다.
“머리 잘 어울린다.”
“아, 아아~! 머리? 검은색으로 한번 해봤어요.”
그래도 프로 모델인지라 포즈를 잡으며 머리를 넘겨주는 모습.
사르르.
“어때요? 핑크색보다 낫죠?”
머리는 검은색이지만, 이제 얼굴이 핑크색이 되어버렸다. 저래 봬도 부끄러운 모양.
불쑥.
풍선껌의 머리가 휙 끼어든다.
“와하하하! 어우. 아몬드! 많이 컸다?”
‘내 키는 그대로인데.’
갸웃하던 상현은 풍선껌이 주혁에게 가서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 저…….”
주혁이 당황해서 머리를 긁적인다.
“아. 여, 여긴 매니저인가? 와하하!”
“푸하하하! 오빠! 뭐 해요!”
아무래도 풍선껌이 어색한 분위기를 털어보려 일부러 장난을 친 것 같았다.
미호는 그의 장난이 취향 저격인지, 유난히 빵 터져 웃는다. 아님 그냥 기분이 좋은 날이라든가.
주혁은 이 기회에 인사를 건넸다.
아마 풍선껌이 그러라고 판을 깔아준 것이겠다.
“안녕하세요. 아몬드 매니저. 김주혁이고, 이쪽은 헤드 편집자인 서지아입니다.”
“아~! 이분이!!!”
풍선껌은 지아를 아는 듯이 입이 함박만 하게 커졌다.
“영상 잘 보고 있어요! 혹시 제 편집자 하고 싶으시면 언제든 바꾸셔…….”
풍선껌은 뒤에 서 있던 자신의 편집자를 가리키며 농을 던졌다.
편집자는 풍선껌과 상당히 친한 모양인지 그의 엉덩이를 상당히 세게 걷어차 버렸다.
퍼억!
미호는 또 꺄르르 웃어대고, 풍선껌을 걷어찬 여자가 나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풍선껌보단 크고 미호보단 작은…… 어쨌거나 큰 키의 40대 여인이었다.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제가 남편 총편집자예요. 이수영이에요.”
“!?”
주혁과 지아는 깜짝 놀랐지만.
사실 상현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악수를 받으며 아는 체를 해준다.
“아…… 방송에서 잠깐 본 적 있어요. 실물로 뵐 줄이야…….”
애초에 상현은 풍선껌 방송을 꽤 자주 봤으니 알고 있다.
심지어 좋아했던 방송이니, 지금 눈빛이 미호와 마주쳤을 때보단 3배는 초롱초롱해졌다.
그런데, 눈이 초롱초롱해진 건 상현뿐이 아니었는데…….
“아, 안녕하세요! 서지아입니다!”
“네. 영상 많이 봤어요. 지아 씨.”
“가, 감사합니다. 저 궁금한 게…….”
“?”
이수영은 뭐든 말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낸다.
“호, 혹시! 편집자 관계로 지내시다가 결혼까지 가신…… 걸까요…….”
그녀의 질문은 예상과는 사뭇 다른 결이었다.
‘갑자기?’
‘영상 편집 툴이라도 물어볼 줄…….’
민망한 상황을 상현이 나서 대신 대답해 줬다.
“처음부터 남편분 채널을 편집해 주시던 건 아니잖아요? 그쵸?”
수영이 웃으며 끄덕였다.
“맞아요. 정말로 방송 보셨나 보다. 잘 아시네. 원래는 다른 미디어 쪽에서 일했어요. 이이가 조회 수 안 나온다고 날 불러놓고…….”
자기 스타일을 가장 잘 아는 건 역시 아내라 하면서 바꾸길 잘했다고 하던 풍선껌이 기억난다.
지아가 또 질문한다.
“저…… 그럼 남편분이랑 같이 일하시는 건 어떤 느낌인지…….”
“아. 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 좋아요. 얘기할 거리도 훨씬 많고. 멀어질 일이 없달까?”
“아아…… 그러시구나…….”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지아.
“와, 와하하! 여보! 언젠 일할 때도 내 얼굴만 보여서 아주 지겹다더니!”
“…….”
“어, 어어어……? 아, 아니 뒷덜미 늘어나! 늘어나!”
풍선껌은 이내 수영에게 한구석으로 끌려가 버렸다.
남은 건 타코야끼와 미호였다.
크흠.
타코야끼가 무안한 분위기를 깨려고 먼저 입을 열었다.
“아. 혹시 물어볼까 봐 말하는데. 내 편집자는 안 왔어. 후보에 없거든.”
후우.
그가 담배를 태우는 시늉을 한다.
왜 이런 말을 폼을 잡으며 말하는지…….
“아…….”
“난 껌 형님이 좀 부럽달까? 올튜브 잘 안되셨다가 아내분이 맡으시고 완전 떡상! 까진 아니어도 꽤 빠른 우상향이더라니까.”
“오…….”
결국 잘 풀렸구나.
상현은 다행이라 여겼다.
“그러니까 지아 씨. 그…… 만약 페이가 마음에 안 드시면 껌 형님은 필요 없으시니까 저한테…….”
결국엔 타코야끼도 지아를 노린 거였다.
“아, 오빠. 지아 씨 불편해해.”
“난…… ‘편한 남자’가 될 생각은 없다. 미호야.”
“뭔…….”
푸훕!
타코야끼식 농담에 이번엔 지아가 빵 터진다.
“왜 그러지! 서지아!”
타코야끼는 이때다 싶었는지, 눈썹을 찡긋 올리며 말한다.
“흔들리고 있지 않나! 내게로 와! 듀얼이 뭔지 알려…….”
지아가 웃다가 거의 숨이 넘어가기 전.
“꺄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과 구분이 안되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쿠웅!
뒤이어 묵직한 굉음까지.
‘뭐야. 진짜 비명인가?’
상현은 순간 이런 생각까지 했지만. 당연히 그런 건 아니었다. 여긴 게임 세계가 아니니까. 사람이 저렇게까지 비명을 지를 일은 없다.
“와아아아아아!”
비명이 아닌 환호성이었다.
저 문밖에서 들려오는.
“무슨 일이지?”
“누가 왔나 봐.”
“어? 스크린이!”
촤락!
연회장의 사방에서 스크린이 떨어졌다.
원래 시상식이 진행될 때 쓰려고 준비해 둔 스크린이었다.
“뭐야?”
“와. 이거 혹시 공연인가?”
대부분의 시상식이 그렇듯이, 상을 수여하는 건 가장 나중이고.
앞서 이벤트가 여럿이다.
유명 가수들의 공연을 본다든가, 코미디언의 입담을 듣는다든가…….
지금 상황은 확실히 전자에 가까워 보였다.
쿵! 쿵!
또다시 들려오는 묵직한 저음.
지금 들어보니 베이스 소리였다.
쿵!
쿵!
베이스 소리에 맞춰, 연회장의 불이 차례차례 꺼졌다.
이내 연회장이 어둠에 잠겨 버리고. 스크린마저 아직 아무런 영상을 내보내지 않은 검은 화면인 채다.
그러던 중.
쿵. 쿵. 쿵…….
베이스는 점차 음을 갖춰가며, 스크린의 한가운데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어? 밖에 상황인데?”
“뭐지? 레드카펫인데?”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건 레드카펫.
레드카펫의 출발점.
그곳엔 검은색 밴 세 대가 도착한 채였다.
양옆의 밴이 동시에 열리더니. 스크린이 확 밝아진다.
파지직!
실제로 밖에서 폭죽 비스무리한 걸 쏜 것이다.
조명의 하얀 눈부심이 지나간 뒤.
등장한 건 여자 둘의 실루엣이다.
마이크를 들고 있었으며, 나풀거리는 짧은 치마 혹은 딱 붙는 바지 등, 무대 복장을 입은 모습.
이에 스트리머들마저 환호로 반응한다.
“와아아아!”
“와. 이거 공연인가 봐!! 초청 공연!”
“나가야 되는 거 아냐?!”
초청 가수의 공연인 듯했다.
이런 이벤트를 깜짝으로 진행할 줄이야.
“우린 여기서 보는 거야?”
“글쎄…….”
웅성웅성.
연회장에 모인 스트리머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로 떠든다.
둥. 둥. 둥.
음악은 아직 밋밋한 베이스만 깔린 상황.
처음 나온 여자 둘의 실루엣은 그냥 간단하게 리듬만 타고 있다.
그럼에도 춤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 또 나온다.”
이어서 피아노, 하이햇 등의 선율이 추가되면서, 춤이 다채로워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업다운으로 리듬만 타는 게 아니라 손동작이 추가된다.
이어서, 양쪽의 밴에서 여자 둘이 더 나온다.
이제 넷이다.
이 넷이 등장하자 모든 악기들이 맞춰지며, 노래의 정체를 유추할 만큼 완벽한 반주가 흘러나온다.
“오오옷……! 이 노래는!!”
이때 타코야끼가 눈이 뒤집히는 시늉을 하더니 외친다.
“파, 파티셰다!!!”
그의 외침이 놀랍게도 가장 처음이었다.
이 넓은 연회장에서 가장 처음.
어지간한 팬인 모양이다.
‘파티셰?’
파티셰란 이름이 낯설지 않다. 상현도 알고 있는 걸그룹이다. 꽤 유명했던 걸그룹인데…….
“파티셰! 파티셰래!!!”
“와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
어느새 환호성으로 시상식장 전체가 덮이고, 음악의 반주도 완전하게 완성됐다.
네 명의 실루엣이 춤을 추며 점차 레드카펫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와. 이거 뭐야!? 걸어오면서 춤 추는데……?”
“어. 원래 저 안무 아닌데.”
“미친. 쩐다…….”
애초에 걸그룹 댄스 안무가 걸어가면서 출 수 있게 만들어졌을 리가 없다.
즉, 그들은 오늘 행사를 위해 새로 안무를 짠 셈이다.
이제 모든 악기들이 다 선율을 갖췄다.
그러나, 마지막 조각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악기.
“!”
그때, 가운데 있는 밴의 문이 열렸다.
파앙!
그쪽에 스포트라이트가 가장 강렬하게 들어가고, 모든 카메라가 클로즈업된다.
누군가의 실루엣이 차 안에 있다.
그러나 그녀는 내리지 않는다.
카메라엔 입술만이 보인다.
그 반짝이는 입술이 마이크 앞으로 다가간다.
입을 맞출 듯이, 달싹인다.
〔있잖아, 난? 널 생각하고 있어〕
그리 힘주지 않은 맑고 높은 목소리가 반주 위로 서핑하듯이, 부드럽게 치고 나가기 시작한다.
보컬의 등장이다.
일순간 모인 모두의 입이 다 같은 소리를 내었다.
“와…….”
스윽.
그녀가 밴 안에서 내리며, 노래를 이어간다.
그제야 얼굴이 제대로 보인다.
밝은 호박빛의 렌즈를 낀 눈이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한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이 화려하고, 통통 튀게 생긴 사람이었다.
그때 모두가 반응했다.
“……!”
“와, 왔어?”
“파, 파티셰랑 큐티파이랑 같이 온 거야 지금!?”
“아니, 불화설 다 구라였네!”
“파, 파티셰 완전체라고?!”
큐티파이.
상현도 아는 이름이다.
‘저 사람이…….’
저 사람이 작년 트리비 어워즈 대상을 받았던 그 스트리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