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62화
57. 새로운 게임(1)
방송 종료 후.
상현은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컴퓨터 앞에서 일어났다.
“어우…… 숙취…….”
아무래도 어제 많이 마시긴 한 모양이다.
“이야. 수고했다.”
주혁이 옆에서 이온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말한다.
“너도. 수고했다.”
방송을 켠 상현도 대단하지만, 주혁도 숙취에 절은 채로 신년 계획 대본을 계속 검토해 줬다.
대본이라 해봐야 어떤 정보를 전달할지가 다였지만. 그것만 해도 진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후아. 오늘은 그냥 쉬자.”
신년 계획만 말하고 방송을 끄니 방송이 두어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겨울 해조차 아직 지지 않을 시간에 방송이 끝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상현은 소파에 누워 떨어져가는 주황빛 해를 감상한다.
반면 주혁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디 가?”
“난 장 좀 봐오게.”
“아…….”
상현은 같이 가주는 게 예의가 아닐까 했지만. 그의 몸뚱이는 전혀 다르게 말하고 있었기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사실 그게 옳은 판단이었다.
퉁.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서야 상현은 깨달았다.
“아.”
주혁은 어제 술을 많이 마신 지아의 상태를 확인할 겸 나가는 것이었으니까.
“칫.”
그는 솔로란 참 별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잠시 잠에 들었다.
지잉.
지잉.
잠든 상현의 머리맡에 놓여 있는 휴대폰이 울린다.
[미호: 와 아몬드 오빠.]
[미호: 알고리즘 제대로 탔는데요?]
요즘 세상이 그렇듯이.
아몬드의 방송이 끝났다고 해서, 아몬드가 잠에 들었다고 해서, 그와 관련된 세상이 멈추는 건 아니었다.
그가 잠들고 있을 때도 그의 영상들은 계속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풍선껌: 캬]
[풍선껌: 시상식이 이렇게나?]
[미호: 대박이죠?ㅋㅋㅋㅋㅎㅎㅎ]
[타코야끼: 아 엄마 나 얼굴 바꿔줘!]
[딸기슈터: 국가대항전이 실검 ㅋㅋ]
* * *
올튜브 세계엔 이런 표현이 있다.
‘알고리즘좌의 선택을 받았다.’
그만큼 올튜브에서 영상이 뜨기 위해선 이 알고리즘의 선택이 중요하기에 생긴 말이다.
통칭, 알고리즘.
본래는 보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 그 사람의 취향을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추천 영상을 선별해 주는 시스템이었지만.
어느샌가부터 올튜버들이 이 알고리즘을 파고들면서 초기 의도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 되어버렸다. 공략의 대상 혹은 지켜야 할 규칙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알고리즘은 적절한 영상을 추천해 줬고.
사람들은 알고리즘에 따라 흘러가는 대로 추천 영상을 트는 경우가 많았다.
와중에 아몬드가 올라탄 알고리즘은 이 시즌 가장 핫한 ‘시상식’이라는 키워드였다.
그 결과…….
[야. 유상현. 네가 먼저 꼬셨다?]
#실시간 화제 영상 3위
#연예 카테고리
연예인도 아닌 게임 스트리머가 연예 카테고리에서 3위 영상에 들어가 버렸다.
정치 사회 1위 달성보다야 덜 이상하지만.
이것도 이상하다면 이상한 현상이다.
-흑백, 슈트, 미남…… 바로 기절
-제목 ㅁㅊㅋㅋㅋㅋ
-연예 카테고리에 들어가도 위화감 없는 재질
└헉 나 이제 알았엌ㅋㅋㅋ 엌ㅋㅋ큐ㅠㅠ
└222 와 연예 카테고리였어??
-어이. 서지아. 이제 연예 카테고리까지 정벌한거냐고?
└이거 서지아가 올린거 아님.
단순히 연예 카테고리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 영상을 만든 사람이 서지아가 아니라는 것.
그게 이번 현상이 특별한 이유다.
└상식적으로 어제 풀메 + 드레스 + 하이힐 신고 술 들이키고 집에 새벽 3시에 와서 영상 올리겠냐?
└맞넼ㅋㅋㅋ 그분도 시상식에 같이 있었잖엌ㅋㅋㅋ
이 영상은 지아가 만든 게 아닌, 다른 어떤 팬이 짜깁기한 것이었다.
굉장히 이로운 재생산이라 할 수 있다.
팬들이 만든 영상 역시 아몬드에게 수익 정산이 되어버리니까.
게다가 이런 영상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몬드 치키챠 1시간 무한 반복]
[치키챠로 노래 만들어봄 모솔 치키챠 아님]
[아몬드 시상식 제외 다른 슈트핏 모아봄]
시상식 알고리즘을 탔는데. 우연찮게도 그는 수상 소감을 그날 제일 많이 말한 사람 중의 하나였으니. 영상거리도 많았던 것이다.
특히, 이런 게 마치 밈이나 트렌드처럼 자리 잡게 되면 영상 만드는 데 재주 있는 사람들이 ‘나도 한번 만들어 볼까?’ 하며 끼어들기도 한다.
딱히 아몬드에 관심 없었더라도 말이다.
즉 아몬드 영상 만드는 게 유행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추천 영상 아몬드로 도배됨ㅋㅋㅋ
-뭐가 이렇게 많이 나왔냨ㅋㅋ
-우리 애가 잘나가긴해요 ㅠㅠㅠ
그러니 영상은 더, 더 많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사실 아몬드나 지아나 주혁의 노력에 의한 결과라고 보기 힘들었다.
말 그대로 알고리즘에게 ‘선택받은’ 인간이 되어버린 셈이다.
물론 이 트렌드는 한 달은커녕 일주일도 채 가지 않을 테니. 이런 알고리즘의 선택이 올튜버의 인생을 바꿔줄 순 없었다.
다만 준비된 자에겐 기회의 크기도 다른 법.
아몬드의 경우엔 이게 올튜브 안에서 끝나질 않았는데…….
-대체 국가대항전이 뭐죠? 오늘 아몬드 입문함
-ㅋㅋㅋㅋㅋ기승전 방송 홍보
-중간에 깨알 캡슐 홍보 뭐냐곸ㅋㅋㅋ
-야. 아몬드한테 광고 주지마.
└그게 뭔데.
└광고 주지 말라고.
└그거 어떻게 하는건데.
└ㅁㅊㅋㅋㅋㅋㅋㅋㅋ
└ㄹㅇ 어케 안주냐곸ㅋㅋㅋ 효율 미쳤는데 ㅋㅋㅋㅋ
그간 꾸준히 광고에 대한 씨앗을 뿌려온 아몬드.
이제 그의 농사가 발아하기 시작한다.
6위) 파티셰 불화
7위) 국가대항전
8위) 여우주연상
9위) 신년 다이어트
꽤나 쟁쟁한 검색어들 사이에, 국가대항전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 있다.
심지어 좀만 더 내려가면 이런 검색어도 있었다.
15위) 아몬드 캡슐
* * *
숙취에 절은 채로 신년 계획을 발표한 다음 날.
“끄아아아.”
거하게 기지개를 켠 상현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후아. 어제 뭐 했는지 하나도 모르겠네.”
숙취 때문에 비몽 사몽인 채로 하루를 다 보내니.
잠을 한 12시간은 잔 것 같았다.
오늘은 다행히 상태가 꽤 좋다.
‘어디…….’
상현은 습관처럼 휴대폰을 켠다.
원래라면 커뮤니티 글을 쭉 살폈겠지만, 이제부턴 다르다.
[트스게]
트리비의 스트리머 게시판으로 향한다.
오늘 봐야 할 게 있다. 바로 게임 투표 결과다.
그런데 그의 눈이 물음표로 변한다.
“?”
잠시 뒤 믿을 수 없다는 듯 읊조린다.
“이게 진짜 1위라고…….”
이해할 수 없는 결과다.
* * *
이날. 오후 4시.
평소보단 한 시간 정도 늦은 시간.
아몬드의 방송이 켜진다.
[새로운 해! 새로운 게임!]
-오오오
-아사장! 왔구나!
-아니 요즘 방송 왤케 잘켜!?
-와 드디어 하냐? 킹덤!!!
-킹~ 너네 나 못이겨~ 덤! (진짜 못이김)
킹덤을 외치는 시청자들의 반응.
그렇다.
게시판에 올려놓은 게임 투표에서 놀랍게도 킹덤에이지가 1위를 차지했었던 것이다.
“트하!”
인사를 건네는 아몬드.
그는 이번엔 컴퓨터 앞이 아닌 캡슐 안이었다.
-오오 진짜 하나보다
-크
-아하!
-ㄱㄱㄱㄱ
-로제니타님 제가 갑니다아!
캡슐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본 시청자들은 아몬드가 정말 킹덤을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에 흥분했으나.
“올해는 다르다. 2036 아몬드. 게임 시작하기 전에 할 일이 있습니다.”
-ㅋㅋㅋㅋㅋ
-뭔데
-아 ㅋㅋㅋ 맞네
-트스게
“트스게부터 가 보겠습니다.”
아몬드는 신년 계획에서 언급했던 대로 우선 바로 게임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시청자들과 간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트스게로 향했다.
여기서 같이 게시글을 읽어주면서 웃고 떠드는 것이다.
-오 대박 ㅠㅠ
-할 말은 지킨다!
-오오옹
-아 제발 내꺼 읽어주셈ㅠㅠ
아몬드는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게시물 위주로 살폈는데.
“자 1위 게시물 볼게요.”
일단 그는 가장 추천 수가 높은 게시물에 들어가 봤다.
“아몬드 수상 소감 레전드~ 라는 제목이구요. 레전드긴 했어요.”
아몬드는 그 게시물이 뭔지도 모르는 채 피식 웃으며 들어갔으나.
금세 표정이 굳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
-ㅅㅂㅋㅋㅋㅋ바로 정색
게시물 내용은 이러했다.
[대한민국 커플 화이팅~!]
이라고 외치는 아몬드의 움짤이 들어가 있고, 그 위에 화살표로 ‘커플 아님’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화살표가 킬포임ㅋㅋㅋ
-ㅈㄴ웃기넼ㅋㅋ커플아님ㅋㅋㅋ
-화이팅 왜 했냐곸ㅋㅋ
-화이팅~!(본인 아님)
-응원단장ㅋㅋㅋㅋㅋㅋㅋ
-아 ㅋㅋㅋ 야구 치어리더가 실제로 야구 뛰진 않잖아ㅋㅋㅋ
아몬드는 무안한지 코를 만지작거리더니, 다음 게시물로 간다.
“자, 다음은…….”
다음 게시물은 아몬드에 관한 게 아니었다.
“현재 이세계급 제이버 실시간 검색어 근황…… 이라고 합니다.”
1위) 파티셰 완전체
2위) 연예 대상
3위) 국가대항전
4위) 머핀 빈
5위) 여우주연상
.
.
.
10위) 아몬드 캡슐
11위) 시빌 엠파이어
“오.”
아몬드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광고가 잘됐을 때만 나오는 표정ㅋㅋㅋ
-활짝 웃네 ㄹㅇㅋㅋㅋㅋ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ㅋㅋㅋ
“이거 합성 아니죠?”
-처음 읽은 것도 합성 아닌데요?
-아니라고 ㅋㅋㅋ
-확인 ㄱ
이미 시청자들에게 몇 번 속아본 적이 있는 그는 제이버에 들어가 실제 검색어 순위를 확인한다. 사진은 합성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오. 진짜네요.”
-오 진짜네 ㄷㄷ
-ㅊㅊㅊㅊ
-ㅊㅊ
아몬드는 고개를 꾸벅 숙인다.
“검색어 순위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는 다음 추천 수 높은 게시물을 들어가 본다.
[점멸검 스토리모드 3별 클리어 어려워진 이유]
3별 클리어라는 게 원래 쉬운 적이 없었지만. 이게 뭐라고 추천 수가 이렇게 높나 싶어 들어가 봤다.
“플레이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계속 강해지는 보스 때문에…… 전자파 님 이후로는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결론은 전자파 때문이다.
“전자파 님 때문이네요?”
-ㅇㅇ
-그렇다는 썰
-ㅔ
전자파는 점멸검을 세계에서 제일 잘 쓰는 플레이어이다.
그런 사람의 데이터를 가져갔으니, 난이도가 상승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때 후원이 들어온다.
[노우 님이 1만 원 후원하셨습니다.]
[에에? 저거 완전 릴 알파고 아님? 프로 데이터 + 전자파 데이터까지 있는데]
생각해 보면 저 보스는 전자파 외에도 온갖 프로들의 데이터를 갖고 있을 텐데. 그래서는 릴 알파고나 다름없지 않은가?
“노움 님. 만 원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ㄹㅇㅋㅋㅋ
-꼬우면 릴세돌 되라고 ㅋㅋㅋ
-글게 어케 이김???
-노움 뭔뎈ㅋㅋ
저걸 이기라는 건 아몬드더러 릴세돌이 되라고 하는 거와 같았다.
아무리 그가 VNS 수치 최강이라도.
릴세돌이 되는 건 다른 얘기였다.
그때 또 후원이 들어온다.
[김트루 님이 1만 원 후원하셨습니다.]
[저거 정확한 정보는 아니에요. 그냥 추측입니다.]
어쩐지.
아몬드는 본문 내용이 너무 과하다 느끼긴 했었다.
-김트루!?
-찐임?
-김트루 이스포츠도 관여합니까?
-찐이겠냐 ㅋㅋ
“아. 그렇군요. 김트루 님 1만 원 감사합니다. 그럼 저건 뇌피셜이었던 걸로…….”
이걸로 대충 점멸검 이야기는 일단락되었다.
“다음 거 읽어볼게요.”
아몬드는 뒤이어 몇 개의 유머글을 더 읽어줬고. 추천순뿐이 아니라 조회 수가 별로 없는 글들도 아무거나 클릭해서 읽어봤다.
이는 풍선껌 방송에서 배운 방식인데.
이렇게 해야 추천 수 때문에 쓸데없는 어그로를 끄는 일이 많이 줄어든다고 한다.
“대망의 마지막.”
그가 마지막으로 읽은 게시물이 바로 ‘신년 게임 투표’이다.
-ㄷㄱㄷㄱㄷ
-큰 거 온다
-오우 쉣
1위) 킹덤 에이지-로제니타 루트
2위) 릴 생존전 및 점멸검 스토리모드
3위) 젯펌프드
“…….”
여전히 똑같은 결과에 아몬드는 잠시 침묵했다.
-ㅋㅋㅋㅋㅋ침묵ㅋㅋㅋ
-표정 뭔뎈ㅋㅋ
-킹! 덤! 킹! 덤!
-킹~ 너네 나 못이겨! ~덤(진짜 못이김)
-와 ㄹㅇ 가는거냐!?
-ㅋㄷㅋㄷㅋㄷㅋㄷ
-ㅋㄷㅋㄷㅋㄷ
.
.
.
채팅창이 킹덤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스크롤이 미친 듯이 올라가는 압박 속.
“여러분의 의견. 잘 알았습니다. 그럼 게임 들어갈까요?”
아몬드는 이렇게 말하고는 게임을 켰다.
-???
-?
-?????
-……?
그런데 환호가 있어야 할 채팅창에 떠오르는 수많은 갈고리의 향연.
그야 실행되는 게임이 킹덤에이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라이프 이즈 레전드(Life is Legend)]
[실행 중…….]
-야 이 무친
-이럴거면 투표 왜함ㅋㅋㅋ
-릴 뒷광고지? 어? 차라리 그렇다고 말해!
-아 정말 의견을 알았다는 말이구낰ㅋㅋㅋㅋㅋㅋㅋ
-말 그대로 I know your opinion……
-아 1등 게임한다고는 안했다곸ㅋㅋ
-아몬드! 개같이 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