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65화
58. 스위프트(1)
아몬드가 룬을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제일 좋아 보여서다.
제일 좋아 보인 이유는 어감이 멋있고, 가장 위에 있어서다.
늘 그렇듯 그는 게임에서 뭔가를 선택할 때 굳이 큰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게 자연스러운 게임 플레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풍선껌의 철학이기도 했다.
“어차피 다 알아서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 악물지 마시구요.”
이런 선택지는 보통 효율의 차이만 있을 뿐 어떻게든 풀리게 되어 있다.
그 저효율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꼭 최고 효율의 플레이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모두가 다 똑같은 플레이만 하게 될 테니까.
이게 수능인지 게임인지 분간이 안 가게 된다.
-ㄴㅔ
-맞는말이긴함ㅋㅋㅋ
-1별 클리어는 그래도됨 근데 님은 3별 클리어하신다면서요
-대충 아아가가 맞다.
[상병 특급전사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크. 저는 이 시원한 맛에 이 방송 봅니다만?]
-??
-ㅇㅈ
-그~냥 골라버리기! 시원하긴함ㅋㅋㅋ
-상 특) 시원함
[팩트복서 님이 1천 원 후원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고민하면 그게 견과류냐? 포유류지.]
-ㅁㅊㅋㅋㅋ
-닉값하시네여
-팩트) 아몬드는 핵과류다
-견견^^7
“상특 님 팩복 님 감사합니다.”
아몬드는 꾸벅 인사한 뒤.
‘룬’을 살펴봤다.
작은 돌의 형태인데.
“이 돌에 뭐가 적혀 있는데요?”
그 문자는 푸른빛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문자이다.
[가속의 룬 - 윈페레스틴(Winferestin)]
정보랍시고 준 것 같은데. 이걸 보니 더 모르겠는 기분은 뭘까?
‘뭐지.’
결국 이리저리 살피더니.
“아. 설명이 여기있네.”
시야 한구석에 떠오른 ‘!’ 표시를 발견한다.
“여러분이 좋아하시는 설명입니다.”
-???
-그건 아닌데.
-걔는 안읽어도 됨
“읽어드리겠습니다.”
==== ====
[룬에 대한 기본 정보]
룬(Rune)이란 고대 마법의 절정이었던 태초의 언어 로고스(Logos)를 새겨놓은 방식을 말한다. 본래 로고스란 화자의 언어, 즉 기의(記意)가 곧 현현하는 가장 고단의 마법이다.
하나 이를 구사하던 고대의 선조 마법사들은 후대들이 자신들이 거쳐온 수련 방식을 몇이나 견딜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로고스 중 가장 기초적인 것들을 문자, 즉 기표(記標)의 형태를 빌어 거대한 돌에 새겨넣었고. 그 방식을 ‘룬’이라 불렀는데. 후대엔 이 돌과 기표 자체를 룬이라고 일컫는다.
룬은 분명 총명하고 놀라운 방식이었으나. 애석하게도 로고스에 가장 중요한 기의는 늘 그렇듯 기표에 채 다 담기지 못하였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닌 전승이란 개념적 한계였다.
하나 이것만으로도 후대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기엔 충분했다. 마법사로서의 가장 기초적인 체질을 가진 자들조차 이 ‘룬’에 담긴 태초의 언어, 그 껍데기를 그대로 읊는 것만으로도 그 힘의 일부를 사용할 수 있었으니, 이보다 ‘간편한 기적’이 어딨겠는가? 비록 후대에 남겨진 조악한 기표의 껍데기는 한 번 사용된 후 산화되어 ‘조율’되어 버린다 해도 말이다.
==== ====
“……조율되어버린다 해도 말이다.”
말을 끝맺은 아몬드.
그렇다.
아몬드는 이 설명을 다 읽어버렸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무친넘 무친넘……
-우리가 졌다구 ㅠㅠ 그만해 ㅠㅠ
-와 지독한 견과류 쉑……
-설명 “100배”
-십ㅋㅋㅋㅋㅋㅋ
설명 좀 읽으라고 도배하던 시청자들에 대한 소소한 복수로 보인다.
“와. 재밌네요.”
아몬드는 채팅창을 힐끔거리며 씩 웃었다.
“요약하자면 룬에 새겨진 말을 그대로 읊으면. 그 힘을 써볼 수 있다고 합니다.”
-휴…… 편안
-내가 볼 땐 3줄 요약이야말로 고대의 마법임
-이게 로고스? 이게 로고스?
윈페레스틴.
이 룬이 가진 이름을 읊는다면, 그것이 주문이 되어 아몬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뜻 같았다.
“느낌상 일회용 같은데. 일단 아껴두고 나가보죠.”
아몬드는 일단 이 던전에서 스위프트를 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레이나, 란 스토리 모드 때도 늘 스토리의 화자를 찾아야 뭐가 제대로 시작됐었으니까.
그는 드디어 오두막 밖으로 나와서 주변을 둘러봤다.
기다란 나무가 빼곡히 박힌 숲이었는데.
역시나 상당히 어두웠다.
그나마 나무에 매달린 열매(?) 같은 것이 내는 은은한 빛이 최소한의 시야를 밝혀주고 있었다.
잘 보이질 않으니. 아몬드는 시빌 엠파이어에서 배운 기술을 한번 써먹어 봤다.
“소리로 들어야겠는데.”
슥.
바닥에 귀를 대고 감각을 끌어올려 보는 것이다.
“일단 혼자는 아닌 것 같고…….”
이 공간이 얼마나 넓은지, 본인이 얼마나 넓은 공간을 인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발소리가 내는 진동이 느껴졌다.
쿵…… 쿵…….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 발소리 같지가 않은데요.”
뭔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던전이니까. 몬스터가 있는 게 자연스럽긴 했다.
“몬스터 같네요. 던전이니까 몬스터 사냥하면서 레벨을 올려야 하는 건지…….”
RPG 게임의 기본 포멧이다.
사냥해서 레벨을 업 시킨다.
이는 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AOS 장르 역시 사실 RPG를 짧게 축소해 놓은 것이니까.
‘란 스토리 모드 때랑은 다르겠는데.’
아몬드는 직감적으로 이번 스토리모드는 란의 것보단 레이나의 것과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구성이 훨씬 게임적이다.
탁.
그는 얻어낸 ‘룬’을 한번 던져보며 고쳐잡더니.
“한번 얼굴이라도 보러 가보죠.”
몬스터의 발소리로 추정되는 곳을 향해 조심스레 걸어갔다.
* * *
스르르륵.
어두운 숲속.
어두운 진녹색의 물결 틈에서 아몬드의 머리가 쏙 빠져나온다.
수풀에 숨어다니는 중인 것이다.
‘이쯤인데.’
그는 다시 바닥에 귀를 대었다가 또 주변을 살피는 것을 반복해 본다.
쿵…… 쿠구구궁.
‘뭐야. 맞는데.’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는데. 막상 보이는 것은 없었다.
쿠구구구궁……!
이젠 굳이 귀를 댈 것도 없었다.
그냥 땅이 떨리고 있다.
그럼에도 눈에 보이는 건 없다.
“아.”
아몬드는 순간 무슨 현상인지 깨닫고, 갑자기 뒤로 냅다 몸을 던졌는데.
──콰아아앙!!
바닥의 흙과 수풀이 펑 터져 나가버린다. 그리고 튀어나온 한 괴생물체.
[어스 피쉬]
[Lv. 1]
펄떡!
놈은 물고기의 형상을 한 몬스터였는데. 웃긴 건 물이 아닌 땅에서 헤엄치고 다닌다는 것이다.
고체인 땅을 바다처럼 헤집으면서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비늘과 힘이 있다는 뜻이다.
크기는 겨우 팔뚝보다 조금 큰 수준이지만, 한번 물리면 제대로 살아나가기 힘들어 보이는 이빨과 턱을 갖고 있었다.
다만 그 무시무시한 몬스터는 아몬드를 노리고 왔던 게 아니었다.
애초에 놈은 아몬드 발밑에서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보다 약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다.
‘어?’
아몬드는 멀찍이 떨어져 몬스터의 몸부림을 지켜봤다.
인간과 싸우는 중이다.
‘사람이 있었어.’
푹!
언제 있었는지 모를 인간이 창을 어스 피쉬의 입안으로 찔러넣었다.
어스 피쉬는 몇 번 펄떡이더니, 생각보다 쉽게 죽는다. 비늘이 상당히 단단해 보였는데. 입안은 별다른 방어 수단이 없는 모양이다.
‘저렇게 죽이는 거구나.’
아몬드는 이게 플레이 힌트라 생각하며 잘 기억해 뒀다.
콰앙!
어스 피쉬가 몇 마리 더 튀어나왔다.
스스슥!
그런데 그에 맞춰 수풀 속에서 인간도 몇 더 튀어나왔다.
퍼억! 퍽!
인간들이 각자의 무기로 어스 피쉬를 도륙낸다. 익숙해 보이는 솜씨다.
푸드덕! 푸드덕!
‘금방 죽이네.’
아몬드는 잠시 고민한다.
저자들과 합류할지 말지.
나오자마자 처음 맞닥뜨린 인간들이다. 분명 우연은 아닐 거다. 제작자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나가보자.’
나가는 게 맞다고 판단한 아몬드는 수풀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스스슥.
“누, 누구냐!”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이 아몬드를 대환영해 주진 않았다.
척. 척.
곧바로 창을 치켜든다.
‘어린애들이었어?’
긴장한 채 창을 들고 있는 얼굴들이 앳되다.
몸은 어른인데 얼굴은 애 같은 청소년 정도의 나이대 같았다.
가장 선두에 선 놈이 창을 더 들이밀며 묻는다.
“너. 거기서 뭐 하고 있었지?”
몸이 큰 건 아니지만 다부져 보이는 체격이다. 까무잡잡하고 건강한 피부.
‘스위프트인가?’
아몬드는 저 녀석이 스위프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레이나와 란은 외모가 확 튀는 스타일이라 어린 시절 생김새로도 구분이 됐지만.
스위프트는 굉장히 평범하게 생긴 편이라 감을 잡기 어려웠다.
“너. 뭐 하고 있었냐고 묻잖아.”
녀석은 한 번 더 위협적으로 묻는다.
“잠깐 놀라서 구경하던 것뿐이야.”
아몬드는 무기가 없다는 뜻으로 두 손을 펼쳐 보였다.
물론 룬은 보여주지 않고 주머니에 넣은 채다.
“난 아몬드야.”
상대의 이름을 알기 위해서 먼저 소개하는 아몬드.
“난 스위프트다.”
‘찾았다!’
저 녀석이 스위프트였구나.
아몬드는 마구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제어해 애써 무표정을 유지한다.
“아몬드. 너도 참가자인가?”
“참가자?”
“성소로 향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성소?
그건 전장에 있는 건데.
그러나 일단 그렇다고 대답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저들과 합류하려면.
“그래.”
대답을 들은 스위프트는 잠시 뒤쪽 아이들과 상의한다.
그리고 잠시 후.
아몬드에게 제의한다.
“그럼 합류할 테냐? 우리도 성소를 향해 가고 있다. 물론 보상은 크게 나눠주진 못해. 넌 늦게 합류했으니까.”
보상이 적다는 말에 아몬드의 표정이 굳는다.
이거 순 날강도 놈들 아닌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건 스위프트의 스토리 모드.
그가 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뭐. 혼자서는 불가능할 테니. 합류하지.”
“근데…….”
스위프트는 턱을 쓰다듬으며 아몬드를 이리저리 살핀다.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이다.
“무기는 없는 거냐?”
뜨끔.
아몬드는 괜히 찔려서 대답을 머뭇거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들켰네 ㅋㅋㅋ
-ㅅㅂㅋㅋㅋㅋㅋ 그냥 1번 픽해버렸다구~~
“아…… 우, 운이 없었다.”
“운?”
“상자에서 무기를 잡지 않았어.”
“무슨 소리냐.”
“그 상자 있잖아. 빛이 나…….”
이거 설마 말하면 안 되나?
아몬드는 순간 멈칫했다. 모두에게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우였을까?
스위프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반문한다.
“룬 상자가 여기 1층에 있었단 말이냐?”
그도 상자의 정체를 알고 있다.
“아. 그래. 그거.”
“별일이 다있군. 운이 나빴던 게 아니라 운이 좋았던 거다.”
룬 상자가 1층에서 등장하는 경우는 별로 없나 보다.
“여긴 아직 성소의 영향력 밖인데 말이야. 룬 상자는 성소의 영향권 밖에 오랫동안 존재할 수 없어. 너.”
스륵.
이런, 기분 탓일까.
스위프트와 그의 동료들이 하나둘 거리를 좁혀오는 것 같았다.
날카로운 창과 칼을 앞세운 채로.
“너. 꽤나 수상하군?”
꿀꺽.
아몬드는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무기도 없는데. 룬 상자에서 무기를 고르지도 않았다?”
점점 조여지는 기분.
너무 의심받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거짓말은 한 게 없는데.
이렇게 오해받아서 싸우게 되나?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돌아가라. 난 쓸모없는 놈을 데리고 다닐 순 없다. 무기도 없는 데다가 판단도 멍청한 것 같으니.”
스위프트는 그를 의심하기보단 멍청한 놈이라 생각해 버렸다.
-극딜 뭔데
-스위프트 정신계 화신이었누
-트루뎀ㅋㅋㅋㅋ 극딜
“가자.”
스위프트는 멍청하다는 말만 남긴 채, 그대로 제 동료들과 쌩 가버렸다.
하. 아몬드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거 선택 한번 잘못했다고. 이런다구요?”
억울한 듯 채팅창에 하소연해 보지만.
-ㅋㅋㅋㅋㅋㅋㅋ
-ㅔ
-아웃곀ㅋㅋㅋ
-그럼 잘하시던가~~
-읔ㅋㅋㅋㅋㅋㅋㅋ
-꼬시네
놀리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그 와중에 아몬드는 이런 채팅을 찾아낸다.
-스위프트가 힌트는 줬잖어 무기 없어도 됨
스위프트가 힌트를 줘?
아몬드는 잠시 되새겨본다.
‘힌트? 뭘 말하는 거지.’
스위프트가 했던 말을 쭉 되짚어본다.
그러던 중 한 구절이 머리에 박힌다.
「쓸모없는 놈을 데리고 다닐 순 없다」
쓸모.
그렇구나.
쓸모가 있냐 없냐의 문제였다.
무기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거라면…….’
스윽.
아몬드는 주머니 속 ‘가속의 룬’을 만지작거린다.
“야. 잠깐 서봐.”
그는 돌아가고 있는 스위프트를 결국 다시 불러세운다.
-ㄷㄷ 내가 학창 시절에 듣던 말투
-PTSD 돋넼ㅋㅋㅋ
-사, 상현아 지금은 매점이 안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