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70화
59. 루나(3)
부엉이 소리가 세 번 울렸다.
정확히 세 번 울리고 멈췄다는 뜻이다.
즉, 이건 인간이 인위적으로 낸 거다.
「부엉이 소리가 세 번 들릴 때 모닥불로」
이 메시지를 쓴 주인이 낸 게 분명하다.
-너무 대놓고 부엉~ 아님?ㅋㅋㅋㅋ
-나 부어잉요
-재췌기! 급인데 ㅋㅋ
시청자들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래. 부엉이 소리 세 번은 확실한 사인이다.
그런데 그다음 메시지는 어쩌고?
‘모닥불로 와야 하는데.’
아몬드는 모닥불을 바라본다.
벤이 우두커니 앉아서 한탄하고 있는 모습.
“그러니까…… 하아…… 내가 루나를 좋아하는 건 아니고…….”
하등 쓸데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걸 보니 부엉이 소리 세 번에 관한 건 모르는 거 같다. 아무래도 직접 이 메시지를 본 적은 없다 했으니까.
그러나 벤이 모른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럼 이 메시지를 쓴 놈은 뭘 어쩔 셈이지? 벤을 치울 건가?’
제일 근본적인 문제는 모닥불에 아몬드와 벤이 둘 다 앉아 있다는 거다.
이래서는 몰래 불러낸 의미가 없지 않나?
아마 밀회를 준비하려는 자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때─
화르륵!
텐트 너머 반대편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어……?’
아직 벤은 보지 못했는지 자신 앞의 모닥불만 보고 있다.
“저것도 모닥불로 쳐야 할까요?”
아몬드는 밀회를 준비하는 자-높은 확률로 루나-가 모닥불을 따로 만들어버린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그쪽으로 자리를 옮기려 했는데.
턱.
벤이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어!? 부…… 불……!”
그는 너무 급하게 뛰느라 휘청거리면서도 죽어라 외쳤다.
“불이야아아!”
불이 생각보다 굉장히 컸던 것이다.
타다다닥.
벤은 욕을 지껄이며 불이 난 쪽으로 무작정 뛰었다.
‘어?’
덕분에 마침 모닥불엔 아몬드만 남았다.
‘이제 누가 올까?’
여기서 기다리면 밀회를 신청한 자의 정체를 알아낼 수도 있을 거다.
물론, 그가 아몬드를 만나려 한 게 아니라면 오지 않겠지만.
적어도 아몬드를 만나려고 보낸 거라면…….
-ㄷㄷㄷ온다
-저기 누구 오는데?
-어?
-큰 거 온다
-생사를 가르는 선택지 ㅋㅋㅋ
활활 타오르는 불 속 전경.
검은 인영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가 불을 끄러 가는 와중에. 한 명만이 반대로 오고 있다.
“역시…….”
밝은 금발이 불길로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루나였다.
“너. 그 글을 읽을 줄 아는구나?”
-헐
-뭐야 아무나 읽을 수 있는게 아닌가벼
-ㄷㄷㄷㄷ
“무슨 글.”
“……알면서 묻네.”
루나가 가소롭다는 듯 웃는다.
아몬드는 이때 조금 긴장했다.
‘질문을 최대한 많이 해야 된다.’
여태 스토리 모드 클리어해 본 경험상.
이 구간이 머리를 제일 많이 써야 하는 구간.
아몬드는 질문을 시작했다.
“이 글. 원래 누구한테 보낸 거지?”
“뻔하잖아?”
“뻔해?”
“지금 들고 있는 사람이지.”
“뭐? 넌 이 창을 주기 싫어했어. 스위프트가 갑자기 주라고 한 것 아닌가?”
아. 그거? 하며 루나가 웃는다.
“싫어하는 척했지. 그런 좋은 창을 그냥 주면 의심받잖아?”
너 바보냐는 식으로 바라보는 눈빛.
비록 오래 알진 못했지만. 원래 알던 루나가 아니다.
“스위프트가 갑자기 주라고 한 걸 예상했다고? 심지어 나 역시도 갑자기 합류한 건데?”
“난 미래를 볼 수 있거든. 네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스위프트가 나한테 길을 맡기는 거 못 봤어?”
뭐야. 정말인가?
아몬드는 정말인지 시험하는 간단한 방법을 떠올렸다.
퍼억!
“꺄악!”
루나가 광대를 매만지며 뒤로 물러난다.
“무, 무슨 짓이야!”
“내가 때리는 건 예측이 안 되나 보네.”
-ㅁㅊㅋㅋㅋㅋㅋ
-거짓말탐지기 (물리)
-ㄹㅇ이네
-앜ㅋㅋㅋ 개사이다
-이게 망나니 용사지 ㅋㅋㅋㅋ
“큰 줄기의 미래만 알아! 큰 줄기만!”
“그래서 길도 계속 틀린 건가?”
“……뭐?”
“길 계속 틀리게 알려줬잖아.”
“그걸 네가 어떻게…….”
루나는 짐짓 당황한 눈치다.
덕분에 아몬드는 그녀가 이 파티를 방해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왜 이 파티를 방해하는 건데?”
“방해라…… 방해하는 건지 돕는 건지. 그건 보기에 따라 다르지.”
뭔 소리야. 대체.
“이것만은 말해주고 싶어. 스위프트는 믿을 수 없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루나.
아몬드는 이 말을 굳이 뱉진 않고 삼켰다.
“나랑 함께해. 그게 네 편에도 좋아.”
“갑자기?”
“그래. 시간이 없어. 여긴 습기가 높은 숲이라 금세 불이 꺼질 거야.”
띠링.
[루나와 함께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경고: 한 번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메시지가 떠오른다.
-밑에 경고는 뭐얔ㅋㅋㅋ
-이걸 하라고 만든거?ㅋㅋㅋ
-ㅁㅊㅋㅋㅋ
한 번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데.
이 타이밍에 선택하라니.
‘아무것도 모른 채로?’
선택하기엔 아는 게 너무 없다.
아몬드는 머리를 굴려본다.
솔직히 스위프트보다 루나가 더 수상하지 않던가? 스위프트를 믿을 수 없다면서 스위프트에게 길잡이로서 신임은 받고 있다.
게다가 벤이 한 말은 또 뭔가?
누구를 죽였다는 둥. 그때도 결국 스위프트가 루나의 결백을 인정해 줬다.
그리고 스위프트는 일단 스위프트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아직 더 알아야 할 게 많아.”
아몬드는 결국 일단은 거절했고.
루나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멈칫한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이번엔 까탈스러운 놈이 들어왔나.”
“뭐?”
“아니야. 아무것도. 어쨌든 싫다는 거지? 난 간다. 너도 이 자리를 얼른 피하는 게 좋을 거야.”
타다다닥.
그녀는 캠프 쪽으로 뛰어가 사라졌다.
‘아까 한 말 뭐야?’
루나의 뒷모습을 보며 아몬드는 잠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이전에도 이런 제안을 한 적이 있나?’
루나는 아몬드의 원래 몸에게 이런 제안을 한 적이 있었던 걸까?
게다가 이번엔 까탈스러운 놈이 들어왔냐는 말.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나.’
그리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걸 거절해서 그 친구가 죽었나?”
벤의 친구가 죽은 이유는 루나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ㄷㄷㄷㄷㄷ
-헐
-진짜 그럴수도
* * *
심연은 축축하고 눅눅한 숲이었다.
루나 저지른 불은 금세 사그라들었고.
파티원들은 다시 잠에 들었다.
아몬드도 이번엔 정말 ‘잠들기’ 기능을 쓰려고 텐트 안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아. 근데 잠자다가 암살당하는 거 아닐까요?”
-ㅋㅋㅋㅋㄹㅇ
-그럴수도 ㅠㅠ
-에이 설마 ㅋㅋㅋ
-ㅉㅉ 늦었다 몬드야
아몬드는 루나의 암살 시도가 두려웠다.
그렇다고 루나를 함부로 죽이기도 힘들었다. 아직 정확한 게 없는데. 아군이 될 NPC를 죽이는 걸 수도 있었으니까.
그는 잠을 자는 척만 하며 누워 있었다. 이대로 그냥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ㄹㅇ 잠방을 가버리네
-스토리모드에 왤케 진심이냐고 ㅋㅋㅋ
-그냥 한 번 죽죠. 룬 고른것도 빡치는데ㅎㅎ
아몬드의 이런 노력 덕분일까?
[수포좌 님이 미션을 등록했습니다!]
[미션 한번 들어가보겠습니다]
수포좌가 미션을 등록했다.
-수줍은 여포가 아니라 걍 수포좌네 ㅅㅂㅋㅋㅋ
-앗 속았다 ㅋㅋㅋ
-ㅁㅊ 아이디가 수포좌
-어머니 대성통곡하시겠누
“진짜 수줍은 여포 님이신가요?”
아몬드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어봤다.
답은 금세 알 수 있었다.
[안 죽고 3별 클리어]
[20만 원]
“아. 아닌가 보네요.”
-???: 수줍은 여포라기엔 너무 적은 금액이었다
-미친 돈으로 알아채냨ㅋㅋ
-바로 파악 완료 ㅋㅋㅋ
“미션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되네요.”
아몬드는 감사를 전한 뒤. 다시 자는 척을 하고 있었는데.
-이거 악질이누 ㅋㅋㅋ 이미 끝났는디
-안전자산 배팅이야 아몬드야. 속지마라.
-수포좌 닉 달고 저러고 싶나 ㅋㅋㅋ
채팅 내용이 조금 거슬린다.
‘안전 자산?’
이미 루나의 제안을 거절한 순간, 죽는 것인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이는 게 어딨어! 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게임에서 죽는다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건 제작사 마음이다.
선택지를 잘못 고르면 죽어야 하는 게임은 한두 개가 아니다.
“안전자산이라뇨.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
아몬드가 희망적인 말을 하려는 순간.
파지직!
뒤쪽에서 들려온 소리.
“!?”
직후 칼로 내려찍는 어두운 신형.
이건 그야말로 찰나였다.
아몬드는 곧바로 튕기듯이 옆으로 굴렀다.
-ㄷㄷㄷ
-이걸?
-헐
찌이이익!
아몬드가 누워 있던 자리의 천막이 길게 찢겨 나갔다. 아니, 잘려 나갔다.
아몬드의 옷도 늘어져 버렸다.
소리만 듣고 바로 반응해야 겨우 피할 수 있었던 수준이었다.
‘너무 빠른데.’
고속의 룬을 컨트롤하는 아몬드조차 상대가 빠르다고 느낄 수준이다.
‘루나가 이 정도라고?’
누군지 확인할 것도 없이, 아몬드는 옆에 있던 무기를 집어 찔러버렸다.
훙!
상대는 상체만 슬쩍 틀어 무기를 피한 뒤.
턱.
창대를 잡고 오히려 거리를 좁혀 단검을 다시 휘둘렀다.
휘이익!
창대를 놓으며 뒤로 허리를 제쳐 피한 아몬드.
‘이거 스위프트 아닌가?’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으나. 상대는 확실히 루나가 아니었다.
신체 비율이나 삐져나온 머리의 길이, 눈동자 색으로 봤을 때 스위프트였다.
그는 아몬드가 연이어 공격을 피하자 눈을 부라리며 다시 제대로 베어왔다.
상당히 빠르다.
치이익!
쇄골이 스쳐 베였다.
창대를 다시 잡으려 해도, 복면의 사내는 곧바로 발로 걷어차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다.
그는 연이어 다시 단검을 그었다.
휘익!
휙!
침묵 속에서 펼쳐지는 베고 피하는 싸움.
상대야 당연히 큰 소리를 내지 않았으나. 희한하게도 아몬드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었다.
찍소리 못 낸단 게 이런 거다.
휘익!
치이익!
상대는 아몬드의 회피 패턴을 점점 습득하면서, 궤적을 조여오고 있다.
타닥.
아몬드의 발이 뒤로 가면 놈도 앞으로 정확히 따라온다.
타닥.
이어서 칼질이다.
휘익!
점점 스치기 시작한다.
상처들이 늘어나고, 깊어진다.
칼과 급소의 거리가 좁혀진다.
이렇게 몰아붙여진 적이 있던가?
그제야 깨달았다.
‘그런 건가.’
이건 플레이어더러 죽으라고 만든 씬이다.
‘한 번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게…… 선택 안 하면 죽는다는 거였다니.’
억울하기 짝이 없는 죽음이다.
전투 중 실수로 죽는 것도 아니고, 말 잘못해서 죽는다니.
‘사회생활도 아니고.’
와중에 아몬드의 눈이 한쪽으로 향한다.
[안 죽고 3별 클리어]
[20만 원]
미션이 걸렸다.
20만 원?
아몬드 방에서 큰돈은 아니다.
하지만 이건 돈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걸었냐. 미션.’
자존심의 문제.
미션을 건 심보가 괘씸하다.
아몬드는 괘씸죄로 놈의 돈을 받아내야겠다 생각했고.
그 순간─
번뜩!
아몬드의 눈이 치켜떠지며.
사고를 가속시킨다.
후우웅……
세상이 느리게 흐른다. 복면의 암살자가 내지른 단검.
이번엔 상대의 궤적을 한발 앞서 캐치해 낸다.
터억!
암살자의 팔을 붙잡았다.
우직……!
되려 아몬드 손이 꺾이게 생겼다.
엄청난 힘의 차이.
하나 괜찮다.
아몬드는 궤적만 바꿀 셈이다.
휘릭.
놈의 팔을 잡아 방향대로 슬쩍 더 끌어내며, 턱을 후려쳐 버린다.
빠각!
암살자 자신의 엄청난 힘으로 카운터를 맞아버린다.
“컥!”
입과 코를 가린 두건이 벗겨지고, 칼이 떨어진다.
뎅그렁!
‘역시……!’
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드러난 얼굴은 스위프트였다.
놈은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말한다.
“루나 말이 맞군. 이런 전투 능력이라니.”
씨익.
스위프트가 웃더니, 갑자기 사라진다.
[점멸]
‘점멸?!’
파지지직──!
기습적인 스킬 시전.
그간 한 번도 쓰지 않은 점멸이다.
스위프트는 이미 점멸을 익힌 상태였던 것이다.
심지어 그가 검을 떨어뜨린 위치는…….
‘뒤!’
스위프트의 그림자가 아몬드 등 위로 드리웠다.
이건 완벽한 기습이었다.
“그럴 거…….”
아몬드가 점멸검의 특성을 모르고 있었다는 가정하에 그렇다는 것이다.
“……같더라!”
점멸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 딱딱한 군화 밑창.
──빠각!
아몬드의 뒤돌려차기가 스위프트의 면상에 직격으로 꽂힌다.
“……커헉!”
엄청나게 아플 것이다.
스위프트의 몸은 붕 날아 텐트 끝까지 굴러버렸다.
콰광……!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짐더미들 쪽으로 파묻힌다.
스위프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채팅창에선 환호와 물음표가 동시에 치솟았다.
-???
-엌ㅋㅋㅋㅋㅋ
-ㅁㅊ??
-뭐임?
-이게 죽어?
-???: 제가 선수촌에 있을 때 태권도 국대 선배가……
-아니 이겤ㅋㅋㅋ 이러면 어케 되는건데??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채팅.
역시나 여기서 아몬드가 살면 안 되는 모양이다.
이어서 후원들까지 쏟아졌다.
[아니맨 님이 1만 원 후원하셨습니다]
[아니 미친 ㅅㅂ 원래 루나 제안 거절하면 죽어야하는데?]
[예? 님이 5만 원 후원하셨습니다!]
[자 이제부터 아몬드 스토리모드가 시작됩니다~ 스위프트는 뒈졌거든요~]
[수줍은 여포 님이 무려 20만 원 후원하셨습니다!]
[짭포좌 개같이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