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72화
60. 지워진 기억(2)
릴 공성전에서 몬스터를 잡다가 죽는 건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건 생존전 전장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너무 이상한 짓만 하지 않으면 비슷한 레벨대의 몬스터 토벌은 어렵지 않았다.
“크어어억……!”
마그마 베어는 기세 좋게 달려왔지만 수도 없이 창에 찔리며 팔을 허공에 휘젓고 있었다.
아까 위층에서 만났던 문지기 골렘이 에픽 몬스터 같은 거였는지.
이 녀석은 레벨이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훨씬 멍청했다.
“이번엔 여기!”
푹!
한 번 왼쪽에서 찌르면 다음엔 오른쪽에서.
소위 어그로 핑퐁이라 한다.
몬스터의 어그로를 계속 이곳저곳으로 옮겨서 놈의 공격을 둔하게 하는 것이다.
‘막타는 내가…….’
와중에 아몬드는 대충 창을 찔러넣으며 이 생각뿐이었다. 룬 박스는 어떻게든 자신이 먹기 위해서다.
팀원들의 질타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크르르…… 크르…….”
마그마 베어의 체력이 거의 다 떨어져 보인다.
마침 드러나는 뒷목.
‘지금!’
아몬드는 몸을 날려 녀석의 목 뒤로 창을 깊숙이 찔러넣는다.
푸욱!
인간으로 친다면 경동맥을 찔린 셈이다.
마그마 베어가 멈칫하더니.
퍼엉!
사방으로 용암을 튀기며 연기로 사라졌다.
마지막에 튄 용암으로 화상을 입은 아이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우우우웅!
룬 박스가 나왔다.
“룬 박스다!”
스위프트는 신나서 룬 박스로 달려갔다.
“저 자식이 왜 당연히 지가 먹는다고 생각하죠.”
아몬드는 그런 스위프트를 보며 불만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는데.
“난 무기를 선택할 건데. 여기서 가장 어울리는 녀석에게 분배해 주겠다.”
스위프트는 자기가 가질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악착같이 혼자 차지하려 한 아몬드만 꼴이 이상해졌다.
-ㅋㅋㅋ
-크 대인배
-소인배 아몬드 ㅋㅋ
아몬드는 채팅창의 질타를 무시한 채 스위프트를 유심히 관찰했다.
‘열리나.’
“자 연다.”
막타를 치는 것과는 관계없이 파티장이 분배권을 갖는 RPG식 방식인지.
스위프트가 상자를 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상자가 열리려는 순간.
──쿠웅!
상자 위로 뭔가 떨어졌다.
‘사람?’
사람이다.
나무 위에서 떨어진 사람.
아니, 사실 떨어졌다는 표현이 맞진 않았다.
“누구 마음대로 여는 거냐?”
녀석은 자의적으로 상자 위로 착지했다.
심지어 지금도 상자 위에 두 발로 고고히 서 있다.
녀석은 눈을 제외한 얼굴 거의 전체를 두건으로 감싸고 있었고, 차림새와 무장의 타입으로 봐서 암살자 계열이다.
소위 닌자 같은 모습.
-ㄷㄷㄷ
-깜작이야
-캬 나왔군
-오 (@@
시청자들 반응은 올 게 왔다는 식.
당연한 말이지만, 이곳엔 스위프트 파티 말고도 참가자들이 더 있는 것이다.
‘다른 참가자…… 세 보이는데.’
놈이 아무 흔들림도 없이 저 곡면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어딘가 강해 보였다.
적진 한복판에 홀로 들어온 패기도 대단했다.
“어떤 새끼야!”
스위프트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반면 닌자 차림의 남자는 태연하다.
“음. 보아하니 네가 여기서 작업 치고 있는 그놈이군? 스위프트라 했던가?”
그는 스위프트를 아는 것 같았다.
“뭐? 그딴 소리 집어치우고. 내려오기나 해. 내가 먼저 발견한 룬 박스다. 내 파티원들 무기를 뽑아줘야 한다고!”
“…….”
닌자는 잠시 스위프트의 파티원들을 바라보더니. 조소를 띤다.
“호오. 그래. 파티원. 중요하지.”
놈은 다시 스위프트를 내려보며 말한다.
“대답해 보라. 발견한 사람이 임자인가? 아니면 먼저 만진 사람이 임자인가?”
“당연히 발견한 사람이다! 버러지야!”
스릉!
놈은 스위프트의 말을 무시하고는 허리춤에서 쌍칼을 뽑아 들었다.
“정답을 알려주지. 강한 사람이 임자다.”
-왜 물어봤는뎈ㅋㅋㅋ
-……?
-아몬드식 화법ㄷㄷ
-어쩔티비ㅋㅋㅋㅋ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이 새끼야!”
스위프트는 그 외침과 동시에 창을 들고 뛰어들려 했는데.
쿵! 쿵! 쿵!
그 순간 나무 위에서 수많은 적들이 착지했다.
놈의 파티원들인 것이다.
혼자가 아니었다.
“쳐라아!”
닌자가 명령을 내렸고.
스위프트도 지지 않고 고함을 내질렀다.
“죽여어어어!!!”
양쪽의 파티원들이 상자를 두고 격돌했다.
아몬드도 당연히 예외는 아니었는데.
“……아.”
그는 다른 고민이 있었다.
“상자 들고 튈지 말지 고민되네요.”
-너무 태연하게 그런 생각을 하시네요;
-인성ㄷㄷ
-ㅁㅊㅋㅋㅋ 싸울 생각도 없냐곸ㅋㅋㅋ
-룬에 미친 남자
고민하던 결국 아몬드는 창을 쥔 채로 앞으로 내달린다.
상자를 들고 튀는 건 팀원들에게 너무 크게 신뢰를 잃을 것 같았다.
“죽어라!”
‘협공이네.’
그때 아몬드를 발견하고 달려드는 두 신형. 그는 순간적으로 자세를 낮추며 창대를 반원으로 휘둘렀다.
“어억……!”
협공을 온 둘은 도를 쓰는 자들이었는데.
카강!
휘익!
한 놈은 막고 한 놈은 피했다.
그 틈에 아몬드는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막은 놈에게 다시 한번 창을 찔러넣었다.
치이익!
‘피하네.’
놈은 찔러오는 창을 슬쩍 쳐내 피한다.
NPC치고는 상당한 움직임.
타다닥!
발이 빠르게 다가온다.
창 날이 놈의 뒤통수 너머로 가버린다. 이 거리는 칼보다 창이 불리하다.
그러나─
“!”
탁.
아몬드는 창을 절반 이상 올려 잡는다.
──후웅!
그 후, 잠시 창을 뒤로 내뺐다가 다시 휘두른다.
이러면 창이 짧은 무기인 양 싸우게 된다.
카앙!
놈의 검과 창이 다시 부딪쳤다.
캉! 카가강!
합이 더 이어지더니.
스슥.
신묘한 각도로 파고들어 온 창날이 어느새 목을 노린다.
푸욱!
피가 솟으며 놈의 칼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진다.
그의 싸움은 끝났다.
그러나 아몬드는 아니다.
‘뒤다.’
한 놈이 더 있었지 않은가?
아몬드는 곧바로 창을 길게 늘려 잡으며 하단을 다시 휘둘러 베었다.
촤아악!
발이 잘려 나간다.
“어억!”
뒤에서 기습을 하려던 놈은 되려 자신이 당해버린 거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쓰러진다.
아몬드는 다시 창을 짧게 잡은 채로 몸을 날려, 머리를 뚫어버렸다.
──푸욱!
-와
-이제 창 달인이누
-시빌 엠파이에서 단련된 죽창술이다!
둘을 처치하니 보상이 나온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상당한 모양이다.
“아. 여기서 렙업 많이 하라는 건가 보네요.”
아몬드는 이번 습격을 경험치 이벤트 정도로 이해했다.
-아닌데?
-제작자: 아…… 아냐. 멈춰!
-ㅁㅊ 이게 이렇게 된다고?
아몬드는 곧바로 다른 경험치들을 향해 뛰었다.
촤아악!
무기에 점점 익숙해지자. 합을 나누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푸욱!
곧바로 놈들의 머리, 심장에 창이 꽂히기만 할 뿐이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도륙하는 모습.
토끼 밭에 떨어진 사자였다.
이러니 자연스레 스위프트의 파티가 승기를 잡기 시작하는데…….
“여기까지다. 스위프트!”
닌자의 다급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우우웅!
놈의 신형이 푸르게 타오르고 있다.
마나였다.
[이기어검술]
스르르릉!
놈이 갖고 있는 모든 칼이 공중에 떠올라 있다.
파르르르……!
그 칼들은 전부 스위프트의 파티원들을 향해 날을 들이대고 있었는데.
스위프트가 잠시 공격을 멈추라는 뜻으로 팔을 들어 올렸다.
“잠깐! 멈춰라!”
-엥 여기서 벌써 나오네??
-헐
-이거 너무 많이 죽여서그런가?
-레벨업 때문임
-나도 한 16트하고 이 루트 밟음ㅋㅋ
채팅을 곁눈질해 보니 쉽게 보여주는 능력은 아닌 모양.
플레이어 레벨이 상당히 높고, 적팀을 많이 죽였을 때만 나오는 전개다.
“잘 들어!”
닌자는 입가에 피를 주룩 흘리는 채로 외쳤다.
“지금 내가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네 동료들 넷은 데려갈 수 있다!”
파르르르!
닌자의 말에 따라 칼이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 게 있었으면 진작에 쓰지. 왜 이제 쓰지.”
아몬드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중얼거렸으나.
스위프트는 의외로 놈의 능력을 무서워한다.
“너…… 미쳤나? 여기서 그런 수준의 힘을 쓴다는 건 다른 녀석들 배만 불려주는 거다! 여긴 성소의 힘도 거의 없다!”
“어차피 이판사판이잖나!? 내 파티원들 피해를 봐라!”
닌자는 자신의 파티원이 많이 죽은 게 화나는 모양이다.
이에 스위프트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원하는 걸 말해.”
“내가 원하는 건 일단 협력이다. 협력을 원한다. 마지막 층까지.”
닌자는 협력을 주장했다.
임시 동맹을 맺자는 얘기 같았다.
“협력? 솔직히 말하지. 내가 마음먹는다면 넌 죽은 목숨이다. 당연하지만 나도 신기한 기술 하나 정도는 갖고 있거든?”
스위프트는 자신의 점멸 기술을 언급하며 협박했으나.
“룬 박스를 네가 가져라.”
“……호오? 그 또한 널 죽이면 공짜인데?”
“대신 넌 파티원이 거의 없는 채로 마지막 층에 가겠지. 그게 의미가 있나? 너 혼자 살아서 성소에 간들 말이야.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또다시 파티원을 들먹이자 스위프트는 주춤한다.
닌자 녀석은 정곡을 찔렀다는 듯 씩 웃었다.
“서로 피 흘리지 말자며? 나도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피하자는 거야.”
“좋다. 룬 박스를 내가 갖고. 파티끼리 협력. 나쁘지 않은 조건이군.”
“거기에 하나 더.”
“……?”
척.
닌자 놈의 손가락이 갑자기 아몬드를 가리킨다.
‘나?’
갑작스럽게 지목받아 의문이었으나.
다음 말이 더 황당했다.
“저놈을 죽여라.”
-?
-엥?
-뭐지 들켰나 ㅋㅋㅋ
-뭐지? 저놈 화신이 모솔 아님?ㅋ
스위프트가 의아한 듯 되묻는다.
“뭐? 무슨 조건이냐. 그게.”
“이건 어쩔 수 없는 협력의 조건이다.”
“왜지?”
“놈이 내 파티원들을 너무 많이 죽였어. 우리 파티가 서로 협력하려면 저 녀석이 있어선 안 된다.”
스위프트가 아몬드를 돌아보고, 서로 눈이 마주쳤다.
‘웃어?’
웃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애초에 아몬드를 죽이려 했었다.
‘설마 기억 못 하는 척한 건가?’
기억이 안 난다고 한 건 거짓이었던 모양이다.
스위프트는 거래를 수락한다.
“대신 룬 박스가 먼저다.”
닌자는 아직 칼을 거두지 않은 채로 끄덕였다.
“좋다. 거래를 동시에 진행하지.”
파르르!
공중에 뜬 칼 중 하나가 아몬드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언제든 쏘아질 준비를 하고.
“룬 박스를 열어라. 스위프트. 그러면 내가 곧바로 죽이지.”
아몬드는 어이가 없었다.
“왜 지들 마음대로 내 목숨을 거래해.”
-ㅋㅋㅋㅋ
-꼬우면 파티장하라고~~
-ㄹㅇㅋㅋ
-어케함??
그러거나 말거나 거래는 진행됐다. 스위프트는 룬 박스로 다가갔다.
저걸 열면 닌자가 곧바로 아몬드를 향해 칼을 날려 죽일 것이다.
“아…… 안 돼!”
뒤에 있던 루나가 말렸다.
“스위프트! 이건 아니잖아! 쟤는 네 명령을 듣고 싸운 것뿐이라고!”
희한했다.
‘뭐지.’
루나가 스위프트를 보내 아몬드를 죽이려 했던 것 같았는데. 아닌 걸까?
아님 이것마저도 루나의 연기?
“어쩔 수 없다. 루나.”
스위프트는 상자를 열었다.
──끼익.
닌자는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때, 아몬드의 눈이 번뜩였다.
‘어?’
[파티원 중 가장 레벨이 높은 자에게 선택권이 이양됩니다.]
다름 아닌 그에게 선택지가 주어졌으니까.
[1. 룬]
[2. 무기]
[3. 포션]
스위프트가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거보다.
“무슨──”
아몬드의 선택이 더 빨랐다.
[무기를 선택하셨습니다.]
그의 손에 순식간에 무기가 생성됐다.
[해방의 활]
[★]
기리릭……!
선택도 빨랐지만, 시위를 당기는 건 더 빨랐다.
* * *
[초보자 Tip: 그거 아셨나요? 심연은 누가 가장 강한지 혹은 가장 약한지 알아본다는 소문이 있답니다. 함부로 쳐다보지 않는 게 좋을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