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77화
62. 기록과 기억(1)
쿵.
아몬드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어딘가로 떨어졌다.
[심연 - 2층]
흐릿하게 일렁이는 텍스트가 이곳이 다음 층임을 알려줄 뿐.
어두컴컴하기 그지없었다.
위쪽도 상당히 어두웠지만, 여긴 한술 더 뜬다.
아예 하늘이란 게 없는 느낌이다.
빛 자체가 없다.
위쪽을 보면 검게 일렁이는 의문의 아우라만 존재할 뿐이다.
탁. 탁.
아몬드는 우선 일어서서 옷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일단 다음 층으로 온 것 같네요.”
이제 하늘에서 시선을 내려 주변을 둘러봤다.
아까와 같은 빽빽하고 어두운 정글 숲이다.
다만, 여긴 이파리가 없다.
나무 줄기들만 존재한다.
‘나뭇잎은 저 검은 구름에 가린 거구나.’
아마 애초부터 잎이 없는 게 아니라, 여기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 맞다.’
이때 갑자기 그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한 사실.
파앗!
아몬드는 곧바로 수풀 쪽으로 몸을 날리며 활시위를 당겼다.
언제든 날아갈 준비를 한 푸른 활이 미세하게 진동한다.
피이잉……!
경계하는 눈으로 사방을 살피는 아몬드.
‘놈들이 이 근처에 있을 텐데.’
잠시 잊고 있었는데. 스위프트의 파티도 이 층으로 건너왔었다.
놈들은 당연히 아몬드의 목숨을 노릴 거다.
정적 속에서 아몬드는 계속 두리번거렸다.
‘?’
뭐야. 왜 없지.
-뭐함?
-쉐도우복싱ㅋㅋㅋ
-ㅋㅋㅋㅋㅋㅋ개웃겨
채팅창에 조롱이 쏟아진다.
아몬드는 어리둥절하는데.
그제야 스윽 떠오른 문장.
[모두는 모두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시작한다]
허탈하게 이만 활을 내리는 아몬드. 저 문장이 일단 이 층의 규칙인 모양이다.
‘최대거리로 떨어졌구나.’
2층에 내려오자마자 서로 처죽이는 일이 없도록 조치를 취한 것일까?
‘이러면 루나도 멀겠네.’
루나도 아마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거다. 이미 함께하기로 했으니 찾아보긴 해야 하는데.
‘그래야 하나.’
꼭 그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선택지 잘못 고르면 죽이기나 하고. 딱히 도움도 안 되는 전투 능력에…….
“이제 어떡하죠?”
아몬드는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규칙 나올 때까지 사냥 ㄱㄱ
-레벨 올려요
-일단 강해져야함
일단 강해지란다.
하기야, 또 언제 거지 같은 규칙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강해져라…….’
그러고 보니 룬으로 무기를 강화할 수 있다 했다. 물론 아몬드는 그전에 해야 하는 게 있다.
“아. 룬 해석을 지금 해보는 게 좋겠는데요?”
해석이다.
룬을 해석한 뒤, 그걸 전부 무기 강화에 투자하면 꽤나 강해질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어? 뭐가 있는데요?”
부스럭.
주머니에 뭔가 더 만져진다.
기다란 종이 같은 것이다.
[계약된 스킬 스크롤 - 이기어검술]
-???
-오
-얻었구나
-뭐야
“이게 뭐지.”
설명을 본다.
[화신과 미리 계약된 스킬을 적은 스크롤. 심연에 낮은 확률로 나타난다. 스크롤을 찢어서 사용한다.]
이 스크롤을 찢으면 스킬을 익힐 수 있는 모양이다.
아무런 페널티도 없었다.
무슨 이런 좋은 아이템이 주머니에 떡하니 들어 있지?
-어? 스킬 뺏어올 수 있나봄
-이기어검술 캬
-죽여서 뺏었네
“아. 뺏어온 거구나.”
이기어검술.
이거 닌자의 기술이었다.
그를 죽여서 그의 스킬이 아몬드에게 넘어온 것이다.
“이런 게임이었군요?”
상대를 죽이면 스킬을 뺏어올 수 있다니.
이래서 스위프트가 스킬을 최대한 노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스킬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바로 타깃이 될 테니까.
‘그래도 익혀서 나쁠 건 없지.’
아무도 핵을 쏘지 않더라도, 핵이 있는 것과 없는 건 너무 큰 차이다.
아몬드는 곧바로 계약된 스킬 스크롤을 찢어본다.
찌익.
[계약된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이런 알림과 함께 스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 ====
[이기어검술]
검과 링크를 걸고 검을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능력이다.
검이 하나라는 전제하에 초당 5의 마나가 소비된다.
검이 여럿이 되면 그만큼 늘어난다.
==== ====
읽다 보니 이상한 게 있다.
“아. 근데 전 무기가 활인데…….”
-ㅋㅋㅋㅋㅋㅋ
-엌ㅋㅋ그렇네
-쓰레기였네 ㅠ
스킬은 나쁘지 않은데.
아몬드의 무기와는 전혀 맞지 않다는 것.
알림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띠링.
띠링.
여러 가지 설명창이 더 떠오른다.
[처음으로 마나를 느꼈습니다!]
[약 300의 마나를 다룰 수 있습니다!]
마나를 처음으로 느꼈다.
스킬을 배우면서 마나도 인지하게 되는 모양이다.
근데 채팅창이 소란스럽다.
-300???
-뭐야 첨부터 300뭔데 ㅋㅋㅋ
-지능캐였나?
-마법사누
300 마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시청자들 반응을 보니 꽤 많은 양인 모양이다.
그에 대한 설명도 나왔다.
띠링!
[참고하세요! 깊은 심연일수록 총 마나량이 늘어납니다!]
[참고하세요! 참가자를 죽이면 마나를 일부 흡수합니다!]
[참고하세요! 레벨을 높이면 마나량도 늘어납니다!]
레벨이 높은 데다가 참가자를 꽤 많이 죽였기 때문이다.
‘죽이면 마나를 얻는다는 게…… 레이나의 전장이랑 같구나.’
이는 레이나의 스토리 모드에서도 봤던 설정이다. 여기도 별다를 거 없이 비슷하게 돌아가는 모양이다.
성소가 있는 곳은 어쩌면 어디든지 이런 것이다.
“그나저나, 제가 좀 위험해지겠네요. 이 스킬 뺏고 싶어 할 거 아니에요?”
-ㄹㅇ그럴듯
-npc들 주제에 그런것도 아나?
-맞네
[??? 님이 5천 원 후원했습니다.]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읊어지는 명언. 그러나 어폐가 있다.
“전 칼이 없어서, 딱히 좋은 것도 없이 책임만 생겼네요.”
-엌ㅋㅋㅋ
-쾌락없는 책임ㅋㅋㅋ
-가장의 무게 ㅠㅠ
이번엔 의문을 표하는 후원이 들어온다.
[개굴 님이 1천 원 후원했습니다.]
[아니 근데 왜 갑자기 설명 읽음?]
-ㄹㅇㅋㅋㅋ
-짭포좌 오열
-그건 미션 창을 보시면 압니다~
-안죽으려고 발악중ㅋㅋㅋ
누군가는 아몬드가 ‘노데스 클리어’ 미션이 걸린 뒤로 설명을 읽는다는 걸 지적한다만.
“설명 읽으라면서요.”
아몬드는 그냥 어물쩍 넘어갔다.
“그나저나 빨리 강화부터 해보겠습니다. 제가 위험해졌거든요.”
그는 아까 우드슬래터를 잡고 얻은 룬을 꺼내 들었다.
[복사의 룬 - 리카(Lika)]
[폭발의 룬 - 아헤모스(Ahemors)]
긴 글자와 짧은 글자.
해석하려면 모두가 멀리 떨어진 지금이 기회였다.
“일단 쉬운 거부터 가…….”
빠바밤!
[비비빅 님이 무려 10만 원 후원하셨습니다!]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당 ㅎㅎ 근데 폭발 룬 좋아보이네요.]
“……갈 수는 없고. 매도 먼저 맞는다고 긴 것부터 가겠습니다. 비비빅 님 후원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커브샷 뭐임
-매먼맞 ㅋㅋㅋ
-역시 커브샷의 달인
아몬드는 자연스레 폭발의 룬 ‘아헤모스’를 꺼내 들었다.
‘어디 보자…….’
일단 아헤모스의 알파벳은 ‘A- H - E - M - O - R - S’이다.
알파벳 표현이 써 있어서 다행이지. 이렇게 애매한 소리를 스펠 해내려 했다면 꽤 해석에 애먹었을 거다.
아몬드는 이제 룬 문자를 대입해 보기 시작한다.
“S, R, E 얘네는 애초에 있었고…….”
WINFERESTIN의 룬 문자를 해석해놓은 터라, S의 룬 문자 형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대응되는 거 일단 찾았습니다.”
그는 다른 룬 문자들을 하나씩 1 대 1 대응시키며 나머지 알파벳이 룬 문자로 변경됐을 때를 다 찾아냈다.
그리고 이제 몸에서 이 문자들로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면 됐다.
“후우. 한참 걸리겠는데요.”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난 걸까?
아몬드는 대충 몸에 있는 문장들 중 이만큼을 찾아냈다.
[M■ST FIN■ ■■NA]
[MEMORIES ■EE■ FA■IN■]
[■I■■ SWIFT]
.
.
.
아직 많이 비어 있지만, 그래도 채워진 것들도 상당하다.
그중 눈에 띄는 건 스위프트 이름.
‘스위프트 앞에도 그러고 보니 뭐가 있네. 이름과 성인가?’
스위프트는 북미권에서 보통 성으로 쓰인다. 아마 앞에 있는 게 이름일 터다.
조금만 더 찾는다면, 앞의 이름까지도 알 수 있을지 모른다.
‘완전히 찾아낸 단어가 있어.’
여기서 가장 큰 수확은 역시 Memories(기억)다.
이 단어를 기반으로 뭔가 더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는 게 좋을 것이다.
‘이거로 추론이 되나.’
아몬드는 현재 그가 아는 사실로 남은 글자를 끼워 맞춰 보려 했다.
‘기억이…….’
MEMORIES ■EE■ FA■IN■
이 문장은 거의 완성형이다.
게다가 고유명사가 들어갈 여지는 없어 보인다.
맞출 수 있을 거다.
‘Memories 이 뒤에 ee가 올 수 있는 게 뭘까?’
명사 뒤에 올 만한 ee는 몇 개 없다.
아니, 어쩌면 딱 정해졌다.
‘Keep!’
이거일 거다.
Memories Keep FA■IN■
두 번째 단어가 완성됐다.
기억이 계속 어떻게 된다…… 라는 뜻이다.
이제 ‘어떻게’를 맞혀야 한다.
어떻게 되는 걸까?
기억. 기억이라.
릴 세계관이 다 연계된다는 걸 고려하면.
아몬드는 기억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게 많다.
‘떨어진다?’
Falling
같은 l이 두 개였다면 진즉에 알았을 것이다.
글자 수도 맞지 않는다. 이건 답이 아니었다.
애초에 기억이 떨어진다는 게 뭔 말이란 말인가?
‘어?’
그래. 기억.
아몬드는 순간 머리에 뭔가 번뜩였다.
‘기억이…….’
그는 빈칸을 조심스레 채워본다.
‘……사라진다.’
Fading
스스슥.
문장이 완성된다.
Memories Keep Fading
(기억이 계속 사라진다)
글자 수도, 의미도 맞는다.
-ㄷㄷㄷ
-호두 마하스핀 뭔데!
-이거 누구야!
-대리 게임 신고좀
-리폿각이네ㅋㅋㅋ
좀처럼 보기 힘든 아몬드의 두뇌 플레이에 채팅창 스크롤이 마구 올라간다.
-왘ㅋㅋㅋ
-몸으로 해결하는게 편해서 안 쓸 뿐이었나!?
-호두 뒷광고 쳐내!
아몬드도 만족스러운지 씩 웃으며 무어라 대답하려던 순간.
쿵……!
“!?”
갑자기 심장이 철렁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글자가 빛나기 시작하더니.
[기억을 열람합니다.]
시야가 하얗게 타버리며 잠식된다.
* * *
[초보자 Tip: 기억은 정보가 아닌 해석이라고 합니다. 매번 팀원의 잘못으로 게임이 진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비슷한 이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