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89화
65. 이카루스(3)
잠시 후.
킹귤의 방송이 켜졌다.
그의 원래 패턴을 생각하면 이상한 시간, 이상한 제목이다.
[아몬드 vs 전자파! 오렌지 쥬스 되찾아오기 관람]
-??
-머야
-킹귤 방송 벌써 킴?
-오늘 아몬드랑 합방하는 날이라 그런가?
-ㅎㅇㅎㅇ
“아~ 아~”
킹귤은 잠시 마이크 테스트를 한 후.
유쾌하게 인사를 건넸다.
“아아안녕하세요!”
-ㅎㅇㅎㅇ
-귤하
-안녕하세요~
시청자들이 밍기적 밍기적 조금씩 들어온다.
“아. 오늘은 아몬드 님의 요청으로 방송을 조금 빨리 켜봤습니다.”
오늘 방송 컨텐츠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전자파의 데이터를 갖고 있는 점멸검 스토리 라스트 보스와 대결을 중계하려고 합니다.”
-??
-앜ㅋㅋㅋㅋ그래서 오렌지주스
-그 주스는 님이 되찾아와야죠……
오렌지 주스.
킹귤이 프로 시절 패배하고 펑펑 울었던 사건을 놀리는 밈이었다.
그렇게 서럽게 울 수가 없었다면서 아직까지도 커뮤니티에서 짤로 자주 쓰인다.
그때 그 눈물의 패배를 안겨준 상대가 바로 신인이었던 전자파다.
즉, 전자파가 그의 주스를 뺏어간 것이다.
킹귤은 늘 복수를 꿈꿨다. 다시 주스를 찾아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전자파는 그해 모든 시리즈를 석권했고, 패배는 없었다.
“예. 뭐 주스를 제가 찾아오면 제일 좋겠지만. 저는 이제 후인 양성을 하는 입장으로서…….”
그러니 이 길고 긴 변명을 요약하면, 아몬드에게 미션을 걸어서 그 임무를 대신 맡겼다는 것이고.
그는 이 대결을 중계하기로 했다는 말이었다.
-킹귤 님다운 비겁함이네요 ㅎㅎ
-상남자란 이런 거다! 싶네요 ㅎ
-상 특) 남한테 돈 주고 시킴. 이거 맞죠?
채팅창엔 그를 비꼬는 글들이 수도 없이 올라왔으나.
늘 있는 일이다 보니 킹귤은 개의치 않았다.
“예. 예.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아!”
이로써 킹귤의 중계는 시작됐다.
* * *
주혁의 메시지에, 아몬드는 잠시 게임을 일시정지시켰다.
[상현: 킹귤 님이 이것도 중계하신다고?]
[주혁: ㅇㅇ 괜찮지 않아?]
[상현: 그래주면 좋긴 하지. 그럼…… 시청자들한테 설명 좀]
[주혁: ㅇㅋㅇㅋ]
주혁이 꽤나 솔깃한 제안을 한다.
방금 전 미션을 건 사람이 진짜 킹귤이고, 그가 오늘 스토리 모드 마지막 전투도 중계를 해준다고 한다.
-?? 뭐임?
-설마 여기서 방종? ㅠㅠ
-뭐야 뭐야 무슨 비밀 얘기하냐고!
-방종이냐?
방송에 보이지 않는 메시지로 주고받은 것이라, 시청자들은 아직 상황을 몰랐다.
심지어 아몬드가 방종각을 재고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아. 여러분…….”
아몬드는 앞서 주혁이 말한 내용을 설명했다.
-?? ㄹㅇ 킹귤임?
-찐이었다고?ㅋㅋㅋㅋ
-미친 오렌지 주스 탈환 작전으로 이미 방제도 바뀜ㅋㅋㅋㅋ 개웃기넼ㅋㅋ
-캬
-그때의 복수를 이제야 ㅋㅋㅋㅋ
[아. 아. 안녕하세요. 견과류단님들. 킹귤입니다.]
킹귤의 목소리가 시청자들에게도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만 아몬드에겐 들리지 않았기에, 그는 시청자들 반응을 보고야 중계가 시작됐단 걸 알 수 있었다.
-킹하~
-진짜냐곸ㅋㅋ
-???: 넌 오렌지 주스를 뺏어가선 안 됐어……
-ㅅㅂㅋㅋㅋㅋ미치겠네
“여러분. 킹귤님 목소리 잘 들리시면 시작할게요. 이거 시빌 엠파이어 때 세팅인데. 괜찮은가요?”
-ㅔ
-ㄱㄱㄱㄱ
-ㄱㄱㄱ
-굳입니당
시빌엠파이어 때 쓰던 세팅을 그대로 쓰면 돼서 복잡하게 더 만질 거리는 없었다.
“그럼 갑니다.”
아몬드는 다시 게임을 재개했다.
* * *
초월의 힘으로 활활 타오르는 새.
새는 어느새 어엿한 남자의 형상이 되어 있었다.
검은 머리, 올곧은 콧대, 날카로운 눈매.
꽤나 미남이었다.
그 뒤에 하얀 날개까지 얹어지니 천사로 보이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천계에서 내려온 사자.
[자. 저놈이 라스트 보스죠? 제가 저놈의 목에 무려 20만 원을…… 엥? 아니, 돈이 더 불었네요?]
그 천사의 목에 지금 총 현상금 70만 원이 걸려 있었다.
-거 참 많이 버시면서 20만 원을 거냐 ㅋㅋㅋ
-쪼잔킹
-수포좌가 님보다 많이 검 ㅋㅋㅋ 돌려받을 주스도 없는데
킹귤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아. 그나저나 저 새가 내려올 생각을 안 하네요?]
킹귤의 말대로였다.
새는 하늘에서 내려올 기미가 안 보였다.
‘안 닿는데.’
아몬드도 같은 고민이다.
그의 입장에서도 저렇게 높이 있어선 도저히 맞힐 수가 없었다.
이 활은 사거리의 제약이 확실한 무기였으니까.
[어? 뭔가 합니다?]
척.
놈이 지휘하듯 오른팔을 들어 올리니.
날개의 형상을 이루고 있던 칼날들이 일제히 도열한다.
그들은 당장 발사되기만을 기다리는 듯, 아몬드와 루나를 향해 고개를 날을 세우고 있었는데.
발사될 것만 같다는 그 걱정은 금세 현실이 되어버렸다.
[아. 이거 뭐죠!? 칼날비인가요!?]
척.
그가 검지로 아래를 가리키자, 수많은 칼들이 낙하하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륵!!
‘칼날비?’
아몬드는 이 기술이 발키리라는 화신이 쓰는 칼날비와 유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미 이 칼날비 속에서 살아남은 적이 있다.
심지어 한 번도 아니고 다수였다.
화살로 쏴 맞혀도 되고, 그냥 걸어서 피해도 좋다.
쾅! 쾅! 콰광!
칼날이 대지를 파고들며 살벌하게 낙하하는 동안에도, 여유롭게 그 사이를 피할 수 있었던 건 그 덕분이다.
[아몬드한테 칼날비라뇨? 어림도 없죠! 데이터가 다 있다더니! 새대가리답네요!]
-ㅁㅊㅋㅋㅋㅋ
-오렌지 주스 탈환할 생각에 신난 킹귤
-새대가맄ㅋㅋㅋ
-지금은 엄연히 사람대가리인데요?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여기 하나 더 갑니다아!]
촤라라락!
새는 왼쪽 날개의 칼들도 펼쳐 보였다.
그리고 똑같이 칼날비가 내렸다.
콰과과광!
두 번째라고 다를 게 있을까?
역시나 아몬드는 그들을 다 피해 버렸다.
-와 미챴다
-이걸 ㄹㅇ 다 피하네
-기계네 걍
[역시 다 피합니다! 아몬드가 말하는데요? 이거 다~ 아는 장면들이구먼?!]
-아몬드가 언제요?
-님이 말함ㅋㅋ
-엌ㅋㅋㅋㅋㅋㅋㅋ
-ㄹㅇㅋㅋ
-하필 칼날비냐곸ㅋㅋ
콰과광!
칼날비는 애꿎은 땅만 파고들 뿐이었다.
지상에 수많은 칼들이 꽂혀 있었다.
바꿔 말하면 발 디딜 공간이 슬슬 별로 없어지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촘촘하게 날아오는 칼날을 피한다는 게 아몬드나 쉽지.
다른 이들에게도 쉬울 리는 없었다.
“으으윽…….”
루나는 피를 흘리며 어깨를 부여잡고 있었다.
[아아! 아몬드는 피했는데. 루나는 역시 못 피했네요!]
루나는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벤은 이미 빈사 상태였다.
“끄으윽…….”
“벤!”
그는 겨우 숨만 붙은 수준이다.
[벤? 이란 캐릭터도 거의 죽어갑니다? 근데 쟤네 굳이 살려서 가야 하나요?]
-??
-앗……
-그러게 ㅋㅋ
-엌ㅋㅋㅋ
-갑자기 그렇게 요점을……
점멸검 3별 클리어에 대해선 킹귤도 잘 알지 못하기에, 그 역시도 궁금한 게 많았다.
[이대로 저 위에서 칼날비만 계속 쏘면 저 둘은 그냥 죽겠는데요? 저 높이에 있는 걸 어떻게 죽이죠?]
킹귤의 마을 듣기라도 한 듯.
슈웅.
놈의 본체가 낙하하기 시작했다.
[아! 다행히 낙하합니다! 이거 역시 새대가리 맞네요! 그냥 위에서만 쏘지! 굳이 내려와 줬죠?]
-누구 편이냐 킹귤아 ㅋㅋㅋ
-20만 원을 버리기 싫은 자아와 오렌지 주스를 탈환하고 싶은 자아의 대결
-게임적 허용 ㅎㅎ
-안 내려오면 오바지ㅋㅋ
킹귤은 왠지 모르게 아쉬워(?)하는 듯했으나.
‘다행이다.’
아몬드는 속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놈이 계속 저 위에서 칼날비만 내렸다면 솔직히 이쪽에서 대처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으니까.
쿠웅!
놈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낙하한 뒤.
수없이 꽂혀 있는 깃털 칼날 중 하나를 맨손으로 집어 든다.
스윽.
그러자, 칼날은 어엿한 검으로 형상을 바꾸었다.
그는 그 검을 아몬드에게 겨누며 말했다.
“관리자에게 대항한 걸 후회하나?”
“아니.”
“이미 늦었다.”
“?”
-???
-아니 ㅋㅋ
-혀 반응속도 ㅋㅋㅋ
“죽어라.”
콰아앙!
말과 함께 발을 박찬 후.
천사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휘익!
─아몬드의 코앞에서 나타났다.
“아몬드!”
쓰러졌던 루나가 어느새 일어나 검을 투척하며 외친다.
카아앙!
루나의 검과 녀석의 검이 부딪혔다.
[아아! 루나! 아직 전투에 참여해 주는군요! 벤은 죽은 걸로 보입니다?!]
아몬드는 뒤로 빠져나가 활시위를 당겼고.
파지직!
루나는 튕겨 나간 검으로 점멸하여 등장했다.
[전투 어지러운 와중! 아몬드 화살과 루나 검격이 양각을 잡습니다아!]
아몬드의 화살과 루나의 검격이 양쪽에서 공격해 오는 형국.
쉽게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아아앗!? 뭐죠 이게!?]
스으으윽.
천사는 검을 신묘한 각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루나가 다시 휘두른 검과 아몬드의 화살 모두를 튕겨냈다.
카강……!
[무, 무슨?! 어떻게 한 건가요! 이게 전자파의 데이터인가!? 진짜 위험했는데 너무 부드럽게 흘려요!]
아몬드는 지지 않고 다시 활을 쐈으나.
후웅.
천사의 날개가 한 번 펄럭이더니.
콰앙──
천사의 신형이 다시 잔상만을 남기며 흩어졌다.
엄청난 속도였다.
[게다가 미친 듯이 빠릅니다아!]
──슥.
천사는 아몬드의 뒤에서 등장했다.
집요하게 아몬드만 노리는 느낌이었다.
[아몬드의 전투력이 더 위라고 느낀 걸까요? 아몬드만 노립니다?! 아님 점멸 쓰는 루나는 잡기 힘들다는 판단?!]
그의 검격이 아몬드를 절반으로 베어버렸다.
[아몬드 막았……! 막았어요! 대단합니다!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든 걸!]
콰아앙……!
아몬드는 절반으로 나눠지는 대신, 활로 검격을 막아버렸다.
[근데 활대로 막았습니다?!]
-ㄷㄷ
-와 너무 빨라 ㅅㅂ
-선생님. 진도가 너무 빨라요!
[이거 활 괜찮나요! 원래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
빠각……!
“!?”
활의 중앙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니, 금이 가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어!? 활이 부서지는 겁니까!]
퍼엉!
아몬드의 활이 두 갈래로 쪼개졌고. 천사의 검격이 그대로 흘러들어왔으나.
아몬드는 뒤로 몸을 날려 피했다.
[아몬드 와중에 살았어요! 근데 이제 어쩌죠!? 새가 따라붙습니다!!]
쾅!
새는 다신 한번 날개를 저으며 아몬드에게 따라붙었다.
파지직!
[점멸]
루나가 점멸과 함께 등장하며 대신 검을 받는다.
카앙!
“아몬드! 얼른 무기를 집어!”
루나가 잠시 시간을 벌어준 사이. 아몬드는 주위에 널린 아무 칼이나 집어 들었다. 아이들이 쓰던 것들 중 하나였다.
그사이 루나가 천사와 검격을 나누며 시간을 끌어줬다.
[아아! 루, 루나! 엄청나게 도움 되는데요?! 제 기억에 이렇게 도움 되는 NPC는 없었는데?]
-그건 님 얼굴탓임
-화신 얼굴 인지한다니까 ㅋㅋ
-ㄹㅇㅋㅋ 루나 저런 애 아닌데
그러나, 그게 화근이었다.
[아! 하지만! 열심히 했지만! 밀립니다! N수생이 감당하기엔 너무 어려운 문제입니다! 전자파는!!!]
어떻게 된 건지 몰라도, 조금씩 검격이 밀리더니, 점멸을 쓰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흐르고.
촤아아악──
루나의 상체가 대각선으로 깊이 파였다.
“어, 어…….”
루나는 저도 모르게 입을 멍하니 벌린 채 쓰러졌다.
[다행히 이젠 아몬드가 무기를 들고 있고! 달려듭니다!]
“루나!!!”
아몬드는 이판사판으로 검을 들고 뛰어들었다.
카강!
루나를 마무리 지으려는 천사의 검격을 아몬드가 받아낸다.
[아, 아몬드 막았습니다!]
스르릉!
아몬드는 검격을 미끄러지듯 흘려 천사의 검이 무너지게 만들었다.
와중에 자신의 검은 다시 틀어 올려 베어버렸다.
후웅!
천사는 곧바로 날개를 저어 뒤로 물러났다.
[이것도 대단한데요!? 시빌 엠파이어에서 단련된 검술일까요!]
일단 한 번 천사를 물러나게 하는 데 성공하긴 했으나.
천사는 계속해서 루나를 죽이기 위해 또 돌진해 왔다.
휘이익──
[뭐, 뭡니까!? 이 여고괴담식 보법! 이걸 미친 어떻게 막…… 막네요!!!]
-여고괴담식 보법ㅋㅋㅋ
-엌ㅋㅋㅋ
-ㄹㅇ그거넼ㅋㅋ
카가강!
카앙!
아몬드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천사의 검을 전부 흘렸다.
루나를 지켜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무슨 대단한 이득 때문이 아니었다.
‘루나도 같이 나가야지.’
비록 NPC지만 그간 정이 들기도 했달까.
루나가 대신 칼을 맞아줬던 장면이 아몬드의 머리엔 제법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그녀의 사연이 안타깝기도 했다.
비록 아직 속내를 완전히 알 수는 없다지만 말이다.
그렇게 천사의 공격을 계속 막아내던 중.
“하아…… 하아…… 아, 아몬드…….”
바닥에 루나가 몸을 일으키더니.
“루나. 가만히 있어. 넌 지금 싸울 수 없잖아.”
“아니. 그, 그게 아니야.”
“?”
루나는 아몬드의 다리를 붙잡았다.
“나…… 날. 죽여.”
본인을 죽이라 하는 루나.
아몬드는 순간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빠졌다.
“뭐……?”
“네가 날 죽여. 그 칼로 찔러.”
방금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잠시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날 주, 죽이고. 내 스킬이랑 검을 가져! 쟤한테 죽으면 아무 의미도 없어! 너라면 나갈 수 있어. 나, 난…….”
“무슨 소리야 같이 나가야지!?”
하하핫.
루나는 헛웃음을 터뜨린다.
“난 어차피 못 나가. 이렇게나 반복했는데. 수도 없는 기회가 주어졌었는데. 난 저 녀석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잖아?”
웃고 있는 눈 끝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날 죽여.”
“무슨…….”
루나는 왜 답답하게 구냐는 듯 고함쳤다.
“날 죽이라고!! 내가 네 몸에 전부 써놓은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이 머저리야!?”
“……!”
“넌 나한테 이용만 당한 거라고! 매번!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인 거야! 그러니까─”
──푸욱.
아몬드의 검이 결국 루나의 심장을 관통해 버렸다.
* * *
[초보자 Tip: 심연에선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