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207화
72. 의혹(1)
“수고하셨습니다~!”
짝짝짝.
촬영이 끝난 것 같은 소리에, 잠시 자판기 앞에서 음료수를 마시던 주혁이 촬영장으로 다시 향했다.
한 손에는 자판기에서 뽑은 음료수들이 잔뜩 들려 있다.
그는 곧장 상현에게 가진 않았다. 촬영장에 있는 스태프들에게 인사와 함께 시원한 음료를 돌리는 게 먼저였다.
그렇게 하나둘 인사를 건넬 때, 아까 피디가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아. 주혁 씨. 덕분에 뭔가 재밌는 건덕지가 나온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아이. 저는 그냥 입만 놀린 건데요. 뭘.”
“아니. 노트북으로 대전기록도 같이 살펴주셨잖아요. 저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는지 참.”
피디가 머리를 꽁 쥐어박으며 자책한다.
“이, 머리가 나쁘면 고생해요. 아주.”
“피디님이 머리가 나쁘실 리가 있습니까. 입릴의 화신이 얼마나 흥했는데.”
“아하하. 여튼 오늘 감사합니다. 다음에 기회 되면 식사나 한번 같이해요.”
“예!”
주혁은 빠릿하게 인사한 후, 다른 스태프들에도 마저 음료를 돌렸다.
그렇게 인사를 마친 후.
‘눈도장도 팍팍 찍고. 아주 좋네. 근데 얜 어딨냐?’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며 상현에게 향했는데.
그는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 중이었다.
“……지금 인디펜던트로 계속 가시면, 포텐을 끝까지 못 살릴 수도 있어요. 대부분 스트리머들도 요즘 mcu에 소속되는 게…….”
주혁은 순간 자신이 왜 그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본능 같은 거였다.
“……!”
저 장면을 보자마자, 그는 숨이 멎은것처럼 발이 땅에 묶였고.
마치 들키면 안 되는 사람인 것처럼 기둥 뒤에 숨어버렸다.
* * *
때는 10여 분 전.
애호박의 처형식을 끝으로, 입릴의 화신 촬영이 정말로 끝났을 때였다.
상현은 땀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후우. 길었네.”
괜한 트롤을 하나 만나서 한참 더 연장된 듯한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전용 캡슐을 쓸 수 없어서 꽤나 쉽게 지치는 상황인데. 연장까지 했으니 말 다 한 셈이다.
‘그래도 조회 수 잘 나올 거 같다.’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방송이 흥한다면 그걸로 됐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제 촬영장을 떠나려는 상현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뭐지?’
한 쌍의 남녀였다.
즉 네 명인데, 어느 쪽도 커플로 보이진 않았다.
조금 더 차려입은 것 같은 쪽이 먼저 명함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상현 씨. 저희는 나비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왔는데요. 저는 차장 이수현이라고 합니다.”
“아…….”
엔터테인먼트?
생각지도 못했던 자들의 등장이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하면, 보통 연예인들이 소속된 곳 아닌가요.”
“네! 맞아요.”
차장이라 소개한 여성은 기다리던 질문이라는 듯 밝게 웃으며 끄덕였다.
“이번에 스트리머 쪽으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어요. 이젠 스트리머들이 사실 진짜 연예인 아니겠어요?”
옆에 있던 직원이 이때다 싶어 끼어든다.
“지금처럼 인디펜던트로 계속 가시면, 포텐을 끝까지 못 살릴 수도 있어요. 대부분 스트리머들도 요즘 mcu에 소속되는 게…….”
주저리주저리 뭐라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상현의 귀에 제대로 들어오진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고.
자기 업계에서나 쓰는 은어 비슷한 말을 너무 많이 섞어 쓰니 이해도 안 됐다.
“아, 예. 그런데 죄송하지만, 전 지금이 더 좋아서요. 지금 저를 케어해 주는 분도 충분히 대형 회사만큼 잘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해 줬다.
엔터 회사 직원이라고 하니, 혹여나 이상한 소문이라도 날까 봐서다.
“……지금 케어해 주는 분이요?”
혹시 회사에 소속이 이미 되어 있는 건가 하며 묻는 차장.
그러나 회사 소속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냥 매니저가 따로 있을 뿐이라고. 상현이 부연한다.
“아. 그 친구분?”
차장은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올라가기 위해선 주변을 정리하는 게 먼저예요. 상현 씨. 친분에 휘둘리는 건 좋지 않죠. 이건 업계에 오래 있던 제 개인적인 충고.”
그러고는 배시시 웃더니 이만 인사하고 사라진다.
“다음에 기회 되면 봬요.”
“…….”
상현은 예의 있게 보이기 위해 고개를 까닥하긴 했으나.
영 찜찜한 대화였다.
‘친분에 휘둘리는 건 좋지 않아요.’
뭔가 가슴 속을 뜨겁게 쿡쿡 찔러댄다.
* * *
주혁은 숨을 죽이고 어둑해진 촬영장에서 조금씩 들려오는 그들의 말을 주섬주섬 주워들었다.
‘영입 제안인가.’
딱 봐도 엔터테인먼트에서 온 사람들이다. 놀랍진 않았다. 그냥, 올 게 왔다는 생각이었다.
‘이제야 온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아무래도 상현이가 공식 석상에서 매니저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긍정적으로 해준 터라, 쉽게 접근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주변을 정리하는 게 먼저예요. 상현 씨. 친분에 휘둘리는 건 좋지 않죠. 이건 업계에 오래 있던 제 개인적인…….”
이미 저쪽도 알고 있다.
주혁과 상현의 관계를, 그걸 알고도 접근했고. 그것에 대해 파훼법도 생각했을 터다.
지금은 그냥 물러가지만, 나중에도 그럴까?
‘…….’
주혁은 속이 쓰렸다.
이 기분은 뭘까.
이미 알고는 있었는데 말이다. 상현이 언제고 자신의 곁을 떠날 수 있는 구조라는 것 말이다.
물론 상현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주혁은 상현이 배신할까 두려워 이러는 게 아니다.
상현이 친구라는 이 관계와 우정, 그리고 일말의 동정심만으로 주혁을 선택해야 하기에.
눈앞의 훨씬 큰 기회를 자신 때문에 날려야 하기에.
그걸 지켜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그게 더 쓰라린 거다.
* * *
겨울엔 해가 짧다.
촬영이 끝나니 이미 해가 다 떨어진 밤이었다.
스튜디오 근처 술집거리가 화려한 조명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온기를 나눠 추위를 몰아낸다.
웃고 떠들며 서로의 따뜻한 품속에 파묻혀 있다.
[내일은 전국에 많은 양의 눈이 내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마 이 눈은 주말간 계속…….]
라디오에선 내일 내릴 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후엔 지루한 교통 뉴스다. 주혁은 라디오 채널을 돌려 버린다.
“……오늘 치맥이나 한잔할까.”
처음엔 라디오에서 나온 소리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하하하. 그래서요? 그 친구하고는 손절해 버렸죠?]
[아, 물론이죠. 끼리끼리는 과학이잖아요. 그런 사람하고 엮이기 시작하면 저도 같이 밑바닥으로 떨어지…….]
라디오에선 친구를 손절하니 마니로 떠드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치맥 별로야?”
“뭐, 뭐야. 네가 말한 거냐?”
주혁은 그제야 상현의 목소리를 알아채고 되묻는다.
그가 먼저 술을 먹자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의외였다.
“어. 그 라디오 좀 꺼. 그냥 음악이나 듣지. 뭔 아저씨처럼…….”
“너도 곧이다. 임마.”
잠시 차 안에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치맥 어디서?”
“그냥 우리 동네. 차 세워놓고 근처로 가자.”
“음…… 아니다. 난 오늘 좀 피곤해서.”
주혁은 고개를 내저으며 거절했다.
“아…… 그래. 알았다.”
상현은 내심 아쉬운지 창밖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 * *
결국 둘은 그렇게 집으로 곧장 들어와서 별다른 식사 없이 잠을 청했고, 다음 날이 왔다.
상현은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휴대폰을 켠다.
“으으음…….”
어제 입릴의 화신 라이브 방송이 나간 후, 반응을 보기 위해서다.
입릴로 검색하자 다양한 글이 튀어나왔다.
[어제자 입릴의 화신 소리 스킬 분석]
[입릴에 팝콘 vs 아몬드 레전드]
[팝콘 퇴물 다됐누]
등등.
입릴의 화신은 라이브가 그리 화제가 될 만한 방송은 아니다. 편집본이 올라간다면 모를까.
지금 라이브만 송출된 와중에 그래도 릴프로에서 언급이 꽤 되고 있다니. 꽤 좋은 성과다.
와중에 제일 반가운 글은 이거였다.
[어제 입릴 본 사람들 중에 소리 안 산 흑우 없제? ㅋㅋㅋㅋㅋㅋ]
소리 판매량을 부추기는 듯한 글.
댓글 수도 꽤 높았다.
-ㄹㅇㅋㅋ 그런 새낀 없지 ㅋㅋㅋ
-ㅈ사기 ㅈ소기업 폴리스
└……라고 욕하면서 개같이 구매한 내 인생 레전드.
└ㅋㅋㅋㅋㅋㅋㅋㅁㅊ
└아 ㅋㅋㅋㅋㅋ 남들 다 총들고 싸우는데 나만 칼들고 싸울 수 있겠냐고 ㅋㅋㅋㅋ
대체로 반응도 좋았다.
그래서일까? 이런 데이터도 누군가 가져왔다.
[현재 소리 판매량 초동 매출 역대급]
새로 나온 화신 소리의 판매량이 굉장하다는 글이었다.
그는 다년간의 판매량을 데이터를 근거로 들고 와서 현재 소리의 초동 매출 즉, 초기 매출 상승량이 역대 top10 안에 들어간다고 했다.
-ㄷㄷㄷ
-ㅈ사기긴해
-가격도 ㅈㄴ 비싸게 내놨던데 이걸…… ㅠㅠ
└흙수저는 웁니다 흙흙흙
└개비쌈 화살에 금가루 뿌렸나
-후…… 이번달 알바비 박는다ㅋ
└화푸어 등장 ㅋㅋㅋ
└십ㅋㅋㅋㅋ
화신은 시간이 지나면 게임 머니로도 구매할 수 있게 풀리지만.
첫 출시 후 일정 기간 동안은 캐시로만 살 수 있다.
인기가 많으면 이 ‘일정 기간’이 점점 길어져서 거의 6개월 가까이 갈 수도 있다.
거기에 여러 가지 스킨과 묶음 판매도 있기에 제대로 구매하려고 하면 꽤 가격이 나가는 편이다.
‘여튼 반응 좋네.’
침대에 누운 상현은 이렇게 생각하며, 이만 몸을 일으켰다.
“으으으.”
어제 피곤하긴 했는지, 온몸이 뻐근하다.
“맞춤 캡슐에 너무 익숙해졌나.”
* * *
[입릴 PD: 와 이번에 초동 판매량이 역대급이랍니다!]
점심쯤이 지나자, 주혁에게 이런 메시지까지 도착했다.
“오. 이번에 소리 잘 팔리나 본데?”
소파에서 티비를 쳐다보던 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오전에 커뮤에서 봤어.”
“아. 그래?”
오늘은 주혁이 늦게 일어나서 커뮤니티를 보지 못했나 보다.
“…….”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주혁이 주방으로 향하며 말했다.
“잘됐네. 우리…… 아니, 네가 잘 팔아주면 다음에 또 폴리스에서 무슨 자리 있을 때 불러줄 거다.”
퉁. 퉁. 퉁.
그가 대파를 썰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뭘 해먹을 생각인 모양이다.
“릴로 많이 흥한 스트리머니까. 릴 제작사랑 잘 엮이면 당연히 도움이 될 거야.”
음.
상현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으나. 그냥 넘어갔다.
“맞지.”
주혁이 만들고 있던 건 평소 자주 만드는 순두부찌개였다.
식사 후 그러고 오후쯤 됐을까?
그가 방송을 시작할 시간이 다가왔을 때였다.
“어? 근데…….”
주혁이 방송 준비를 하며 커뮤니티를 쭉 살피고 있던 상황이었다.
“오전이랑 반응이 많이 다른데?”
주혁이 보고 있는 글은 아침에 상현이 본 것과 같은 것이었다.
빅) 어제 입릴 본 사람들 중에 소리 안 산 흑우 없제? ㅋㅋㅋㅋㅋㅋ
아까 그 글이 빅 게시판에 올라가 있었다.
‘이런 게 빅에 간다고?’
내용이 그리 웃기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아서 빅에 갈 만한 건 아닌데.
그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른 후, 이제 슬슬 소리를 한두 판 정도는 플레이해 본 사람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하면서 여론이 바뀐 것이다.
-근데 이거 나만 잘 안 되냐? 뭔가 구린 느낌인데.
처음 의혹을 제기하는 듯한 댓글이 나오자.
└ㄹㅇ재장전 공백보다 공속 보정 없는 게 에바임
└ㅋㅋㅋ나만 느낀게 아니네
슬슬 소리의 단점들이 하나둘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몬드의 플레이를 보고는 잘 알 수 없었던 것들.
-아…… 당한 거 같은데??ㅜㅜ 폴리스 새끼들…….
-아니 이거 나더러 진짜 활을 쏘라는 거임??? 왜 보정 하나도 없어 ㅅㅂ 어케하라고
└진짜 활 쏴서 맞히는 거였음ㅋㅋㅋ
└양궁 메달리스트 전용입니다~ 글 내려주세요~
-견과류가 릴에 독을 풀었다…….
사람들은 소리가 단점도 꽤 많은 화신이라는 걸 슬슬 알아채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이 대댓글 때문에 이 게시물은 빅에 간다.
-흑우는 너였고 ㅄ아ㅋㅋㅋㅋ
└ㄹㅇ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
└222222
└흑우가 없긴 왜 없누 본인인데 엌ㅋㅋㅋ
어찌 됐든 현재 플레이해 본 사람들의 여론은 소리가 생각만큼 좋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어떤 사람은 아예 못 쓰겠다고도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당연히 사람들은 한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었는데.
빅) 아니 그럼 아몬드는 이걸 어떻게 그렇게 한 건데??
대체 아몬드는 어떻게? 라는 질문이 나온다.
심지어 이런 의혹도 생겼다.
-슈퍼계정 장난질 아님?
└계정에 뭐가 있나?
└걍 실력이지 뭔 ㅋㅋㅋㅋ
-견은 활 그 자체인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ㅅㅂ
└그거 그냥 광고 방송임 ㅄ들아 주작이지
“오…….”
커뮤의 댓글을 함께 지켜보던 상현은 중얼거렸다.
“오늘 방송 컨셉 나왔네.”
그리고, 잠시 후.
띠링!
아몬드의 방송이 켜졌다는 알림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