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217화
75. 닌자 모드(3)
타다다다닥.
‘이게 닌자 달리기구나.’
양팔을 뒤로 뻗으며 내달리자, 엄청난 속도가 뿜어져 나왔다.
인간 오토바이라고 생각해도 될 수준이었다. 거기에 챠크라를 운용해서 벽과 지붕 등에도 마음대로 달라붙어 달릴 수 있었으니.
액션의 자유도가 월등히 높았다. 배틀라지랑 같은 엔진으로 구동되는 게 맞는가 싶을 정도였다.
-와 ㅋㅋㅋ
-이게 활주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ㄷㄷㄷ
-이게 그 배틀라지라고?
-파워슈트 코드를 좀 만진거같네 쩐다
시청자들도 다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야 배틀라지는 게임 내 대부분 활동이 몰래 아이템을 줍거나 숨어 있는 정적인 게임이니, 그럴 만도 했다.
띠링.
신나게 달리고 있는 아몬드에게 또 알림이 하나 도착했다.
[닌자 모드엔 포위망 시스템이란 게 있습니다. 닌자들을 잡으러 온 포졸들의 포위망이 점점 좁혀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듭니다. 포위망이 다 좁혀지기 전에 모든 닌자를 잡아 살아남은 1인의 닌자가 되세요!]
포위망 시스템.
사실상 배틀라지의 자기장 시스템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이 포위망이 이 게임을 점점 생존 게임에서 전투 게임으로 바꿔줄 것이다.
배틀라지에서 그랬듯이 말이다.
[30초 후 포위망이 좁혀집니다.]
이 게임이 시연 게임이라서 그런지, 포위망 알림이 상당히 빠르게 등장했다.
‘어디로 좁혀지지?’
그는 상단에 떠오른 미니맵을 확인했다.
다행히 아몬드가 있는 지역은 아직 포위망에 해당되지 않았다.
아직 멀어 보였다.
그는 조금 더 여유를 두고 무기나 여타 장비를 챙기는 게 좋다고 판단한다.
“NPC들 중에 물건을 파는 사람도 있다 했는데.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그는 새로 생긴 판매 시스템을 이용해 볼 계획이다.
‘이쯤인가.’
쿠웅──!
지붕위를 내달리던 아몬드가 저잣거리 한복판에 착지했다.
“워우!”
“이, 이봐! 조심해!”
“에라이! 상놈 시끼야!”
“이건 무슨 깡패야~!?”
저잣거리를 거닐던 NPC들이 호들갑을 떤다.
-와 ㅋㅋㅋㅋ
-npc들 반응도 하네 ㄷㄷ
-재밌다 벌쎀ㅋㅋㅋ
-여기서 싸우면 ㄹㅇ 사극 액션 영화 같겠네
-사실상 닌자 gta아녀?
저잣거리에 가득한 사람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아몬드를 보고 놀라긴 했으나. 별다른 이야기 없이 그냥 갈 길을 갔다.
딱 설명해 준 대로, 장애물 이상의 역할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몬드는 일단 행인들 사이에 몸을 숨겨 걸어 다녔다.
숨어봐야 닌자 복장이 너무 튀긴 하지만, 엄폐 기능은 확실하다.
누가 표창 따위를 던진다면 이 행인들 중 하나가 방패가 될 테니까.
그러던 중 누군가 말을 건다.
“어이. 거기 낭인. 물건을 볼 텐가?”
노인이었다. 머리 위에 [잡화점 주인]이라고 쓰여 있는.
띠링.
[닌자 모드에선 새로운 파밍 시스템이 생겼습니다.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교환하거나 행인들에게 훔친 동전으로 장비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훔쳐?”
돈을 훔쳐서 파밍한다니.
-ㅋㅋㅋㅋ닌자 인성 ㄷㄷ
-이게 닌자여 도적이여
-훔쳐야된다고?ㅋㅋㅋ 갓겜이네
“오…… 근데 훔칠 수 있으면 그냥 장비를 훔치는 게…….”
-앗……ㅋㅋ
-그렇네 ㅋㅋ
-그건 안될듯ㅋㅋㅋㅋ
장비를 훔칠 순 없는 자유도가 아쉬웠으나. 이 정도면 충분히 흥미로운 시스템이었다.
“훔치는 거 해보죠.”
아몬드는 곧장 근처 행인에게 접근했다.
[닌자의 눈]
한 행인을 빤히 쳐다보자 자동으로 스킬이 발동됐다.
[보유 금액 20전]
20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시험 삼아 훔치기 위해 다가간다.
‘근데 어떻게 훔치나.’
소매치기란 걸 해본 적이 있어야 뭘 알지. 아몬드는 어정쩡한 포즈로 손을 내밀어본다.
그러자, 레이나의 패시브 같은 타깃이 몇 개 떠오른다.
비어 있는 원으로 된 타깃 마크는 점점 시계방향으로 색칠되어 간다.
[원이 다 색칠되었을 때 시도하면 가장 확률이 높습니다.]
‘아.’
대충 감을 잡은 그는 그 타깃으로 손을 휘둘렀다.
파앙!
파앙!
뒷주머니, 좌측 주머니, 지게 안에 딸린 잔돈까지 전부 훔쳐낸다.
[20전 획득]
그가 가진 모든 재산을 다 턴 셈이다.
-상인 오열ㅋㅋㅋ
-이 악마야 ㅋㅋ
-오 ㅋㅋㅋㅋ
-왤케 잘함?? 혹시……?
순식간에 20전을 벌어버린 아몬드.
“돈이 생겼으니. 아까 그 상인한테 가 볼게요.”
그가 상인에게 향하는 길에 후원이 들어온다.
[가지볶음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아니. 저보다 더 잘 터는데요?]
“가볶 님 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더 잘 털진 못하는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ㅁㅊ
-가볶 동생 저금통 터는 속도는 못따라가지~
-가지 동생 오열 ㅋㅋㅋㅋ
아몬드가 ‘잡화점 주인’ 근처로 가자 다시 말을 건다.
“자네. 물건을 볼 텐가?”
“예.”
“자. 보시게.”
촤락.
그가 보따리를 펼치자, 살벌해 보이는 표창과 도검류가 보자기 속에서 빛을 드러냈다.
‘……몇 개 없다.’
아몬드는 곧바로 이 무기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파악해 냈다.
돈이 있더라도 상점을 이용할 수 있는 횟수가 정해진 셈이다.
‘저잣거리로 떨어진 건 잘한 일이네.’
이 게임의 컨셉을 하나도 몰랐던 거치고는 저잣거리로 낙하 지점을 잡은 건 잘한 일이었다.
아마 모든 닌자들이 이 상점에서 무기를 안정적으로 사고 싶어 할 것이다.
길바닥에서 줍는 건 내가 원하는 무기를 못 주울 가능성도 있고, 퀄리티도 불안정하니까.
‘잠깐.’
그때 아몬드의 머릿속에 어떤 불길한 예감이 스쳐 간다.
‘모든…….’
모든 닌자가 이 무기를 원할 것이다.
“크흠. 왜 그러나? 잡화점 주인이 이런 걸 보여줄 줄은 몰랐나 보지? 이래 봬도 내가 소싯적엔…….”
아몬드는 주인이 하는 말을 무시하고 얼른 돈을 던진 뒤, 기다란 환도를 하나 집어 든다.
“그걸로 할 텐──”
──후웅!
잡화점 주인의 말은 금세 끊겨야 했다.
아몬드가 구매하자마자 곧바로 환도를 휘둘렀기 때문이다.
“!?”
잡화점 주인은 자신을 공격하는 줄 알았는지 벌떡 일어났으나.
카앙!
도검의 불꽃이 튄 곳은 전혀 다른 방향.
“적이네요.”
툭.
누군가가 던진 수리검이 바닥에 떨어진다.
아몬드가 환도로 튕겨낸 것이다.
-와 씨
-어케 알았누???
-암살시도ㄷㄷ
수리검이 날아오는 소리가 생각보다 커서 바로 반응할 순 있었지만.
‘어디지.’
수많은 행인 속. 수리검을 던진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금방 보일 줄 알았는데.’
닌자의 복장이 워낙 특이하니 금세 보일 줄 알았는데, 어째서지? 이쪽에서 던진 게 아닌가? 방향은 맞는데.
“아저씨. 나머지 무기 가만히 갖고 계세요. 다시 사러 올 테니까.”
아몬드는 이렇게 중얼거린 후.
휘이익!
순식간에 내달려 행인들 사이로 숨어들었다.
뒤에서 상점 주인이 “뭐여!? 니가 뭔데! 갖고 있으래! 난 그냥 돈 주는 놈한테 팔 거여!”라고 외치는 소리는 애써 무시한 채.
‘어딨지. 내 위치만 들키겠어.’
행인들 사이로 억지로 파고드는 바람에 소란이 일어났다.
“에, 에이. 뭐여!”
“아이고. 내 발이야!”
“으억!”
그래도 아몬드는 자세를 한껏 숙여서, 최대한 적에게 보이지 않게끔 몸을 숨겼다.
동시에 자신은 땅에 귀를 대고 적의 발걸음을 들어보려 하지만…….
‘!’
이런.
두두둥…… 타닥.
투둥.
‘너무 많아.’
이래서 NPC들이 존재하나 보다. 행인이 너무 많아서 구분이 안 된다. 잔기술은 안 통하는 셈.
그러던 중.
[포위망이 좁혀옵니다.]
이제 포위망이 실제로 좁혀지기 시작했다.
저잣거리에서 먼 곳이라지만, 어찌 됐건 주어진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저놈은 죽이고 넘어가야겠다.’
스릉.
아몬드는 검을 다시 뽑아 든 채. 행인들 사이를 거닐었다.
온 신경을 끌어올렸다.
특히나 귀 쪽으로.
‘집중하자.’
집중하면 들릴 것이다.
지금 의존할 건 놈이 수리검을 던질 때 나는 특유의 소리뿐이다.
수리검을 튕겨내기만 하면 이쪽이 유리하다.
‘수리검 개수는 제한이 있으니.’
수리검은 던질 때마다 소비된다. 한계가 있는 무기였다. 반면 이쪽은 계속 휘두를 수 있다.
거리만 좁히면 순식간에 유리해진다.
“에헤이!”
“꺄아아! 왜, 거, 검을 들었어요!”
검을 들고 저잣거리를 활보하자, NPC들이 또 호들갑을 떤다.
“아. 이런.”
이거…… 단순히 칼이 근접무기라서 불리한 수준이 아니었다.
칼은 너무 커서 NPC들 반응으로 이쪽 위치가 계속해서 드러나게 된다.
그러던 중─
‘온다.’
──쉬이이익!
역시, 또 수리검이 날아든다.
NPC들 사이를 지나서 정확히 아몬드에게 쏘아졌다.
‘웬만하면 NPC들이 대신 맞는 게 나은데.’
아몬드는 별수 없다 생각하며 검을 휘둘러 쳐냈다.
카앙!
“꺄아아아아악!”
“으, 으아아아악!”
“검객이다! 검객!”
검을 들고 있는 걸 모자라 검을 휘둘러버리니, NPC들은 기절초풍 혼비백산.
-ㅁㅊㅋㅋㅋㅋ
-난장판이네 ㅋㅋㅋ
-걍 다 죽이죠? 마스터?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조용히 생존해야 하는 게임에서, 깽판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면 굳이 아까 그 적이 아니더라도, 다른 적들도 몰려와 아몬드를 죽이려 들 수도 있었는데.
씨익.
아몬드는 오히려 입꼬리가 올라간다.
“찾았죠?”
수많은 행인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뛰어 도망갈 때.
오직 한 놈.
그 한 놈만이 미처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이쪽으로 걷고 있었다. 놈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듯 멀뚱히 서버렸으나.
-?
-저거 닌자 맞아?
-npc아님?
-왜 쟨 닌자복이 아니냐?
아몬드는 확신했다.
놈이 닌자복이 아니고 무기도 보이지 않더라도, 확신했다.
저 움직임은 날 죽이려 했던 움직임이라고.
왜냐?
‘너무 다르니까.’
다른 NPC들과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이니까. 아니, 거의 반대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챠크라 발산]
아몬드의 오른발이 바닥을 지그시 누르더니, 신형이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콰아앙!
챠크라 활용법 중 하나다.
쉬이이이익!
엄청난 가속으로 순식간에 시야가 휘어진다.
──사악!
검면에 반사된 햇볕이 번쩍하더니, 시뻘건 피가 뿜어졌다.
행인들은 더 죽어라 비명을 지르며 사방팔방으로 튀었고.
털썩……!
수리검을 던지려던 자는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쓰러진다.
띠링.
[상대의 목을 단칼에 베었습니다. 도검류의 경우 ‘즉사’ 판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제대로’ 베었을 때에만 받을 수 있는 판정입니다.]
[*무기의 내구도가 낮으면 베기 판정이 좋지 않아져 불리합니다.]
즉사.
이게 아몬드가 받아낸 판정이었다.
[1 → 28]
[즉사]
[59/60]
이 게임에서 생긴 첫 번째 킬이었다.
다들 게임에 아직 적응하는 단계일 때, 가장 먼저 단칼에 킬을 낸 것이다.
-와……
-닌자 맞았네??
-헐 ㄷㄷㄷ
-미쳤다
-미친 개섹시해 아몬드……
-한 방 컷이여???
빠바밤!
[루비소드 님이 무려 10만 원 후원했습니다.]
[오늘 저녁 치킨인가요?!]
완벽한 한 방 컷 액션에 루비소드를 비롯한 시청자들의 후원이 이어졌다.
[호카게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이…… 인정!]
[홀리몰리 님이 5천 원 후원했습니다.]
[와 이거 게임 미쳤다. 아몬드도 미쳤다. 그리고 수포좌도……]
-엌ㅋㅋㅋㅋㅋㅋ
-수포좌 벌써 만원 컷!
-ㅋㅋㅋㅋㅋㅋㅁㅊ
-그저 모든게 미친 게임 ㅋㅋ
“아.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 치킨 당연히 먹어야죠.”
아몬드는 후원에 대답하고는,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그의 시체에 다가갔다.
“그나저나 왜 닌자 복장이 아닌 거죠. 이건 불공평…… 응?”
투덜거리며 다가간 시체는 복장이 바뀌어 있었다. 아몬드가 알고 있는 닌자 복장이다.
“……닌자 복장이네요?”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으나, 아몬드는 일단 할 일을 진행했다.
배틀 라지에서 상대를 죽이면 하는 행동.
“파밍 좀 할게요.”
파밍(Farming)이다.
농사를 짓다에서 비롯한 말로, 씨를 뿌리고 나중에 수확하여 부를 이루듯, 아이템을 얻어 캐릭터를 점점 강하게 만드는 일을 말한다.
‘수리검은…… 4개 정도.’
그는 죽은 닌자의 품을 이리저리 뒤져 수리검을 얻어냈다.
수리검을 쓰던 놈이니 수리검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여기까진 예상했던 바다.
그런데─
‘어?’
이상한 아이템이 하나 더 있었다.
‘이건 뭐지.’
아몬드가 그 아이템으로 손을 뻗는 한편, 멀리 저잣거리의 지붕 위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자가 하나 있었다.
“방금 뭐야, 그 즉사 판정…… 저런 게 있구나.”
그는 본래 파밍 중에 기습해서 암살할 계획이었으나, 아몬드의 전투 장면을 본 순간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그냥 싸워선 안 되겠음.”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으나, 대화 중이었다.
시야 한구석 채팅창에서 답변이 올라오고 있었으니까.
-닌자가 으딜 비겁하게 정면으로 싸우냐고~ ㅋㅋㅋㅋ
-쫄? 응 쫄았어~ 그러니까 닌자하지~ ㅋㅋㅋㅋ
-캬! 감튀의 기습 선언! 고인의 명복을……!
-튀기러 드가자~!
챌린지 덕분일까?
그의 방송엔 평소보다 훨씬 시청자가 많았다.
‘잘됐군.’
실력을 보여줄 기회였다.
“장비를 더 파밍해서 기회를 노려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