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2부-230화 (510/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230화

79. 추억의 오락실(3)

파랑.

격투게임 ‘포권’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이며, 훤칠한 기럭지와 잘생긴 외모를 갖고 있다.

-지같은 것만 고르누 기생오라비놈ㅉㅉ

-캬 파랑 ㅋㅋㅋ

-오 태권도??

사용하는 무술은 태권도.

국적 역시 한국인 캐릭터였다.

-아몬드 쉑 ㅋㅋ두유노 클럽 가입 스택 쌓고있네 ㅋㅋ

-캬 역시 국뽕의 아몬드! ㅋㅋㅋ

-두유노 아몬드? 두유는 아몬드?

태권도를 사용하는 캐릭터와 양궁으로 유명한 아몬드의 합이 은근히 잘 맞았다.

“아. 참 잘 어울리는 캐릭터인데요?”

진행자들도 이 점을 언급한다.

“그렇죠. 태권도의 파랑. 양궁의 아몬드! 효자 종목들이죠?”

“태권도는 더 이상 아니긴 하죠.”

“아…… 여튼! 파랑은 태권도니 한국인 캐릭터니 이런 문제가 아니라, 그냥 성능이 좋은 캐릭터입니다. 특히 이 클래식 버전에서는요.”

“그렇죠. 태권도 특징이 발을 쓰는 거 아닙니까? 파랑이 또 발이 길거든요. 굉장히 멀리서 톡톡 치면서 상대를 괴롭히기 좋습니다.”

파랑은 단순히 한국에서만 인기 많은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고성능으로 평가받는 캐릭터였다.

척.

파랑이 맞상대에게 포권을 취하면서, 그렇게 게임은 시작됐다.

* * *

모든 격투 게임이 그렇듯, 단 한 판만으로 승부가 나진 않는다.

포권의 룰은 5판 3선.

두 번 지더라도 이길 기회가 남는 셈이다.

두 캐릭터가 대치한 채로, 카운트다운이 들어갔다.

[레디~]

타닥.

타다닥.

상현은 괜히 조이스틱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손을 풀어봤다.

‘할 만하겠는데.’

오른손이 조금씩 움찔거리긴 하지만, 아직까진 크게 문제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조이스틱 게임은 양궁처럼 당긴 채로 정밀하게 고정될 필요가 없다.

상현의 오른손이 겪는 고질적인 문제에서 조금 자유로운 편인 것이다.

[고!]

스타트 신호가 울리면서 서로 거리 재기가 시작됐다.

슈욱. 슉.

웃통을 벗은 근육질의 할아버지 ‘헤이타치’는 나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움직임을 보여주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자. 일단 서로 탐색전!”

격투 게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서로 선제공격을 하지 않은 채로 기회를 보는 것.

그러던 중─

쉬익!

헤이타치 쪽에서 먼저 주먹이 날아들었다.

중단 공격이다.

중단 공격이 들어올 땐 조이스틱을 캐릭터 기준 뒤쪽으로 당기면 방어가 된다.

조이스틱은 왼손이다. 그러니 반응이 좋았다.

텅!

허망한 소리가 나면서, 공격이 무효화됐다. 그러나, 이건 큰 모션이 없는 작은 공격이었다.

한 번 막힌다고 헤이타치 쪽에 큰 빈틈이 생기는 게 아니었다.

최사랑은 조금 더 몰아붙였다.

터덩!

중단으로 2연속 타격이 들어왔으나. 역시나 막혔고.

‘하단!’

상현은 본능적으로 하단이 들어올 거라 생각했다. 중단을 연속 세 번 쳤으니까.

이 게임 특성상 하단을 치려 할 때 중단 킥을 적중시킬 확률이 높았다.

타악!

파랑이 처음으로 발을 내민다.

그러나─

“아! 기다렸다는 듯 반격기!?”

스윽.

헤이타치는 반격기를 걸었다.

반격기란, 상대의 공격을 예측하여 미리 발동시키는 일종의 ‘잡기’형 기술이다.

“!?”

조이스틱을 이리저리 움직여봤으나. 예측을 당해버린 터라 반응한다고 뭐가 되는 게 아니었다.

[흐아아아아!]

할아버지가 괴성을 지르며 다리를 잡은 채 휘둘러 분질렀다.

[으아아!]

파랑이 고통스러워하다 쓰러져 버린다.

[체력 85%]

반격기로 끝이 아니었다.

누운 파랑이 일어나려 할 때 헤이타치가 발로 찍어버린다.

쿠웅!

그러더니 파랑이 위로 붕 떠버리는 게 아닌가?

“아아아! 떴어요!”

“저 상태에서 올려 버리네요! 콤보 들어갑니다아!”

쾅! 쿵! 콰앙!

순식간에 콤보가 진행되고, 화면 거의 끝까지 날아가 버린 파랑.

[체력 42%]

격투 게임답게 시원하게 체력이 깎여 버린다.

“…….”

아몬드의 입술이 말려 들어갔다.

-ㅋㅋㅋㅋㅋ속이 뻥!

-아아가 표정 개귀엽네 ㅋㅋ

-개같이 처맞죠? ㅋㅋㅋ

-삐진거임?ㅋㅋㅋㅋ

이후, 파랑은 다시 자세를 잡고 일종의 2차전을 준비한다.

‘리치를 최대한 써보자.’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려보면 파랑보다 리치가 긴 캐릭터는 없었다.

발 쪽을 사용하면서 거리를 재서 때려보면 어떻게든 기회가 나올 것이다.

조이스틱을 상대 쪽으로 꺾는다.

타닥.

파랑이 달려나가고, 상대가 소공격을 휘둘러 대시 공격을 무마시키려 한다.

상현은 오히려 그때를 노려 발을 걷어찼다.

퍼억!

타격이 들어갔다.

“오오오!”

최사랑 상대로 타격이 들어간 게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한 대 맞힌 것만으로도 반응이 좋았다.

상현도 기세를 타며 버튼을 연이어 타격했다.

펑!

타격이 한 번 더 들어갔다.

‘지금!’

이때다 싶어 상대를 붕 뜨게 하는 하단 차올리기 기술을 넣는다.

텅!

그러나 역시 이런 큰 기술은 막혀 버린다.

하지만, 상현은 잠시 뒤로 빼면서 다시 기회를 봤다.

‘리치가 긴 걸 사용하면 역시 유리해.’

최사랑은 반격하려 했으나, 주먹은 허공에 소비됐고.

다시 파랑이 다리를 쭉 뻗는다.

터억!

이번에도 타격이 들어간다.

“거리 재기 날카로운데요!?”

여기서 콤보를 넣지 않고, 잠시 대기.

척.

역시나 최사랑은 방어를 택했다.

즉, 상현은 체력적으로 손해가 없었다.

“무리해서 콤보 안 넣고 야금야금 깎습니다!”

기세는 상현 쪽으로 넘어왔다.

그의 조이스틱이 점점 정교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이스틱이 만들어내는 박자 위로 리듬을 타며 버튼이 눌리기 시작하고.

파랑은 살아 움직이듯이 들어갈 땐 때리고 나올 땐 방어하면서 헤이타치를 괴롭혔다.

그리고─

“떠, 떴습니다!”

──콰앙!

헤이타치가 넘어지며 위로 붕 떴다.

결국 위로 올려지는 콤보 시작기가 들어간 것이다.

상현의 오른손이 빠르게 커맨드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곧장 파랑의 콤보가 시작됐다.

퍼버벙!

펑!

오른발 왼발을 현란하게 스위치하며 상대를 때리는 파랑.

간간이 주먹도 섞여든다.

타다닥.

상현의 오른손은 점점 더 버튼을 빠르게 타격하는데.

‘엇.’

찌리릿.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손이 멈칫했다.

콤보가 끊겨 버렸다.

“아아아! 여기서 끊기나요!”

“그래도 초보자치고는 굉장한 기세였습니다!?”

휘익.

바닥에서 일어선 헤이타치가 곧장 파랑의 턱을 걷어차 버린다.

뻐엉!

‘아.’

상대는 엄청난 실력자였다.

두 번째 기회 같은 건 없었다.

파랑이 높이 치솟자 헤이타치는 현란한 10단 콤보를 넣고는 굳이 필살기까지 적중시켜 박살을 내버렸다.

뻐어엉!

“키야아아아아!”

“시원~ 하네요!”

[패배]

첫 번째 세트는 여기서 끝나버렸다.

-헐 ㅋㅋㅋㅋ

-아 ㄲㅂ

-ㅠㅠㅠㅠㅠ

-ㅈㄴ 잘하네 저 사람???

-캬 속이 뻥~!

조롱과 안타까움이 섞인 채팅들이 상현의 고글 한편으로 올라온다.

[페인 님이 3천 원 후원했습니다.]

[ㄱㅊㄱㅊ 격투게임 안해보면 원래 절대 못이김 완전 고인물 심리전이라]

후원자의 말이 맞았다. 격투 게임은 완전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게임 장르였고. 가장 프레임을 잘게 잘라서 쓰는 고인물들의 놀이터였다.

이론상 반응속도가 높다면 이게 다 해결되지만. 가상현실도 아닌 현실에선 구현될 여지가 없다.

결국엔 심리전과 예측의 싸움.

상현도 알고 있었다.

‘아마 내가 몇 타 넣은 것도 완전 생초보라서 가능했던 거 같은데.’

아까 최사랑이 조금 당할 뻔한 것도 사실 상현이 잘해서가 아니라, 너무 못하는 바람에 예측 불허해서 타격한 것일 터다.

“양궁하셔서 그런가. 거리 재는 걸 잘하네요. 그거 위주로 해봐요.”

건너편에서 들려온 목소리다.

소리가 상당히 작아서 혼잣말인 줄 알았다.

“저한테 말하신…….”

쿵.

대답은 듣지 못한 채 2 세트가 시작됐다.

‘나한테 말한 게 맞나 봐.’

거리를 잘 잰다. 상현은 이걸 머리에 새겨봤다.

최사랑이 한 말은 진짜일 거다.

설마하니 치졸하게 거짓말로 심리전을 걸진 않았을 거다. 그런 정도의 실력도 안 되니까.

‘어쩌면 될 수도.’

그는 딱 한 판만 따보자는 생각으로 눈을 부릅떴다.

[레디~ 고!]

* * *

그 이후.

상현은 깨달았다.

“에이. 거기선 반격기죠.”

“잡기는 못 막는다니까요?”

“중단인데~”

“이 콤보는 너무 뻔한데.”

“방금은 하단 짧게 치고 올렸으면 좋았죠.”

격투 게임에서의 조언(?)은 사실 조롱에 가까웠다. 상대 멘탈을 조금씩 갉아먹는.

-아니 저 누님 혓바닥 피지컬도 챌린저인데?ㅋㅋㅋ

-음파 공격 뭔데 ㅋㅋㅋ

-와 저렇게 말하면서 할 거 다할 정도면 개고수인가;

‘……으.’

수많은 조언(?)이 지난 후, 정신을 차려보니, 패배의 연속이었다.

“아~ 아깝네요~”

-??

-아깝?

-???: 아깝네요 더 패야하는데.

-???: 아까워 내 장난감. 망가지다니.

전혀 아깝지 않은 경기를 아깝다 하는 상대의 목소리를 들으며.

[패배]

결국 모든 세트를 패배했다.

“아아아아! 결국 마지막 세트는 퍼펙트 게임!!”

심지어 마지막 세트는 그녀가 봐주는 걸 멈추기로 한 건지 대책없이 당해버린다.

그러자, 상현의 입 밖으로 이런 소리가 나와버렸다.

“에라이.”

저도 모르게 나온 소리다.

-개같이 패배! 개같이 패배!

-에라이 ㅋㅋㅋㅋㅋㅋ

-에라이몬듴ㅋㅋㅋㅋ

-ㅅㅂㅋㅋㅋㅋ ㄹㅇ 찐텐 반응 개웃기네 ㅋㅋㅋ

상현도 인간이니, 오락실 게임에서 지면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똑같은 것이다.

쯧.

그는 혀를 한 번 차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쉽네.’

사실 이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냥 한 세트라도 가져오면 어떨까 했을 뿐인데. 이렇게 압도적으로 져버리다니.

그래도 이렇게 완전히 탈탈 털려서 지니까 후원은 많이 들어왔다.

띠링!

[루비소드 님이 3만 원 후원했습니다.]

[야! 캡슐로 따라와!]

-ㅋㅋㅋㅋㅋㅋㅋㄹㅇ 캡슐에서 보자……

-제가 지금 머리채 잡을까요? 루비공주님?

-아 캡슐로 따라오면 끝이지~ㅋㅋㅋㅋㅋㅋㅋ

‘그거 안 되는데…….’

끄응.

상현은 어디에 말도 못 하고 말을 삼켰다.

“아, 루비소드 님. 3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띠링!

[가지볶음 님이 3천 원 후원했습니다.]

[아몬드님. 괜찮아요. 아몬드님이 아니라 아몬드님 동생이라고 하죠?]

-ㅁㅊㅋㅋㅋㅋ

-이걸 또 동생을ㅋㅋㅋㅋㅋ

-지상 최악의 직업: 가볶 동생

-크~ 사스가 “강철의 브라더후드” 가지볶음!!

빠밤!

[광견단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형님. 제가 나설까요? 쥐도 새도 모르게 지고 올 수 있습니다.]

-?

-ㅋㅋㅋ그건 나도 가능한데

-지고 오면 뭔 소용인데 ㅋㅋㅋ

-나도 자신있음

이들뿐 아니라 익숙치 않은 닉네임들에게도 후원이 계속 들어왔다.

참 희한한 현상이었다.

지는 걸 좋아하다니.

이에 풍선껌이 했던 명언이 생각난다.

「애매하게 잘할 바엔 죽도록 못해라!」

* * *

한편, 지스타의 ‘젯펌프드’ 부스.

그 앞엔 줄이 굉장히 길게 늘어서 있었다.

[대기 번호 발급 없음]

그야 이 부스에서 대기 번호를 주지 않고 줄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내.”

주혁은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매우 도발적인 또 다른 팻말에 향해 있었는데.

[<<< 얘 패고 싶으면 줄 서야 함]

이렇게 쓰여진 팻말이었고, 당연한 말이지만 ‘<<<’ 이 방향엔 개발자 김이서의 등신대가 세워져 있었다.

‘어그로 제대로구나.’

이 정도면 타고난 거라고 봐야 한다.

“하아…… 개자식…….”

“으…….”

“이걸 진다고!? 이걸!?”

줄 선 사람들의 아쉬움 섞인 탄식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저들이 김이서의 패배를 바라는지.

그 열망이 이들을 모두 이 긴 줄에 서게 만들었고.

“뭐야? 여기?”

“무슨 무료로 뭐 뿌리나?”

행인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모두가 한 번씩은 젯펌프드 부스에 들러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다 가게 만드는 셈이다.

마케팅 효과까지 톡톡히 챙기는 셈.

그러던 중, 대기줄에서 이런 통곡이 터져 나온다.

“저 새끼 목을 칠 인재가 정녕 단 하나고 없단 말입니까!!”

도전자 번호가 21번까지 진행됐음에도 아무도 개발자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김이서는커녕 그 밑의 다른 개발자들을 다 뚫어낸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까 사실상 김이서랑은 싸울 기회조차 얻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이거 코딩 이상하게 해서 사기 친 거 아냐?!”

“20명째 김이서 얼굴도 못 보는 게 말이 되냐!?”

각종 의혹도 쏟아져 나오는데.

김이서는 그들을 놀리듯 중계석에서 해설이나 하고 있었다.

“으하하하하! 개못하면서! 왜 밸런스 탓을 하죠!? 예!?”

-ㅋㅋㅋㅋㅋㅋㅁㅊ

-와 ㅈㄴ 패고싶누 ㅋㅋㅋ

-대부분 천재들은 한국에서 태어나서 손해보는데 이 새낀 미국에서 태어났음 총맞았음ㅋㅋ

-천재는 천재여 다른 의미로 ㅋㅋㅋㅋ

-개또라이넼ㅋㅋㅋ

상황은 절망적이었지만, 시간은 계속 흘렀고.

‘곧 온다.’

점점 주혁의 번호까지 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