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233화
80. 개발자의 전투력(3)
젯펌프드는 간단하고 쉬운 게임을 표방한다.
장르 이름부터 캐주얼 코믹 격투 게임이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격투 게임이라는 것이다.
이 철학 아래, 젯펌프드에선 절대 어려운 기술을 넣지 않는다.
가장 간단한 구성으로, 최대한의 콤보를 넣을 수 있게 만든다.
유저는 그저 타이밍과 거리, 각도만 잘 계산하면 된다.
판단력이 전투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격투 게임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필살기는 이토록 어렵게 만들어졌단 말인가?
“필살기 쓰는 게. 이게 쉽지가 않거든요.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전혀 쉽지 않죠.”
지금 김이서가 신나서 중계석에서 설명하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는 유저들을 놀리기 위해서.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냐구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오히려 제일 간단한 기본 동작을 필살기로 채택했죠. 위기의 순간에 바로 쓸 수 있어야 하니까요.”
어떤 젯을 쓰든 필살기는 가장 간단한 기본이 되는 공격으로 작동된다.
그래야 가장 빠르게 반응해서 쓸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의도치 않게 바로 그 점이 필살기의 난이도를 올리게 된다.
“그런데, 이게 기본 동작이다 보니까, 이런 문제가 생겨요. 필살기랑 그냥 발차기, 주먹이랑 구분이 안 가는 거죠. 그냥 주먹을 질렀는데 막 필살기가 나가는 거예요!”
어휴. 또 저 소리.
유저들의 한숨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그래서? 아주 정교한 스트레이트 펀치! 정석적인 돌려차기! 이런 식으로 기본 동작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했을 때에만 필살기가 나가게 만들었죠!”
이는 이 게임에 있어 신의 한 수였다.
숙련자들은 필살기를 아주 빠르고 쉽게 쓸 수 있는 반면, 비숙련자들은 각을 잡고 써야만 겨우 한 번 나가게 된 거다.
즉,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실력의 변별력을 구축해 낸 셈이다.
이는 후에 캐시템이 물밀듯 쏟아져도 이 게임의 밸런스를 붙들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다.
실력 요소가 명확하니까.
“그러니까! 젯펌프드는 진짜 실력 게임이라 이 말이에요? 아무리 캐시템이니~ 뽑기가 뭐 같네~ 밸런스 망가진 똥망겜~ 해봐야…… 뭐?”
한참 신나서 설명하던 김이서가 고개를 갸웃한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휴대폰이나 들여다보던 대부분의 유저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음? 왜 그래?”
“뭐야.”
“이제야 멈춘 거냐. 휴.”
김이서가 떠드는 걸 멈췄다는 걸 깨달은 거다.
그런데 왜 멈춘 줄은 몰랐다.
“……튜토리얼 끝났다고!?”
삐이이이.
너무 큰 소리로 되물어서 마이크에 하울링이 울렸다.
귀가 아픈 소음이었으나.
“!”
유저들이 눈은 환희로 번쩍 떠졌다.
“버, 벌써?”
“뭐야. 미친. 진짜야?”
“이야아!”
평균 30분. 들어간 놈이 실력이 좋다 하니, 그래 10분 깎아준다 쳐도, 적어도 20분은 걸릴 줄 알았는데.
7분 만에 튜토리얼을 끝내버렸다?
‘이게 뭔…….’
버그 수준의 기록이다.
“미쳤다. 도라이가 한 명 왔네.”
“뭐여. 씹 유단자인가?”
“아니, 무슨 양궁 하다 온 사람이라는데.”
“양궁 젯이 처음에 나오냐?”
“양궁 젯이 어딨냐 임마.”
원래 격투기에 종사하던 사람이 자신이 종사하던 격투기 젯을 고르면 10분 컷이 나온다.
그런데 양궁이나 하다 왔던 사람이 이런 시간대를 보여준다니.
유저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슬그머니 이런 희망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야. 설마…… 이기는 거 아니냐?”
오늘 게임을 처음 시작한 아몬드가 그 게임의 개발자들을 이길 수도 있다는, 허무맹랑한 기대감.
말하는 본인도 어처구니없다는 걸 알지만, 사람이란 믿고 싶은 걸 믿는 법이다.
에헴!
중계석에서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튜토리얼은 튜토리얼일 뿐! 실제 실력하고는 거리가 멀죠?!”
왠지 모르게 다급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다.
“물론 엄청난 기록이긴 한데…… 이거 무슨 버그 체크 같은 거나 해봐.”
“예.”
옆에 있던 직원이 내려간다.
“아몬드. 아니, 아몬드으…… 라는 닉네임을 만들었군요? 이제 챌린지를 시작할 준비가 됐나요?”
아몬드으.
아몬드가 튜토리얼을 끝내고 만든 닉네임이다. 누군가 이미 ‘아몬드’라는 닉네임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아몬드으 ㅋㅋㅋ
-으 ㅇㅈㄹ ㅋㅋ
-앜ㅋㅋㅋ
-아아몬드도 있었던거임?ㅋㅋㅋ
-개킹받네 닉네임ㅋㅋ
아몬드으는 챌린지 할 준비 됐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으!”
유저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아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그사이, 아까 중계석에서 내려갔던 직원이 다가와 말한다.
“대표님…… 버그는 없었구요. 그거보다 저 사람 젯을 그냥 기본 젯을 들고나오는데요?”
“기본 젯을?”
기본 젯을 가져 나온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아몬드는 오늘 처음 시작해서 젯이 하나뿐일 테니까.
사실 게임적으론 아무 문제 없는 일인데.
이 챌린지에선 문제가 된다.
“음…….”
김이서는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이런 식이면 캐시템 VS 겜머니템 성사가 안 되잖아?”
“그렇죠.”
게임머니템으로도 캐시템을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는데.
애초에 챌린지를 걸어오는 쪽에서 캐시템을 끼고 오지 않아버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이때다 싶어 개발자에게 외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야!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개발자도 노템으로 하든가 해라!”
“노템! 노템! 노템!”
“기본전 가즈아아!”
사실 개발자도 기본전으로 한다고 해도, 이 챌린지의 의미가 되살아나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도전하는 쪽에서 캐시템을 끼고, 받아주는 쪽이 게임머니 템을 껴야 의미가 있는건데.
둘 다 노템으로 싸우는 게 뭔 소용인가?
그럼에도 유저들은 막무가내로 외쳤다.
‘조금이라도 엿되게 하자.’
‘승률 1%라도 올린다!’
‘그냥 까고 싶어!’
모두가 한마음으로 외치기 시작하자.
이내 거대한 함성으로 바뀌었고.
“와아아아아아! 당장 기본템 껴라!”
“기본 젯으로 싸워라 버러지야!”
다른 부스에서 항의가 들어올 정도로 소란스러워졌다.
“오케이!”
쿵!
김이서가 탁상을 치며 일어났다.
“좋다. 이거야. 우리도 뭐 쫄릴 거 없지. 기본 젯으로만 싸워!”
와아아아아!
관중들이 환호했다.
“첫 번째 상대는!”
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챌린지 첫 번째 라운드가 시작됐다.
“개발팀 중 제일 게임 못하는 허! 원! 무우우우~!”
UFC를 방불케 하는 샤우팅에 야유와 환호가 섞여 들려왔다.
“와아아아아!”
“우우우우우우~!”
당연히 야유 목소리가 훨씬 더 컸다.
“우우우우우우우우!!!!”
* * *
[김이서: 기본 젯으로만 싸워라]
아몬드의 첫 번째 상대.
캡슐 속 허원무에게 이런 메시지가 전달됐다.
“……뭐래는 거야. 갑자기 돌아버렸나?”
허원무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생각해 본다.
“아니지. 원래 돌았으니까. 또 돌면 정상인인데…… 두 바퀴를 돈 건가?”
[김이서: 상대가 오늘 처음 하는 놈임]
“?”
고개를 갸웃거리는 허원무.
그렇다. 그는 캡슐 안에서 그냥 올튜브나 보고 있던 터라 바깥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오늘 처음?”
허원무는 어이가 없어 다시 한번 되새김질하듯 중얼거렸다.
“이걸 나더러 믿으라는 거야. 뭐야.”
이 말이 들릴 리가 없는데. 김이서는 그가 뭐라 말할지 뻔히 안다는 듯 대답해 준다.
[김이서: 진짜라니까. 튜토리얼 때문에 늦어진 거야. 얼른 젯 해제하고 기본 젯 중 하나로 골라]
뭔가 마음을 읽힌 듯한 불쾌한 느낌이 든다.
“끄으…… 일단 오케이.”
그는 시청하던 올튜브를 내려두고, 젯을 바꾼다.
“근데 뭘로 바꾸냐?”
잠시 기본 젯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허원무.
“아니. 근데 왜 유저 정보 안 주냐? 카운터 젯 골라야 하는데.”
그는 스스로 대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 오늘 처음이라 했지? 참내. 그게 진짜였나 보네.”
상대의 전투 스타일, 주 사용 젯 등의 통계 데이터를 받지 못한다는 게 조금 걸렸지만.
애초에 오늘 게임 처음 하는 놈인데 그런게 의미가 있을 리가 없었다.
“진짜 처음이라니. 이 건방진 놈. 머리통을 깨주지.”
[유도 젯]
기본 젯 중에 가장 선호하는 젯이다.
기본 젯 중에 유일하게 반격기가 있는 데다가, 엎어치기 등으로 번지(*상대를 맵 밖으로 추락사시키는 행위) 능력도 상당한 편이다.
[전송 준비 완료]
그는 곧장 준비 완료를 눌렀고.
[5]
[4]
그러자 카운트다운이 바로 시작됐다.
[3]
“어?”
곧 게임이 시작되려는데, 허원무는 이상한 점을 그제야 깨닫는다.
자신이 보던 올튜브 영상의 시청 시간을 확인했는데.
영상은 10분도 진행되지 않았다.
[2]
“튜토리얼까지 깼는데…… 시간이 얼마 안 갔는데?”
튜토리얼까지 깼는데 어떻게 10분 안에 전부 준비된 거지?
[1]
그 질문을 한 순간은 이미 게임이 시작된 뒤였다.
[전송]
잠시의 암전.
쿠궁. 쿠궁.
쿠궁…… 쿠궁……
익숙한 굉음만이 귀에 들려온다.
그에 맞춰 느껴지는 진동. 불쾌하고 불규칙적인 움직임.
또렷이 들려오는 스피커 소리.
“이번 역은 홍대입구. 홍대입구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하얗게 타오른 시야가 점차 회복되면서, 지하철 풍경이 드러났다.
‘지하철 맵이군.’
삐빅.
젯펌프드 특유의 효과음과 함께 이런 메시지가 떠오른다.
[데이터 수집 중……]
[지하철 2호선]
이번 맵은 신규 출시된 맵 중 하나인 지하철 2호선이다.
이번 챌린지에선 사실상 신규 출시된 맵들만 나올 것이다.
애초에 이 맵 업데이트를 홍보하기 위해서 어그로 끄는 챌린지를 만들어낸 거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유저한테 져서 밸런스 패치 다시 하는 선택지 같은 건 고려도 안 했단 말이지…….’
그렇다.
이 챌린지는 처음부터 젯펌프드의 업데이트 광고일 뿐.
밸런스 패치를 걸고 하는 내기 따위가 아니었다.
애초에 개발진과 김이서는 전혀 질 생각이 없었다.
그게 마음대로 되냐고?
‘물론이지.’
당연히 된다.
그들은 이 게임을 만들어낸 자들.
게임 내에선 신 같은 존재다.
그렇다고 게임을 조작해 부정행위 따위를 한다는 게 아니다.
그들의 뇌 데이터로 이 게임의 뇌파 조작을 디자인했고, 그들의 동작으로 젯의 인지행동을 설계했다.
마치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젯펌프드란 세계는 그들에게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데이터포밍된 영역 내 ‘제터’ 탐색 중……]
제터를 탐색한다는 메시지가 떴지만, 사실 그럴 필요는 없다.
슝.
적은 바로 건너편 좌석에 앉아 있었다.
다른 지하철 승객들과는 다르게, 우스꽝스러운 로우폴리곤 그래픽을 하고.
삐빅.
[아몬드으]
놈의 머리 위에 이름이 뜬다.
그 후, 그 이름이 빨갛게 변하더니…….
[제터를 섬멸하라!]
이런 문구가 큼지막하게 떠올랐다.
“좋아.”
쿵!
허원무는 장갑 형태의 유도 젯을 서로 맞부딪히며, 기세등등하게 웃었다.
“오늘 튜토리얼을 했다고?”
타닥!
그가 발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신고식 가즈아!”
아몬드 역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난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제터가 맞부딪히자,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난다.
해당 칸이 빠르게 텅텅 비어 나가며 결투장이 되어줬다.
그런데─
“!?”
빠각!
허원무의 턱이 90도로 꺾여 돌아간다.
퉁퉁 부은 입술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온다.
“어, 언제……?”
뭔지 인지하기도 전에 놈의 발이 턱을 걷어찬 것이다.
타닥!
잠시 뒤로 물러나 자세를 다시 잡는 허원무.
“성급했군. 이번엔 진짜 죽인─”
아몬드가 잠시 스텝을 밟는가 싶더니.
──퍼엉!
또 시야가 휙 돌아간다.
턱이 가격당한 것이다.
“!?”
허원무가 기술을 쓰기 위해 뻗은 손은 허망하게 허공만 저었다.
“뭔데!? 잡히기만 해…… 커헉!”
허원무는 다시 공격을 시도해 보고, 반격기까지 써보지만.
퍼엉!
“잡히기만…… 해액!?”
퍼벙!
“끄억!”
신묘한 거리 재기로 최대 사거리 타격이 연이어 들어올 뿐이다.
심지어 반격기 타이밍도 전부 흘리고 있다.
초보가 대체 이걸 어떻게?
그 순간 그 초보가 이렇게 중얼거리기까지 한다.
“뭐야.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게임 못하네.”
“뭐…… 뭐?!”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거짓말은 안하네 김이서쉑 ㅋㅋ
-???: 아니 왜 진짜냐고~ ㅋㅋㅋ
-불만인 것처럼 말하눜ㅋㅋㅋㅋ
-할 말은 한다! 아카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