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죽어야 할 일(2)
검술 교습 첫날 식빵이 보여준 게 있었다.
「잘 봐. 이게 리히테나워 검술이야.」
후웅!
머리 위쪽으로 검을 가져가면서 한 번.
머리 쪽 상단에 고정된 검.
그 자세에서 나아간다.
「기본 검세 세 가지야.」
후웅! 훙!
스텝과 함께 몸이 틀어지는 각을 자연스레 이용하며 좌우로 두 번 더.
총 세 번이 순식간에 휘둘러졌다.
「이 3가지 검세의 전개가 곧 공격이고, 방어이기도 한 리히테나워의 가장 기초적인 초식.」
간단한 자세 전환으로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이뤄지는 검술.
이게 실제 소드마스터라는 칭호를 받았던 리히테나워의 검술이다.
물론, 이는 롱소드와 같은 날이 길고 양쪽으로 내어진 검에 한해서만 적용 가능하다.
「만약 조선 문명이 롱소드 양날검을 쓸 수 있었다면 반드시 리히테나워 검술을 쓰자고 했을 거야.」
슥.
그녀는 어느새 환도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우린 외날검이야. ‘도’라고도 부르지.」
그녀는 아까와는 판이한 자세를 취한다.
전방위의 모든 것을 훑으며 방어하면서 전차처럼 나아가던 것이 리히테나워라면.
이건 마치 굶주린 맹수가 모든 걸 걸고 사냥을 나선 듯한.
「리히테나워 같은 검술이 다음 검격까지 계산해 가면서 서양식 철갑옷의 빈틈을 계속 만드는 방식이라면…….」
스릉……!
식빵이 앞발을 지긋이 밟으며, 검을 움직인다.
「이쪽은 한 번의 빈틈에 사활을 갈라.」
기분 탓일까?
아니면 정말 우리의 DNA가 기억하는 걸까?
「본국검 33세 중 9번. 맹호은림세.」
분명 리히테나워가 훨씬 효율적이고 안전한 검술일 텐데.
──사아아악!
사냥하는 표범처럼 유연하고 날렵하게 날아가는 모습.
아몬드는 리히테나워보다도 더 멋지다고 느꼈다.
「자. 따라 해봐.」
* * *
──사아아악!
아몬드의 검이 한 번 번뜩이더니.
“으하하하하! 이런 시스템인 줄은 몰랐지?! 너넨 다 뒤졌…….”
기고만장한 깍두기의 목에 빨간 줄이 그어졌다.
“오. 형. 날 서 있는데요?”
-???
-미친ㅋㅋㅋㅋㅋ
-뭐여?
-날 서 있는데요 ㅇㅈㄹ
그 광경을 본 풍선껌은 할 말을 잃고 뒷걸음질 쳐버렸다.
“쟤, 쟤는 못 서 있을 것 같은데?”
그의 말과 동시에─
푸슈우웃!!
깍두기의 목 단면에서 피 분수가 솟아올랐고.
──쿵!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바닥을 구르면서도 여전히 웃고 있었는데.
“……하? 하하하!?”
살아 있는 게 아니라, 핑 차이로 생긴 일종의 버그였다.
[아……! 웃고 있습니다! 깍두기!]
[이게 무슨…… 죽은 거 맞죠?]
-ㅅㅂㅋㅋㅋㅋ
-???: 이런 시스템인줄 몰랐지? -> 본인도 모름ㅋㅋㅋ
-시밬ㅋㅋㅋㅋㅋㅋㅋ 웃고있는거 개웃기넼ㅋㅋㅋ
“하하…….”
수명을 다한 스피커처럼 소리가 쪼그라들며 죽어버린다.
그 광경을 본 다른 특수 좀비들.
꼴뚜기와 메뚜기.
“이, 이런 무슨…….”
“미친.”
그들은 좀비답지 않게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난다.
[좀비들 왜 뒤로 가죠?]
[이거 역재생입니까??]
-역재생ㅋㅋㅋㅋㅋㅋ
-좀비들 지능 강제 주입 ㅋㅋㅋㅋ
-ㅅㅂ 좀비인데 뒤로 도망가는게 개웃기누 ㅋㅋㅋㅋㅋㅋ
좀비가 겁을 먹다니.
특수 좀비 등장에 전부 패닉했던 3반 학생들이 상태 이상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뭐야. 쟤네 도망가려 하는데?”
“사실 좃밥인 게 아닐까?
용기를 회복한 3반의 아이들이 반격을 시작했다.
“저 찐따 새끼들 도망간다! 나머지 죽여!!”
“와아아아아아아!”
책상 상판과 양호실에서 얻은 골프채로 무참히 좀비들을 쓰러뜨리기 시작하는 3반.
퍼어억!
퍽!
미쳐 도망갈 지능이 없었던 일반 좀비들은 초토화되기 시작했고.
“쟤넨 내가 맡을게.”
아몬드는 좀비들에겐 사형선고와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씨발 오, 온다…….”
꼴뚜기와 메뚜기는 잔뜩 긴장한 얼굴이 되어 얼어버렸다.
-상황이 바뀐거 아니냐고 ㅋㅋ
-왜 저쪽이 쫄아있음??ㅋㅋㅋ
-좀비 듀오 개웃기네 ㅋㅋㅋㅋㅋㅋ
명색이 챌린저 사냥꾼에 명색이 특수 좀비인데.
“야, 야. 스킬. 스킬 써!”
“뭘 쓰라는 거야!”
“너 그거! 그거! 원거리잖아!”
죽지 못해 공격하는 모습이다.
“에…… 에라이읽!”
쉬이이익!
혀를 길게 빼서 생존자를 낚아채는 좀비.
[캐쳐]
캐쳐였다.
그의 혀는 채찍처럼 크게 휘더니, 곧장 아몬드를 향해 날아들었는데.
그 속도가 음속을 넘어가면서 소닉붐을 일으킬 정도였다.
타아앙!
일반적인 경우라면 너무 빨라 대응할 수 없겠으나.
상대는 일반인이 아니다.
‘이쪽이네.’
속도가 빠를수록 아몬드에겐 베기 쉽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알아서 강력하게 부딪혀주는 셈이니.
──사악!
칼을 경로에 가져다 대기만 해도, 면도되어 버리는 혓바닥.
[와아아아아앗!?]
[이, 이걸 잘라요!?]
[날아오는 채찍을 자르는 난이도에요!]
“커억……! 캭! 캬악!”
“야. 야. 왜그래?”
“부륽! 부르르륽 캭캵!”
혀가 잘린 캐쳐는 몸에 통제권을 잃어버린 듯 정신을 못 차린다.
-ㅅㅂ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 개웃곀ㅋㅋ
-앜ㅋㅋㅋㅋ
[캐쳐 왜 저러죠?]
[특수 좀비들은 특정한 상황에 이런 상태이상이 걸립니다. 일종의 약점이거든요?]
[아. 플레이어들이 너무 상대하기 힘들까 봐 만들어놓은 약점인데……! 애석하게도 상대는 아몬드!]
[아몬드 더 다가옵니다!]
“이, 이런…… 씨발…….”
옆에 있던 다른 특수 좀비는 자기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데.
[쉐이커]
그는 네발로 달리며 전장을 휘젓는 쉐이커였다.
자유롭게 천장, 벽면 가리지 않고 네발로 뛰어다닐 수 있어 매우 성가신 특수 좀비다.
[쉐이커. 달려듭니다!]
타다다다닥!
아니나 다를까 그는 벽과 천장을 오가며 달려들었다.
[근데 저 난리 쳐봐야 어차피 아몬드한테 가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아무리 교란시켜 봐야 종착지가 뻔한 이상, 대응이 쉽다.
콰앙!
쉐이커가 한쪽 벽면을 강하게 박차며 몸을 날렸는데.
[아몬드! 검 휘둘러요!]
음속 초월의 혓바닥도 잘랐는데, 이걸 대응 못 할 리가 없었다.
아몬드의 눈이 한 번 번뜩이더니.
‘정확하게.’
간결하고 강렬한 검세.
촤아아아아악──!!
쉐이커의 몸이 갈려나간다.
“!”
아몬드를 지나친 쉐이커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쿵!
그는 왼쪽 오른쪽으로 정확히 반으로 갈린 상태였다.
해설자가 목청 터져라 외쳤다.
[좀비들 비사아아아아아앙!]
-좀비들이 왜 비상이냐곸ㅋㅋㅋ
-아몬드 아포칼립스 사태
-“아”포칼립스 ㅋㅋㅋㅋㅋㅋㅋ
[조, 좀비가 세로로 잘렸습니다 무슨 회 뜨는 것도 아니고!]
[그것도 뼈 채로! 좀비 세꼬시가 됐어요!?]
-좀비 세꼬시 ㅁㅊㅋㅋㅋ
-캬~ 밥도둑
-우엑
[지금 캐쳐는 눈앞에서 친구가 세꼬시로 변하는 걸 봐버렸거든요!?]
[이거 아무리 좀비라도 PTSD 걸립니다!?]
[아…… 결국!]
캐쳐는 어안이 벙벙해져 있다가 빠르게 접근한 아몬드에게 썰리고 말았다.
[캐쳐까지 전사!]
이로써 1반의 복수 혈전은 아몬드의 신무기 시험으로 끝나버렸다.
[잠시만요? 이렇게 되면 지금 본관에 3반만 살아남은 거 아닌가요?]
[예.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 3반!]
이로써 본관 전체에 살아남은 인원이라고는 3반뿐인 상황이다.
* * *
“후, 후아……! 이런 미친 새끼들!”
풍선껌이 쓰러진 차저의 머리를 괜히 뻥, 차버린다.
“깜짝 놀랐네. 별것도 아닌 놈들이.”
-???
-정보) 풍선껌이 칼들었으면 여기서 전멸했다
-하남자 특) 싸움 다 끝나고나서야 등장해서 한마디씩 중얼거림ㅋㅋ
-좀비: ???
“이제 다 죽었나? 그나저나 아까 걔넨 누구야? 너한테 원한이 있는 것 같던데.”
타코가 남은 좀비들을 마저 정리하면서 묻는다.
“아…… 그냥 뭐, 스쳐 가는 인연이죠.”
하하.
아몬드가 웃어넘긴다.
-정보) 지금 아몬드는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중이다.
-견과류쉑 상대방 닉 모름ㅋㅋㅋ
-인연이 아니라 칼이 스쳐가던디요??
타코는 익숙하다는 듯 넘어가며 재차 묻는다.
“그래. 이름 기억 안 나는구나. 근데 플레이어들이 좀비 되면 특수 좀비가 되는 거 같지?”
“예.”
1반의 플레이어들은 일부러 특수 좀비로 변한 다음 아몬드에게 복수하기 위해 달려왔다.
특수 좀비가 목적성을 갖고 플레이어를 공략할 수도 있다면, 다음번엔 위험할 수도 있다.
“조심해야겠네.”
타코는 끄덕끄덕거리고는 다음 행동을 지시했다.
“일단 여기 있는 거 싹 다 파밍 가자. 소파 가죽 싹 다 벗겨서 수현이 가져다 줘.”
가죽 같은 건 의외로 꽤 중요한 자원이었다. 착용감이 좋은데 내구성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좋아. 식칼 들고 있는 애들. 일로와!”
반장의 지시에 따라 아이들이 모여 소파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지이이익.
지익.
“몬드. 형님. 잠시만.”
이때 타코는 플레이어들끼리 은밀히 모이자 했다.
“왜?”
“지금. 우리 25명이 넘어.”
역시 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아.”
“30명이거든. 5명은 덜어내야 해.”
“……그냥 옥상에 가서 거기서 결정하면 안 되나?”
“안 돼. 이거 봐.”
타코는 재차 발송된 재난 문자를 보여줬다.
[……주의. 헬기 구조 인원을 확정 짓지 않은 상태에선 구조 진행이 어렵습니다.]
위에 말은 다 똑같은데, 아래만 바뀌어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솎아서 가야 하는 거야.”
“……하아. 진짜 게임 잔인하구만?”
풍선껌이 한탄한다.
“내가 더 트롤을 열심히 했어야 했나 봐.”
-엌ㅋㅋㅋㅋㄹㅇ
-풍선껌이 잘못했넼ㅋㅋ
-아몬드 트롤쉑 ㅋㅋㅋ 이걸 다 살리누?
“지금 정할 거야?”
타코는 고개를 저었다.
“벌써부터 정해서 사기 떨어뜨릴 순 없죠. 어차피 좀비 만나다 보면 5명쯤은 자연스레 탈락할 수도 있고…….”
헬기 구조를 받기 위해선 3, 4층을 거쳐 5층, 심지어 그 위 옥상까지 올라가야 한다.
일부러 걸러낼 필요도 없이, 높은 확률로 다섯쯤은 가볍게 죽을 것이다.
근데 그럼 왜 부른 거야?
“……이건 추측입니다만. 제 생각엔 추가 인원을 구조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그는 25명 이상을 살리는 루트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에엥? 그런 게 된다고?”
“그때 기억 안 납니까 형님? 면역자가 있어야 구조받을 수 있었잖아요.”
그렇다. 면역자.
얼리억세스, 솔로 모드에선 면역자를 데려가야만 쉘터에서 받아줬다.
면역자 하나당 10명…… 이런 식으로.
그런데 이 멀티 모드에선 이 면역자라는 개념이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았다.
“오…….”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맞네. 솔직히 자기를 따라준 NPC를 억지로 버리게 하는 스트레스를 주게 만들진 않았을 것 같아. 게임이니까.”
면역자는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근데 너무 심증인데.”
다만 딱히 근거라는 게 없다. 그냥 그럴듯한 가설일 뿐이다.
그에 타코가 말한다. 애초에 이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지금 제 지도에 뭔가 표시되고 있습니다. 5층에 뭔가 있다구요.”
“!”
“뭐겠습니까? 이 상황에서.”
그런 거라면,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 * *
산이 있으면 올라가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 걸까?
이 좀비가 창궐한 세상에서도, 한 무리의 학생들이 벽을 타고 있다.
본관에 설치된 가스 배관을 타고 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봐. 제시. 이렇게 하는 거 맞는 거야? 못 갈 거 같은데.”
밸브를 타고 올라가는 남학생이 낑낑댄다.
“오. 그럼 지금 다시 내려가게 해줄까? 9.8㎨(*중력 가속도) 체험할래?”
가장 선두에 선 빨간 머리의 여학생이 협박하듯 되묻는다.
자동으로 17세 혹은 18세 시절 외형으로 맞춰지는 이 게임에서 빨간 머리는 매우 드문 유형이었는데.
그럴 만한 게 이들은 외국인 팀이었다.
“젠장…… 그냥 시빌엠 부스에나 있을걸.”
시빌엠 국가 대항전에 출전하기로 된 덴마크의 멤버들이다.
“아까까진 재밌다고 해놓고? 2층까지만 가면 돼. 좀 참아.”
“이기는 게 재밌는 거야. 벽 타는 게 아니라.”
“이길 거야~”
뒤쪽에서 따라오는 또 다른 외국인이 투덜댄다.
“중국에 마속이라는 인물이 있었어. 산 한 번 잘못 탔다가 제 상관한테 목이 날아갔지. 그걸 사자성어로 읍참마속이라 하더군.”
“네 얘기야?”
“…….”
잘 올라가던 그녀가 갑자기 멈춰 섰다.
퍽!
덕분에 바로 뒤에 따라가던 남자 얼굴에 발이 적중해 버린다.
“으억! 뭐, 뭐 해?”
“제길. 제시가 우릴 읍참마속 하려 하잖아. 병신아. 그딴 얘긴 왜 했어?”
“아니. 그거 그런 뜻──”
“쉿! 닥쳐!”
제시가 몇 번 발로 더 차며 조용히 시켰다.
그녀는 고개만 빼꼼 내민 채, 2층 창문을 보고 있었다.
“안에 누가 있어.”
* * *
[초보자 Tip: 니체는 말했습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자신 또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