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호두 대전(1)
2층 난간까지 올라온 제시는 그곳에 발을 디디려다 멈칫한다.
“누가 있어.”
“그래? 2층에?”
“응. 숫자도 많은데.”
“……어쩌지? 우리 2층부터 계단으로 가려고 했잖아.”
벽 등반은 엄청난 스태미나를 소모해서, 웬만한 스탯으로는 옥상까지 가는 건 무리였다.
제시야 전투 직군으로서 충분히 올라가겠지만. 나머지는 다 탈락할 거다.
그래서 2층부터 계단으로 가려 했는데.
“계획 수정이야. 3층으로.”
“……하아. 그래.”
결국 그녀는 난간에 올리려던 발을 떼고 다시 배관을 밟으며 올라간다.
* * *
“이야. 지금 인원이 많이 정리됐어요?”
“예. 한번 보시죠.”
[남은 인원]
1반: 0명
2반: 14명
3반: 30명
4반: 0명
5반: 기권
“이러면 3반과 2반의 대결인데…… 어디 승리를 점치시나요?”
다른 챌린지 팀이 전부 탈락한 후.
오로지 2반과 3반만이 남은 현재.
둘의 싸움은 불가피했다.
“당연히 3반이 수적으로 유리하니까 3반인데…….”
“인데?”
“2반이 눈에 띄는 게 아이템 파밍입니다.”
해설자의 말에 옵저버가 2반이 낀 장비들을 클로즈업한다.
“아이템이요?”
“예. 식당에 자리를 잡은 2반은 취사실에서 나온 재료로 무장을 했는데. 이게 제 눈엔 더 좋아 보이거든요?”
그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확실히 더 단단한 재료들로 만들어진 장비였다.
“일단 커다란 취사실의 밥솥 뚜껑을 방패로 쓰고 있습니다.”
“아 그렇네요? 일단 쇠로 만들어진 거니, 책상으로 만든 방패보다야 훨씬 좋겠습니다?”
“물론이죠. 무기도 대부분 식칼을 대걸레 자루 끝에 달아놓은 창이구요. 그냥 부러뜨린 마대 자루는 너무 원시적이죠.”
2반의 무기에 비하면 3반은 석기시대 수준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방어구에서도 차이가 난다.
“심지어 장갑은 더 심한데요. 취사실에서 손 잘리지 말라고 쓰는 철망 장갑이란 게 있거든요?”
“아. 그 고기 자를 때 쓰는?”
“예. 그걸 지금 2반이 다 착용하고 있어요. 저걸 끼고 있으면 좀비 이빨은 절대 못 뚫어요.”
철장갑.
혹여나 칼로 손을 내리찍더라도 손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체인메일 장갑인데.
당연히 무거운 중식 칼로 찍어도 안 뚫리니, 좀비 이빨로 뚫릴 리가 만무하다.
“아…… 아이템 차이가 많이 나네요? 그럼 3반이 유리한 건 뭔가요?”
“아무래도 안정적인 환경에서 만들어낸 최상의 컨디션, 단합력과 숫자죠.”
“또…… 단합력인가요?”
-또합력ㅋㅋ
-정신력, 조직력, 끈기!!ㅋㅋㅋㅋㅋ
-네가 선택한 3반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이거 마치 노련한 외국인 용병들과 단합력의 3반의 대결이군요?”
“예. 그래도 3반이 여전히 종합적으로 유리합니다. 머릿수 무시 못 하구요. 일단 아이템에서도 앞서나가는 게 하나 있지 않습니까?”
“아! 그렇죠! 아몬드가 들고 있는 장검!”
“그렇죠. 좋은 아이템이 적절한 인재에게 들어가 있는 거. 이런 게 중요한 거죠.”
* * *
“오늘 옥상까지 뚫는다.”
타코가 말했다.
“이제 헬기가 올 시점까지 얼마 안남았어. 미리 가서 하루 보낸다는 생각으로 올라가야 변수가 없다.”
올라가는 사이 무슨 일이 벌어져 얼마나 지체될지 알 수가 없다.
최대한 미리 도착해 있는 게 좋다.
“지금 2층으로 갈 거니까. 채비해라.”
오케이~
아이들은 군말 없이 장비를 챙겼으나.
저들끼리 이렇게 수군댄다.
“야. 근데 우리 30명 아니냐?”
“……응.”
“그 얘긴 하지 말자 일단. 다섯 정도는 더 태워주겠지.”
그들도 알고 있었다.
모두가 구조받을 수는 없다는 것.
하지만 그 주제에 대해 여기서 더 이야기해 봐야 나아지는 건 없었다.
“자. 잔말 말고. 출발!”
30명은 모두 다 같이 2층으로 향했다.
이미 한 번 탐색해 본 곳이기 때문에 별일은 없었다만. 그래도 한 번 더 확인 작업을 거쳤다.
“한 층 한 층 확실하게 먹어가면서 올라갈 거야. 안 그랬다간 다시 돌아갈 길이 없어서 전멸한다.”
올라갈 때마다 해당 층의 좀비를 확실하게 제거하고, 깔끔하게 치워버려야 퇴로가 확보된다.
만약 좀비가 하나라도 뒤에 남아 있다면, 어떤 변수가 될지 모른다.
“클리어.”
“여기도 없어.”
“화장실에도 없어.”
탐색은 그렇게 무난하고, 빠르게 마무리되어 갔는데.
“여기도 없…… 으아어아?!”
역시나.
좀비들이 남아 있었나?
3반이 창을 치켜들고 우르르 몰려갔다.
“…….”
그러나 그들이 보게 된 건 좀비처럼 위협적인 뭔가는 아니었다.
천장에 매달린 학생이었다. 죽은 채로.
“얘 살아 있었나 보네.”
누군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이곳은 1반이 진을 치고 있었던 교실이다. 1반 전체가 그냥 죽거나 좀비가 된 줄 알았더니.
살아남은 학생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는 좀비가 될 바에 차라리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었다.
학생들의 우울증이 극으로 달하면 벌어지는 현상이다.
“어떻게 매달린 거지?”
“좀비들이 난리 치는 바람에 천장 시설이 다 드러났어.”
본래라면 천장에 넥타이를 매달 구석 따위 없는데.
이곳은 천장이 심하게 무너져내려 있었다. 아마 깍두기가 날뛰면서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 덕에 저 학생은 손쉽게 생을 마감할 수 있었고.
3반은 이런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여기…… 아…… 여?”
“무…… 소……?”
천장에서 새어 나오는 정체 불명의 대화 소리.
“쉿!”
풍선껌은 모두에게 조용하라 명령하며 자세를 숙였다.
3반은 일사불란하게 문 쪽으로 물러나며 입을 틀어막는다.
“사람 소리 같은데?”
타코가 속삭이며 물었다.
“3층에 사람이 있었나?”
“일단 챌린지 팀은 다섯이니까. 가능하긴 한데.”
타코는 이미 본관에 들어온 게 3반뿐이라는 계산이 끝나 있었다.
여러 반으로부터 증언을 종합해 본 바, 거의 확실한 가설이었다.
저들은 지금 외부에서 들어왔다고 보는 게 맞았다.
“얘들아. 혹시 이 근처 교실 창문에 밧줄이나 그런 거 매달려 있는지 찾아봐.”
“오케~”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교실로 흩어진다.
* * *
“……없다고?”
밧줄 같은 건 없었다.
타코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그러자 답이 떠올랐다.
“가스 배관이야. 그거 어딨더라.”
그는 맵을 들여다보더니 저 혼자 어떤 교실로 뛰어갔다.
창문을 열어본 후 난간을 살폈다.
‘여기를 타고 올라왔으면 반드시 여기 난간에서 한 번은 쉬었겠지.’
반드시 발자국이 있을 거다.
“음?”
그런데 난간엔 신발 자국 하나 없다.
여길 타고 올라간 게 아닌가?
타코는 몸을 내밀어 가스 배관을 더 가까이서 쳐다본다.
“허탕인가.”
본다고 알 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뭐라도 찾자는 심정으로 본 건데.
[대상을 관찰합니다.]
어?
그의 직군이 갖고 있는 스킬이 발동된다.
가스 배관에 쌓인 먼지가 일부 쓸려 있는 모습이 확대되어 보인다.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있습니다.]
역시 있었구나.
고개를 내밀어 위쪽을 바라본다.
파란 하늘만 보일 뿐. 이미 사람의 흔적은 없다.
“뭐야. 찾았어?”
뒤쪽에서 반장이 묻는다.
“어. 3층에 적이 있는 게 확실해.”
“……흠. 그럼 어쩔 거야?”
“일단 가 보자. 3층.”
* * *
철컹!
3반은 방화문을 열었다.
이제 최초로 3층 진입을 시도한다.
“가자. 3층으로.”
살금살금.
발걸음부터가 조심스럽다.
아직 미지의 세계다.
어느 정도 걷고 난 후. 계단 코너를 돌아 올라갈 때였다.
“대기.”
가장 선두인 아몬드가 주먹을 들어 올려 사인을 보낸다.
“먼저 볼게.”
아몬드는 고개를 길게 내뺀 채 위를 본다.
일부지만 3층 복도가 보인다.
아무것도 없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한에선 그랬다.
“가자.”
3반은 다시 진격한다.
뒤에서 풍선껌이 예정대로 오더를 넣는다.
“방패들 앞으로.”
3반의 진형이 한 줄로 줄줄이 가는 모양에서, 마름모로 바뀐다.
방패병들을 가장 바깥에 배치함과 동시에 돌파력도 갖추는 진형이다.
방패를 들어 올리니 곧 전투가 시작될 수도 있다고 느낀 건지.
“하아…… 하아…….”
“후우. 하아.”
긴장한 듯한 숨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진다.
“다 같이 전진하면서, 방 체크.”
계단실에서 가장 가까운 화장실부터, 연달아 있는 교실들까지 전부 체크하면서 나아간다.
“화장실 클리어.”
“1반 없고.”
교실이 하나둘 확인되기 시작한다. 현재까진 발견되지 않았다.
대체 어딨지? 아까 그 녀석들…….
“뭐야. 없는데?”
다 찾아봤는데. 없다.
타코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상한데.’
뭔가 위화감이 든다.
“위로 먼저 올라갔나 보다.”
풍선껌이 속 편한 목소리로 지껄이긴 했으나 이게 정상적인 추론이다.
반장도 이 의견을 거든다.
“걔네가 옥상 선점해서 헬기 구조 독식하려는 거 아니야?”
“우리도 4층으로 가자. 그놈들이 옥상 가기 전에 따라잡아야지.”
풍선껌의 지휘에 따라 모두가 계단으로 향했고, 타코야끼는 그 와중에도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이상한데…….’
그러던 중.
“어?”
턱.
그가 풍선껌을 붙잡는다.
“형님. 저 알았습니다.”
“뭘……?”
“가면 안 돼요. 아직.”
하?
풍선껌은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어서 아몬드에게 묻는다.
편 좀 들어달라는 듯이.
“몬드야. 넌 얘가 뭔 말 하는지 알겠냐?”
“네.”
“뭔데?”
“가면 안 된다구요.”
“…….”
-ㅋㅋㅋㅋㅋㅋㅋ어림도 없지!
-맞말추~
-자강호두천 ㅋㅋㅋㅋㅋ
-십ㅋㅋㅋ
-풍선껌 악질이네 당연히 모르는데 왜 물어보냐고 ㅋㅋ
-아 그래서 뭔데
* * *
약 10분 전.
제시와 2반의 아이들은 3층 창문으로 거의 기어 넘어오다시피 넘어온다.
“하아…… 씨…… 겁나 힘드네.”
“죽는 줄.”
전투직군인 제시를 제외하면 다들 힘들어 보인다.
“그래도 여기 좀비는 없나 봐.”
“그러게.”
3층은 본래부터 좀비가 없는 구역이었다. 운이 좋게도.
“근데 제시. 우리가 숫자가 더 적은 거 같지 않았어?”
‘우트’라는 플레이어가 묻는다.
“응. 적어. 게다가 아마도 체계적이야. 아까 움직이는 방식을 봤거든.”
“……그렇군.”
제시의 말에 학구적으로 생긴 남자가 제안한다.
“숫자가 많다고? 그럼 일단 우리가 먼저 올라가자. 문을 닫아버리면 되잖아.”
그의 닉네임은 너드킹이지만.
아까부터 ‘마속’이라 불렸다.
“그래. 마속.”
우트가 동조한다.
“먼저 올라가서 문 닫고 시간 끈다? 좋은데? 아예 못 들어오게 할 수도 있어.”
얼추 듣기엔 좋은 제안인데. 제시가 고개를 젓는다.
“그게 될 리가.”
“왜?”
“단순히 문만 닫고 잠그면 오함마로 뚫려.”
“오, 오함마도 있어?”
“그래.”
“제기랄. 그럼 바리케이드 치면?”
“소리. 안 들려?”
“!”
4층 복도에서 울리는 듯한 발을 질질 끄는 소리.
4층엔 좀비가 있었다. 확실하게.
요란하게 여기저기 부딪히는 소리도 울리는 걸 보니 높은 확률로 특수 좀비도 존재한다.
“바리케이드 치다가 4층에 있는 좀비들한테 당할 거야.”
“전부 처리하면?”
2반의 현재 전투 능력은 정예군 수준이다.
특수 좀비가 섞여 있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나 문제는 좀비가 아니다.
사람이다.
“처리? 할 수야 있지. 근데 뒤에서 따라오는 저 녀석들에게 퇴로가 막히고 좀비 대신 치워주는 고기 방패만 되는 거야.”
“……그, 그렇군.”
우트는 머리를 긁적이며 되묻는다.
“그럼 어쩔 건데?”
제시는 잠시 눈을 감더니. 생각에 잠긴다.
“걔넨 우리가 있는 걸 몰라.”
“……그렇지.”
“그럼 걔넨 3층으로 올라오겠지. 당연히. 옥상 가야 하니까.”
“그래.”
“우린 다시 배관 타고 2층으로 가자.”
“……!?”
힘들게 올라왔는데. 또 내려가자고?
하지만 꽤 그럴듯한 전략이다.
“우리가 뒤를 잡는 거야. 걔네가 우리 고기방패를 하고.”
“오……!”
마속과 우트가 끄덕인다.
“좋은데? 걔넨 우리 존재도 모르니까. 알아서 좀비를 다 치우고 갈 테고.”
확실히 괜찮은 전략이었다.
“근데 타이밍이 맞으려나?”
다만 동선이 겹칠 경우, 예를 들어 그들이 2층에 아직 있는데 갑자기 이쪽에서 2층을 진입할 경우. 모든 게 틀어진다.
“지금부터 2~3층 사이 배관을 모두 타고 있다가, 2층 창문을 통해서 올라가는 걸 보고 진입하면 되지.”
잠시 후.
2반은 다시 전부 가스 배관 위로 올라섰다.
“으…… 나, 나 고소 공포증 있단 말이야…….”
학생들 중 몇이 우는 소리를 냈지만. 별수 없었다.
“잠시만. 내가 볼게.”
제시는 놀라운 균형 감각으로 배관에 매달려 고개만 쏙 옆으로 내밀었다.
‘올라간다.’
2층에 있던 3반이 점점 3층으로 사라졌다.
제시는 숫자를 세겠다는 의미로 손가락 3개를 들어 올린다.
셋 하면 모두 내려오기 시작하라는 것.
“하나, 둘…….”
휘릭.
제시가 먼저 2층으로 다시 진입하고, 아이들이 하나둘 따라 들어왔다.
2반은 2층, 3반은 3층. 이렇게 서로 위치가 바뀌었다.
즉, 제시의 계획대로 그들이 3반의 뒤를 잡은 거다.
마속이 참지 못하고 낄낄댄다.
“정말 다 올라갔잖아? 이러면 완전 계획대로인데?”
* * *
[초보자 Tip: 인간과 좀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를 쓴다는 것입니다. 예. 몇몇 플레이어들은 좀비와 구분이 잘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하하하!]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