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2부-267화 (547/699)

7. 똑똑한 놈, 멍청한 놈, 될 놈(2)

비록 17살 시절의 외모로 복원(?)되었지만.

특유의 빨간 머리와 에메랄드빛의 눈.

아시아인으로서는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색 조합.

심지어 그 색 조합을 가진 여성이 자신을 알아본다면?

“아몬드!?”

남는 경우의 수가 몇이나 되겠는가?

제아무리 아몬드가 무신경하다 해도 모를 수가 없다.

그의 시빌 엠파이어 랭크 게임을 구해준 은인이기도 하니까.

「선물이야」

그녀가 꽃다발마냥 화살 다발을 내밀던 장면을 아몬드는 아직도 기억한다.

“제시……?”

그렇다. 그녀는 시빌 엠파이어에서 만났던 인연, wackjassey라는 아이디의 플레이어다.

이곳저곳 피가 튄 교복을 입은 그녀가 낯설긴 했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분명 제시가 맞는 듯했다.

-제시가 누구임?

-제시??

-헐 미쳤닼ㅋㅋ 웩제시 쒯~~

-제시좌 모르는 유입쉑들 누구야~~

-???: 오빠! 저년 누구야!?

-“왔다. 내 첫사랑.”

제시는 이내, 게임 내내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표정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반가워하다니.

“와! 한국 와서 만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그런데…….

훙!

‘엥?’

엄청 반갑게 말하면서도 무기는 휘두르고 있었다.

“미…… 미친?”

카앙!

아몬드는 황당한 표정이었지만, 어쨌거나 잘 막아냈다.

“놀랐어? 적은 적이지.”

“……그렇지.”

“지금 얼굴은 고등학교 때?”

쉬이이익──!

질문과 함께 제시의 창이 다시 찌르고 들어왔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기습당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어린 시절도 귀엽네?”

치익!

아몬드의 옷이 긁혀 나갔다.

[긁힘]

반가움에 잠시 날아올랐던 아몬드의 의식은 금세 다시 검투로 끌려온다.

‘밀린다.’

근접 전투는 제시가 더 위다.

반응 속도에서 아몬드가 앞서는데도, 뭔가 홀린 것처럼 잘 막아지지 않았다.

‘역시 다르구나.’

아마 비밀은 위치 선정이다. 사람의 위치 선정뿐 아니라, 창대가 나아가는 각이 상대가 공격까지 같이 막히는 방식이었다.

‘리히테나워…….’

식빵이 알려줬던 서양인들이 잘 쓴다는 그 검술 기반임이 분명했다.

「그쪽이 이 검술을 잘 모르는 이상. 근접에선 별로 승산이 없어. 격투기로 따지면 그래플링 계열. 주짓수 같은 검술이거든.」

모르면 죽어야지.

이 말의 원조 격이 리히테나워 검술이다.

상대하는 쪽도 그 검술 자체를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당할 수밖에 없게 설계되어 있다.

지금처럼.

키이이잉……!

아몬드의 검을 막던 제시의 칼날이 갑자기 미끄러지듯 파고들어 와 위협한다.

치익!

또 긁히고 만다.

“그냥 비키는 게 어때? 그 얼굴 다치게 하기 싫은데.”

제시가 웃으며 제안한다.

당연히 진짜 제안이라기보단 도발이다.

“아직 잘 모르는 거 같아서 하는 말.”

그래 맞다.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날 끝으로 공격하는 아웃복서 식 전투가 그나마 승산이 좋아.」

카가강!

아몬드는 거리를 벌리면서 날 끝으로 튕겨 버렸다.

「네 반응 속도라면 대처가 될 거야.」

그래. 어차피 4층으로 못 들어가게만 하면 되니까.

* * *

‘어?’

제시는 흠칫한다.

아몬드의 위치 선정이 날카로웠다.

게다가 시간이 너무 끌리고 있다.

‘벌써 3번은 죽였어야 하는데.’

이해도가 떨어지는 건 분명한데, 이상하게 안 당한다.

근접전으로 따지면 2배? 3배는 우스운 실력 차이였다.

거의 10배 이상 차이 나던 수준.

적어도 제시가 처음 봤던 때는 그랬는데.

“!”

카아앙!

근데 또 막힌다.

캉!

다시 들어가도 안 된다.

‘왜 안 뚫려?’

이상했다. 왜 잘하지?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런 실력 상승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너 어떻게 된 거야?”

아몬드는 그냥 으쓱해 보일 뿐이다.

“실력은 하나도 안 귀엽네. 작전 변경.”

그녀는 전략을 바꾸기로 하더니.

갑자기 뒤돌아 뛰어가 버렸다.

* * *

[에에에에에?!]

[제시!? 역주행!?]

아몬드는 아차 싶었다.

‘창문이었어!’

──쨍그랑!

그녀는 계단실 코너에 나 있는 작은 창문을 깨고 나가 버렸다.

[차, 창문으로 나갑니다!? 투신!?]

-???

-뭐야

-미친; 영화냐??

-와

-이거 설마 난간 타고 돌아가냐?

턱! 겨우 배관을 붙잡는 손.

[안 떨어졌어요! 매달려서! 다시 옆으로!]

제시는 그 상태로 배관을 밟으면서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날랜 몸을 소화하는 정도가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수준.

[미친 움직임! 제시! 벽에 매달리면서 4층으로 올라가요!!]

목표 지점은 누가 봐도 4층 복도의 창문이었다.

[아, 아니, 이런 건 상상도 못 했는데?! 이거 뭐 하려는 겁니까?!]

[4층 복도 창문을 깨고 들어가서 밖에서부터 열겠다는 거 같습니다!]

[4층 문을 밖에서 연다구요!? 그, 그거 큰일이잖아요!]

4층 방화문이 열린다?

그럼 온갖 좀비들이 계단실로 들어올 수 있단 말이다.

그럼 3반은 양쪽에서 공격받게 된다.

계단 위쪽은 좀비.

계단 아래쪽은 인간.

최악의 구도이며, 이게 2반이 바랐던 구도다.

[아몬드! 어떻게 판단하나요! 안에서부터 막을 수는 없나요?!]

아몬드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문 안쪽에서 그냥 힘으로 막을지. 아니면 제시를 따라가서 추락시킬지.

[그, 글쎄요! 바리케이드 쌓지 않는 이상. 손잡이 적당히 부숴주기만 해도 좀비들이 밀기 시작하면 문 열려요!]

문 안에서 막는 건 한계가 뚜렷했다. 제시의 무기로 충분히 잠금장치를 부술 수 있으니.

좀비들을 부르기만 하면 함락될 게 뻔했다.

그럼 남은 선택지는 하나다.

[이거 빨리 판단해야 되거든요?]

아몬드는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후웅──

곧바로 제시를 따라 뛰었다. 깨진 창문으로 몸을 날리면서 제시 바로 밑에 매달린다.

─타악!

[이야아! 정확히 따라갑니다!]

[어우 전 보기만 해도 어지러워요!]

발밑에 펼쳐진 풍경이 아찔했다.

3층이라고 해도 떨어지면 거의 전신 골절이 일어날 테니까.

“나 따라오게?”

제시가 웃으며 내려본다.

그녀는 어느새 조금 올라간 상태다.

“이젠 입장이 바뀌었네?”

“……!”

이렇게 되면 제시가 위를 점하고, 아몬드가 아래다. 계단에서의 상황과는 반대다.

“미안한데, 떨어져 줘!”

퍼억!

제시의 발이 아몬드의 얼굴을 걷어차기 시작한다.

-???: 더 차주세요!

-미안한거맞냐고 ㅋㅋㅋㅋ

-엌ㅋㅋㅋ

-와 업계 포상

[출혈]

[타박상]

대미지를 입긴 했으나.

아몬드는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올라갔다.

[아몬드! 올라갑니다! 제시 발로 차지만, 더 이상 역부족!]

아몬드는 드디어 올라왔고.

이제 높낮이가 같았다.

‘드디어.’

이제 해볼 만하다고 느끼는 순간.

아몬드는 곧바로 머리를 숙여야 했다.

카앙──!

제시의 무기가 벽돌에 부딪히며 불꽃이 튄다.

방금 그의 머리가 있던 자리다.

“와씨. 이걸 올라와? 진짜 끈질기네?”

“너도 마찬가진데.”

아몬드도 배관을 꼭 잡은 채, 검을 휘둘렀다.

후웅!

제시의 머리칼이 잘려 나간다.

[둘이 지금 난간에 매달려서 검투!!]

[캬! 이건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 라스트 댄스!]

-ㅁㅊㅋㅋㅋㅋ

-로미오와 줄리엣이 갑자기 왜나왘ㅋㅋ

-이상한 영화 본거 아님?ㅋㅋㅋ

-라스트 댄스 ㅋㅋㅋ

-떨어지면 죽어서 라스트 댄스인가요?

[제시! 손을 노리죠?!]

[서로 무기 들고 있어서! 한 손으로 매달린 상태거든요!]

아몬드를 여기 벽에 지탱해 주는 건 저 오른손뿐이다.

손을 잘리면 여기서 죽는다고 봐야 했다.

근데 그건 제시도 마찬가지다.

“!”

카아앙──!

공중에서 부딪히는 둘의 검.

[벽에 매달려서 전투하니까! 긴박감이!!!]

[예! 장난 없어요!]

-ㅅㅂ 깜짝이야 ㅋㅋ

-전투 오지니까 해설들 텐션 ㅈㄴ 올랐넼ㅋ

-캬 맛있다!

이후에도 서로의 손을 노리는 둘의 검격이 계속 교환됐는데.

카앙!

캉!

요지는 누가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느냐다.

[제시 조금이라도 더 위로 갑니다!]

[아몬드도 따라가요!]

[어떻게든 베어야 하는데!]

아몬드는 그녀가 최대한 못 올라가게 맹공을 퍼부었으나.

전부 막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 이게 공격할 각이 몇 개 없어요! 그래서 계속 막힙니다!]

[사실상 지금 메이플 스토리 전투죠!? 2차원이에요!]

-메이플ㅋㅋㅋㅋ

-ㄹㅇ이넼ㅋㅋㅋ

-횡스크롤 대전ㅋㅋㅋㅋ

-아래 위 중간 뿐임ㅋㅋㅋ

해설들의 말대로였다.

벽에 달라붙어 싸우다 보니. 사실상 좌, 우는 없는 개념이고 위, 아래, 중간만 남는다.

서로 열심히 무기를 휘둘러도, 사실 막는 입장이 너무 유리한 싸움이다.

카앙!

캉!

계속 검끼리만 부딪힌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격을 안 할 수는 없어요!]

[너가 떨어져! 아냐 네가 떨어져!]

[근데 이러면 아몬드가 유리하죠!?]

아몬드는 일부러 소모전을 일으키는거다.

시간은 아몬드 편이니까.

[제시 이대로 시간 끌리면! 아군은 전멸합니다!]

[역시 결단!]

“젠장! 좀!”

제시가 무기를 입에 물더니. 갑자기 크게 그네 타듯 몸을 반동시켜, 양발로 걷어찬다.

펑!

아몬드는 칼 옆면으로 막았으나.

무게가 실려 밀려 버렸다.

[와아! 엄청난 발차기!?]

[미, 밀렸어요!]

그 후, 속력을 내며 위로 미친 듯이 치고 올라간다.

양손으로 짚으면서 올라가니 훨씬 빠르다.

[이제 그냥 개무시하고 위로 갑니다!]

[아몬드! 아까 밀려서 약간 밑으로 떨어졌거든요!? 못 잡나요!?]

제시는 이때다 싶어 미친 듯이 기어 올라간다.

[제시 입장에선 기회! 그냥 쭉 올라가면! 못 따라잡…… 에에에엥!?]

저 밑에서, 아몬드가 칼을 입에 문 채로 무서운 속도로 올라온다.

[뭐, 뭐 저리 빨라요!?]

제시는 그렇게 빨리 올 거라곤 추호도 모르고 있었다.

오로지 위만 보고 기어가는데.

[아, 아몬드 거의 다 따라잡습니다!]

[근데 검으로 베기엔 거리가 좀……!]

제시하고 옆으로 거리가 좀 벌어졌다는 걸 제외하면 높낮이 매우 근접하다.

하지만 제시는 이미 거의 4층.

[제시! 들어갑니다!]

제시가 4층 창문으로 상반신을 넣으려는 순간.

[아아아아악!? 아몬드! 다, 달립니다!? 저 선수 벽을 타고 달려요!!?]

아몬드가 승부수를 던진다.

타다다닥!

두 손을 때고 발로 벽 위를 아예 달려 버린 것.

물론 아주 잠깐은 이런 식으로 달릴 수 있었다만, 금세 아주 크게 추락하고 만다.

그 잠깐을 위해 지금 그는 몸을 던진 거다.

-이게 견카게!?

-ㄷㄷ

-헐

-와

-견과류 마을의 닌자 아몬드다!

부웅!

순식간에 벽을 서너 번 박차면서 달려온 그가 공중을 날았다.

“!?”

제시는 순간 드리운 그림자에 옆을 보곤 기겁했다.

‘미친.’

이걸 날아와?

아몬드가 입에 물었던 검을 손에 쥐며 휘둘렀다.

그의 몸이 공중에서 돌아가며, 아주 매섭게 칼날의 바람이 휘몰아친다.

휘이이이익!

이대로 맞으면 제시는 상반신이 잘려나갈 각이다.

“으, 으으아앗!”

그녀는 온몸을 비틀며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해 버렸는데.

촤아아악──!

결국 몸이 두 동강 나는 대신 다리를 내준 게 최선이었다.

[아아아아! 마, 막았어요! 막았다고 할 수 있다면요!]

[너무 큰 부상인데요!? 이건 이미 죽은 거죠!]

하얀 다리에서 새빨간 피가 흩뿌려졌다. 깊은 상처였다. 거의 잘려나갈 뻔한 모습.

“으……윽!”

털썩!

그럼에도, 그녀는 4층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소리쳤다.

“야아아아아아!!!”

그녀의 고함이 복도 전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아 죽을 때까진 죽은 게 아니다! 여전히 작전 수행은 가능합니다!]

“여기다아아아아! 좀비 새끼들아아아아아!!!”

복도 저 끝 코너, 각 교실, 그리고 멍하니 복도 근처를 배회하던 좀비들의 고개가 일제히 틀어졌다.

쿠구구구궁……!

그들이 마구 뛰어오기 시작했다.

좀비들 중엔 차저, 캐쳐 등 특수 좀비들도 섞여 있었다.

[아아아! 조졌습니다! 결국 제시가 좀비들 다 불렀어요!!]

좀비들이 오는 걸 확인한 제시가 4층 방화문을 향해 간다.

[제시! 절뚝거리면서도! 4층 방화문까지! 갑니다!]

[아몬드는 아까 도박수 여파로 오려면 좀 걸립니다!]

제시의 무기는 절단기를 개조한 거라, 무게가 상당하지 않던가?

쾅! 콰앙!

문 손잡이는 금방이었다.

[결국! 열려요!!]

문이 열린다.

제시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바닥에 쓰러진다.

털썩…….

* * *

[과다출혈]

[인대 파열]

[탈진]

[현기증]

.

.

.

온갖 상태 이상 종합 선물 세트가 시야를 가린다.

“하…… 이겼다.”

이기긴 했지만, 본인도 끝이다.

“이제 왔구나?”

제시가 실실 웃으며 이제야 도착한 아몬드를 올려봤다.

하아…… 하아…….

급하게 오느라 숨을 헐떡이는 모습.

“나 죽일 거야?”

아몬드가 말 없이 검을 고쳐 쥐었다.

“가차 없네.”

어차피 아무 반항도 못 하는 상태다.

제시는 여기서 죽는다 싶어 눈을 질끈 감으며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음?’

실눈을 뜨고 보게 된 건 아몬드의 등이었다.

복도를 막고 선 등.

“누가 그래? 네가 이겼다고.”

그 등은 좀비들을 향해 칼을 겨누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거 막으면, 우리가 이겨.”

“뭐……?”

저걸 막겠다고? 제정신이야?

수십 마리의 좀비들.

심지어 그냥 좀비도 아니다. 특수 좀비들도 다수.

그들이 복도에 꽉 들어차 달려오고 있음에도.

“크아아아아아아……!”

“크어어어어!!!”

[공포]

전투 직군인 둘조차 공포를 느낄 정도의 숫자임에도.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이긴다고 믿고 있었다.

우우우웅!

이때, 텍스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

[공포 → 결의]

전투직군의 특수 능력이 발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 * *

[초보자 Tip: 의외로 인간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갈 때 제일 나약해집니다.]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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