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살아남았다면(3)
치이이이이이익……!
캡슐이 열린 후.
“챌린지 우승의 주인공들이 나옵니다!”
“와아아아아!”
부스 근처에서 지켜보던 관중들이 보내는 환호와 박수.
가장 먼저 캡슐에서 뛰쳐나온 풍선껌이 그것을 뚫고, 괴성을 지른다.
“그르르롸아아아! 칵칵! 배애앵! 다 죽였으!”
양손을 총 모양으로 만들어서 난사하기 시작한다. 흥이 제대로 올라 버린 모양이다.
-ㅁㅊㅋㅋㅋㅋ
-하드캐리한 줄
-빈수레 그 자체 ㅋㅋㅋ
-아 개웃겨 ㅋㅋㅋ
-미친ㅋㅋㅋㅋ
-정보) 이 게임엔 총이 없었다
그는 카메라들 중 하나 앞에 가서 머리를 들이밀며 외쳤다.
“내가 한다고 했지! 내가 챌린지 하나는 이겨준다 했잖아!”
-정보) 풍선껌은 버스 받은 게 민망해서 더 난리 치는 중이다
-엌ㅋㅋㅋㅋㅋ
-웃기긴 해 ㅋㅋㅋ
-크 머기업 행동
“아! 아주 인상적인 등장입니다! 풍선껌! 이어서 진짜 영웅들이 나오는군요!?”
-진짜 영웅들ㅋㅋㅋㅋㅋ
-가짜 영웅 풍선껌ㅋㅋㅋ
-가짜 총 가짜 영웅 가짜 캐리…… 그는 도대체……
-십ㅋㅋㅋㅋㅋㅋ
“타코야끼!”
와아아아.
게임 속 모습과는 머리숱이 한참 차이 나는 타코야끼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몬드!”
타코야끼에 이어 아몬드가 캡슐에서 나온다.
그러자 함성이 그야말로 떠나갈 듯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몬드!!!”
“사랑해요!”
“와아아아아아!”
팬들의 익룡 소리 내기 대회가 있다면 아몬드가 젤로를 꺾고 우승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현장 반응이 뜨거웠다.
“이야~! 잘생긴 외모 때문일까요? 하드 캐리 때문일까요? 아주 함성이 엄청납니다!”
“그러게요. 저는 이 챌린지 부스가 이렇게까지 시끄러워질 수 있는 곳인 줄 처음 알았어요?!”
옆에서 해설이 한마디 거든다.
그도 그럴 게 이곳이 지금 현장에서 들리는 사운드만큼 넓은 공간은 아니었으니까.
아몬드가 손을 흔들어주자, 함성은 더 거세졌고 중계진도 말을 멈춰야 할 지경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자, 자! 이쪽으로! 이쪽으로 와주세요!”
다급히 직접 달려가서 데려오는 직원들.
아몬드와 풍선껌 타코야끼는 나란히 서서 거대한 기프티콘 모형을 들었다.
[비비쿤 치킨 100마리]
찰칵! 찰칵!
터져 나오는 플래시와 셔터음.
셋은 익숙한 듯 천천히 손을 흔들며 받아들였다.
“하아. 드디어 이겼구나. 몬드야. 진짜 고맙다.”
풍선껌이 연신 고맙다며, 이런 약속을 한다.
“나중에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해. 게임 말고.”
“뒤에 게임 말고를 붙이시는 거 보니까. 진심이네요. 형님.”
타코가 옆에서 깐족댄다.
푸하하하.
셋이 빵 터지며 웃는 것이 카메라에 잘 담겼다.
찰칵!
모든 촬영과 선물 뿌리기가 끝난 후.
“밥 먹었구나?”
“네. 아까 저 푸드트럭에서…….”
풍선껌과 타코는 밥을 안 먹었는지 식사를 하러 가기로 한다.
“그럼 우리끼리 가야겠네.”
“미호가 아쉬워하겠군.”
“야. 그거 말하지 말라니까?”
“그거 말하지 말라는 걸 말하지 말아야죠. 형님.”
“말하지 말라는 걸 말하지 말라는 걸 말하지 말아야지. 인마.”
무한 루프로 이어지면서 계속해서 그 비밀(?)을 말하고 있는 둘 덕에, 미호와 셋이서 식사하러 가기로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쨌거나 상현은 이미 밥을 먹었으니 남 얘기.
그는 시청자들과 대화를 시작한다.
“음. 여러분. 잘 보셨죠? 치킨 받으신 분들 잘 드시구요.”
-감사합니다 ㅎㅎㅎ
-헐 설마
-ㅠㅠㅠ방종하지 마 ㅠ
-방종각?
-와 나 치킨 ㅠㅠ 대박
상현이 슬슬 지스타 방송을 끝내려는 걸 눈치챈 사람들.
“이제 하기로 한 게임은 다해서요. 시빌엠파이어 정도 남았는데…… 그건 오늘 무슨 지휘관들만 참여하는 챌린지래요.”
-아……
-아몬드 지휘관 ㄱ?
-그거 스타리그처럼 한다던데 ㅋㅋㅋ
-아휘관ㅋㅋㅋ 지옥이다
-???: 그걸 왜 못 맞힘? 트롤 아님?
-릴 RPG도 좀 봐줘!
“그럼. 게임 방송은 그만하더라도 지스타 구경은 좀 더 할까요?”
생각해 보니 게임만 안 하면 체력에 문제될 건 없어 보인다.
그리고, 기분 탓일까?
‘의외로 쌩쌩한데.’
좀비스쿨은 몸에 무리가 안 가는 느낌이었다.
“그럼 한번 이상한 게임들 구경을…….”
“hey.”
슥.
갑자기 끼어드는 누군가의 실루엣.
“!”
한눈에 봐도 색감부터가 달라서, 바로 알 수 있었다.
“제시……?”
“yeah! I’m ‘the’ jassey. you are almond. right?!”
(맞아! 내가 그 제시야. 너 아몬드지?)
활짝 웃으면서 묻는 게, 꼭 하이틴 시트콤에 나오는 주인공 같다. 아마 외국인이어서 그럴 것이다.
-와
-ㄹㅇ 제시네
-제시 (물리)
-헐 영어 하니까 너무 달라 보여 ㅋㅋㅋ
-통역병!! 여기야!!
실물로 보니 표정이 훨씬 역동적이어서 굳이 영어를 몰라도, 그녀가 엄청 반가워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예쓰. 아이엠. 아몬드.”
상현은 본인이 맞다고 말해줬다.
-정직한 영어 ㅋㅋㅋ
-예스ㅋㅋㅋㅋ
-그래도 아성 출신이라 영어 다 하네 ㅋㅋ
-수리남식 영어 ㅋ
“I knew it! you look even cuter in person.”
(바로 알아봤지. 실물이 더 귀엽네.)
상현이 아몬드가 맞다는 걸 알자 대놓고 신나 하기 시작했다.
거의 춤이라도 출 기세.
-ㅠㅠ 솔로는 웁니다
-이븐 큐터 좌…… ㅋㅋㅋㅋㅋ
-여자라는 게…… 이렇게 좋아할 수도 있는 거구나……
-죽어. 아몬드. 죽어.
-엄마! 나 커서 아몬드에게 복수할 거야!
채팅창은 당연히 온갖 공격적인 메시지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후원까지.
[초큐트남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여자가 남자 보고 귀엽다고 하는 거 호감 있는 거 아니라고 한 새끼 다 튀어나와 X발.]
-ㄹㅇㅋㅋㅋㅋ
-이걸 보고도 그 소리를 할 수 있는지 한번 보자고~?ㅋㅋㅋ
-그건 “아…… 귀, 귀엽지?” 아님?
-ㅋㅋㅋㅋㅋㅋㅅㅂㅋㅋㅋ
-초큐트남 ㅇㅈㄹㅋㅋㅋ
[통신사연맹 님이 3천 원 후원했습니다.]
[망사용료는 앞으로 우리 상현이가 다 내자?]
-그래도 그건 안 돼 이 새끼야 ㅋㅋ
-차라리 세금 2배가 낫지
-ㅈ망사용료 ㅋㅋㅋ
-이걸 뜯어가네 ㅅㅂㅋㅋㅋㅋㅋ
-???:우리가 깐 통신 장비, 해저 케이블까지 써서 국제 연애를 했으면, 결혼 정보 회사 급의 수수료를 받아야 되는 게 맞거든요?
-랜선 조폭 등장ㅋㅋㅋㅋㅋ
[니체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니체는 말했습니다. “커플은 지옥에 가라” 하지만 지옥에 간 건 니체였습니다.]
-ㅅㅂㅋㅋㅋㅋ
-니체는 왜 가는데 ㅋㅋㅋ
-신이 죽었다 했으니 가야제~
-존나 웃기넼ㅋㅋ
후원이 마구 치고 들어와 고글 시야를 가리는 사이.
“*%(#&@(@*”
“@&*$*@”
그녀는 자기 동료들에게 마구마구 뭐라 떠든다.
영어가 아니라, 덴마크어 같았다.
아무래도 제스쳐로 봐선 여기가 그 아몬드라고 소개하는 모양.
그러더니, 그녀는 상현을 돌아보며 휴대폰 카메라를 켜며 가리킨다.
“Can I……?”
(혹시 될까……?)
사진 찍는 거 가능하냐는 것 같다.
아몬드는 끄덕이며 된다 했다.
제시는 신나서 아몬드 옆에 붙어 사진을 찍어댔다.
찰칵! 찰칵!
-개부럽……
-지상 최악의 스트리머 아몬드ㅂㄷㅂㄷ
-“신은 죽었다” by. 정기찬
생각보다 너무 붙임성이 좋아서, 상현은 조금 당황한 차였다.
* * *
“아. 좋죠. 좋죠.”
주혁이 사람 좋은 웃음을 만개하며 끄덕였다.
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가는 부스마다 광고 건수를 쓸어오고 있으니.
유상현 집에서 지스타를 한 번 더 열어도 될 판이다.
“아이고. 그럼 예! 꼭 잘 부탁드립니다!”
“예. 상의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모두가 주혁에게 90도 인사를 한다. 주혁은 부장님이라도 된 듯한 느낌을 받으며 부스를 나섰다.
광고를 받아주는 사람이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 건가?
갑을 구조라는 게 참 웃기다.
어느 임계점을 넘으면 을이 오히려 갑이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니 세상이 살 만한 곳이구나.”
회사에 있을 땐 몰랐다. 세상은 생각하는 것처럼 갑과 을이 딱 정해진 곳이 아니었다는 거.
살아 움직이듯 활기찬 시장에선 더욱 그 변화가 유동적이었다.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을에게 조심스럽다. 을은 당연히 조심하고.
모두가 모두에게 예의를 지키는 상황이 나온다.
어디에 모 부장처럼 늘 사람을 기본으로 하대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어디 보자…… 좀비 스쿨에 배틀라지 닌자모드 뭔 모바일 게임에…….”
주혁은 오늘 채운 건수를 체크 하면서 상현이 있는 부스로 향했다.
이제 슬슬 떠날 채비를 할 시간이니까.
“……이 정도면 한 반년은 걱정 없겠는데?”
흐흐.
주혁의 입꼬리가 또 귀에 걸리려는 찰나.
「올라가기 위해선 주변을 정리하는 게 먼저예요. 상현 씨. 친분에 휘둘리는 건 좋지 않죠.」
갑자기 표정이 굳었다.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아.”
저 말을 들은 후. 부끄럽게도 주혁은 꽤나 충격을 먹었다.
‘어느 정도는 단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사회물 먹을 만큼 먹었어도, 믿었던 동료의 배신(?)은 언제나 아픈 법인 거다.
물론 아몬드가 배신한 건 아니지만 그 장면을 상상하게 만든 발언이었다.
‘그래서 증명하기로 했잖아.’
지금 주혁은 지스타에서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아예 1박 2일 지옥 캠프를 간다는 각오였다. 덕분에 이만큼이나 광고를 따오지 않았던가?
그는 상현이 큰 회사 없이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정말 그런가.’
주혁은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봤다.
큰 매니지먼트에서 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은 지스타에서 이러고 돌아다닐 이유가 없었다.
알아서 회사로 광고가 들어오거든.
펑크사가 파트너들에게 해주는 것과 비슷한 개념인데.
단지 펑크는 펑크에서 유통하는 게임만 돌려줄 뿐이고, 매니지먼트는 모든 게임을 관장한다.
어쩌면 상현은 이미 이런 지스타 따위에 와서 고생할 레벨이 아닐 수도 있었다.
주혁은 자신의 서류 가방을 내려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증명하려 한 건 유상현이 큰 회사 없어도 잘 나갈 수 있단 게 아니라, 내가 큰 회사만큼 할 수 있단 거였어.’
초점이 이미 매니저인 자신에게 맞춰져 있었던 거다.
어쩌면 자신의 증명을 위해 상현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결과만 좋다면 서로 행복하고 아무 일도 없겠지만…….
‘내가 정말 대형만큼 하고 있는 건가?’
띠링.
그때 메시지가 도착한다.
[상현: 살려줘]
[상현: (사진)]
살려 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상현이 보낸 사진 한 장.
외국인 3명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다.
무슨 납치라도 당한 건가.
지스타 행사장이 배경이 아니었다면 정말 그런 수준의 표정이다.
“……?”
잠시 멍 때리던 주혁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하!”
유상현이 이렇게까지 곤란해하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과거 한 조직에서 상현과 함께했던 기억이 떠올라서였을지도.
“아. 그래. 외국인 불편해했었지…… 그래도 표정이 이게 뭐냐. 으하하…….”
아니, 어쩌면…….
정말 작은, 작디작은 마음 한구석.
그 한구석에서 상현이 여전히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안도감이 피어올랐고.
그것이 주혁을 웃게 했을지도.
“하아…… 아. 웃겨. 한참 웃었네.”
복잡한 생각은 집어치우자.
필요로 한다면, 일단은 그걸로 된 것이다.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2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