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경매(2)
데미안 협회 근본주의자들의 전략은 이러했다.
“아몬드는 포인트가 여유로우니까 사고 싶은 것들이 좀 생겼을 거야. 사고 싶은 게 생겼다면 망설일 이유도 없지.”
일단 아몬드의 관심을 끌 만한 경매품들을 추천시켜서 그가 활 외의 다른 경매에도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추천이 먹히지 않을 수도 있으나, 아몬드는 무려 만 포인트의 소유자이고 이 포인트는 오늘이 지나면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에 반드시 뭐라도 사려고 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추측이다.
“포인트를 빨리 털어야 하니까, 조금만 사고 싶어도 바로 참여할 거야. 그럼 우리는 조직적으로 참여를 시작하는 거지.”
아몬드가 활 외의 상품에 경매를 걸기 시작하면, 이들이 조직적으로 가격을 올려 버리는 것이다.
“한 상품당 최소 1천 포인트씩 빼면 우리가 승산이 있어.”
“1천?”
“최소 500.”
다른 멤버들이 동요한다.
아몬드야 1만 1천 포인트나 있으니, 별게 아니지만 아몬드 제외 1등의 포인트가 2,600포인트였다.
그조차도 굉장한 격차였던 걸 고려한다면, 1천 포인트는 쉽게 쓸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사실상 전재산이며, 대부분은 천포인트조차 없다.
“어쩔 수 없잖아?”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하겠다면서, 목숨을 걸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
“활 사면 협회 장식장에 모두의 것으로 걸어놓을게. 빌어먹을 세속주의자 새끼들은 제외하고.”
“……콜.”
쓸데없이 비장한 눈빛을 하며 그들은 경매를 시작했다.
“무, 물었어.”
두 번째 상품부터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상품은 그림자도 보지 못했으니, 사실상 바로 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들어가.”
가격을 올려놓기 시작하는 데협들.
“아! 한 번에 100을 레이즈!? 400이 되었습니다! 410 있습니까?!”
폭파광 스태츄의 가격이 벌써 410포인트다. 사실상 아무도 사고 싶지 않을 가격.
‘최소 500이다. 최소.’
하지만 이들은 상품의 가치를 보고있지 않았다.
아몬드에게서 얼마나 털 수 있는지를 보고 있었다. 천 포인트까지는 못 가더라도 500은 빼놔야 승산이 있다.
“410 있습니까?”
아몬드가 410을 콜해줘야 경매가 계속된다.
‘제발 물어라.’
‘물어. 돈 많잖아.’
이 미끼를 물지 않으면 다른 데협 멤버가 세 번 정도 더 호흡기를 붙여서 경매를 연장할 것이다.
‘이미 한번 갖고 싶었음 물 거야.’
그들은 아몬드가 한 번은 더 물 거라고 생각했다.
“410! 14번!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420 있습니까!?”
“!”
됐다.
14번 즉, 아몬드가 410으로 올렸다.
“420 있습니까?!”
이에 데협들 중 하나가 손을 든다.
척!
“아아! 92번! 420으로 올라갑니다! 430?”
척!
다른 쪽에서 팻말이 솟구친다.
“아아! 14번! 다시 한번 430으로! 아, 아니, 450으로!?”
저쪽에서 한 번에 450으로 올려 버렸다.
씨익.
데협들의 입가엔 미소가 감겼다.
역시…… 놈은 돈이 너무 많아서 지금 감을 못 잡고 있었다.
그냥 갖고 싶은 걸 갖기 위해 혈안된 모습.
“92번! 460으로 올립니다!?”
다시 한번 10포인트를 올린다.
이때부턴 둘만의 대결로 가는 게 좋다.
다른 사람이 끼는 것보다 둘의 자존심 대결로 가면서 이목을 받는 게, 훨씬 치열해지거든.
척!
역시 반응이 곧바로 온다.
“14번! 470! 470까지 왔어요!”
폭파광 스태츄 하나가 무려 470포인트로 치솟는 광경.
이때만 해도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웃고 있었다.
레이나 활을 원하는 자들은 제대로 분산시키고 있으니 좋아했고.
레이나 활 가격이 오르길 바라는 세속주의자들은 ‘와. 역시 화끈하네. 활 가격도 미쳤겠지?’라며 좋아했다.
척! 주혁의 팻말이 다시 솟았다.
“500!! 14번! 500을 불렀습니다!”
어느새 가격이 500까지 치솟았을 때.
“510 있습니까!?”
고요한 정적만이 흘렀다.
데협들의 입가엔 함박웃음이 꿈틀댄다.
“5! 4! 3! 2…….”
시간을 촉박하게 재도 반응은 마찬가지. 애초에 저 물건에 300포인트 이상을 쓰는 게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1! 좋습니다! 14번! 축하드립니다! 폭파광 스태츄! 교환권! 전송!”
띠링!
스크린에 경매 당첨자가 떠오른다.
그의 보유 포인트에서 곧바로 정산되면서 그에게 교환권이 발송된다.
일단 당첨시킨 후 돈을 추가로 조달해 올 수 있는 일반 경매와는 달리, 여긴 즉시 계산 시스템이다.
저녁 9시 30분에 시작되는 경매를 일반 경매처럼 했다간 여기서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르니까.
“자, 초반부터 아주 화끈하군요!? 그럼 다음은 상품은…….”
* * *
-호두 개같이 멸망ㅋㅋㅋ
-이거 맞는거냐???
-먼저 맞기 전략 ㅋㅋㅋㅋ
“……엥?”
폭파광 스태츄를 500포인트를 주고 샀다.
시청자들은 비웃기 바빴다.
상현 역시 어이없는 눈빛으로 자신에게 전송된 교환권을 보고 있었다.
10년 전 반짝 유행하던 구닥다리 NFT 광고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는 폭파광 테리의 스태츄 형상.
‘2등 포인트가 2,600인데.’
상현도 바보가 아니니 이 정도 계산은 하고 있었다.
2등, 그러니까 상현을 제외한 1등이 갖고 있던 포인트가 2,600포인트다.
흔한 말로 인간계 최강이 2,600이고 상현은 신계라고 봐야 하는데.
‘500포인트면…… 20%잖아?’
인간계 최강의 포인트의 20%를 지금 이 폭파광 스태츄에 소모해 버린 것이다.
이 스태츄가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현은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너무 시끄럽고 산만하달까.
“아. 이건 그냥 맛보기야. 어쩔 수 없이 내줘야 하는.”
주혁이 상현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알려준다.
“그, 그래……?”
아까 전 ‘계획대로’라고 말하던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요원 호두 출격 ㅋㅋㅋ
-요원님? 이건 플랜 몇인가요?
-“계획대로”ㅋㅋㅋㅋ
-견과류들은 다 이런식임?ㅋㅋㅋ
-거울 치료 ㅋㅋㅋ
“믿어봐. 필요한 일이니까.”
“그래…….”
아무래도 주혁은 그들이 어디까지 상현을 밀어붙이는지 그 한계선을 가늠하기 위해 그냥 당해준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근데, 굳이 이걸로 할 필요는 없잖아.
“끄…….”
상현은 휴대폰에 떠오른 사진을 보고 다시 끙끙거렸다.
-왤케 싫어하냐고 ㅋㅋㅋㅋ
-정신차려 유상현!
-매니저 좀 믿어봐
-얜 걍 폭파광이 싫은거임ㅋㅋㅋㅋㅋㅅㅂㅋㅋㅋ
-아 개 기여웤ㅋㅋㅋ
상현이 폭파광을 보며 앓는 소리를 내자 주혁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두들긴다.
“야. 우리 갖고 있는 포인트가 만천이다. 만천. 겨우 500 갖고 왜 그러냐.”
“……오키.”
-오키 ㅋㅋㅋㅋ
-마지못해 오키 ㅋㅋㅋ
-호두만 믿으라구~!
사실 상현은 그다지 남은 포인트가 몇인지 신경 쓰고 있진 않았다.
쉽게 얻은 만큼 딱히 귀한 줄 모르는 것이다.
단지 쓸데없는 물건이 자신의 집에 하나 추가될 걸 생각하니 마음이 어지러운 것뿐이다.
“자. 다음 간다. 이제 잘 봐.”
주혁이 다시 팻말을 든다.
“100!”
“이야 이번에도 100을 레이즈합니다!?”
100이나 올렸는데, 상대도 망설임이 없었다.
“51번! 110!”
상대가 따라온다.
주혁이 다시 거리를 벌린다.
“또 레이즈! 14번! 전투적입니다! 다음 있습니까? 51번! 들어옵니다!”
“14번! 210!”
“51번! 220!”
“14번! 230!”
계속해서 서로 가격을 올리는 레이스가 지속됐다.
그냥 듣기만 하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바로 옆에선 모종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주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이 있었다.
어느덧 가격은 다시 400선을 넘었다.
“14번! 460!”
“51번! 470!”
“14번! 480!”
주혁이 480을 부르고는 상현에게 말했다.
“자. 봐.”
진행자가 이제 490을 부를 경매인을 찾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주혁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490입니다! 500! 있습니까?”
이번 물건도 폭파광 스태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현이 딱히 원하는 제품이 아니었는 데다가 실제 값도 절대 500포인트를 받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주혁이 아니면 아무도 입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주혁은 팻말을 들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진행자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5, 4, 3…….”
분명 경매에서 물건을 따내는 건 좋은 일일 텐데.
왠지 모르게 계속 경쟁하던 51번에게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숫자가 줄어들수록 그의 안색이 파리해진다.
“……1! 51번! 축하합니다!”
거대한 스크린에 떨떠름해하는 표정이 전부 찍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앜ㅋㅋㅋㅋ
-개쌤통이닼ㅋㅋㅋ
주혁이 스크린으로 카메라를 들어 올린다.
“표정 봐라.”
찰칵.
키득거리며 사진을 찍는 주혁.
그의 휴대폰엔 똥 씹은 표정인 한 명의 데협이 찍혀 있었다.
“아까는 얘네 한계선이 어딘지 알려고 져준 거야.”
-믿고 있었습니다! 호두!
-캬!
-포브스 선정 사상 최악의 인형: 호두까기 인형
-인증샷까짘ㅋㅋㅋ
-누가 호두를 의심하지!? 누가 호두를 의심하지!?
그렇다. 주혁이 처음에 일부러 계속 호가를 높인 것은 저들의 심리적 한계선이 어디로 맞춰져 있는지를 체크한 것이다.
저들이 언제쯤 빠지는지를 대략 알고 있어야 주혁이 이렇게 바로 코앞에서 쏙 빠져 버릴 수 있으니까.
자본이 만천이나 있다는 것을 백분 활용한 전략이었다.
“아마 다음엔 500에서 안 끊을 거야. 낮추려고 할걸. 리스크가 있으니까.”
이번에 500 앞에서 도망쳤으니, 저들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려 할 것이다. 주혁은 그마저도 계산해서 다음을 준비한다.
“이번에도 봐라.”
자신 있게 웃는 주혁의 얼굴. 꼭 레버리지 시원하게 땅기는 뉴욕 트레이더 같았다.
실제 그의 성격도 그러했다. 필요한 일이다 싶으면 과감하게 투자하고, 그 이상의 이득을 취해낸다.
저런 스펙으로 지금 상현의 매니저 노릇을 하고 있는 것도 분명 그런 판단의 일환이다. 남들은 쉽게 도전할 수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것을 주혁은 숨 쉬듯이 해낸다.
상현이 훈련의 반복을 통해 어느 상황에서도 침착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어떤 타고난 무언가.
‘신기하단 말이지.’
상현은 예전부터 그런 주혁의 능력 혹은 기질을 보며 신기해했다.
자신의 주변에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유형이다.
아마 이건 자라온 환경의 탓이었다.
‘아마 성장 배경이 달라서야.’
상현이 비록 꽤나 쿨한 성격이라지만, 유년기엔 짙은 가난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지금은 그 그림자를 벗어나고 있지만, 한번 배어버린 얼룩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가난은 늘 그림자에 도사리고 있다. 언제든 다시 제 주인을 잡아먹으려는 듯이.
‘주혁이는 달라.’
늘 느낀 것이지만, 새삼 다시 느껴진다.
주혁에겐 특별한 빛이 있다. 그 빛은 그의 속 안 깊숙한 곳에 있었다.
겉껍데기가 아무리 썩어들어가도 꺼지지 않는다.
오히려 겉이 무너지면 무너질수록 더 밝은 자태를 드러낸다.
상현은 이게 뭔지는 모른다.
그저 추측할 뿐이다. 그가 갖고 있는 그림자의 대척점에 있는 무언가라고.
막상 주혁 본인은 자신의 성장 배경이 또 다른 색깔의 그림자라 여기는 듯했으나.
이렇게 빛나는 그림자는 없을 것이다.
‘금수저 자식…….’
상현은 피식 웃으며 주혁이 열심히 팻말을 드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다음 상품에서 주혁은 490이 아닌 450에서 멈춰 버렸다.
상대는 예상치도 못한 모양.
“460! 460 아무도 없습니까!? 없다면 92번에게 넘어갑니다!”
진행자가 초읽기를 들어가자, 92번은 그게 마치 사형 선고 카운트다운이라도 되는 듯한 표정이 된다.
“……2, 1! 축하합니다! 92번!”
두둥.
스크린에 비춘 표정이 아주 보기 좋게 익어 있다.
-두 놈 다운 ㅋㅋㅋㅋ
-캬 ㅋㅋㅋ
-오졌다 ㅋㅋㅋ
이후 경매의 흐름은 완전히 주혁이 지배해 버렸다.
데협 몇이 덤비든 어떤 타이밍에 빠지려고 수를 쓰든 간에.
데협들에겐 딱 두 가지 결과만이 존재했다.
아무 피해도 안 되는 선에서 지레 겁먹고 내빼거나, 자신이 큰 피해를 입고 떨어져 나가거나.
그렇다.
주혁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낙찰에서 벗어나면서 그들을 전부 농락해 낸 것이다.
“아! 축하합니다 92번! 또 낙찰!”
“축하합니다! 31번! 낙찰!”
“이야! 달리시네요! 31번 재낙찰!”
-엌ㅋㅋㅋㅋㅋㅋ
-다들 ㅈ망했네
-100포도 아까운 걸 죄다 4-500포에 ㅅㅂㅋㅋㅋㅋ
-어쩜 좋누 ㅠㅠ ㅋㅋㅋㅋ
-이게 아성!? 이게 아성!? 이게 아성!?
-호두두두두두두두!(기관총 쏘는 소리)
-캬 참교육ㅋㅋㅋㅋㅋ
-이게 경매여 사랑의 매여~
결국 데협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 작전 회의가 필요한 모양이다.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4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