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경매(3)
“야. 나와봐.”
데협들이 모두 경매장에서 잠시 나와 화장실 근처에 모인다.
“하아. 이거 어쩌냐?”
“제대로 피해 입힌 게 있긴 하냐?”
주혁에게 참패했으니, 몇몇 데협들의 입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아…… 내 포인트…….”
작전은 단체로 하지만, 손해는 개인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걱정 마.”
그들 중 리더로 보이는 자가 위로를 건넨다.
“많이 잃긴 했지만 어쨌든 우린 합쳐서 아직 5,000포인트 넘게 갖고 있어.”
그렇다. 아직 희망을 잃긴 일렀다.
이 경매에선 공동 입찰이 가능했다.
데협들 하나하나는 포인트가 별로 없었으나, 뭉치면 꽤 됐다.
일단 머릿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으니까.
500포인트씩만 있어도 10명이면 바로 5천인데.
이쪽은 머릿수가 무려 25명이다.
“아몬드도 포인트를 하나도 안 쓴 건 아냐. 아몬드 전체 포인트를 5,000 밑으로 내리고, 우리 5,000선을 사수하면 승산이 있다고.”
승률은 분명히 존재했다.
“승산은 무슨…… 월드컵 16강 진출급 확률인데.”
누가 볼멘 소리로 투덜댄다.
“그렇다고 안 할 거냐!? 그리고 어떻게 그거랑 비교해? 그건 매번 다른 사람 손에 달려 있고, 이건 우리만 잘하면 된다고!”
데협들이 끄덕인다.
“그래, 그거보단 낫지.”
“암. 그렇고말고.”
“갑자기 존나 할 만해 보이는데?”
이들에게 있어서 ‘데미안’은 확률이 떨어진다고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발악이라도 해봐야 하는 것이다.
“자. 봐. 지금 아몬드가 우릴 경매품으로 유혹하고 치고 빠지기로 엿먹였잖아?”
“그렇지.”
“하지만 아몬드도 사고 싶은 게 있을 텐데. 경매품을 전부 포기할 일은 없어. 이제부턴 구미가 당겨 보이는 경매에만 참여하자.”
“뭐? 그걸 어떻게 아는데? 뭘 당겨 하는지.”
이에 리더는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 자식 방송 중이잖아.”
* * *
“자, 이번엔 특별한 상품이죠? 폴리스 사에서 특별히 이번 경매에 제공한 퍼스트 에디션!”
촤락!
물건을 감싸고 있던 천막을 걷으며, 사회자가 외쳤다.
“사율 조합 유명하죠?! 사나와 율의 합동 공격 장면을 묘사한 액션 피규어입니다!”
한정판인 리미티드 에디션까진 아니어도 퍼스트 에디션이면 소장 가치는 충분했다.
나중에 양산형으로 나올 시제품과 뭔가 다른 점이 있으니까.
거기에 액션 피규어라고 하면 움직이는 피규어를 말하는데.
취향에 따라 다르기야 하겠으나, 상현 같은 초보 콜렉터들의 눈이 돌아가게 하는 데에는 이렇게 움직여대는 것만 한 게 없었다.
더군다나 전자식이어서, 버튼을 누르면 알아서 움직이는 식.
지이이이잉.
치킹.
‘오.’
상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특히나 그는 사율 조합으로 큰 승리를 거둔 경험이 있었기에, 이건 사도 좋겠다 싶다.
툭. 툭.
그는 주혁을 건드리며 속삭였다.
“이거야. 이거.”
“……아. 이게 갖고 싶다고?”
“응.”
주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자.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퍼스트 에디션이니까. 200포인트. 200포인트부터 시작합니다!”
척!
주혁이 누구보다 먼저 팻말을 들었다.
“자! 바로 100포인트 레이즈!”
역시나 데협들이 따라붙는다.
“92번! 100포인트 레이즈! 벌써 400입니다!”
“역시 리미티드 에디션 바로 100포인트 더 업! 500입니다!”
주혁은 500 이후로 이들이 따라올 수 없다고 여겼다.
그가 파악한 바로는 상위 1%를 제외한 개인 평균 자산은 700포인트 내외였다.
거기서 500 이상을 따라오는 건 너무 리스크가 컸고, 지금껏 데협들도 그런 식으로 플레이했다.
“600으로 올리며 따라붙습니다! 51번!”
“……?”
주혁은 뭔가 이상하다 느꼈다.
여기서 100을 한 번에 올리다니.
주혁은 시험 삼아 50포인트만 올려보는데.
“14번! 50포인트 레이즈! 650!”
“아! 그러나! 51번이 다시 100 레이즈! 750!”
또 100을?
이렇게 화끈하게?
‘보나마나 있지도 않을 텐데.’
51번 놈이 과연 750포인트가 있기나 할까?
여기서 그만둬 보면 바로 나올 텐데.
문제는 상현이 이걸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야. 이거 갖고 싶은 거 맞지?”
주혁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한 번 더 물었다. 그의 상식선에서 피규어 하나에 1천 포인트 근처로 올라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야 값비싼 전자 제품이 밖에서 1천 포인트 밑으로 팔고 있거든.
“응.”
상현은 고개를 끄덕인다.
딱히 천 포인트 이상 가도 문제 될 건 없다는 태도였다.
-데협쉑들 지독하네
-그냥 여기서 그만두면 안됨?ㅋㅋㅋ
-750이 있긴 한거냐???
채팅을 보던 도중.
주혁은 뭔가를 깨닫는다.
그들의 말에 힌트가 있었느냐 하면 그건 전혀 아니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힌트였다.
‘아.’
방송을 보고 있었던 거다.
주혁은 포인트를 10만 레이즈한 뒤, 상현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낸다.
[주혁: 나한테 더 이상 아깝다고 입찰하지 말고 버리라 해. 800 이상 안 쓴다고. 쟤네 방플 중이다.]
“아. 근데. 800 이상은 좀 아깝다. 이제 그만두자.”
“역시 그렇지?”
아니나 다를까, 매번 100을 레이즈하던 데협이 10으로 바뀐다.
“51번! 10포인트! 레이즈! 770입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주혁은 어느 정도 걸어볼 만하다고 느꼈다.
“그냥 마지막으로 레이즈하고, 또 올리면 다른 거 사자.”
“오케이~ 그러자. 오바다.”
10포인트만 더 올리는 주혁.
“14번! 780!”
이제 가격은 780포인트.
약간의 긴장감이 감돈다.
“780……! 있습니까!?”
진행자가 한 번 더 묻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5! 4! 3! 2! 1!”
띠링!
상현의 휴대폰으로 알림이 울린다.
“축하드립니다! 14번! 사율 조합 피규어 당첨되셨습니다!”
“오!”
상현은 기뻐하는 듯했으나.
주혁은 뭔가 탐탁지 않았다.
‘1천 포인트까지 가진 않았어도, 이거 기분이 좋진 않네.’
저들에게 당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방송을 생각 못 한 주혁의 패착이었다.
‘아무리 우리가 포인트가 많아도 저기서 연합해서 들어올 거고…….’
이쪽이 비록 훨씬 많은 포인트가 있지만, 저들도 머릿수로 연합하면 어떤 포인트가 나올지 모른다.
데미안을 아몬드가 못 가져간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지만, 주혁은 데미안에 2,000포인트 이상 쓰고 싶지 않았다.
데미안엔 최소한으로 쓰고, 좋은 물건들 많이 사 가는 게 당연히 좋지 않겠는가?
‘어쩐다…….’
주혁은 고민을 해본다.
방플.
방플이라…….
“!”
주혁에게 아주 간단한 묘수가 떠오른다.
* * *
“와. 씨…… 제대로 먹였다.”
“800포인트 가까이 소모했네? 좋아~”
데협들은 신나서 희희낙락이었다.
“방플 아이디어 오졌다.”
“그러니까. 어차피 아몬드가 갖고 싶은 건 무조건 방송서 먼저 언급 나올 수밖에 없어. 이거만 보면 된다.”
스트리머 입장에서 방송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들의 말이 맞긴 했다.
“아몬드가 갖고 싶은 거에만 들어가서 손해 주면 된다.”
“오케이.”
아몬드가 원하는 상품에만 들어간다는 전략이니, 다음 상품이 나와도 이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주혁이 입찰을 걸어도, 이들은 굳이 달려들지 않았다.
어차피 낚시라는 걸 아니까.
“야. 저 독한 놈. 우리 낚으려고 계속 던지네.”
“가만히 있어. 그냥. 어차피 사고 싶은 것도 아니잖아.”
데협들은 주혁의 미끼에 응하지 않았다.
그야 방송에서 대놓고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낚으려는데 쫄아서 안 덤비네]
모르는 척 저들이 겁먹었다고 매도하는 주혁.
“쫄긴 개뿔~”
데협들은 킬킬댄다.
[어. 나 저거 사야 되는데.]
아몬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번 상품을 사고 싶단다.
데협들 모두가 준비에 들어간다.
[이번엔 상한선 정하고 들어가자.]
주혁의 목소리였다.
상한선도 정해버린다는 말에, 데협들의 표정이 밝았다.
[한 1500포도 괜찮아 난.]
1,500포인트!?
[오. 그렇게 세게?]
[응. 이건 갖고 싶거든.]
[뭐. 그래. 포인트도 많은데. 갖고 싶은 데 써야지. 1,500 맥시멈 잡을게.]
데협들의 표정에 난색과 환희가 동시에 퍼졌다.
아몬드의 포인트 중 1,500포인트까지 뺄 수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야. 우리 개인이 1,500포 없잖아.”
문제는 이들이 1,500포인트가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개인으로는.
“공동 입찰해야지.”
그래서 이들은 여기서부터 공동 입찰로 들어가기로한다.
* * *
“자, 시작은 200포인트부터 가겠습니다!”
아몬드 쪽이 누구보다 빠르게 들어가 100포인트를 올렸다.
“아! 14번! 100포인트! 300!”
그러자 데협들이 달려들기 시작한다.
“들어가자.”
“오케이.”
그들은 거침없이 가격을 올리기 시작한다.
“400! 500! 600!”
적이 1,500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거리낄 게 없는 것.
결국 가격은 1천 포인트까지 넘어서버린다.
“1천 포인트!!! 지금 경매 시작 처음으로 천을 넘깁니다!”
웅성웅성.
경매 참여자들이 숙덕거렸다. 애초에 천 포인트가 넘어가면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제한적이니.
그건 데협들도 마찬가지였다.
“너랑 나랑. 들어가자.”
그래서 이제부턴 공동 입찰이다.
처억!
팻말이 서로 공유되며 같은 색으로 빛난다.
“오!? 공동 입찰입니까!? 43번과! 19번! 무려 1,100포인트!?”
1,100포인트까지 올린 데협들.
아몬드 쪽도 응수하며 100을 들어 올린다.
“14번! 달립니다! 1,200!!”
1,200 어마어마한 수치지만. 데협들도 망설이지 않았다.
“이번엔 내가 들어간다.”
공동 입찰에 한 명이 추가되면서 또 레이즈를 시작했다.
척!
3개의 팻말이 같은 빛으로 빛난다.
“이야! 이번엔 3명이 공동 입찰!? 1,300으로! 그럼 1,400 있습니까!?”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데협들.
이제 1,500이 거의 다와간다.
양쪽 모두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1,400! 있습니까!?”
아몬드 쪽에서 잠시 반응이 없다.
설마…… 데협들 사이에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데.
“카운트 다운…… 아! 14번! 따라옵니까!?”
아몬드 쪽이 팻말을 올렸다.
척!
“50! 50을 레이즈합니다! 1,350!”
휴.
아몬드 쪽에서 1,350으로 따라와 줬다.
저들도 이제 1,500 근처라 50씩 올릴 생각인 모양이다.
“1,400 있습니까?! 더 걸어보실 겁니까!?”
이제 1,500까지 100밖에 남지 않았다.
여기서 이만 빠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야. 어쩌냐. 1,400까지 갈까? 아니면 그냥 지금 나갈까?”
데협들은 불안에 휩싸여 서로에게 묻는다.
상대쪽에서 갑자기 빠질 수도 있으니.
“야. 1,500까지 생각한다던 애들이 여기서 갑자기 빠지겠냐?”
의견이 갈린다. 더 들어가라는 쪽과 이만 빠지자는 쪽.
“혹시 모르잖아. 우리 입장에선 겨우 100 차이인데. 안전하게 하는 게 좋지.”
“그래.”
들어가자는 쪽이 골머리를 앓는다.
“하 씨…….”
쿵! 쿵!
심장이 빠르게 뛴다.
“없으면! 카운트다운 들어갑니다! 5! 4…….”
곧 낙찰이다.
어떻게 할까. 한 발짝만 욕심을 낼까? 아니면 그만둘까?
더 기회가 없을 수도 있는데.
그때…….
[아. 제발 들어오지마라. 징글징글한 놈들…… 여기서 받자. 여기서만 받아도 아직 이득이다.]
방송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여기서 받고 싶어 한다.’
‘여기서 받으면 엄청 이득이라 생각하네?’
진행자의 카운트다운이 좁혀질 때.
“……3! 2!”
──처억!
데협들은 약속이나 한 듯 눈을 번뜩 뜨며 팻말을 들어 올렸다.
“오우! 공동 입찰! 50포인트 레이즈 합니다! 1,400!”
진행자가 14번을 보며 묻는다.
“1,450 있습니까!?”
아몬드 쪽의 팻말이 움직이지 않는다.
고민 중인가? 그럴 수 있지. 1,500 근처니까.
“자! 카운트다운 들어갑니다!”
다시 카운트다운이 들어간다.
“5!”
이때만 해도 10 정도 올리면서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데협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4!”
그런데, 슬슬 불안감이 생겼다.
“3!”
왜 계속 조용하다가, 정확히 그 타이밍에 저놈은 그런 혼잣말을 내뱉은 걸까?
“2!”
그리고 지금은 왜 저리 말이 없는가?
“아…….”
데협 중 누군가 탄식을 뱉는다.
“아니, 씨발 산다며!? 산다며! 1,500에!”
“미친 뭐야!?”
비명에 가까운 불만들이 터져 나왔으나.
시간은 공평하게 흘렀다.
“1!”
진행자의 카운트다운이 끝나 버린다.
“낙찰!!! 공동 입찰 첫 번째 낙찰입니다!”
이때 데협들 모두는 방송을 통해 들었다.
[푸훕……!]
웃음을 참지 못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아마 이 비웃음 때문이었을 거다.
얼마 후에 이런 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온 것은.
[진지) 분석有 아몬드 마지막 챌린지 부스에서 받은 포인트 이거 문제 있는데??]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4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