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억까 뒤집기(2)
시쳇말로 이왜진?
이 표현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어떤 세력의 간사한 권모술수인 줄 알았던 지아는 크게 당황한다.
“이게 다 진짜라니. 그럼 어떡해. 지금 아주 물어뜯으려고 벼르는데.”
벼뤄? 뭘?
주혁은 경매에 열중하느라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잠시 몇 분간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둘.
“아니. 광고는 왜 받은 건데.”
지아가 의구심에 묻는다. 정말 거래가 오간 건지.
아몬드라면 모를까, 왠지 주혁이는 그런 술수를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쓸데없이 룰을 다 지키는 타입은 아니니까.
“아…… 광고는 따로 진행된 거구나. 거래는 아니고.”
다행히 아니었다.
광고는 개별적으로 거래된 것이고, 게임에서 포인트를 많이 준 건 그만큼 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게 주혁의 주장이었다.
‘뒤에 주장이었다……가 붙으니 이렇게 신빙성이 없을 수가.’
그들의 최측근인 지아가 들어도 참으로 공교로운 상황.
이 논지로 커뮤니티 여론에 반박이 될까?
아몬드를 깎아내리기 위한 5분 대기조가 편성되어 있는 그곳에 먹힐까?
아마 전혀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근거들은 사실이고, 추론되는 결과만 거짓이야. 어려워 보여.’
거짓말을 잘하려면 진실과 교묘히 섞어서 말하라 했던가?
지금 커뮤니티의 선동 여론이 딱 그 말을 지키고 있다.
앞서 나온 근거들은 전부 팩트지만, 그걸 바탕으로 추론해서 도출한 결과는 거짓.
그러나 근거들이 모두 참이니, 결과도 참일 거라고 생각되기 쉬웠다.
“그럼 우리 어쩌지. 이거 해결되나. 빨리 진화하는 게 좋아 보여.”
수화기 너머 주혁은 잠시 고민하더니, 무어라 말한다.
“……아, 응. 그렇게. 알았어. 나도 준비해 볼게.”
여론을 한 번에 뒤집으려면 영상만큼 파급력이 있는 건 없으니까. 이번엔 지아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 * *
“하아.”
전화를 끊은 주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뒷좌석을 돌아본다.
“…….”
없다.
아까만 해도 서로 소리 지르고 싸우던 데협들이 지금은 말끔히 사라졌다.
어디로 갔지?
주혁은 급히 경매장 밖으로 나서 행사장을 둘러본다.
지스타에 마련된 라운지의 기다란 테이블.
그 머리를 둘러싸고 앉은 수많은 남성들이 보인다.
각자 노트북과 패드 휴대폰으로 열심히 뭔가를 두들기고 있다.
얼굴을 보니 아까 경매에서 붙은 놈들이 몇몇 확인된다.
‘저 자식들이구나.’
저들이 지금의 선동 세력이다.
아마 데협들이다.
‘참내.’
확 그냥 덮쳐서 컴퓨터를 부숴 버려?
마음 같아서는 물리력을 행사하고도 남는 분노였으나.
21세기 법치 사회에 당연히 그런 식으로 일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럼 법으로는 해결되나?’
아니다.
21세기 법치 사회에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의외로 몇 개 없었다.
억지로 붙잡고 늘어지면 뭐라도 건덕지가 나올 순 있겠다만, 이런 사소한 걸로 고소를 남발하고 다니면 사실상 제 얼굴에 침 뱉기이다.
심지어 처벌까지 걸리는 시간은 거의 영겁에 가깝다.
‘……어쩌란 거야.’
법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강제성을 띄는 해결책은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결국 여론전이지.’
어차피 유명인은 여론이 전부다.
제대로 된 법의 판결이 나온다 해도 여론이 안 좋으면 판사가 욕을 먹는 게 현실이니.
여론만 우리 편이라면 든든해진다.
‘일단은 증거부터 만들어놓고.’
주혁은 저 멀리 라운지에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데협들을 빤히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린다.
‘내가 갈 순 없어.’
저들은 주혁 얼굴을 알고 있다. 혹시나 이쪽과 시선이 마주친다면 뭔가 더 대비할 건덕지만 주는 셈이다.
저들이 얼굴을 모르는 누군가가 다가갈 필요가 있었다.
지금 마침 딱 그런 사람이 하나 있었다.
“본투비 님.”
“네?”
그는 신기한 눈으로 데미안을 구경하다가 휙 돌아본다.
음. 확실히 누군가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얼굴이 전혀 아니다.
“촬영 하나만 더 따죠.”
“옙!”
군말 없이 무조건 따르는 것도 마음에 든다.
주혁은 본투비의 어깨를 짚으며 어딘가를 가리킨다.
데협들이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테이블이다.
“줌 최대한 당겨서 내용이랑 사람들 얼굴 보이게, 대신 저 사람들은 눈치 못 채게 해주세요.”
“옙!”
누가 봐도 수상쩍은 듯한 오더에도 그냥 무조건 알았다고 하는 본투비.
왜 김치승이 S+ 랭크 달리기에 본투비를 데려왔는지 알 것 같았다.
* * *
본투비가 데협들의 공작질을 영상에 담는 동안, 주혁은 잠시 지스타 사무국으로 향했다.
“예? 음…… 정확한 포인트 내역을요?”
“네. 어느 부스에서 얼만큼 받았는지 저희도 모르고 있어서요.”
“음. 잠시만요?”
사무국 직원은 이런 요청은 딱히 받아본 적이 없는지 조금 당황한 느낌이었으나. 해주려고만 한다면야 간단하게 해결되는 요청이었다.
촤락.
프린트된 종이 하나를 건네는 직원.
“여기 있습니다. PDF로도 따로 드릴까요?”
“아. 네. 그래 주시면 감사합니다. 번호는 여기로…….”
잠시 후, 자동문을 열고 사무국을 나오는 주혁.
주혁의 입가엔 미소가 스쳤다.
‘내 예상대로네.’
방금 받아본 서류 결과에 따라 아몬드의 여론 돌리기가 많이 불리해질 수도 있었는데. 결과는 주혁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좋았다.
스륵.
그는 자료를 안전하게 서류 가방 안에 보관한 뒤, 이번엔 히트맨 시뮬레이터 부스 쪽으로 향했다.
‘이러면 가 볼 만하지.’
이 서류 내용에 따라 히트맨 부스에 가는 게 무의미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아니었다.
“저기요……?”
히트맨 시뮬레이터 부스는 딱히 굿즈를 파는 게 없는지, 사실상 거의 닫혀 있는 분위기였다.
어두컴컴한 와중 다행히 회의실의 조명이 켜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딜을 했던 과장과 그 밑의 직원들이 아직도 퇴근을 못 하고 대화 중이다. 아마 아몬드 때문일 것 같은데.
주혁은 조심스레 문을 두들긴다.
“실례합니다.”
“어? 매니저님?”
직원들 중 하나가 주혁의 얼굴을 알아봤다.
“아, 예. 바쁘신데 죄송하지만 인터뷰 하나만 딸 수 있을까요?”
“이…… 인터뷰요?”
두고 간 물건이나 있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인터뷰라니.
“네. 인터뷰요. 챌린지 포인트가 얼마나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그 기준에 대해서 말씀만 좀 부탁드립니다.”
“아…….”
초상집에 대고 죽은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다시 설명해 달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요청인지라, 잠시 직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크흠…… 그걸 무슨 인터뷰를 한다고 그러는거요?”
특히나 과장이 심기가 불편한지 헛기침을 한다.
이런 반응까진 예측하지 못했던 주혁.
‘그게 그렇게 뼈아팠나…….’
그는 조금 설명을 추가해야 한다고 느꼈다.
“지금 일각에선 저희끼리 청탁이 오고 갔다는 식으로 소문이 나고 있습니다.”
“예?”
직원들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뭔 청탁이요?”
“뭐 얻는 게 있어야 청탁이지. 참내.”
“우리가 뭐가 있다고 청탁을…….”
그들 입장에선 어이가 없는 소문이었다.
“아무래도 광고를 받은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하!?”
과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바람을 분다.
주혁은 웃으며 그들을 달랬다.
“괜찮습니다. 소문이 아직 대단한 규모까진 아니구요.”
사실 커뮤니티 쪽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현재 소문이 대단치 않다고 말하긴 힘들었는데. 주혁은 잠시만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한다.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니까.
“지금 해결하면 해결할 수 있어요. 그러려면 챌린지 포인트가 어떤 원리로 얼마나 지급된 건지 자료가 있으면 훨씬 좋습니다. 어차피 저희 이제 한배를 탄 것 아닙니까? 아몬드 이미지가 곧 이 회사 이미지잖아요.”
사실 계약서 내용만 따져보면 모델이 이미지에 심각한 훼손을 당하면 모델 쪽에서 위약금을 물어야 하니까 ‘한배를 탔다’고까진 말할 수 없으나.
주혁은 지금 회사와 아몬드가 한배를 탔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여기 있는 직원들과 아몬드가 한배를 탔다는 것이다.
아몬드 모델 계약은 이들이 추진한 것이니까.
아몬드가 이미지 훼손되어 또 모델 고용이 미뤄지게 되면 이들도 대표로부터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아마 회사 생활 오래 해본 자들이라 말귀를 알아들을 터.
“뭐…….”
탁. 탁.
과장은 책상 상판에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튕기더니.
“……해봅시다. 그럼 인터뷰.”
“이야. 감사합니다.”
주혁은 씩 웃으며 휴대폰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시켰다.
“그럼…….”
* * *
잠시 후.
지아에게 2개의 영상이 전달된다.
[히트맨 챌린지 포인트 원리]
[데협들 라운지 작업]
주혁은 메시지로 추가 설명을 붙였다.
[주혁: 위에 건 제목 보면 뭔지 알 거고, 밑에 건 데협들이 지금 여기 지스타 라운지에서 노트북으로 여론 선동하는 글 작성하는 모습이야.]
이럴 수가. 그 장면을 정말 직접 따 왔다니.
아무리 그래도 남들이 보기엔 그냥 모여서 노트북이나 두들기는 모습일 텐데.
“열심이긴 한데. 의미가 있으려나.”
그녀는 별 기대 없이 영상을 열었다가, 깜짝 놀라고 만다.
“그냥 폰 카메라로 딴 게 아니구나.”
본투비가 전문 카메라로 줌을 있는 대로 당겨서 잡은 장면이었다.
화질과 선명도 면에서 압도적이다.
그 말은 데협들이 실제로 작성하고 있는 글이 보인다는 말이다.
심지어 이건 영상이기 때문에 그들이 한 글을 작성하고 또 다른 글도 작성하는 식으로 의도적인 선동을 하고 있다는 것까지 포착됐다.
여기에 주혁이 경매장에서 찍은 사진을 추가 자료로 보내줬는데.
‘……!’
방금 라운지에서 노트북을 치는 자들과 같은 자들이 아몬드와 경매를 벌이고 있었다.
지아는 얼른 첫 번째 자료도 클릭해 본다.
히트맨 직원과의 인터뷰였다.
[……일단 난이도에 따라 포인트가 다릅니다. 아몬드 님은 최상 난이도인 정예 요원 난이도로 책정이 됐구요. 거기서부터 이미 포인트 포텐이 높았던 겁니다. 굉장히 어렵…….]
아몬드가 어떻게 포인트를 얻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애초에 회사랑 청탁했다고 의심받는 중인데. 회사랑 인터뷰한 게 무슨 소용이지.”
인터뷰 주체가 공범으로 지목된 사람이라는 거다.
“음…….”
이러는 동안에도 커뮤니티에선 관련 글에 점점 추천이 불어나면서 관심이 모이고 있었다.
[오늘의 화제글]
3위) 분석有 아몬드 마지막 챌린지 부스에서 받은 포인트 이거 문제 있는데??
이 글이 커뮤니가든의 전체 카테고리 이슈글 3위까지 치고 올라간 모습.
전체 카테고리에서 이슈글이 되는 건 다른 개별 가든에서 이슈글이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파급력이었다.
얼른 영상을 만들어 올리지 않으면 때를 놓칠 것 같았다.
“으…….”
지아는 머리를 싸맸다.
어떻게 버무려야 이게 설득력이 있어 보일까?
그녀는 일단 노트를 찢어 콘티를 짜보기 시작한다.
* * *
몇 시간 후.
모든 아몬드 채널의 구독자들에게 알림이 울렸다.
띠링!
[채널 ‘아몬드’에서 새로운 영상 업로드]
[너무 잘해서 버그로 의심받은 챌린지 영상]
영상 제목으로만 봐선 딱히 현 사태에 대한 해명 영상이라기보단, 아몬드의 요원 슈퍼플레이를 자랑하는 듯한 영상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는 지아가 의도한 것이다.
해명을 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 했다.
해명 영상처럼 안 보인다고 하더라도, 현재 아몬드 채널에 대한 관심이 워낙 뜨겁기에 입소문이 퍼져 나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속보) 아몬드 영상 올림 ㅋㅋㅋㅋ]
[와 아몬드 벌써 올렸네 ㄷㄷ 일부러 먼저 올렸나봄]
[영상 올라옴 ㅋㅋㅋ 근데 최초공개]
[너무 잘해서 버그로 의심 << 본인이 말하니 ㅋㅋㅋ 개웃기네 ㅋㅋ 어디 보자 한번]
[이 악물고 버그로 의심 ㅇㅈㄹ 청탁이면서 ㅋㅋ]
영상은 곧바로 재생되진 않고, 최초공개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1시간 후 최초 공개!]
이는 먼저 관심을 모으고 하나 더 터뜨릴 타이밍을 조절하기 위해서였다.
-ㅈ초공개 ㅅㅂㅜㅜ
-캬 악랄하다! 아몬드!
-이 자식 일부러 알고 시간 끄는 거 아님??ㅋㅋㅋ
-제목 보니까 대충 사태 아는거 아님?
-간만에 최초공개네 다같이 채팅치면서 보면 개꿀잼각 ㅋㅋㅋㅋ
-억까들 개같이 멸망 1시간 전!
-좃버그냐 좋버그냐 갈림길 ㅋㅋㅋ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4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