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2부-304화 (584/699)

19. 최고의 파트너(4)

운전해 다시 서울로 향하는 중.

별말 없이 내비나 쳐다보던 주혁이 뭔가를 깨닫고 백미러를 향해 묻는다.

“아. 근데 차는 어떡하냐? 아성역까지 다시 지하철 타?”

술 마시려면 차를 두고 오는 게 맞았다.

“아성역?”

백미러 안의 상현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어. 치맥 먹자며.”

“넌 무슨 치킨집이 거기뿐이냐.”

“엥……?”

거기 가는 거 아니었어? 거기서 팬 미팅도 하고 회식도 하고 다 했는데.

“주차는 원래 하던 데다가 하면 돼. 그 근처에 찾아놨어.”

“찾아놨다고?”

신입 사원 시절에도 어디 출장 가서 맛집 좀 찾아보라 하면 항상 똥손으로 거론되던 게 유상현.

당시 과장님은 상현이 부장 될 때까지 맛집 고르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었지.

“맛없는 거 아냐?”

그러니 주혁이 이런 걱정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상현은 피식 웃을 뿐 별다른 대답은 없었다.

* * *

이후 차 안에서는 별일이 없었다.

상현은 아직 피곤이 남아 있었는지 잠을 청했고, 주혁도 그냥 음악이나 크게 틀어놓은 채로 운전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동네에 도착한다.

이제 집 앞에 주차할 일만 남았다. 아니, 집 앞이라지만 실상은 지옥 같은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만 집이다.

이놈의 달동네는 차를 끌고 집 앞까지 갈 수 없었다.

대신 매달 돈을 내고 쓰는 동네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워야 했다.

“다 왔다.”

차를 세운 주혁이 문을 열며 낑낑거리며 나온다.

“아우. 차는 계속 커지는데. 이놈의 주차 칸은 왜 늘리질 않냐.”

텅.

주혁이 문을 닫고는 승질을 낸다.

어떻게 된 게 차만 2030년이고 주차 칸은 90년대다.

“바로 가자.”

언제 빠져나온 건지 상현이 이미 치킨집으로 앞장서려 한다.

“어? 야. 캐리어는 어떡하냐?”

“그건 그냥 내일 옮겨.”

“아…… 그래도 먼저 옮겨놓고 갈까?”

“빨리 가자. 곧 닫아.”

“아으…… 그래! 가자!”

일을 미루는 걸 싫어하는 주혁조차도 오늘 이 캐리어를 들고 저 지옥 계단을 올라간다는 건 무리였다.

어차피 한 일주일 정도는 방치해도 아무 문제 없는 짐들뿐이니, 그냥 두고 가기로 한다.

* * *

후아.

하얀 입김을 뿜으며 걸어가는 길.

상현은 양손을 두툼한 코트 주머니에 꽂아 넣으며 고개를 숙였다.

안 그런 척했으나, 그는 지금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뭐라고 얘기해야 자존심이 안 상하지.’

주혁에게 계속 같이 함께하자고 얘기해야 하는데.

이게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될 수도 있었다.

해결은커녕 악화될 수도 있다.

그는 동정심을 증오심만큼 싫어한다.

이 제안이 동정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끝난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음…… 그런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지나간다?

상현도 이 옵션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만, 마음이 내키진 않았다.

뭔가 해결을 짓고 가긴 해야 했다.

‘그럼 어떻게 말할 건데?’

난 네가 일을 잘해준다고 생각한다? 이 말도 사실 이미 상현의 입을 통해서 나가는 순간 주혁이 마음대로 생각해 버릴 수 있다.

‘어렵네.’

평소 안 하던 일을 하려니 상현은 골머리가 썩었다.

그러던 중 이미 치킨집 앞이다.

허름한 간판의 노포였다.

치킨집의 주변을 살핀 주혁이 되물었다.

“야. 여기 평점 괜찮냐? 나 치킨 까다로운데. 치믈리에야, 치믈리에.”

치믈리에는 무슨. 닭고기라면 청소기처럼 다 먹어버리는 주제에.

상현은 그런 속마음을 삼키고, 턱을 긁적인다.

“어…… 평점?”

평점이 괜찮던가? 사실 생각해 보지 않았다.

여긴 어릴 때부터 오던 곳이니, 그런 걸 볼 필요가 없었다.

“평점은 모르겠고. 나 어렸을 땐 자주 왔어. 맛있는 곳이야.”

“근데 왜 난 처음 오냐…….”

그러게. 왜 주혁이랑은 온 적이 없을까.

상현은 미처 생각하지 않고 있던 이유를 찾아봤다.

“……아마 할머니랑 자주 오던 곳이라 그럴 거야. 주인분이 나 보면 할머니 찾으시거든.”

“아…….”

할머니와의 연결고리가 너무 많은 곳이라, 오히려 피하게 된 것이다.

비단 할머니뿐이 아니었다.

‘어렸을 땐 소연이하고도 많이 왔었지.’

어떤 날엔 소연이도 와서 함께 할머니가 사 주시는 치킨을 얻어먹기도 했다.

상현은 할머니에게 소연이한테 치킨 사 주는 게 돈이 아깝다며 괜히 투덜대곤 했었다.

그때마다 할머니에게 친구랑 이런 것도 못 나눠 먹는 심보로 어떻게 사느냐며 엄청나게 혼났는데.

상현이 투덜댔던 건 사실 더 근사한 걸 같이 먹지 못하는 게 창피했던 탓이다.

“어쨌든 들어가자.”

간만에 들어가는 터라, 상현도 심장이 조금 두근댔다.

어린 시절 그는 여기 분위기를 좋아했었다. 사람들이 다 즐거워 보였고, 축구라도 하는 날엔 떠들썩하기 짝이 없었다.

“어……? 사, 상현이? 상현이 맞지!!”

입구에 들어서자 주방에 있던 사장님이 바로 알아본다.

“아이고. 야, 야. 그간 얼굴 보기 힘들더만. 뉴스에서 뵈이더라? 니 잘돼갖고~ 뉴스도 나온다고. 우리 딸도 그리 좋아하지 않드나?”

치킨집 아주머니 딸은 상현보다는 나이가 좀 많다.

사장님은 그 외에 더 말을 하시진 않았다.

“……아하하. 감사합니다.”

“하이고. 여튼 여 얼른 앉으라. 치킨은 후라이드?”

“예. 거기에 생맥주 두 잔만 주세요.”

“그려.”

간만에 보니 반갑긴 하다.

그간 왜 안왔는지 스스로 궁금해질 정도로.

‘아.’

상현은 그러던 중, 주혁에게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깨달았다.

* * *

쿵.

커다란 잔에 생맥주 두 잔이 나왔다.

주혁은 잠시 안경을 고쳐 쓰며 맥주를 살폈다.

옛날 사람들이 하는 곳이 맥주가 맛있긴 힘들기 때문이다.

‘물 탄 맛 안 나려나.’

조금 미심쩍은 얼굴로 맥주를 들이켜는 주혁.

그의 눈이 부릅떠진다.

“오……!”

맛있었다.

“……마, 맛있네.”

“그치? 여튼 계약 따준 거 고맙다.”

상현이 맥주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 그래. 그게 어디 뭐 나 혼자 한 건가. 하하!”

술이 들어가니 기분이 조금 좋아진 주혁이 잔을 부딪힌다.

짠.

둘은 그대로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한다.

“크으~”

“으. 좋네.”

이어서 종이 호일이 깔린 바구니 같은 것에 치킨이 나왔다.

옛날식으로 통으로 튀기는 형태다.

주인 아주머니가 둘의 잔을 보더니 묻는다.

“여있다. 맥주 더 줄까~? 오늘 뭔 좋은 일 있나 보네~”

“아, 예. 한 잔씩 더 주십시요!”

주혁이 깍듯하게 말하자 주인아주머니가 꺄르르 웃는다.

“총각이 아주 잘생기고 씩씩하네. 우리 딸하고 아주 딱~ 맞겠네.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상현이랑 동갑인가?”

상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해 준다.

“세 살 많아요.”

“에? 아이고 우리 딸이랑 동갑! 천생연분이네!”

갑자기 선 보는 분위기에 주혁은 당황하여 눈알을 굴렸다.

“아……하하하! 과분합니다!”

반면 아주머니는 그냥 이미 주방으로 들어가 버린 뒤다.

“신경 쓰지 마. 그냥 입버릇이셔.”

“아, 아…… 그렇지.”

“어.”

상현이 치킨을 가리킨다.

“이거나 먹자.”

둘은 다리를 뜯어서 한 입씩 먹는다.

바삭한 튀김옷이 잔뜩 감칠맛을 머금고 혓바닥 위로 침투한다.

잠시 방심하고 있자면, 촉촉한 닭고기 살이 육즙을 터뜨리며 해일을 일으켰다.

“하아.”

뜨거워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주혁은 한 입을 얼른 더 먹는다.

바삭.

첫 만남은 바삭하지만, 곧바로 쫀득하게 늘어지다가 기어코 부드러운 살코기를 내주는 이 아름다운 영화적 시퀀스가 다시 이어진다.

바삭!

주혁은 아무런 말도 없이 또, 또 한 입씩을 베어물어 결국 다리를 다 먹어버렸다.

‘뭐야. 맛있잖아?’

지스타에서 잔뜩 구르고 와서인지 뭔지. 더럽게 맛있었다.

앞을 보니 상현이 자랑스럽다는 듯 웃고 있다.

어떠냐? 내 치킨집이?

……라고 묻는 듯한 느낌.

묘하게 패배한 느낌에 주혁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여기를 어떻게 여태 안 왔냐…….”

할머니와 오던 곳이라 불편하면 영원히 오지 말 것이지. 왜 이제 와서 나한테 이런 곳을 가르쳐 주냐는 불만.

그에 상현이 껄껄 웃었다.

“너무 친근하면 오히려 불편한 경우도 있잖아.”

“……그건 그렇지. 근데 오늘은 왜 왔어?”

“그런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어. 친하다고 오히려 멀리하다니. 이렇게 맛있는데.”

“그래. 이렇게 맛있는데.”

그 말과 함께 주혁이 다시 다른 한 조각을 뜯어냈다.

“그러니까. 너도 마찬가지야.”

“……?”

치킨을 먹던 주혁이 갑자기 눈을 껌뻑인다.

“친하다고 멀리할 게 아니라, 난 계속 너랑 가는 게 맞는 거 같더라고.”

“!”

갑작스러운 주제 변경에 주혁이 놀랐다.

“그럼 같이 가야지. 배신이라도 하려 했냐?”

그는 농담을 던지면서 애써 모른 척해 보지만 소용없었다.

“어떤 멍청한 놈이 자기랑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같이한다고 생각하니까.”

상현은 계속 물고 늘어졌다.

“때론 친해서 오히려 같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잖아.”

주혁의 얼굴이 벌게졌다.

여기까지 들어보니 깨달았다.

다 알고 있었구나.

내가 알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구나.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친해서 같이하는 경우가 더 많다.”

상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친해서 하는 경우 친해서 못 하는 경우. 둘 다 있어. 그 말은 뭔지 알아?”

“……?”

“친한 것과 일을 같이하는 건 사실 별 상관이 없다는 거야. 그냥 네가 일을 잘해서 같이하고 네가 일을 못 하면 같이 못 하는 거야.”

주혁이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한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

다른 사람들?

상현은 주혁이 이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신경을 꽤나 많이 쓰는 타입이니까.

“여기 평점이 몇인 줄 알아?”

상현이 치킨을 가리킨다.

“모르지.”

“3.9점이야.”

“……그래?”

이 맛이 3.9라니.

“이 옛날 통닭 방식이 취향에 안맞는 사람들도 꽤 있는 거지. 리뷰이벤트 같은 것도 안 하시고.”

“아…….”

아마 이유는 후자일 거라고 주혁은 내심 생각해 버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킨을 바라보면서.

“만약 네가 아성에 계속 있었다면 네 평점은 몇일 거 같아? 왜, 그 있잖아. 요즘 데이팅 앱 같은 데서 평점 매겨놓는 거. 연봉이니 나이니, 외모니 다 판단해서.”

주혁은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스스로 말하기 낯뜨거운 대답이다.

“그야…… 꽤 높겠지.”

“아마 거의 만점이겠지. 금수저에 키도 크고 외모 준수, 엘리트 코스를 밟고 대기업에서도 인정받는.”

주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갑작스러운 칭찬 공세(?)에 뭔 말을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근데 아성 왜 나왔어? 왜 만점의 인생을 포기하고 나왔냐고.”

만점 인생?

데이팅 앱 만점이?

주혁이 황당한 듯 외친다.

“아니, 데이팅 앱 만점 같은 게 인생이랑 뭔 상관인데!?”

“그래. 그런 거야.”

정말 예상치도 못하게 상현은 다시 본론으로 들어간다.

“우리와 별 관계도 없는 남들이 우릴 보는 시선은 사실 데이팅 앱 평점 같은 거야. 그냥 껍데기.”

“……!”

“누군가 보기엔 내가 친분에 휘둘려서 너랑 일한다고 비춰질 수 있지. 근데 어쩌라고? 사실은 다르잖아?”

상현의 눈이 꼭 과녁을 조준할 때처럼 올곧게, 지긋이 주혁을 바라보았다.

그의 심장 어디 한가운데를 쏠 작정인 듯.

“넌 뛰어난 사람이야. 아성에서 너랑 조금이라도 일해본 모두가 다 알아. 널 싫어하는 사람도 네 능력은 인정했었어.”

상현의 눈은 여전히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어느 누가 봐도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지 못할 것이다.

“너와 일해본 누구도 네가 단순한 매니저라고 생각 안 해. 내 눈엔 이미 넌 매니지먼트의 대표야. 네가 대표처럼 일하고, 대표처럼 생각하니까. 단지 법인을 세웠다는 서류 쪼가리가 없을 뿐이지. 껍데기만 없을 뿐이지 알맹이는 이미 대표라고.”

빛은 액체를 통과할 때 왜곡된다.

아마 그래서 주혁의 눈이 크게 흔들린 것이다.

“……그러니까. 난 이미 큰 회사랑 일하고 있는 거야. 다른 데로 갈 필요 없어.”

상현은 무안한지 씩 웃어 보였다.

“아. 이거 말하면 네가 더 좋은 곳으로 갈까 봐 말 안 하려 했는데.”

주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말이라는 껍데기로 이 순간을 덮어놓을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의 생각은, 알맹이는 주혁에게 온전히 전달됐다.

그의 말대로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모두란 게 비록 너와 나뿐이라도.

너와 나뿐인 이 세계의 모두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다른 데로 가면 이 정도는 아닐걸. 우린 합이 잘 맞잖아.”

우리 둘이 최고의 파트너란 걸.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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