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2부-317화 (597/699)

24. 인터뷰의 악마(2)

유럽권에서 역사적으로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는 ‘유명무실’의 대표적인 밈이라고 한다.

이름을 무적함대로 짓는 바람에 유명해진 것이지, 실제 무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심지어는 스페인조차 무적함대로 이름을 지을 때, 상대적으로 약한 자신들의 해군력을 오히려 더 내세워 육군에게 쏠리는 경계를 풀기 위함이었다는 말까지 있다.

물론 이웃 나라끼리 서로를 존경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유럽권에서 무적함대를 까내리는 건 우리나라에서 일본을 왜구, 일본이 우리나라를 조센징이라 부른 것만큼이나 일상이었는데.

설마하니 전혀 상관도 없는 비유럽권,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가 이런 발언을 할 줄은 몰랐다.

“조선에게 프랑크는 에스파냐의 무적함대 같은 거였습니다.”

비유럽권 지역은 이 무적함대가 정말 무적이었지만 가까스로 마지막에 영국에 격파된 걸로 알고 있었다.

아몬드가 조롱하기 전엔!

“이름만 무적이라는 거죠.”

단 두 문장으로 과거의 적과 미래의 적을 박살 내는 아몬드의 인터뷰 실력에, 리포터는 깜짝 놀라고 만다.

“아……! 저, 정말 그렇네요! 실제로 무적함대는 무적인 걸 증명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저도 들었거든요?!”

-엌ㅋㅋㅋㅋㅋㅋ

-ㄹㅇ맞긴함

-유적함대 ㅋㅋㅋ

-애초에 배로 처박아서 백병전이 셌던거임

-미쳤낰ㅋㅋ

-스페인 놈들 인터뷰 보고 행복사하겠네

-이건 프랑스 애들이 더 화가날듯ㅋㅋㅋㅋㅋㅋ

아몬드는 의도치 않았으나, 국가대항전의 오래된 전통을 부활시키는 신호탄을 쐈다.

-이게 국가대항전 인터뷰지~

-간만에 트래쉬 토킹 가냐?ㅋㅋㅋ

-아가리 싸움ㅋㅋㅋㅋ 다시 생기는거 아냐?

국가 대항전은 아무래도 국가의 과거 문명을 모티브로 만든 종족으로 싸우는 게임이다 보니.

이런 식의 도발과 조롱이 꽤 많았는데.

한때 무슨 말만 하면 민감하게 반응하던 시기가 있었던 터라, 꽤나 사그라들었었다.

그러나, 게이머들은 그리워하고 있었다.

-개꿀잼

-스페인도 한마디 하겠누 ㅋㅋ

-캬 이거지

스포츠에서 서로 갈등 관계가 생기면 그보다도 더 재밌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약간의 트래쉬 토킹은 모든 영역 스포츠 전반에 걸친 문화가 된 것인데.

아몬드는 물론 이런 문화에 대해 정확히 알진 못했다.

그냥 생각대로 말해버린 것이다…….

리포터는 다시 마이크를 들이댄다.

“아몬드 선수. 프랑크의 상성과 강력함은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그리고 스페인도 별거 아니다! 이렇게 말씀해 주신 거 같은데요? 그럼 혹시 어디가 어려운 상대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프랑크도 별거 아니야.

스페인도 무적 아니야.

그럼 로마일까?

“몽골 같습니다.”

아니었다. 몽골이었다.

“몽골…… 이요?”

그건 우리 조가 아니잖아?

같은 조 안의 최대 위협 문명을 물어본 게 의도였던 리포터는 조금 당황했다.

-엥?

-우리 조도 아닌데?

-????

-우승하겠단 마인드 ㅋㅋㅋㅋ

-이거 로마를 욕한 거임? 프랑크를 욕한 거임? 에스파냐를 욕한 거임? 진짜 모름

-ㅁㅊㅋㅋㅋㅋ

-“예측할 수 없게 움직여라”

-리포터: (살려줘)

시청자들은 아몬드의 대답이 엉뚱하다고 놀렸으나, 리포터는 내심 놀라버렸다.

‘애초에 보통 조별도 통과 못 하잖아.’

몽골을 위협으로 꼽는다는 말은, 이 조를 통과해서 올라간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간 조선에게 늘 국가 대항전은 이 조별 예선이 전부였다.

이 네 개의 나라로 이뤄진 조가 조선에겐 전 세계였다.

그렇기에 리포터도 굳이 ‘이 조에서’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은 거다.

그런데, 지금 아몬드는 훨씬 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허세나 과시가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그 위를 바라보고 있다.

리포터는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몽골이라면…… 왜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몽골이 위협인 이유야 뻔하다.

국가 대항전 및 각종 대회 최다 우승 문명이며, 전 세계적 역사로 봤을 때도 전투력 하나만큼은 당대 최고를 달렸다.

그러나, 리포터는 그런 뻔한 대답이 아니라, 아몬드의 관점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다.

흥미가 생긴 것이다.

이 야망이 넘치는 청년에게…….

“음…… 우승도 많이 했고…… 제일 세다고 들었는데…….”

“?”

응?

세다고…… 들어?

리포터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뭔가 대단한 포부가 있어서 고른 게 아니라, 그냥 누구한테 들은 걸 고른 거야?

-ㅋㅋㅋㅋ “쿠키가……”

-놀랍게도 아몬드는 이 게임 뉴비다

-얘가 뭘 잘 알 리가 없긴함ㅋㅋㅋㅋ

리포터는 크게 당황했다.

“크, 크흠. 알겠습니다. 인터뷰 너무 감사합니다!”

후다닥.

도망치듯 물러난 리포터.

왠지 모르게 급작스레 마무리된 것 같은 인터뷰다.

그러나 아몬드는 만족스러웠다.

‘나 점점 말 잘해지는 거 아냐?’

자신의 언변이 점점 뛰어나지고 있는 것 같다며 으쓱해할 정도로.

* * *

한편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던 중계 테이블.

“이야. 아몬드 님. 말은 많이 안 하시는데 한 방 한 방이 센데요?”

캐스터가 웃으며 입을 뗀다.

킹귤도 맞장구친다.

“저는 아몬드 님 혀에도 집중 팩션을 바른 줄 알았어요! 한 방 한 방 차징해서 쏘는 게 장난 아닙니다!”

-혀에 집중ㅋㅋㅋㅋ

-ㅁㅊㅋㅋㅋㅋ

-ㄹㅇㅋㅋㅋ

-다른 나라가 인터뷰 보면 개빡칠듯ㅋㅋㅋㅋㅋㅋ

-비자발적 트래시 토크 장인

“이런 거 하나하나가 다 심리전이고! 신경전이죠! 좋습니다! 이게 스포츠거든요?”

-??

-스포츠 정신 어디?

-뭐가 대체 스포츠임ㅋㅋㅋ

-이게 힙합이라고 하는게 더 맞는듯ㅋㅋ

MVP 인터뷰까지 끝났으니, 이제 중계방송도 슬슬 마무리 단계였다.

“예! 그럼 저희는 오늘 프랑스와 대한민국의 경기. 대한민국이 1승을 거두면서 산뜻하게 시작했다는 것을 시청자 여러분께 알려드리면서 방송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아!”

“또 뵙겠습니다!”

* * *

스르륵.

캡슐이 열리며 상현이 상체를 일으킨다.

“이야!”

짝짝짝.

주혁이 기다렸다는 듯이 박수를 맞았다.

“MVP! 축하한다! 어?!”

그는 상현의 등을 툭 치며 축하를 건넸다. 상현은 싱긋 웃으며 캡슐 밖으로 나온다. 이겨서 기분이 좋은가 했더니, 하는 말이 희한하다.

“야. 나 이번에 인터뷰도 좀 잘한 거 같지 않냐?”

“어 그래. 마지막에 기사 쏘는…… 뭐?”

인터뷰?

아니. 그건 안 하는 게 낫겠던데?

“너 지금 뭔…….”

아니지.

주혁은 말을 멈춘다.

지금 하지 말라 하면 상현의 성격상 오히려 더 하려고 할 수도 있었다.

마음 같아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며 쏘아붙이고 싶지만, 일단 잘 둘러대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아. 이, 인터뷰. 난 또 뭐라고. 하하. 잘했지. ‘원래 잘하잖아?’ 원래.”

“반응 좀 봐야지~”

상현은 어차피 듣고 있지 않았다.

싱글벙글 웃으며 엠불 커뮤니티로 향한다.

아마 자신의 인터뷰 칭찬을 듣길 바라는 듯했다.

‘어이. 그 앞은 지옥이다.’

주혁은 말리고 싶었다.

그런데 저 손안에 들린 작은 휴대폰을 어떻게 갑자기 뺏는단 말인가?

‘하여간 뭐 특출나게 잘하는 놈들은 어디 나사 하나가 빠져 있어…….’

상현은 보면서 느끼는 게, 인간을 만들 때 밸런스 수치라는 게 있는 것 같았다.

뭐 하날 기똥차게 잘하면, 뭐 하나에선 똥볼을 찬다.

예를 들어 상현은 자기가 멀쩡히 잘하는 건 차치하고, 꼭 못하는 부분에서 인정받고 싶어 했다.

두뇌 싸움이라든가, 인터뷰라든가.

그러니 지금 평소엔 들어가지도 않던 엠불로 들어가서 그 인정 욕구를 채우려는 것 아닌가.

“어? 안 되네…….”

“안 된다고? 엠불?”

“응. 터졌나 봐.”

오. 하느님.

하늘이 도운 걸까?

엠불이 터졌단다.

주혁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심스레 떠본다.

“그…… 어차피 채팅창에서 반응 확인했을 거 아냐?”

채팅창에서 분명 올바른 피드백이 왔을 텐데, 왜 애먼 곳에서 찾느냐고 묻는 거다.

“그건 제대로 된 반응이 아니지. 걔네들은 나 놀리기만 하잖아.”

“……?”

아. 놀렸구나.

그 반응은 왜 무시하는 건데!

“아…… 하하…… 그, 그게 왜 제대로 된 반응이 아닌데……?”

“놀리기 위해서 실제 사건을 왜곡하니까.”

“대체 언…….”

대체 언제? 우리 시청자들이 널 놀리는 걸 좋아해도! 없는 걸 지어내서 놀리진 않아! 라고 말하려던 주혁은 멈칫한다.

‘어?’

생각해 보니 그랬던 적도 있던가.

「아몬드! 미안하다아! 천만원이 아니라! 백만원이다아아!」

주혁은 천만 원 사건을 떠올리며 볼을 긁적인다.

상현이 채팅창을 신뢰하지 않을 만도 했다.

“일단 피곤하니까. 쉬자. 오늘은 엠불 회복되겠지.”

“오. 잠깐. 릴프로 이런 데는 이야기 없나?”

역시나 놈은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히죽 웃으면서 다른 커뮤니티로 들어가 보고 있었다.

“아니, 야. 시빌엠 얘기를 왜 릴프로에서 찾아!?”

……라고 했지만, 놀랍게도 릴프로에선 지금 시빌엠 주제로 꽤나 뜨거워지고 있었다.

* * *

“끄, 으아아아아아아! 이겼어! 이겼어요!! 과장님! 부장님! 사장니이이임!”

“엘리시아! 닉네임으로 불러야죠. 부장님이 아니라. 그게 본사 지침이에요.”

“부장님 닉은 밴 당하지 않으셨나요? 어쨌든! 이겼다구요! 프랑스를 이겼다고요!!!”

“그, 그래! 나도 바로 옆에서 봤잖아!? 그만 잡고 흔들어요! 이거 새로 산 셔츠…….”

꺄아아아아!

시빌 엠파이어 한국 지부는 오늘 축제 분위기다.

이번에 본사의 지원이 늘어난 데다가, 국가 대항전까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더군다나 릴 대회가 망했다는 시기적 요행까지…….

“대박! 시청자 수도 대박 났어요! 예선 라이브 시청자가 거의 10만이라니까요?!”

덕분에 10만 시청자가 찍힌다.

사실 요즘 같은 시대에 10만 시청자가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각 나라 간의 대결이 펼쳐지는 스케일을 고려하면 더더욱.

한 예로 아몬드가 지스타에서 챌린지를 한창 휩쓸 때 혼자 최대 9만까지 나왔었다.

그럼에도 직원들은 신나 날뛰었다.

인생은 언제나 상대적인 법이니까.

“와! 작년엔 진짜 3만도 겨우 찍혔는데……! 10만이라니. 10만이라니! 이순신 장군님! 당신의 10만 대군 양성! 우리가 해냈습니다아!”

3만 겨우 찍던 대회가 첫날부터 10만이 찍힌다니.

이건 대박이라 할 만했다.

오늘 산 주식이 다음 날 3배로 뛴다고 생각해 보면 간단했다. 조상님이 도운 수준이다.

그래서인지 엘리시아라 불린 직원은 두 손을 곱게 모아 올리며 조상님들께 외친다.

“이순신 장군님!? 세종대왕님! 우리 정리해고 안 당하는 거죠!? 예?! 예산 계속 나오는 거죠!?”

“진정해 엘리시아! 그건 미국에 물어야지 왜 조상님들한테 물어봐?! 그리고 자네 대만에서 왔잖아!?”

“지금 차별하시는 거예요!? 저도 한국인이에요!”

“아, 아니, 그냥 조크야. 조크.”

부장은 이내 직원들을 진정시키더니.

짝! 짝!

“자, 자, 여튼 다들 흥분을 가라앉히세요.”

박수를 치며 주의를 모은다.

“우리가 이겼다는 건? 우리가 할 일이 많아졌다는 뜻이에요. 즉, 엘리시아 말대로 해고당할 걱정은 없다~ 이 말이죠.”

와아아아아!

해고 안 당한다는 말에 무슨 역전골 넣은 거마냥 함성이 나오는 이 광경.

부장은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좋습니다! 지금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잔 말이에요! 저희가 신규 유입 이벤트도 하고! 템도 좀 뿌리고…… 에…… 지금 유입되어서 오는 곳이 어디라 했더라……?”

“릴입니다. 릴드컵이 성적이 부진해서요.”

“아! 그래! 그 릴 커뮤니티에 가서도 좀 활동하고! 완전히 빡빡! 싹싹! 다 긁어와 보자구요!”

10만이라는 시청자 대부분은 릴드컵 성적이 망하는 바람에 넘어온 사람들.

즉, 냉정히 말하면 그들은 시빌엠이 재밌어서라기보다, 한국의 승리를 원해서 넘어온 것이다.

여기서 한국팀이 이겨주는 바람에 목숨이 연장됐으나.

다음 경기 때는 어떻게 될지 몰랐다.

언제까지 이 흐름이 이어질지 몰랐다.

이때 최대한 많이 끌어당겨야 한다.

“어!? 근데 릴프로에 이미 시빌 엠파이어 이야기 많은데요!?”

무려 빅 게시판 가장 메인에 떠 있는 글이 시빌 엠파이어에 관한 것이었다.

빅) 이스포츠 개같이 부활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6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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