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WANTED(2)
대회 당일, 오후 4시.
아직 학교도 회사도 끝나지 않은 시간.
대회 시작까지도 2시간가량 남은 상황인데.
그럼에도 엠불과 릴프로에선 이미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자. 자. 릴 얘기하는 놈들~ 친목질 하는 놈들~ 방 빼세요~]
[곧 시빌엠파이어 강점기가 시작됩니다. 문화 통치 같은 거 없으니 방 빼라]
[올 겨울, 2시간 뒤. 내 인생이 시작한다……]
이게 릴프로 게시판인지, 엠불 게시판인지 헷갈릴 정도의 화력.
프랑스전 때보다 확연히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조선이 프랑크를 이겼다는 소식이 일파만파로 퍼졌기 때문이다.
그 소식은 심지어 일반 언론의 기사로도 나오게 된다.
[한국의 비인기 게임 종목, 아마추어들의 반란]
1면을 장식한다거나 하는 대단한 수준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대중들에게까지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다는 건 희소식이었다.
-이런 게임이 있어?
-조선으로 옛날 왜구놈들 쳐바르면 재밌긴 하겠네요 ㅎㅎ
-죽창으로 ㅋㅋㅋ 이거 재밌어보인다
평소 게임을 잘 접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기사로 시빌엠과 국가 대항전에 대해 알게 된다.
국가 대항전은 게임을 잘 몰라도, 국대 축구 경기처럼 재미로 볼 수 있는 게임이니.
이렇게 소식이 퍼져 나가는 건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신박하네 재밌어 보이는데, 우리 나라에서 왜 인기가 없지? 하여간 한국인들은 자극적인 릴 같은 거나하면서 엄마 아빠 욕이나 하고……ㅉㅉ
└아재요 역사 게임은 우리나라에서 인기 끈 적이 없어요……
└이것도 인기 많아지면 엄마 아빠 찾을걸?ㅋㅋㅋㅋㅋㅋ
└왜구를 쳐죽이네 마네 하는 건 자극적인게 아니라 교육적인거죠?
일반인들에게 이 게임이 사뭇 점잖은 역사 게임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나, 실상은 달랐다.
사람에게 현상금까지 거는 게임이니까.
[현재 스페인에서 아몬드 현상금 걸림ㅋㅋㅋㅋㅋ]
==== ====
아아몬드
DEAD or ALIVE
현상금: 현재 모금 중
==== ====
-DEAD or ALIVEㅇㅈㄹㅋㅋㅋㅋ
-아니 얘네 진짜 진심이넼ㅋㅋ
-ㄷㄷㄷ
-너무 무섭다! 무직함대!
-설마 진짜 유상현의 목을 친다는 건 아니죠? ㅎㅎ
└스페인이 어디 남미 국가인줄아냐 ㅋㅋㅋ
-어이 스페인. 놈을 죽이려면 악마 사냥꾼을 고용해라.
-“생사불문”
-현상금 현재 모금중이 ㅈㄹ 무서운데?ㅋㅋㅋㅋ
└크라우드 펀딩 현상수배 ㅋㅋㅋㅋ
└ㄹㅇㅋㅋㅋㅋㅋㅋ
└얼마까지 올릴려고 ㅋㅋㅋ
그리고, 현상금이 걸렸다는 소식이 국내에 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한국 vs 스페인, 국가 대항전 중계방송 Live]
국가 대항전 중계방송이 시작됐다.
“안녕하십니까! 떠돌이 용병 여러분! 저는 캐스터 김상훈.”
“해설의 킹귤입니다.”
“반갑습니다아!”
아직 경기까지는 시간이 남았음에도, 시청자들이 불어나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ㅎㅇㅎㅇ
-드디어
-왔다…… 내 인생……
-오늘 제발 이겨라 ㅠㅠㅠ
.
.
.
마구마구 밀고 들어오는 시청자들.
[현재 시청자 7.3만]
순식간에 7만을 넘어버리는 기세에, 중계진도 한마디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지금 시청자분들이!?”
“숫자가 상당합니다! 설마 시빌엠 이거 흥하나요? 화성 가나요!?”
“아직은 모르죠! 지금 이렇게 인기가 상승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킹귤 님!?”
“저번에 화제가 됐던 프랑스전 때문이죠! 릴드컵이 망해서가 아니구요!”
“맞습니다! 프랑스전 때문이죠!”
-ㅋㅋㅋㅋㅋㅋ
-ㄹㅇ 맞지
-ㅇㅈ
-동의합니다
-프랑스전 레전드긴했음
“말이 나온 김에 지금 프랑스전 하이라이트 영상 한번 보고 가시겠습니다!”
중계방송은 늘 그렇듯 전에 나왔던 하이라이트 영상들을 차례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당시 녹화됐던 킹귤의 흥분한 목소리와 고래고래 고함치는 캐스터, 응원단의 함성이 다시 들려왔다. 그때의 열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아…… 죽창을 처음 꺼내 들었을 때! 정말 굉장했죠?”
“그렇습니다. 패스트 2시대에 이어서 꺼내 드는 죽창…… 크으으! 진짜 주모를 부르짖게 만들었어요!”
-ㄹㅇ
-전율 오졌음
-이때 이후로 솔랭 문명전에서 조선으로 죽창 쓰는 놈들 몇몇 생김ㅋㅋㅋ
-반전 쩔었지
캐스터가 채팅창 내용을 슬쩍 보더니 언급한다.
“아. 지금 실시간 채팅에서도 이때 이후로 솔랭 문명전에서도 죽창이 나왔답니다.”
캐스터가 신기해하며 킹귤에게 물었다.
“이러면 이제 죽창이 조금 잘 쓰이게 될까요?”
“아…… 글쎄요. 지금 쿠키는 쉽게 말해서 지휘관들 중에 ‘어나더 레벨’이거든요? 여러분은 죽창에만 주목하시겠지만…… 진짜 핵심은 그 죽창이 그 타이밍에 나오게 하는 생산 능력입니다.”
-잘 쓰일리갘ㅋㅋㅋ
-대회따라하면 ㄹㅇ ㅈ망함
-쿠키처럼 할 수 있음 ㄱㅊ
-일반인들한텐 걍 예능임
-나 해봤는데 다 졌음 ㅠㅠ
“그렇죠? 지금 나오고 있네요. 다 졌다고요.”
“아…… 쉽지 않군요?”
“예. 지휘관 차이도 차이인데. 플레이어들도 다르니까요. 저번 게임에서 만약에 일꾼 쪽으로 침투한 게 아몬드가 아니었다면? 방어탑을 무력화시키지도 못하고. 이도저도 못했을 수도 있거든요.”
“맞습니다. 그래서 MVP 받았죠?”
“예. 플레이어 역량도 매우 중요한 겁니다.”
“그나저나 또 이런 말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시빌엠을 처음 접하는 분들 질문인 거 같은데요.”
“뭐죠?”
여러 질문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많았던 건 문명의 팩션 밸런스에 대한 것.
“왜 조선이 이렇게나 약하냐! 어? 이래서 게임 해 먹겠냐?”
-그건 조상님들한테 따져야…….
-사실 역사에 비하면 게임에선 강한 거 아니냐?ㅋㅋㅋ
-ㄹㅇ 패치 해줘~~
-ㅋㅋㅋㅋㅋㄹㅇ 약하긴함
-근데 이건 우리 입장 아닌가?
“막 잉글랜드는 1시대 방패에 2시대 장궁병까지 있는데! 어!? 우린 죽창?! 이런 말이 되게 많아요!”
-ㅅㅂ 그렇긴하네 ㅋㅋㅋㅋㅋ
-장궁 vs 죽창 ㅋㅋㅋㅋㅋ ㄹㅇ이네
-엌ㅋㅋㅋ
“아.”
킹귤은 그런 질문이 나올 만도 하다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조선이 버프가 필요한 문명인 건 모두가 인정하긴 하는데요. 그거에 너무 매몰되시면 안 됩니다. 게임이니까 밸런스가 완벽할 순 없어요.”
-ㄹㅇ
-또 과몰입러들 등장했나보네 ㅋㅋㅋ
-어떤 커뮤에선 이거 갖고 무슨 실제 조선이 어쩌고 저쩌고 역사충들 들러붙음ㅋㅋㅋ
-ㅇㅈ
-아무래도 역사 기반이라 뿔 난 사람들이 많음ㅋㅋㅋㅋㅋ
킹귤은 그간 조선 문명에 대해 너무 안 좋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 가지 예시를 들어줬다.
“저희도 모든 활에 ‘집중’ 팩션이 있는데. 이건 돈 한 푼 안 들이고 자동으로 달려 있는 팩션입니다. 팩션 자체로는 되게 좋은 편이에요. 게다가 풀차지 하면 사거리는 장궁급이죠. 생산 비용은 훨씬 싼데요.”
-ㄹㅇ
-그건 좋긴함
-잉글랜드랑 비교하면 안되는게 얘넨 3시대 넘어가면 힘 ㅈㄴ 빠짐
-조선 3시대 한 번 보여주면 다들 좋아할듯 ㅋㅋㅋ
“아. 설명 감사합니다. 킹귤 님. 밸런스적인 어려움이 조금 있다 하더라도 살길을 찾아야 하는 거지. 이걸 게임사에 패치해 달라 어쩌고저쩌고 계속 요구할 순 없습니다. 일단 있는 걸로 잘 하면서 성적을 보여주는 게! 프로의 자세죠.”
“예!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아지면! 알아서 해줄 겁니다! 자, 그리고 지금! 우리 선수들 입장합니다!”
“예~! 자랑스러운 우리의 국가 대항전 출전 선수들입니다! 여러분! 박수로 환영해 주시죠!!!”
-ㅊㅊㅊㅊ
-와아아~~
-짝짝짝
-ㅋㅋㅋㅋ
-ㄷㄱㄷㄱㄷㄱ
-가즈아~!
양 측의 선수들이 필드 위로 소환되기 시작했다.
[ALL DIVE SYSTEM OPERATED]
이때, 필드 밖 관중석의 모습도 드러났는데.
스페인은 황금색, 한국은 붉은색 물결을 이뤘다.
[현재 시청자 13.7만]
이때 시청자 13만 명을 넘고 있었다.
* * *
경기 시작 전.
조선은 마지막까지 손발을 맞추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타!”
“타!”
복명복창까지 해가며 유달리 호흡을 정확히 맞추려는 듯 보인다.
“내려!”
“내려!”
“타! 내려!”
“타! 내려!”
척! 척!
마치 군인이 된 것처럼 그들은 발소리까지도 똑같이 맞췄다.
이번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다.
빠르고, 느리고보다는 ‘동시에’가 이번 작전의 키워드인 듯했다.
그러던 중.
[경기 입장]
슝.
하얀 불길이 순식간에 시야를 덮어버리더니 모두가 필드 위로 소환됐다.
아몬드 그리고 그의 궁병대원들도 마찬가지.
“후…… 실전에서 잘 되려나 모르겠네요.”
롸떼가 진땀을 빼며 중얼거렸다.
“약한 소리 마라. 롸떼야. 이 형님 실전에서 똭~ 머리 맞히는 거 못 봤냐? 어? 우리 팀은, 인마. 실전파야. 스크린 골프 파가 아니라, 필드 골프 파라고.”
팡어가 옆에서 그를 위로했다만, 사실 반은 자신의 활약상에 대한 자랑이었다.
“예이 알겠습니─”
그렇게 서로 잡담을 주고받으며 필드 위를 걷는 순간.
파앗!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치 꺼져 있던 조명이 켜지듯 관중석이 등장했다.
“!”
그 순간, 모든 플레이어들이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는데.
“더 많아졌어.”
“이야…….”
붉은 물결이 프랑스전 때보다 확연히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 사이드를 다 채울 정도의 숫자였다.
북쪽을 볼 땐 오로지 한국 응원단밖에 보이지 않았다.
경기장의 4분의 1은 넘게 채운 셈이다.
경기장 곳곳에 드문드문 흩어져있던 때와는 느낌이 확 달랐다.
아몬드 방송의 채팅방에서도 응원석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개같이 떡상중 ㅋㅋㅋ
-응원도구라도 팔아야하나
-오늘 지면 난리나겠네 ㅋㅋㅋㅋ
-딱 오늘까지만 이기자 ㅠㅠ
-근데 스페인은 ㄹㅇ 힘든데
인기 언급과 더불어 오늘 경기 패배를 염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럴 만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볼 때 지는 것과 그냥 지는 건 얘기가 다르다.
심지어 이빨 빠진 호랑이인 프랑스와 황금 세대라 불리는 스페인은 현재 전력이 비교가 어려울 정도다.
물론 문명적인 상성이 프랑스가 압도적으로 좋지만.
한국 팀이 보여줬다시피 이 게임은 상성이 전부는 아니었다.
실제 전쟁이 그렇듯이.
하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선 스페인은 우승권 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쿠키가 잘해줘야 한다던데.’
오늘만큼은 플레이어들 실력보단 지휘관 실력에서 갈리게 될 확률이 높았다.
적의 플레이어들이 워낙에 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 곧 시작이다아!”
팡어가 궁병들에게 기합을 불어넣었다.
[10초 후 게임 시작]
카운트다운이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해적 새끼들에게! 중국 옆에 사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자!”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펄──럭!
그에 맞춰 태극기가 마을회관 위에서 펄럭거렸다.
-ㅁㅊㅋㅋㅋㅋㅋㅋ
-구호가 뭐 저래 ㅋㅋㅋ
-캬!
-ㄹㅇㅋㅋㅋㅋ
-그때 중국은 거의 미국이지 ㅅㅂ
-ㄹㅇㅋㅋ
-징기스칸이 죽어서 운빨로 산 놈들이지 ㄹㅇㅋㅋ
-중국옆집도르는 인정이지 ㅋㅋㅋㅋㅋㅋㅋ
바로 전 경기를 승리한 한국 팀의 사기도 굉장했으나, 스페인 쪽도 만만치 않았다.
“조선은 작년도! 재작년도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했던 버러지 팀이다!”
보조 지휘관 트레스가 얼굴이 시뻘게져서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이번 연도도 마찬가지일 거다! 우릴 만났으니까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
스페인 팀이 함성을 내지르면서, 스페인의 국기가 마을회관 위로 펄럭거린다.
이윽고, 경기가 시작된다.
삐이이이이이──!
[게임 시작]
* * *
“자. 경기 시작됐습니다. 6시에는 한국 팀의 조선! 12시에는 스페인 팀의 에스파냐! 자, 어떻게 보십니까? 킹귤 님.”
보통 초반에는 해설할 게 별로 없는 편이다.
그래서 양 팀의 상성적 구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아. 일단 계속 언급 드렸듯이, 스페인은 올 프로로 구성된 팀입니다. 병사 간 전투력의 차이가 날 확률이 높구요. 그렇기에 지휘관의 전략과 병사들의 팀워크가 오늘은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아. 개인전은 힘들다는 거군요?”
“예. 아무래도 냉정하게 생각하자면, 그렇습니…… 어어? 이거 시작부터!?”
여유롭게 양 팀의 구도에 대해서 추가로 설명하려 했던 킹귤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당장 인게임 상황이 일반적인 흐름이 아니었으니까.
“아. 왜 그러시죠!”
“에스파냐의 전략이……? 굉장히 극단적입니다!?”
킹귤은 상황상 조선이 극단적인 전략을 쓸 거라 예상했으나.
‘에스파냐가? 이렇게?’
이건 시작부터 킹귤의 예상을 벗어난 게임이었다.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7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