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WANTED(3)
“쿠키 형. 이번 스페인전 어떻게 보고 계세요?”
큰 전략을 짜기 전.
치승이 쿠키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디테일한 빌드 오더를 깎는 작업은 싱크 탱크가 하는 것이지만.
적의 심리와 전략을 예상하고 경기의 큰 그림을 그리는 건 총지휘관의 일이었다.
“스페인은 일단 우리 패스트 2시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그렇죠. 프랑크전을 봤다면요.”
프랑크전 승리는 단순 1승 이상으로 값진 일이다. 적에게 고민해야 할 선택지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니까.
“그간 조선은 1시대 방어탑 러쉬 정도가 초반 고려 대상이었고, 그것만 넘기면 3시대까지 쭈욱 가는 양상이었지. 에스파냐가 가장 좋아하는 흐름이지.”
그간 조선전을 치를 때, 에스파냐는 고민할 것이 별로 없었다.
조선도 에스파냐도 대표적으로 3시대를 가길 원하는 문명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에스파냐는 황금 관련 팩션으로 3시대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었고.
한 템포 빨리 나오는 3시대 기마 총병과 기마 선교사 조합으로 조선을 돈으로 찍어 누르는 플레이를 펼치면 됐다.
그 지경까지 가면 조선은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생뚱맞게 2시대를 고민해야 하고. 심지어 1시대도 고려해야 돼.”
“그렇죠.”
“2시대로 가는 문턱에 무려 2번이나 걸림돌이 생긴 거지. 그럼 에스파냐는 3시대 가는 걸 미루고 1, 2시대 전투에 신경 써야 할까?”
치승은 고개를 젓는다.
얼토당토않은 말이다.
“아뇨. 에스파냐는 초반에 궁병이 없어서 1, 2시대에 오래 머무는 상황을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특히 조선 같은 활 문명 상대로는.”
에스파냐가 초반이 아주 약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근접 보병 스펙은 꽤 좋은 편이다.
그러나, 궁병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활 문명인 조선과 1, 2시대 보병 전투를 펼친다는 건 무리다.
“차라리 방어탑이나. 성벽 같은 거에 좀 더 투자할 겁니다.”
“그렇지. 하지만 그것마저도 위험하다고 생각할 거다. 그랬다가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3시대로 직행하면 안 되니까.”
“……흠.”
치승은 고민했다.
“에스파냐는 황금 캐는 속도가 자체적으로 빠르니까. 방어에 신경 쓰면서 동시대 업 가능하지 않나요?”
프랑크는 안전하게 금을 수급할 수 있는 문명이었다면, 에스파냐는 공격적으로 금을 캘 수 있는 문명이었다.
식민지 사업을 통해서 수많은 금을 캐오던 역사를 반영한 것이리라.
그러니까, 에스파냐는 방어에 좀 신경 쓰더라도 조선보다 3시대가 늦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동시에? 동시에 3시대를 가는 건 장담컨대 에스파냐 쪽에서 사양할 거다.”
“아…… 그래서는 에스파냐의 장점이 상쇄돼 버리는군요.”
에스파냐는 조선이랑 3시대를 같이 올라가는 것조차 꺼림칙해한다.
“그래. 에스파냐는 아무도 총을 쓰지 못하는 2시대에 갑자기 3시대 기마 총병을 들고 튀어나와서 전장을 휩쓸어 버리는 게 장기지. 모든 병력이 준비된 적을 상대로 달려가서 총을 쏘는 건 좋아하지 않아.”
“그럼 대체 어떤 방식을 들고나올까요. 제 생각엔 동시에 3시대 가는 게 최선 같은데.”
“그건 차선이다. 최선은 조선보다 3시대를 빨리 갈 확률을 높이면서 1, 2시대를 방어할 방법이지.”
“예? 그런 게 있어요?”
“그럼.”
그런 게 있다고?
치승은 놀랐다.
“놀랄 거 없어.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지.”
“……원론?”
“에스파냐는 우리가 뭘 할지 알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
그랬다.
조선이 초반에 어떤 변칙적인 움직임을 보일지가 걱정이라면.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내면 된다.
그러면 쓸데없는 섀도복싱에 돈 낭비 안 하고, 그들이 바라는 대로 빠른 3시대 업이 가능했다.
그런 게 가능하다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런 게 가능할…… 아!”
치승의 머리에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정찰.
쿠키가 말한 ‘원론적’ 해결책이다.
정찰을 아주 꼼꼼히 하는 전략을 펼칠 것이다.
“정복자 특성으로 가능할 수도 있겠네요. 심지어 올 프로 팀이니까 손발도 척척 맞고. 그럼 저희는 어쩌죠?”
“어쩌다니?”
“얘네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면…….”
쿠키는 피식 웃었다.
“걔네는 우리를 정찰해야만 우리가 뭘 하는지 알 수 있겠지만. 지금 봐라.”
“?”
“우리는 그냥 이 자리에서도 걔네가 뭘 하는지 알아냈잖냐.”
“!”
* * *
킹귤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어어? 이거 시작부터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에스파냐? 이거 맞나요!?”
-왜 또 호들갑
-시작하자마자??
-오 정찰 전략이 아예 다른데??
-비사아아앙
애석하게도 호들갑이 아니었다.
킹귤의 눈이 흔들렸다.
‘이거…….’
처음부터 에스파냐의 큰 그림이 범상치 않았다.
‘역시 수 싸움이 예상을 뛰어넘는다. 이게 국가 대항전인가?’
저번 프랑크전 승리로 이번 수 싸움은 편하게 가져갈 거라고 생각했던 게 무색하게, 에스파냐는 게임 시작부터 확실하게 핵심을 짚고 있었다.
캐스터는 재촉하듯 물었다.
“킹귤 님! 에스파냐가 왜요!? 설명 좀 해주세요! 제 눈엔 그냥 양쪽 다 퍼져서 정찰 중인데요!?”
“에스파냐의 정찰 전략이 엄청 극단적입니다! 3인 1조, 2인 1조로 퍼졌습니다!”
-ㄷㄷㄷ
-ㄹㅇ?
-어 진짜네
-저러다 만나면 어쩌려고
“예!? 다섯이 아니라 3인, 아니, 2인?!”
캐스터도 놀란다.
“조선은 다섯인데. 정찰하다 만나면 어쩌려는 겁니까?”
정찰조를 적게 편성하면 정찰은 훨씬 빠르고 자세하게 이뤄지지만, 전투력이 급감한다.
“그건 지켜봐야겠습니다만…….”
이에 대한 대책을 에스파냐가 준비해 왔을까?
에스파냐가 준비한 대책을 확인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역시.’
킹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에스파냐의 팩션 중에 ‘정복자’라는 게 있습니다.”
“정복자요!? 그게 뭐죠!”
“이게 옛날에 미지 땅을 개척해서 식민지하던 그런 걸 반영한 팩션입니다. 능력이 뭐냐면, 병사의 시야가 1 더 넓은 겁니다.”
-능력은 간단하네 ㅋㅋ
-오
-시야 차이가 있구나
-먼저 보고 도망간다?
-좋네 ㄷㄷ
“아. 그럼 에스파냐 병사들이 숫자는 적어도, 먼저 볼 수 있으니까 도망을 칠 수 있다는 거네요!?”
“맞습니다.”
그렇다. 2인 1조가 5인 1조를 이길 순 없었다.
그러나 상관없다.
이들은 애초에 조선 정찰 병력과 맞닥뜨리면 싸울 생각이 없다.
도망만 칠 것이다.
3시대가 올라갈 때까지.
“아 말씀하시는 중에! 지금 맵에서 보시면 조선 병력들과 슬슬 만나기 시작하는 에스파냐 정찰 병력이 있습니다!”
에스파냐의 2인 1조 정찰대는 조선 병력이 근처에 있는 걸 확인하자, 정말 뱀처럼 매끄럽게 뒤로 물러난다.
“근데 이렇게 뒤로 물러나기만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활동 영역이 점점 줄어드는 건데요? 식량을 위해서 사냥도 하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시빌엠에서 식량은 중요하다.
죽은 병사를 다시 충원하는 데에도 쓰이지만, 일단 일꾼을 유지하고 뽑는 데에도 쓰이기 때문.
이를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초반에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맵 곳곳에 널려 있는 사슴, 양 등을 사냥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보통 말을 타고 있는 보조 지휘관들이 나서서 진행한다.
다만, 지금 에스파냐처럼 적을 만나기만 하면 도망치는 전략을 펼친다면 이 사냥 물량에서 밀릴 수가 있다.
에스파냐는 이에 대비책을 구상해 놨다.
“그래서 지금 다른 정찰대가 조선 병력이 지나온 곳을 채우듯이 들어갑니다.”
한 정찰조가 물러나면, 다른 정찰조가 멀리서부터 우회하여 그쪽을 채운다.
마치 조선 정찰조 주변을 빙빙 돌며 관찰하는 상어 떼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아, 아니…… 꼭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입니다?! 아무리 시야가 1 더 높아도! 이런 게 가능합니까!?”
약간의 시야의 이득을 활용한 극한의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시야 경계 안으로 들어가도 조선 지휘관의 눈에 띄어버릴 텐데.
그 선을 정확히 알고 있다.
“이, 이건 총지휘관의 작품입니까?”
“그렇기도 하지만, 올 프로로 구성된 팀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지휘관이 루트를 1센티 오차도 없이 잡아 줄 수는 없거든요? 이건 플레이어들이 정확하게 거리를 아는 겁니다!”
-ㄷㄷ 무섭다
-이거 이길 수 있냐? ㅠ
-ㅅㅂ 200명이 저걸 다 안다고??
이런 시야 플레이로 얻을 수 있는 건 단순히 병사를 효율적으로 굴리는 것 말고 훨씬 더 큰 게 있었다.
“아니, 이러면 조선이 초반에 무슨 움직임을 취할지. 거의 전부 알게 되는 거 아닙니까?”
-ㄹㅇ이네
-그거 의식한거구나
-와 수싸움이 레전드네
에스파냐가 그렇게 신경 쓰던 조선의 초반 타이밍 러쉬, 변칙 플레이가 거의 다 예방된다.
“그렇습니다. 초반 타이밍 러쉬? 너네 그거 빼면 없잖아! 에스파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넓게 퍼뜨린 병력들 하나하나가 레이더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적이 하나라도 침투하면 바로 눈치챌 수 있는.
“원래 이렇게 하면! 식량 수급에 문제가 생기거든요!?”
단, 적과 싸움을 계속 피하는 식으로 땅을 내주다 보면 사냥이 불리한데.
“그런데 식량도 잘 챙기고 있습니다!?”
에스파냐는 사냥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지금 말 타면서 사냥하고 다니는 저 보조 지휘관 사냥 솜씨가 장난이 아니에요! 누구…… 트레스! 트레스군요!?”
트레스는 본래 보조 지휘관들 중에서 좀 유명한 편이라, 캐스터도 알고 있었다.
아무런 지휘 능력이 없이 피지컬적인 능력만으로 보조 지휘관을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 트레스. 예. 역시 대표적인 무장(武將)이죠? 사냥의 효율이 다릅니다!”
달리는 사슴을 말을 달리면서 칼로 벤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물 흐르듯 지나가며 슥삭슥삭 베어내는 모습.
“이거 동물 사체를 주워가는 다른 병사들이 더 힘들어 보일 지경이네요!”
-개잘한다 ㅅㅂ
-도랏내
-ㅠㅠㅠ 지는거냐 ㅠㅠ
“이러면 식량 수급이 원활하지 못할 거라는 예측도 빗나갑니다. 오히려 조선보다 훨씬 빠르게 정찰하면서 조선의 초반 타이밍 러쉬는 다 틀어막았다고 보여지거든요?”
식량 수급량은 조선이 아주 미약하게 앞서고 있을 뿐, 별다른 메리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러면 그냥 같이 무난하게 3시대 올라갈 텐데…….”
“와중에 에스파냐는 황금 수급량이 점점 오릅니다!”
반면, 황금 수급량은 점점 에스파냐 쪽이 치고 올라갔다.
“예. 에스파냐는 황금 생산량 관련 팩션이 있습니다. 일꾼들이 캐는 양이 더 많아요.”
“아…… 이러면 조선의 대처는 어떻게 될까요? 이대로 가면 시대 업도 에스파냐가 더 빠르게 할 가능성이 높잖아요?”
조선은 현재 특이 사항이 보이지 않았다. 평소처럼 다섯씩 뭉쳐서 이동 중이었다.
일반적인 정찰이다.
그리고 조선의 정찰대들은 점점 에스파냐의 정찰대들에게 발견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전부 서로 발견당하게 되면 유리한 건 에스파냐다.
“조선에게 주어진 건 딱 두 가지 같습니다.”
“뭡니까?”
“지금 힘 싸움으로 영역을 계속 확장하는 거죠.”
“아……!”
여기서 조선이 할 수 있는 첫째는 힘 싸움으로 영역을 밀고 나가는 것.
땅따먹기를 하는 거다.
“그런데 그런 시도를 하면 에스파냐도 시대 업을 조금 미루면서 막을 겁니다!”
“그렇죠. 바로 대처하겠죠? 그럼 그냥 소모전이잖아요?”
만약 서로 영역 싸움으로 치고받게 되면 그저 소모전일 뿐이다.
어느 쪽도 확실한 이득이 없게 된다.
“두 번째는 에스파냐의 정찰을 뚫고! 몰래 침투하는 겁니다!”
가장 좋은 건, 조선의 병사가 조금이라도 몰래 침투하는 것.
“그렇게 되면 에스파냐에 지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고, 조선이 확실하게 이득을 챙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뚫습니까!?”
“……그건 모르죠!”
-ㅋㅋㅋㅋㅋㅋㅋㅋ
-파워 당당
-그걸 알면 쟤가 지휘관하지 ㅋㅋㅋ
킹귤로서도 아직 조선이 어떤 전략을 펼치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던 그때.
“어어……?”
다섯 명씩 움직이던 조선의 정찰병들이 갑자기 약속이나 한 듯 10명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조선! 지금 움직임이 조금 특이합니다!?”
“뭔가 보여주나요!”
신기한 건, 이들이 뭉치는 구역이 전부 하나같이 우거진 수풀이었다.
들어가면 적의 시야에 보이지 않는 곳.
잠시 후.
모든 병력에 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티이잉──!
[매복]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7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