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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3부-80화 (612/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80화

29. 아몬드 번호 딴 썰 푼다(1)

“들어가아아! 들어가!”

에스파냐 진영에 몰려온 조선의 본대.

그들은 조선의 수많은 방어탑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방어탑이 어찌나 많은지, 에스파냐 진영은 더 이상 에스파냐 진영이라 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올라가! 방어탑으로 다음! 다음 누구야!?”

“다 올라가아!”

조선의 본대가 합류하는 바람에, 방어탑에 올라갈 인재는 차고 넘쳤다.

“쏴라아!”

피유웅!

수십 개의 탑에서 수백 개의 화살이 쏘아지기 시작한다.

이런 곳에서 할버드 몇 개 생겼다고, 전세가 뒤집어질 수는 없었다.

할버드로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다 쳐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저거 왜 안 죽냐!? 저거 죽여!”

“보조 지휘관! 보조 지휘관을 죽여!”

물론 그 와중에도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는 에스파냐의 실력자들은 있었다.

트레스는 할버드를 받아 들더니 화살을 일일이 쳐내며, 조선 병사 몇의 목까지 쳐버리는 기염을 토했으나.

시빌 엠파이어는 릴 같은 초능력 게임이 아니었다.

──푸욱!

결국 그의 심장에도 화살이 박히게 마련이다.

“……!?!”

트레스가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낙마했다.

퍼버버버벅──

달리는 것을 멈추자, 그의 말 역시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졌다.

그 뒤로도 이 잔인한 화살비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후두두두둑!

죽일 병사가 근처에 없다면, 건물이라도 때렸다.

화살로 건물을 부수는 것은 한세월이었으나.

비도 이렇게 오면 홍수가 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화살이 쏘아졌으니…….

쿠구구궁……!

[붕괴]

무너지기 시작하는 건물들이 생겨났다.

건물은 그나마 오래라도 걸리지.

일꾼들은 나오는 족족 바로 죽었다.

“얼마 안 남았다! 쏴아아!”

“또 나왔어! 쏴라!”

일꾼이 단 하나도 활동할 수 없다면, 그것은 당연히 문명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푸욱……!

마지막 자원으로 뽑은 일꾼이 쓰러졌다.

이때였다.

[항복]

에스파냐의 항복 선언이 나온 것은.

조선의 모두가 승리를 예감하고 있었다고 해도.

항복이라는 이 두 글자를 보는 순간, 찰나의 고요가 흘렀다.

‘……항복?’

이 순간 조선의 모든 플레이어들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음 경기도 어쩌면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

아니, 이번엔 본선을 진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아니, 어쩌면…….

정말 만에 하나 엄청난 행운이 따라준다면, 우린 우승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그 모든 망상과 희망, 집념은 이내 끓어오르는 심장을 지나, 목을 타고 올라와 내뱉어졌다.

“이겼어…….”

누군가 작게 읊조린 그 말이 신호탄이 된듯.

모두가 당기던 활시위를 놔버렸다.

피비빙~

화살들이 제 마음대로 아무 곳으로나 튀었으나.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것들이 향할 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겼어! 이겼다아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관중의 함성과 플레이어들의 함성이 뒤섞여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선수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뛰자, 곳곳에 세워진 방어탑들이 요동치며 흔들린다.

마치 탑이 화산처럼 치솟고, 그 안에서 뜨거운 함성이 용암처럼 분출되는 광경.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보조 지휘관들은 말을 타고 이리저리 날뛰며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몽둥이를 위로 던지며 축포처럼 쓰기도 했다. 병사들은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승리를 포효했는데.

그 수많은 병사들 중에 단연코 눈에 띄는 자가 있었으니…….

“!?”

이 광란의 도가니 속에서도, 이 병사의 승리 세레머니를 본 이들은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

-ㅁㅊㅋㅋ

-무친넘…… 무친넘……

-엌ㅋㅋㅋㅋ

-이걸ㅋㅋㅋㅋㅋ

* * *

승리가 선언된 후.

관중석에 있던 빨간 옷의 응원단들은 죄다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태극기를 휘둘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이겼다아아아아!”

아이템에 돈을 좀 썼는지, 아예 등에 방패연을 매달고 날아다니는 사람까지 생겼다.

그 사람이 공중에 떠서 외쳤다.

“대애애애애한! 민! 국!”

콰과과광! 쾅!

쩌렁쩌렁한 북소리들이 그의 외침에 답해줬다.

에스파냐의 관중들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멍하니 다 끝나 버린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엔 한국 선수들이 신나서 부등켜 안으며 위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에스파냐 마을회관의 꼭대기에 태극기가 펄럭거리고 있었다.

“미국의 절반을 차지했던! 그 에스파냐의 본진 머리 위에! 우리 태극기가! 태극기가 휘날립니다아!”

-크~

-왘ㅋㅋㅋ 이 게임 연출 미쳤누 ㅋㅋㅋ

-쾌감 도랏네 ㅋㅋㅋㅋ

-캬아

-이건 솔직히 이완용도 국뽕 느낄듯

킹귤은 역시나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나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취했다.

쾅!

“펄──럭!”

그런데, 그의 그런 과한 행동에도 아무도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한 술 더 뜨는 자가 있었으니까.

-저거 뭐야?

-엥?

-아몬드임??

-미친……

-설마 설마했는뎈ㅋㅋ

-엌ㅋㅋㅋㅋ

-아니 저긴 또 언제 올라간건뎈ㅋㅋㅋㅋ

태극기가 휘날리는 마을회관의 지붕 위.

아몬드가 서 있었다.

“엥? 아몬드 아닙니까!?”

“이, 이게 무슨…….”

아몬드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활을 꺼내 들더니.

머리 위를 조준한다.

“어? 뭐, 뭐 하는 거죠? 세레머니인가요!?”

캐스터는 아몬드의 방송을 모르니, 영문을 모르고 있었으나.

킹귤은 알고 있었다.

“아아아……앗! 이건!”

그러나 아몬드는 그에게 설명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이내 활시위를 놔버렸고.

피융!

화살은 높이 치솟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못 하고 있던 캐스터.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에에!?”

──푸욱!

아몬드가 쏜 화살이 아몬드의 정수리에 그대로 맞아버린 것이다.

“이것이! 아아몬드의! 유서 깊은 리액션이거든요!?”

-저게 뭔뎈ㅋㅋㅋㅋ

-킹귤 펄럭 퍼포먼스하다가 갑자기 해설하는거 개웃기네 ㅋㅋㅋ

-갑자기 저거 왜했지?ㅋㅋㅋ

“아 그렇군요?! 근데 후원 리액션이죠!? 갑자기 근데 왜 한 걸까요!?”

아몬드의 리액션에 대해 알고 있던 킹귤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만큼 신나신다는 거겠죠~!”

“그렇겠죠!?”

-ㅋㅋㅋㅋㅋㅋㅋ무야호~

-ㄹㅇㅋㅋㅋ

-이거 설마 현상금?ㅋㅋㅋ?

아몬드가 보여준 세레머니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화면은 이내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아~! 여러분! 지금 저희가 속한 조의 순위가 나오고 있습니다.”

==== ====

[C조 순위]

1. 조선 2승 0패

1. 로마 2승 0패

2. 프랑크 0승 2패

2. 에스파냐 0승 2패

==== ====

조선은 로마와 더불어 2승으로 조별 순위 공동 1위였다.

캐스터가 옆에서 울분을 토하듯 외친다.

“조선이! 일단 조 1위로! 조 1위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아아! 1위라뇨! 그 조선이 이렇게 해낼 거라고! 관계자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잠시 동안이겠지만, 어쨌거나 조별 1위다. 막상 눈으로 보니 더 감격적이었다.

“아니! 저희 C조만큼 깔~끔하게 양분된 조가 또 없네요! 그런데 그 양분된 곳에서 조선이! 조선이 위에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맞습니다! 이제 곧 조선 대 로마, 프랑크 대 에스파냐가 붙으면서 완벽하게 서열 정리가 되겠지만! 지금이라도 조 1위! 즐겨야죠!”

-ㄹㅇㅋㅋ

-마! 우리 조 1위야~! 앙?!

-즐겨

-ㅠㅠ진짜 감격이다 근데

-와…… 이게 이렇게 ㅠㅠㅠㅠ

-로마 이기면 ㄹㅇ 난리나겠는데

“아…… 보고만 있어도 정말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전 아직도 심장이 두근대거든요!?”

“저도 그렇습니다! 아직도 그 화살 토스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려요!”

“그 아른거리는 장면! 이제! 다시 보게 되겠네요! MVP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하이라이트 영상 보고 가시겠습니다!”

조별 순위 다음은 하이라이트 영상이었다.

“자.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리 팀 조선의! 영광의 순간입니다!”

* * *

쾅!

“이런 젠장!!”

트레스가 디스월드 로비로 돌아와 주먹으로 냅다 벽을 쳐댔다.

“이게 뭐야! 조선한테 이따위로 진다고!? 나쵸! 장난해!?”

트레스는 곧바로 이 패배의 화살을 나쵸에게 돌렸다.

총지휘관이란 게 원래 책임이 가장 큰 자리이긴 한데.

보통 플레이어들끼리 이 정도까지 지적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적어도 이스포츠 문화가 예전부터 자리 잡아 있던 한국에선 그랬는데, 스페인은 사뭇 달랐다.

“날빌에 당하면! 우리더러 어쩌라는 건데? 어? 1시대 무기 들고 지는 게 대체 얼마 만인지 기억도 안 나!!!”

프로라고 하지만, 서양권 선수들에게 있어 게임은 어디까지나 게임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완전한 스포츠로 생각하기보다, 엔터테인의 요소가 더 강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화가 나면 그대로 감정이 분출되어 버린다.

“하…….”

나쵸는 한숨 외의 대답을 딱히 들려주지 않는다.

그도 물론 할 말은 많았다.

트레스가 명령대로 아몬드란 녀석을 제대로 치웠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어쩌고저쩌고…… 등등.

그러나 나쵸는 염치가 있는 편이다.

핑계를 대기엔 이미 빌드에서 차이가 벌어진 게 너무나 자명했다.

그도 그걸 뼈저리게 알고 있기에, 팀원들의 분노를 그저 쓰게 삼키는 수밖에 없다.

“내 얼굴에만 똥칠했잖아! 제기랄!”

트레스는 계속 열불을 내며 씩씩댔다.

보다 못한 우노가 한마디 했다.

“여기서 서로 탓해 봐야 아무것도 나아지는 게 없어.”

“나아지는 게 없어!? 나아지는 게!? 그럼 가만히 있으면 나아지나?! 나아진 게 없는 건 우리 잘나신 전략꾼들의 대가리야. 알어?”

“이 새끼가……?!”

트레스의 현란한 도발에 우노도 화가나 벌떡 일어났다.

이게 날빌 패배의 무서운 점이다.

억울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생겨 버린다.

200명 중에 180명은 왜 지는지도 모르는 채로 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이 지휘관의 탓처럼 되어버린다.

나쵸는 잠시 고개를 떨구며 머리를 헝클어뜨리더니 말했다.

“해산.”

피융!

그 말과 함께 방이 폭파되며, 모두가 강제로 퇴장되어 버렸다.

아마 갑작스러운 해산 결정에 욕을 한 바가지 더 얻어먹겠으나. 이들은 일단 화를 식히는 게 먼저였다.

[로그아웃]

나쵸는 완전히 디스월드 시스템마저 나가 버린 후.

치이이익……!

캡슐 밖으로 나왔다.

“후.”

일단 이 캡슐 세상에서 벗어나 버린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 역시 누군가 죽는다고 해도 세상은 멀쩡하게 돌아가듯.

나쵸가 나간다고, 인터넷 세상이 멈추진 않는다.

그의 고통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MVP: 아아몬드]

결국 아아몬드의 인터뷰까지 봐야만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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