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97화
34. 차력쇼(1)
“하아. 왜 굳이 우리까지 끌고 와서 보는 건데?”
스페인의 보조 지휘관, 트레스는 관중석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이어서 그는 오기 싫었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듯, 동서남북 사방으로 기지개를 켰는데.
툭.
옆에 있던 관중들에게 닿아버렸다.
“뭐요. 뭐. 어차피 진짜도 아닌데 좀 닿는다고 왜 째려봐.”
“……뭐?!”
시비 걸린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상을 쓴다. 그가 무어라 말을 꺼내려는 찰나 우노가 끼어들었다.
“아…… 그…… 번역. 번역 에러예요. 우리 지방에서 말하는 사과 방식입니다.”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당신 어디 나라 사람인데?”
“저희 프랑스인입니다. 죄송합니다.”
“……참내. 프랑스가 말이 저렇다고? 여튼 신경 거슬리게 하지 마쇼.”
남자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까닥거리더니, 다시 앉았다.
어차피 여기서 신나게 두들겨 패도 아무 의미가 없긴 했다.
우노는 사태가 진정된 걸 확인하더니 트레스를 한참 노려본다.
“뭐. 내가 틀린 말 했나?”
“그래. 넌 이제부터 프랑스인이다. 그거면 된 거야.”
우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 하나를 띄어둔 채로 트레스 옆에 앉았다.
“여긴 뭐야. 나쵸가 앉을 곳?”
“아니. 네 옆에 앉기 싫어서 내가 하나 더 예약했어. 나쵸는 우리 뒤다.”
“그렇군. 역시 머리가 좋아. 잘했어.”
“…….”
잠시 후 나쵸가 도착해 뒤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도 사이가 좋아 보이는군.”
트레스랑 우노는 굳이 대꾸도 안 하고 그냥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가 이길 것 같은가? 자네들은.”
트레스가 콧방귀를 뀐다.
“말이라고 합니까? 로마죠.”
“왜지?”
“그야 기본적인 선수층에서 말도 안 되는 차이가 나니까? 로마 정예들과 붙어보면 무슨 벽이랑 싸우는 것 같다구요.”
“그럼 우노 자네는?”
나쵸가 우노를 돌아본다. 우노는 대답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로마가 이기겠죠.”
“왜.”
“트레스 말에 더해서 안토도 쿠키보다 우위죠. 어떤 변수가 나와도 로마가 이깁니다.”
시간은 더 걸렸으나, 더 확신에 찬 듯한 대답이었다.
“호오. 어떤 변수가 나와도?”
“예. 그만큼 격차가 있죠.”
특히나 우노의 생각은 ‘고대의 성벽’이라는 맵을 보고서는 더 확실하게 굳어졌다.
“이건…….”
우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늘이 로마 편이군요. 조선이 초반에 장난질할 법한 것들이 거의 다 차단된 맵이니까.”
이는 나쵸도 동의하는 바였다.
‘확실히 그렇지.’
그간 조선의 승리 패턴대로 이길 수는 없는 맵임은 분명하다.
‘다른 승리 패턴이 있는가.’
만약 다른 승리 패턴이 있다면 조선은 오늘 경기에 보여줘야 할 것이다.
[자기 입구를 막는 게 아니라! 상대 출구를 막으러 갑니다!?]
스페인 해설진의 흥분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쵸와 우노는 눈을 부릅뜬다.
“!”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거라 생각하진 못했으니까.
“이건…… 예상치 못했군.”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반성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초반 변칙을 쓰지 못하는 맵이라는 생각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니.
“……설마 이대로 끝납니까?”
우노가 어이없다는 듯 반문한다.
“왜 대체 로마 진영은 안 보여?”
관중석에서 본다고 할지라도, 필드 위에 옵저버의 시야로 투사되는 방식이었다.
한마디로 옵저버가 가려놓으면 관중들도 못 본다는 소리.
“우우우우우……!”
로마를 응원하는 쪽에서 야유가 터져 나온다. 로마 보러 왔는데 로마가 계속 안 보이니까.
“나쵸. 옵저버가 뭐 때문에 가린 갓 같습니까?”
“……일꾼 하나 빼놨군.”
옵저버가 가렸다는 힌트 덕에 나쵸는 금세 알아차렸다.
“예?! 이, 일꾼을?”
“이 상황을 타개할 변수는 몇 개 없는데. 그중에 옵저버가 굳이 맵을 이렇게 가려놓을 법한 일은 그거뿐이야.”
그리고, 잠시 후─
옵저버가 가렸던 걸 공개하고, 로마 진영에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온다.
[아니!? 안토! 로마의 지휘관 안토!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조선의 머리 위에 타고 게임 했군요!?]
해설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정말로 안토는 이미 일꾼을 밖으로 빼놓고 게임 하는 중이었다.
우노는 할 말을 잃었다.
‘기껏 와서 쳐 잔다고?’
우선 트레스가 이런 경기를 보다가 자는 것이 놀라워서이고.
둘째론 경기가 놀라워서이다.
조선과 로마의 경기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 전혀 몰랐는데…….
‘싸움의 수준이 너무 높아.’
수준 차이가 느껴진다.
‘난 지금 제3의 시점에서 보고 있는데도 수 싸움을 앞서지 못하고 있다.’
우노는 오늘 경기를 제대로 따라가는 것이 전부였다.
우노 역시 나쵸가 부재일 때는 총지휘관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임에도, 엄청난 격차가 있는 것이다.
[조선! 2시 멀티를 치는 선택을 감행합니다! 6시 지역은 거의 포기했죠!?]
이제 곧 전투다.
조선과 로마가 직접적으로 싸우기 일보 직전.
양쪽 다 서로가 가진 걸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고, 서로의 자원줄을 끊어내려 한다.
‘여기서 2시로 감행?’
우노는 2시 쪽으로 쳐들어간 조선 병사들의 면면을 살폈다.
단 10명이긴 하나, 조선이 자랑하는 정예 병사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10명으로? 너무 크게 이득 보려는 게 아닌가?’
꽤 중요한 전투인데 쿠키는 단 10명을 편성했다.
적이 무방비일 것을 기대하는 걸까?
그것도 묘수이긴 하나, 그렇다기엔 이들은 최정예로 쓰는 멤버들이다.
[여기서 만약에 조선이 일꾼 피해를 입힌다면! 수명이 연장될 겁니다!]
[멀티를 초토화시키면?]
[그럼 그때부터 반격할 힘을 얻겠죠? 하지만 그건 욕심입니다. 지금 로마가 이걸 예상하지 못한 게 아니거든요!?]
[만났어요! 계단 밑에 숨어 있었어요!]
전투가 벌어졌다.
옵저버가 이 전투를 꽤나 자세하게 잡아줬다. 아무래도 조선이 반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인데.
조선 궁병들과 로마가 자랑하는 중갑 보병들과의 전투.
문제는 거리였다.
너무 가깝다.
이러면 중갑 보병이 유리하다.
그런데─
‘어?’
분명 궁병들이 불리하게 시작했다.
숫자도, 상황도.
심지어 로마는 함정을 파놓은 아귀처럼 아가리를 쫙 벌리고 조선 병사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궁병들이 마치 신화 속 스파르타의 전사들처럼 싸웁니다!? 이게 동방의 궁병입니까!]
[믿을 수가 없는 전투! 조선이 반격의 끈을 잡습니다!]
우노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그들의 전투를 지켜봤다.
‘이럴 수가. 이게 뭐지? 조선이 이 정도라고?’
어느새 옆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려온다.
“씨이…….”
트레스다.
트레스는 마치 당장에라도 욕을 퍼부을 것 같은 눈빛으로 목을 길게 빼고 필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고 있던 거 아니었어?”
“닥쳐.”
그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쏘아붙였으나.
여전히 눈은 파르르 떨리고 있다.
심장은 거칠게 날뛰고 있었다.
쿵. 쿵. 쿵.
‘방금 전투는 대체 뭐야.’
궁병을 해본 적이 별로 없는 트레스라 할지라도, 상대해 본 적은 많기에 피가 끓어올랐다.
절대 좋은 의미에서는 아니었다.
분노?
차라리 분노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겉으로는 드러나는 건 분노와 거의 차이 없는 감정이겠으나, 속은 그렇지 않았다.
이건 트레스에겐 익숙지 않은 감정.
쿵. 쿵. 쿵.
이 심장 소리가 말해주는 감정의 이름은 ‘공포’였다.
* * *
높디높은 성벽 위.
그 위로 향하는 계단 난간에 팡어의 목이 길게 빼 나온다.
“거기 괜찮냐!?”
시체들에 엉켜 있는 터라 저 위에선 잘 보이지 않았다.
앞서나간 둘이 괜찮은 건지.
“하아…… 하아…….”
스팸이 숨을 몰아쉬느라 대답을 하지 못하고, 아몬드가 대신 위쪽으로 엄지를 치켜든다.
“오~ 케이! 내려간다! 둘 다 지렸다! 아주 제대로 낚았어!”
아무리 좋게 표현하려 해도, 낚인 쪽은 우리였는데…….
아몬드는 그런 생각을 하며 오라며 손짓한다.
어쨌든 한고비는 넘긴 셈이다.
“롸떼 하나만 죽었구나.”
궁병들이 다 내려오고 확인된 남은 인원은 9명.
처음 기습적으로 투창에 당한 롸떼만 죽고 나머진 전부 살아있다.
“무기에 이상 있는 사람?”
팡어가 필수적인 체크 사항들을 하나씩 점검해 나간다.
시빌 엠파이어는 무기에 내구성이라는 게 있어서 잘못되면 갑자기 부러지거나 휘어질 수도 있었다.
그럴 땐 별수 없이 상대방의 무기를 주워서 쓴다거나 다시 무기를 보급받아야 했는데.
여긴 상대방의 2시 멀티였다.
아군에게 무기를 보급받을 창구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은 괜찮아요.”
궁병들이 자신들의 각궁을 점검해 보고는 말한다.
“좋아. 혹시 모르니까. 여기 투창들 좀 챙…… 아. 맞다.”
팡어가 로마군의 창을 들어 올렸는데.
전부 창끝이 망가져 있었다.
“빌어먹을 지독한 새끼들.”
로마가 쓰는 투창 ‘필룸’의 특징이다. 끝이 정말 가늘게 되어 관통력이 높은 대신 한 번 쓰면 휘어지거나 부러져 적이 다시 사용할 수 없었다.
더 열 받는 건 로마군은 이 앞부분만 교체해서 다시 쓸 수 있다는 점.
“자, 어쨌든 그럼 방패라도 챙겨. 이제부턴 진짜 무슨 일이 생겨도 우린 끝까지 살아남아서 적 일꾼들을 괴롭혀야 하니까.”
다들 팡어의 말에 끄덕이며 로마군의 장비 중 쓸 만한 것들을 챙겼다.
상현은 방패와 롱소드 사이에서 고민했는데.
그냥 둘 다 챙겨 버렸다.
무게가 조금 나가서 불편하지만, 그래도 다 쓸모가 있으리라.
“자. 가자.”
팡어가 앞장서서 숲길 쪽으로 들어섰다.
일꾼 견제의 가장 기초적인 루트인데, 일단 숲을 따라서 나무를 캐는 일꾼부터 견제하면서 금광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팡어가 씩 웃으며 뒤를 돌아본다.
“자, 이제부터 반격의 서막이다. 가자!”
조선 궁병들이 줄지어 행진한다.
다시 적진 안으로, 깊숙이.
이때 조선군의 팩션이 업그레이드되는데.
띠링!
[업그레이드 완료!]
[민병대]
[발동 시 모든 무장을 포기하고 방어력이 –200%, 이동 속도와 관통력 및 날카로움 150% 증가한다.]
3시대의 죽창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민병대 팩션이 업그레이드됐다.
죽창과 다른 점은 이 팩션은 조선이 필수로 쓰는 종류라는 것이다.
‘어쩌면 진짜…….’
아몬드는 끝없이 놓인 숲길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팡어의 말대로 정말 지금이 반격의 서막이라고.
“와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관중석에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팩션 업그레이드가 된 걸 기뻐하는 걸까? 그런 거치곤 꽤나 큰 함성이다.
* * *
한국의 중계진은 조선의 10인 특공대가 침투에 성공한 것에 아직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2시 멀티에 조선 궁병 10인! 아니, 9인이 정말로 들어갔습니다!? 지금 일꾼들이 일하는 지역으로 가고 있어요!”
“게다가! 민병대 업그레이드까지 됐죠!? 이거 조선의 3시대 팩션인데! 우스갯소리로 럭키 죽창이라 부르지만! 죽창하고는 솔직히 비교하기 어려운 팩션이거든요!? 초오럭키예요!”
-럭키 죽창ㅋㅋㅋ
-민병대 좋음
-이건 거의 집중 급임
-민병대가 뭔데??
시청자들 중에 워낙 새로 유입된 자들이 많아서 민병대가 뭔지 모르는 자들도 다수였다.
“그렇습니까!? 민병대가 어떤 팩션인지 설명 한번 해주세요! 킹귤 님!”
그렇기에 캐스터가 킹귤에게 설명을 부탁한다.
“민병대!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버서커 모드! 페이즈 2! 기어 세컨드! 뭐 이런 거예요!”
킹귤도 시청자들의 수준을 고려해서 최대한 간단하고 쉽게 표현했다.
“버서커 모드?! 그럼 방어력 포기하고 공격이랑 속도에 올인인가요!?”
“예! 발동할 경우에 그렇습니다! 근데 그거 아십니까? 조선은 어차피 갑옷의 방어력이 그렇게 좋은 문명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민병대 써도 큰 손해가 아닌 거죠!”
“아…… 조, 좋아해야 하는 거 맞죠!?”
-웃프네……
-기어2 ㅋㅋ
-좋아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이게 팩션만 보더라도 문명의 특성이 확 보이거든요!? 조선은 죽창, 민병대, 현장 건설 같은 순간의 반전을 꾀하는 것들이 주류이고! 로마는 대성당 수금! 성직자 버프! 뭐 이런 재정 팩션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까 묵직~하게 플레이해야 하죠!”
“조선은 날래게 해야 하구요!?”
“그렇습니다. 근데……!?”
각 문명의 팩션의 차이를 재미 삼아 설명하는 순간.
촤르르르르륵…… 쿵!
문이 열렸다.
“로, 로마아아아!!!”
“무, 문이?!”
11시.
로마 본진이다.
게임 시작 후 처음으로, 열린 것이다.
로마의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드디어 진출합니까!?”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로마의 본대.
쿵!
그들은 한 치 오차도 없이 모두 동시에 발을 내디디며 전진해 왔다.
쿠웅!
이제 이들은 조선의 압박을 뚫어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