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98화
34. 차력쇼(2)
2시 지역의 숲속.
“찾았다.”
가장 선두에 가던 아몬드가 중얼거리며, 활시위를 당겼다.
그르르륵……!
그의 화살촉이 노리는 곳은 일꾼의 머리였다.
일꾼이기 때문에 딱히 반격 능력도 없고, 한 번에 머리를 맞히면 지휘관에게 알람조차 울리지 않는다.
그는 망설임 없이 활시위를 놓았다.
파앙!
로마의 일꾼이 쓰러진다.
다른 쪽에서도 각궁의 시위 소리가 울려 퍼진다.
파앙! 파아앙!
다른 조선 병사들이 일꾼들을 잡는 것이다.
“앞으로!!”
팡어가 육성으로 외쳤다.
그야, 아까부터 지휘관의 오더가 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쩔 수 없었다.
‘언제나 쿠키가 여길 봐줄 수는 없어.’
아몬드가 느끼기에도 현재 조선 상황이 그리 좋지 못했다.
그러니 아마 2시 지역 전투는 계속해서 이렇게 오더 없이 이어질 확률이 높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여기 모인 10인은 이미 스크림이나 연습을 통해서 각개전투가 충분히 가능한 인원들이었다.
‘게다가 아직 팡어 님이 살아 있고.’
팡어가 일단 리더로서 생존해 있었기에 완전한 각개전투가 전개된 건 아니었으니, 작전은 계속해서 성공적이었다.
조선 궁병들은 조금씩 전진하면서 일꾼들을 착실하게 척살해 냈다.
파앙!
파아앙!
나무를 캐는 일꾼들은 거의 전멸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모두가 단 1발로 머리를 맞히고 있었으니.
상대 지휘관도 한참 동안 알아채지 못한 듯 보였다.
‘쿠키가 여길 신경 못 쓴다면, 상대도 신경 쓰기 힘들 거야.’
아마 쿠키가 신경 쓰고 있는 어딘가의 전투에 상대 역시 신경을 쏟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앗……!”
옆에서 침음을 흘리는 궁병 하나.
푹!
“으어어어어억!”
일꾼이 비명을 지른다. 화살이 어깨에 맞았다.
빗맞은 것이다.
“괜찮아.”
아몬드가 달려가며, 가볍게 활시위를 튕겼다.
“저, 적이──”
──퍼억!
머리가 관통당하며 일꾼은 그대로 나자빠졌다.
“죄, 죄송합니다. 어쩌지…… 이거 알림 갔을 거 같은데…….”
당황하여 쩔쩔매는 궁병의 아이디는 [페코리노]였다.
나이가 꽤 어린 친구인데. 아몬드와는 거의 대화해 본 적이 없었다.
아몬드는 어쨌거나 그를 달랬다. 지금 여기 있는 궁병이 단 아홉뿐인데 한 명이라도 멘탈이 날아가면 곤란했다.
“괜찮아. 어차피 언젠가 일어날 일이지. 어떻게 머리를 매번 맞혀.”
“혀, 형은 하시잖아요.”
“어. 그러니까 나 말고 너 말이야…… 네가 어떻게 머리를 매번 맞히겠어?”
“……?”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괜찮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ㅁㅊㅋㅋㅋㅋ
-이게…… 위로?
-분노로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고도의 심리전입니다만?
-이 정도면 위로가 아니라 아래로 ㅋㅋㅋ
-미치겠닼ㅋㅋㅋ
“크, 크흠…… 알겠습니다.”
어찌 됐든 상대는 아까의 실책을 잊은 듯 털고 일어났다.
“가자. 어차피 여기로 더 지원군 보내면 그것대로 좋은 거야.”
“근데 형 전략 잘 모르시잖아요…….”
“이 정돈 알아!”
지능 공격에 갑자기 발끈하는 아몬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
-어이. 얘 호두에 민감하다구?
-페코리노쉑 할 말은 다하누 ㅋㅋ 패닉한 거 맞냐?ㅋㅋㅋ
-펙트리노ㄷㄷ
뜨끔.
페코리노는 아몬드가 소리치는 걸 처음 봐서 깜짝 놀라 버렸다.
그도 그럴 게 아몬드는 게임 할 땐 거의 감정 동요가 없는 편이니까.
‘그 아몬드를 내가 동요시킨 건가? 혹시 이게 내 재능……?’
페코리노가 어이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아씨. 깜짝이야. 얌마. 안 들킨다면서 소리를 빽 지르면 어쩌냐?!”
팡어가 다가와서 둘의 등을 떠민다.
“가자. 가. 어차피 누가 와도 또 쏴 죽여 걍! 이판사판이야! 금광 일꾼 죽여야 되니까. 빨리 뛰어!”
팡어의 재촉에 페코리노랑 아몬드가 나란히 앞으로 뛰었다.
금광을 찾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원의 배치는 사실상 거기서 거기라서 팡어처럼 노련한 베테랑이 끼어있으면 대부분은 지휘관의 도움 없이도 금세 찾아낼 수 있었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된 건 다른 부분.
팅──!
희한한 소리가 울려 퍼지네? 라고 아몬드가 생각하는 순간.
──퍽!
팡어의 옆구리가 날아갔다.
“컥!?”
팡어는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며 튕겨 나간다.
순간 숲이 굉장히 요란해졌다.
“적이다아아!”
“매복이다!”
“제, 젠장!”
조선 궁병들이 순식간에 수풀 아래로 납작 엎드리거나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적 위치를 파악할 수 없기에 일단 숨는 것이다.
“하아…… 하아…….”
페코리노와 아몬드는 같은 나무 뒤에 숨었는데, 이 나무가 둘을 감당하기엔 조금 가늘었다.
“이, 이거 좀 좁은데. 옮겨야 하지 않을까요?”
티잉!
또 희한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빠각!
앞 편에 있던 병사 하나가 쓰러진다.
이제 조선 남은 병사는 고작해야 일곱이다.
대신 아몬드는 적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석궁이다.’
제노바 석궁병이었다.
제노바에서 만든 명품 석궁을 쏘는 로마의 한 병과이다.
“형. 어쩌죠?”
“네가 나가. 네 탓이잖아.”
아몬드가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아, 아깐 제 탓 아니라면서요!”
“내가 언제?”
실제로 아몬드는 페코리노 탓이 아니라고 한 적은 없다.
언젠간 일어날 일이라고 했을 뿐.
-ㅁㅊㅋㅋㅋㅋ
-페코리노 ㅠㅠㅠ
-페코리노 운다 ㅋㅋㅋ
“흐…… 가, 갑니다. 그럼.”
페코리노는 흐느끼는 건지 한숨 쉬는 건지 희한한 소리를 흘리며 다른 나무로 옮기려 했다.
팅!
페코리노가 한 발 떼는 순간 적의 석궁이 쏴졌고.
아몬드는 이미 시위를 당긴 채 조준한 채였다.
쉬이이이익──
그때, 수풀을 헤치며 날아온 두터운 볼트.
발견하자마자 아몬드는 팽팽하던 시위를 놓아주었다.
──카앙!
화살과 볼트가 공중에서 격돌하여 불꽃이 튀어 올랐다.
“허억!? 혀, 형님! 저를 버린 게 아니군요!?”
-ㅋㅋㅋㅋ왜 감동 받냐고ㅋㅋ
-사실 반쯤 버린 거 아님?ㅋㅋ
-캬 적 위치 확인하려고 일부러 내보낸거구나
-팩트) 그냥 와드로 쓴거다
그때 저 멀리서 당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진하던 방향에서 9시! 좌측이야!”
아몬드는 그 말에 곧장 방향으로 돌려 한 발을 더 쐈다.
페코리노 역시 그 방향으로 쏴 재꼈다.
그런데, 텅!
‘소리가?’
소리가 시원치 않았다.
빈 깡통 차는 소리.
팅!
오히려 저쪽에서 다시 볼트가 쏘아졌다.
빠각!
나무가 하나 쓰러져 버렸다.
위치를 알아내서인지. 볼트를 맞은 조선 궁병은 이번엔 아무도 없었다.
‘뭐지. 쏘는 건 한 명 같은데. 공격은 막고 있고…….’
수풀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스팸! 엄호!”
아몬드가 앞으로 뛰어나가며 외쳤다.
“예! 햄!”
스팸과 조선 궁병 몇이 상대를 향해 화살을 마구 퍼부었다.
이러면 아몬드 쪽을 집중할 수 없으리라.
‘잠깐.’
그런데, 아몬드는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팅!
적이 다시 석궁을 쏘는 소리.
원래라면 엄호 때문에 이쪽으로 쏠 수 없을 테지만.
‘이쪽이다.’
놀랍게도 볼트는 정확히 아몬드를 향해 날아왔다.
화살로 튕겨낼 수는 없었다. 미리 메겨둔 화살이 없다.
아몬드는 대신에 곧바로 뒤로 휘릭 돌아버렸다.
마치 상대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치듯.
텅……!
-??
-뭐야
-헉
-맞음???
등 쪽에 짜릿한 충격이 가해지며 아몬드가 잠시 고꾸라졌다.
그러나, 이내 그는 다시 일어난다.
“하.”
등에 매달려 있던 방패로 막은 것이다.
-ㄷㄷㄷ
-미친
-와 ㅋㅋㅋ
-근데 방패 뚫렸는데??
-이걸?
-이건 운빨도 미쳤넼ㅋㅋㅋ
방패로 막긴 했는데. 방패가 볼트에 뚫려 있었다.
볼트를 마지막에 한 번 더 막은 건 방패 뒤에 같이 매고 있던 롱소드였다.
‘와. 겨우 살았다.’
롱소드로 막아낸 건 진짜 운이 따라준 것이다.
“다시 쏴! 뛸게!”
아몬드는 뚫려버린 방패를 내다 버리고는, 다시 벌떡 일어나서 내달렸다.
“또 접근한다고!? 무리야!”
“괜찮아!”
거리가 조금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
다시 뛰다가 또 맞으면 그땐 갑옷이 다 뚫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석궁을 또 쏘게 하면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노릴 거야.’
아몬드가 아니라 다른 병사를 노리면 조선 궁병 수가 또 줄 것이다.
숫자가 5명 근처까지 줄어버리면 의미 있는 피해를 입힐 수가 없다.
아몬드는 여기서 결단을 내린다.
검지와 중지를 위로 치켜드는 것이다.
척.
그 순간─
[민병대]
──파아아앙!!
아몬드의 모든 갑옷이 터져 버리면서, 엄청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동 속도 150% 증가]
[관통력 150% 증가]
-ㄷㄷ
-이걸 여기서?
-아!
타다다다닥──!
그는 순식간에 적이 숨어 있는 수풀 쪽으로 뛰어갈 수 있었다.
“여기다!”
스릉!
아몬드가 롱소드를 뽑아 들어 베어버린다.
촤악!
깔끔하게 잘려나간 수풀 너머로, 놈들의 실체가 드러났다.
“!”
철로 만든 거북이.
이게 아몬드가 느낀 첫인상이었다.
-방진?
-헐 저게 뭐냐
-방패벽 ㄷㄷ
-와 미친ㅋㅋ
‘이렇게 조직적이라니.’
스페인군은 하나하나가 날뛰는 야수 같았다면, 로마는 완전한 하나의 유기체였다.
특히나 지금 같은 방패 돔(Dome) 전술은 완벽하게 팀플이 맞지 않으면 구사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조금만 다르게 움직여도 방패끼리 부딪히거나 방패의 틈이 보일 텐데.
그 안에서 석궁을 쏘는 자의 편의까지 고려한다니.
살아 움직이는 철갑의 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철컥.
그 괴물의 등껍질 안에서 장전된 석궁의 활대가 튀어나온다.
화살촉은 아몬드를 향해 있었다.
‘온다.’
아몬드는 눈을 부릅떴다.
집중해야 했다. 거리가 가까워서 방심했다간 당했다.
놈이 어딜 노리고 쏘는지 봐야 했다.
‘심장!’
팅……!
석궁이 쏘아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몬드는 좌측으로 피한다.
치익─
볼트는 옷깃을 스친다.
날아간 볼트는 뒤쪽에 있는 애꿎은 나무를 박살 낸다.
──빠가각!
“피, 피했어?! 이 거리에서?”
가려진 투구 너머 로마군의 퍼런 눈이 놀란다.
서로의 눈 색깔까지 볼 수 있는 거리였다.
거기서 석궁병이 쏜 걸 피했다니?
우연이 아니었다.
이들도 프로였기에 아몬드가 고의로 피한 것을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저 자식은 찔러! 찔러 죽여!”
위기감을 느낀 건지 방패벽이 앞으로 나오며 아몬드를 찔러 죽이려 했다.
그러나 그때, 엄호 화살들이 날아온다.
파바바방!
“화살! 온다!”
터더엉! 텅!
조선의 화살이 방패에 박히거나 튕겨 나간다.
“젠장! 그 자식 어딨어!?”
“뭐?”
“아까 앞에까지 왔던 놈! 안 보여!”
아몬드가 그들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완벽한 구형의 방패 돔 전술의 큰 단점.
투구 때문에 안 그래도 시야가 좁은데 방패로 다 가리니 더 시야가 없다.
이래서 많은 훈련이 필요한 전술이다.
“상관하지 마! 우리는 이 자리만 지키면 된다! 석궁병! 보이는 놈들부터 쏴라!”
올바른 판단이었다.
이대로만 방패벽을 유지하면 이긴다.
2시 멀티 수비를 성공시킬 수 있다.
어차피 안에 있는 석궁병은 느리지만 계속 볼트를 쏴댈 것이고.
우리는 이 방패벽을 뚫지 못할 것이다.
각궁은 석궁이 아니라, 갑옷이면 모를까 방패까지 뚫진 못한다.
집중을 끝까지 당겨도 방패는 무리다.
“맞아! 일단 보이는 놈부터 쏘면 된다! 집중 팩션 다 땡겨도 방패는 못 뚫어!”
하지만, 아몬드는 달랐다.
그는 민병대를 활성화한 상태였다.
주목받는 경우는 드물지만, 민병대에는 이동 속도 증가 말고도 다른 버프가 있었다.
‘관통력 증가.’
로마군 중 누군가 그 팩션을 떠올린다.
“아니야! 그 자식 민병대도 썼잖아!? 거기에 집중까지 다 쓰면 방패 뚫려!”
방패가 뚫린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것조차 문제 되지 않았다.
“무슨…… 그랬음 저놈들 다 민병대 썼지! 방패가 뚫려도 우리 갑옷은 못 뚫어!”
방패 다음 그 뒤에 있는 로마 중갑 보병의 갑옷까지 뚫지는 못한다.
“그러니 대열 유──”
그러니 대열만 유지하면 된다.
그렇게 결론이 내려진 순간.
──파앙!
아몬드가 활시위를 놓는다.
로마군은 아몬드의 위치를 완전히 놓치고 있었다.
“!?”
퍼어엉!
그렇기에 한동안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다.
예상하지조차 못했다.
하얀빛으로 타오르는 화살이 왜 방패벽 내부를 밝히고 있는지.
아니,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
그 화살이 이 철갑 괴물의 등껍질 사이, 미세한 틈을 파고들어 그 안에 있는 석궁병의 머리를 관통해 버렸다는 걸.
심지어 그 화살은 그대로 그 뒤에 자리한 방패병의 목 뒤까지 뚫어버렸다는 걸.
“…….”
잠시 로마군이 사이에 침묵이 흘렀고.
……쿵!
조선의 화살을 정면에서 막아내던 로마의 방패 하나가 앞으로 쓰러졌다.
방패가 사라지며 노출된 병사가 다급히 외쳤다.
“제, 젠자앙! 앞에 막아아!”
막으라고. 들어 올리라고. 고래고래 소리쳤으나.
그럴 기회는 없었다.
“쏴!”
퍼버버벙!
조선 궁병들의 화살이 일제히 떨어져 나간 방패 벽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