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02화
35. 릴리즈(3)
오늘은 조선과 프랑크의 경기가 있는 날.
저번에도 그랬듯이, 경기 몇 시간 전.
가짜 국대의 영상이 올라온다.
[가짜 국대 ep2. 놓아주다(Release)]
[지금 최초 공개 중!]
영상이 시작되고.
어두컴컴한 분위기 속, 싱크 탱크의 멤버들이 보인다.
[조선 vs 로마]
[패배 후]
때는 조선이 로마에 패배한 직후.
“아니! 형! 그렇잖아!”
쾅!
치승이 소리치며 박차고 일어난다.
-ㄷㄷ
-오우 뭐야??
-???:아니 ㅆㅂ 상훈이형!
-벌써부터ㄷㄷ
-아 인트로인가?
곱스피어와 치승이 마주 보는 장면이 클로즈업된다.
“나도 그냥 한 말이지, 인마.”
곱스피어의 목소리가 미약하게 떨린다. 크게 흥분한 듯이.
“그냥!? 그냥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치승이 휙 뒤로 돈다.
그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다.
“너네도 잘 들어!”
TV 주변에 모여 있는 멤버들이 화면에 들어온다.
물만두는 뒤돌아서 귀를 막고 있었고, 다른 멤버들도 고개를 숙인 채다.
“게임 보는 눈 있으면 알 거 아냐! 우린 개발린 거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어!”
시작부터 몰아치는 감정.
이들의 입장에선 고통이었겠으나, 시청자들은 감화된 듯했다.
-와 ㅋㅋㅋㅋ 흥미진진
-헐 험악하네
-아 치승이가 리더였지 ㄷㄷ
-개꿀잼이누 ㅋㅋㅋㅋㅋ
-크 이게 리얼리티지
쿵!
치승이 방문을 거칠게 닫고 들어가고.
치지지직.
화면이 전환된다.
어두운 방.
치승의 얼굴이 크게 잡혀 있다.
그가 카메라를 쳐다본다.
시청자와 눈을 마주친다.
“촬영하셔야…… 겠죠?”
그는 그렇게 한참 쳐다보더니, 결국 고개를 돌린다.
“하긴, 하셔야죠. 이게 다 컨텐츠인데.”
그가 문에 기대며 미끄러지듯 털썩 주저앉았다.
화면이 기울어지더니─
쿵.
─카메라가 떨어진다.
화면이 옆으로 돌아간 상태로 치승이 중얼거렸다.
“저만 진짜 이길 거라고 생각했나요?”
그가 헛웃음을 지으며 스스로 대답한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화면이 암전하며, 인트로 음악이 흘러나왔다.
[가짜 국대]
[Fake Athelete]
-ㄷㄷㄷㄷ
-ㄴㅇㄱ
-쉣~~
-치승이 멘탈 잡아 ㅠ
-나도 이길거라 생각했어 ㅠㅠ
-오우……
-인트로 미쳤네
이제 다시 사건의 시작으로 간다.
[로마 vs 조선]
[경기 중]
경기 중인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나온다.
마지막 항전하는 플레이어들.
그중에서도 끝까지 남았던 아몬드.
결국 그마저 전사하며 게임이 패배로 마무리되고.
중계진은 안타까워한다.
[패배]
결국 패배가 선언된 후.
모든 플레이어들은 순식간에 게임의 로비로 소환됐다.
시빌엠의 로비는 알다시피 선술집의 형태로 되어 있었다.
털썩.
아몬드는 로비로 돌아오자마자 바닥에 그냥 널브러지듯 주저앉았다.
어차피 가상 공간이라 그런지, 구태여 의자를 찾고 싶지도 않아 보였다.
그는 그냥 그 상태로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장면은 그간 시청자들은 볼 수 없었던 게임이 지고 난 후의 선수들의 모습이었다.
아몬드뿐이 아니었다.
화면이 갈라지며 수많은 선수들의 대기 화면이 나오는데.
하나같이 제대로 서 있는 자들이 없었다.
아마 그만큼 모든 걸 쏟아냈던 것이리라.
[디스월드 소환 요청]
이후, 피드백을 위해 이들은 디스월드로 향한다.
그곳엔 다큐 팀의 스태프들도 같이 들어가 있었다.
그들은 나누어져서 이 디스월드의 풍경을 찍거나, 선수들의 인터뷰를 따기 시작했다.
그중 카메라는 아몬드에게 다가간다.
“저…… 아몬드 님?”
평소 촬영에 협조적인 아몬드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
그는 말없이 작가를 돌아본다.
“경기 소감 인터뷰 하나 따도 될까요?”
잠시 고민하던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예. 그러시죠.”
“이제 곧 피드백 회의인가요?”
“예. 이겨도 진행하구요. 패배한 날은 아마 좀 더 길 거예요.”
“아…… 그럼 경기가 끝나도 바로 캡슐에서 나가시는 게 아니군요?”
“그렇죠. 보통 서너 시간 정도 진행해요.”
“……그, 그렇게 오래요?”
시청자들은 알 수 없었던 부분이다.
-그렇구나
-생각보다 빡세네 ㄹㅇ
-와 경기 기간엔 거의 프로게이머네
-ㄷㄷㄷ
-하긴 상대가 프로인 경우도 있으니……
시청자들은 생각보다 높은 노동 강도에 놀란다.
그들이 볼 수 있는 건 경기 시작 후 플레이하는 짧은 모습뿐이었으니까.
“아몬드 님은 캡슐 장시간 사용을 힘들어하시는 걸로 알려졌는데. 괜찮으신가요?”
“아. 게임을 하는 게 아니고 그냥 이야기 정도 하는 거라. 괜찮아요.”
“그래도 전략 같은 거 들으면서 이해하려면 또 머리 아프잖아요.”
“?”
아몬드는 순간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마주 본다.
“혹시…… 안 들으세요?”
“예? 아뇨?”
“그럼 들어도 모르시는…….”
“크흠…….”
아몬드는 잠시 딴청을 피운다.
슬픈 음악이 흘러나온다.
-ㅁㅊㅋㅋㅋㅋㅋ
-그럼 대체 왜 있냐고 ㅋㅋㅋㅋ
-그냥 집에서 자라 몬드야
“들어도 모른다기보다, 그냥 플레이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라…….”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전략파와 전투파가 있는데. 당근이나 팡어 같은 경우가 전략파이고, 자신은 전투파라는 것이다.
“그러면 차라리 전략에 관련 없는 플레이어들은 쉬는 게 낫지 않나요?”
“그래도 다 있으면 사기가 올라가지 않을까요?”
“아. 사기요…….”
작가는 잠시 침묵하고, 또다시 슬픈 음악이 흘러나온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본인만 모르고 다른 플레이어는 다 아는중~
-피드백 참가 이유: 사기 진작
-토템이냐??ㅋㅋㅋ
-학교 수업도 선생님의 사기 진작을 위해 들었다는 유상현군 ㅠㅠㅠㅠ
-ㅋㅋㅋㅋ걍 사기 아니냐고 ㅋㅋㅋ
화면이 전환된다.
아몬드 외의 다른 플레이어들 인터뷰도 몇 개 소개된 후.
쿠키가 피드백을 하는 장면도 나왔다.
“……실상 전략에서 잡아먹히긴 했지만, 현장 판단에 대한 피드백만 진행하자면, 아너저 투석기에 너무 무방비했다. 산개가 제대로 되지 않아 처음부터 큰 피해를 입은 게 가장…….”
당연한 거지만, 중요한 전략적 피드백은 나올 수 없었다.
-아몬드는 자는중인가요?
-아몬드 듣는거 맞지……?
-ㅋㅋㅋㅋㅋ다 아몬드 찾누
잠시 왠지 다른 사람과는 다른 곳을 쳐다보는 듯한 아몬드가 비친 후.
영상은 클라이맥스로 향해 간다.
치지지직.
[싱크 탱크 팀의 아지트]
착잡한 분위기의 아지트다.
분명 스포츠 경기를 관람 중인데, 아무도 신난 사람이 없었다.
“……하아.”
“아…….”
중간중간 침음을 흘리는 멤버들은 있었으나, 대부분 로마가 일꾼을 빼놨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이 경기는 졌다는 걸.
이윽고 경기는 패배했다.
“하…….”
다들 아무런 말이 없이 각자 자리에 못이라도 박힌 듯 멍하니 화면을 응시한다.
여기서 치승이 박차고 일어나며 인트로의 장면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사건의 발단은 곱스피어가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며 위로했던 것.
“아니! 형! 그렇잖아! 이게 어떻게 졌잘싸야? 그냥 로마한테 져도 본선 갈 수 있다고 하면 맞지만.”
“나도 그냥 한 말──”
“너네도 잘 들어!”
치승이 발끈하며 모두를 보며 소리쳤다.
“우리 완전 개발린 거야! 너네도 눈이 있으면…….”
한참을 뭐라 뭐라 소리치던 치승은 씩씩대다가 이내 고개를 떨군다.
“미안.”
카메라가 클로즈업되며 치승의 표정이 자세하게 보인다.
그의 눈에 맺힌 어떤 책임감과 좌절이.
“내가 리더인데. 어차피 최종 판단은 난데…….”
“야, 치승아…….”
“전부 내 잘못이야. 미안해. 소리 질러서.”
-치승이 그래도 착하누
-야, 우냐?ㅋㅋ
-그래도 사과하네
-ㅠㅠ우나봐
쿵!
그는 방에 혼자 있겠다며 들어간다.
물론 혼자는 아니다. 그곳에도 카메라는 존재한다.
“촬영하셔야…… 겠죠?”
그는 그렇게 한참 카메라를 보던 그는 질문을 던진다.
“어차피 촬영하는 김에 묻고 싶습니다. 저만 진짜 이길 거라고 생각했나요?”
잠시의 침묵 후. 스스로 대답하는 치승.
“……그럴 줄 알았습니다.”
-???
-답정너 뭔데 ㅋㅋ
-아니라고!
-ㅠㅠ사실 로마가 이길거 같긴함
그러던 중, 치승에게 메시지가 온다.
메시지는 프로필과 이름은 가린 채, CG 편집으로 우측에 들어가게 됐다.
띠링.
[유■■: 오빠. 저 조별 과제 때문에 그런데 혹시 알바 대타 되세요?ㅠㅠ]
[김치승: ㄴㄴ 불가능. 나 대회 중이라.]
[유■■: 아…… 오빠 말고는 할 사람이 없는데ㅠ 그거 게임 대회 말씀하시는거죠? 저는 학교 중요한 조별인데……ㅠㅠ 어떻게 안 될까요?]
치승은 ‘이것도 중요한 거……’라는 답변을 보내려다 말고 지운다.
-쟤 뭐임 대체
-지금 나라의 명운이 걸렸는데! 무어어어!? 조별 과제에에에에!?
-하 주먹이 운다 ㄹㅇ
-무슨 지 조별 과제가 존나 대단한줄ㅋㅋㅋㅋ
-대학원생이면 그나마 ㅇㅈ해줌 불쌍하니까
-제발 좀 깨달아요 유버지!
온갖 비난이 난무하는 채팅창.
이걸 봤다면 치승은 그나마 속이 풀렸겠으나.
영상 속 치승이 시공간을 건너 이 채팅을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치승은 카메라를 보고 헛웃음을 터뜨릴 뿐이다.
“그냥 이유는 말하지 말 걸 그랬나 봐요.”
-ㅠㅠㅠㅠ괜히 상처만 ㅠㅠ
-하…… 하긴 누가 알아주지도 않으니
-???: 가짜 국대니까요……
-가짜 국대 서러워서 살겠나
-이게…… 국대?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알바 대타를 해달라는 메시지가 오고.
치승은 결국 비장의 수를 쓴다.
[김치승: ■■아. 나 너 좋아해. 사귀자.]
[유■■: 네???]
[유■■: 오빠 무슨 소리에요 정말ㅠㅠㅠ]
[김치승: 진심이야.]
우측에 CG로 뜬 메시지에, (차단됨)이라는 효과가 더해졌다.
-엌ㅋㅋㅋㅋㅋㅋ
-차단된거야??ㅋㅋㅋ
-무슨 소리에요 정말ㅠㅠㅠ 개찐텐이넫ㅋㅋㅋㅋ
-고백으로 혼내주자!?
치승은 카메라에 메시지를 보여주더니.
승리를 선언한다.
“컷.”
-엌ㅋㅋㅋㅋㅋㅋ
-벌레……컷!ㅋㅋㅋㅋㅋ
-이거 좋아해야하는거 맞죠? ㅠㅠㅠ
-미친ㅋㅋㅋㅋㅋ
-찐 특) 여자만큼은 제대로 혼내줄 수 있음
-이거 주작이죠? 제발 그렇게 말해줘요.
-오빠 무슨소리에요 정말ㅠㅠㅠㅠㅠ <<< 이ㅅㅂㅋㅋㅋㅋㅋㅋ
이후 장면이 넘어간다.
마지막은 당연히 프랑스전을 대비하는 모습이 나올 줄 알았는데.
[다음 날, 김치찌개집]
의외로 웬 김치찌개집이었다.
“어서 오세요! 만년 전통! 오강우 김치찌개입니다!”
-ppl이냐?ㅋㅋㅋㅋ
-아니 뭔데 이건
-앗 저기 개맛있는데
-아 배고파
-엇 ㅋㅋㅋ
보글보글 끓고 있는 찌개를 국자로 푹 퍼내는 치승.
“형 잘 먹을게요.”
“응. 먹어.”
“치킨 못 먹었다고 굳이 안 사주셔도 되는데.”
“그냥 줄 때 먹어.”
“옙.”
치승의 건너편에서 무심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상현.
-아몬드네??
-둘이 밥먹는거?
-와 아몬드도 김치찌개 먹는구나……
“죄송해요. 저번엔 저희가 전략이 부족해서……”
“응? 아냐. 병사들은 잘 몰라.”
아몬드는 듣기 무안한지 그냥 대화를 흘려 버린다.
-???
-병사들 = 아몬드
-엌ㅋㅋㅋㅋ
-팩트) 본인만 모른다
-김치워리어가 김치찌개를?? 엌ㅋㅋ
이에 치승이 다른 주제를 꺼낸다.
“그…… 형. 저 영상 봤거든요. 가짜 국대.”
“오.”
후릅.
상현이 김치찌개를 먹으며 반응한다.
“어때?”
“재밌더라구요. 근데…….”
치승은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다.
“거기서 목표가 우승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 게 쿠키 님이랑 형뿐이더라구요.”
“응.”
“형은 정말 우승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
상현은 잠시 그릇을 내려놓고는 생각하더니 이런 말을 한다.
“대회에 참가했으면 결국 우승이 꿈인 거잖아.”
“……그렇죠.”
“그래.”
상현은 그거면 되지 않았냐는 듯 다시 식사를 한다.
“아니, 근데…… 모두가 꿈을 이룰 순 없잖아요. 언젠간 놓아줘야 하잖아요. 단순히 우승이 저희들의 꿈이라서 그렇게 얘기하신 거예요?”
놓아줘야 한다라…….
이 말은 상현에게도 의미가 있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코치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
상현은 밥을 먹으며 무심하게 말했으나, 희한하게 그의 말은 마치 후 녹음을 한 듯이 또박또박하게 전달됐다.
“화살을 시위에 매기고, 시위를 당겨. 최대의 힘으로 끝까지. 이걸 우린 풀드로우라고 해.”
“……예.”
“이 풀드로우가 가장 힘이 많이 들어. 특히 홀딩을 하면 초보자는 손이 덜덜 떨려. 그런데, 막상 정말 화살을 놓아줄 때, 그러니까 릴리즈 할 땐 아무런 힘도 들지 않아. 해방되는 기분이야.”
틱, 틱, 틱…….
상현은 펄펄 끓는 찌개의 불을 조절하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우린 과녁을 맞힐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진 절대 화살을 놓아주지 않아. 다시 당기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야.”
“……!”
치승이 점점 뭔가 깨닫는 듯 눈이 커진다.
“놓아주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놓아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난 아직 조준도 제대로 못 해봤거든.”
화르륵.
마침내 원하는 불의 세기가 되었는지, 상현은 이만 가스 불에서 시선을 옮겼다.
치승을 바라봤다.
그의 눈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이날, 조선은 프랑크를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
* * *
치지지지직.
프랑크전 승리 이후.
가짜 국대 영상이 놀랍게도 하나 더 올라왔다.
[쿠키 영상]
영화 따위에 감초처럼 추가되는 짧은 쿠키 영상이다.
화면에 비춘 주인공은 치승이었다.
-쿠키 영상인데 쿠키는 ㅇㄷ?
-쿠키나오는줄 ㅋㅋㅋ
-쿠키 영상(아님)
치승이 카메라에 다가오며 말했다.
“제가 틀렸네요…….”
그는 휴대폰 화면을 카메라에 가져다 대며 보여준다. 수많은 응원 글이 저장된 사진집이다.
“저 말고도 이길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네요. 이렇게나.”
아까만 해도 치우고 싶었던 카메라에 대고 그가 꾸벅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그가 다시 한번 인사하며 덧붙인다.
“잘 해보겠습니다.”